데 스틸은 건축, 조각, 회화를 명료하면서도 간결하게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낙천적인 파리장들 중에는 다다이스트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도 이종교배(異種交配)를 통해 또 하나의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드리언느 모니에라는 여성이 만들었던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집’은 파리에 주재하는 지적 호기심에 넘친 사람들의 모이는 살롱이었다.13
여기에 들렀던 레이몬드 리노제가 친구인 작곡가 프란시스 프랭크를 위해 쓴 단편소설 『비비스트의 비비』는 후에 하나의 ‘주의’가 되다시피 했다.
다다가 전반적으로 일종의 비장함을 담고 있었다면, 사티가 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비스트는 일종의 자상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를 시작으로 하는 유럽의 도시들은 보다 큰 붕괴와 해체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봄날같이 짧기는 했으나 그 와중에도 온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콜라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실의 단편적인 재구성,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로부터 인용된 단편에 의한 새로운 구성원리의 모색’과는 달리 데 스틸은 객관적인 구성 원리의 탐구에 주력했다.
데 스틸은 건축, 조각, 회화를 명료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리고 감상적인 수준의 것이 아닌 객관적인 방법으로 결합시켜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데 스틸은 1918년 11월 첫 번째 선언을 발표했다.14
선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지금 구시대적 의식과 새로운 시대의 그것이 공존하고 있다.
구시대적 의식은 개인을 지향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의식이란 보편적-유니버설-인 것을 목표로 한다.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싸움은 세계대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도 존재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개인적인 것이 우선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전쟁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새로운 스타일’은 새로운 시대의식이 지녀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여기서 해체와 콜라주의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이 최초로 제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발표된 이 선언의 가장 큰 의의는 그것이 전후의 새로운 질서를 목표로 했다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에 상대되는 보편적인 것을 향한 의지’는 새로운 시대에 상응하는 사상을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이고, 동시에 편협한 국가의식이나 개인의식을 넘어서는 지구적인 규모의 그것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보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관련성에 관한 인식도,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해체 후에 필요한 사상의 축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 스틸 운동은 이 같은 기본 원리에 입각해서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늘리는 데에 주력했다.
특히 반 뒤스부르크는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잡지 『데 스틸』의 지면을 개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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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와 데 스틸과의 역사적 만남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와 데 스틸과의 역사적 만남은 1923년 카렐 차펙크의 무대장치를 제작하기 위하여 비인에서 베를린으로 왔을 때 이루어졌다.
키슬러는 앞서 인용한 토마스 H. 크레이톤과의 대담에서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15

어느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제2막이 끝나고 무대 뒤편의 대기실을 나오려고 할 때, 한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키가 큰 남자였는데, 검은 셔츠에 흰 넥타이를 매고 한쪽 눈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고 기억되는군요.
손에는 사슴가죽으로 만든 고급 장갑을 끼고 모자는 쓴 채로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반 뒤스부르크였습니다.
내게 다가와서 “키슬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더군요.
나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불쑥 질문을 받은 터라 다소 놀라면서 “접니다.”라고 대답했지요.
그가 “당신이 키슬러군요!”라면서 뒤돌아 손짓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쿠르트 슈비터스, 한스 리히터, 모흘리-나기, 엘 리시츠키, 베르너 그라페 등이었습니다.

그날 밤 미스 반 데어 로에까지 합세하여 건축과 미래의 극장 <엔드리스 극장> 등에 관하여 밤새워 대화를 계속했다고 한다.

한편 당시의 경향들이 아직 과거흔적을 남겨놓고 있던 데 반하여, 의 무대장치는 기계시대의 새로운 구성요소인 완전한 추상적 형태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카메라 셔터와도 흡사한 영사막의 개폐장치나 텔레비전 영사를 위한 장치를 포함하고 있었다.
무대공간의 연출에 영상과 그 확대 및 축소에 의한 효과를 도입한 것이다.
은 ‘시간적 구성주의’11)라고도 할 수 있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해 키슬러는 비인에서 개최된 음악과 극장예술축제의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에 무대기술부문 디렉터로 참가하게 되는데,12) 그 이후 극장공간을 출발점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유럽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빈에서 발표된 <엔드리스 극장>은 1910년대 유럽에서 활성화했던 축제 공간의 연출과 동일선상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붕괴와 해체 이후에 등장한 구성에로의 지향, 다시 말하면 데 스틸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원리의 발견과 맥락을 같이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키슬러는 연극상연의 장을 새롭게 등장한 건축개념으로부터 유추했다.
이에 따라 공간구성에 있어서도, 건축공학적 구조에 있어서도 독창적인 것이었다.
<엔드리스 극장>은 상하로 납작하게 눌려진 타원구체이면서 2중의 유리로 된 곡면의 연속적인 각체구조로 되어 있다.
그것은 중력에 모든 하중을 두는 역학구조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장력에 의한 하중분산을 의도한 구석이 없는 독립된 구조체이다.16

보편적인 원리의 발견에 주력했던 데 스틸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이 같은 발상은 1925년에 파리 그랑 팔레에서 개최된 ‘국제 장식미술과 현대산업 박람회’에서 발표된 <공중도시>에서 다시 한 번 시도되었다.
"엔드리스’개념에 입각한 극장의 내부에는 바닥으로부터 솟아 있는 두 줄의 엘리베이터와 천장으로부터 내려뜨려진 또 다른 엘리베이터, 그리고 관객과 배우가 이동하기 위한 다리와 통로가 있다.
무대는 두 개의 교단식 무대와 또 하나의 ‘공간무대’로 되어 있고, 돔 전체에 영사할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건축의 밑 부분에는 호텔, 정원, 카페 등이 있다.

이 계획안의 일부에 대한 실물 크기의 모형이 비인에서 개최된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에 출품된 <공간무대>(1924)이다.

1923년부터 25년에 이르는 짧은 시기에 이러한 독특한 극장건축 프로젝트를 발표한 키슬러는 1926년 뉴욕의 스타인웨이 홀에서 개최된 ‘국제극장박람회’의 감독으로 초빙되어 유럽 극장에 관한 아방가르드들의 많은 자료를 갖고 뉴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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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는 ‘엔드리스 시어터’라는 새로운 개념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걸쳐 유럽은 연극적 풍토의 활성화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이 같은 시대상황에서 키슬러는 ‘엔드리스 시어터(Endless Theatre)’라는 새로운 개념의 극장 안을 통하여 극장건축의 혁신적인 향방을 제시했다.
1923년에 최초의 발상을 보인 이 안은 이후 몇 개의 프로젝트를 통한 실험을 거쳐 발전했다.2)
‘엔드리스 시어터’는 1962년에 완성을 본 <유니버설 극장>까지 계속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키슬러는 1923년부터 1962년까지 약 40년에 걸쳐 새로운 형식의 극장건축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극장안과 달리 ‘관객 및 연기자를 수용하기 위한 용기에 대한 제안’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엔드리스’에 관한 실험 가운데 하나인 <공간무대>(1924)를 통해 그는 극장건축의 새로운 기능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상연내용 및 형식에 대응하는 무대구조의 설계는 물론 객석의 구성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것이다.
여기서 제시된 그의 아이디어는 유럽의 극장건축 설계분야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1929년의 대공황의 여파로 유럽으로의 귀환을 포기한 키슬러는, 뉴욕의 줄리어드 음악원에 무대디자인 총책임자로 일하면서 많은 작업을 남긴다.
키슬러 관련 자료에 의하면 1923년부터 1956년까지 그가 디자인한 무대장치는 무려 53건에 이른다.3)
키슬러가 설계한 극장 건축은 무대디자인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건축가 입장에서 극장 설계에 임했던 당대의 건축가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1. 극장형식의 혁신 - 1920년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구성주의, 미래파, 다다이즘, 독일 표현주의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의 연극적 실험을 통해서 보다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연극이 아닌 극장공간에 대한 변혁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대본이나 연출형식 등 무대연출기법에 관한 변혁에 비해 다소 늦은 것이다.
먼저 1920년대 예술가들이 제시했던 극장에 대한 건축적 조형적 제안과 키슬러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그가 다른 예술가들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키슬러는 1923년에 수직과 수평의 단면 스케치를 통해 타원형의<엔드리스 극장>안을 발표하고 다음해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연극은 군주제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당시의 극장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우선 상류층의 좌석을 무대 전방에 배치하고 일반인의 좌석과 구분한다.
따라서 그 밖의 좌석을 차지한 관객들은-비싼 입장료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연극을 제대로 볼 수 없더라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
극장 건축가들은 우리 시대의 극장이 지니는 구조적 결함을 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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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 맨 앞자리를 확보한 관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장내의 어떠한 장소에서도 완벽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실용적인 면만을 충족시키면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어떤 극장 건축도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천장에 가까운 좌석의 관객은 무대의 윗부분과 무대 안쪽을 볼 수 없었으며, 그 대신에 상연이 끝날 때까지 줄곧 무대의 바닥과 프롬프트 박스(Prompt Box)에 있는 프롬프터(Prompter)4)를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일층 맨 앞자리를 확보한 관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들도 무대 전체를 확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양측에 튀어나온 객석 및 칸막이석의 관객은 무대의 우측이나 좌측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
더욱 기막힌 것은 가운데에 앉은 관객에게조차도 배우나 무대장치, 또는 소도구 등이 전후로 겹치는데다가, 설사 본다고 해도 그것은 대부분 실루엣이거나 원경에 불과하다.1


이상과 같이 키슬러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에 의존한 프로세니엄 아치형 극장구조의 불합리성을 세련되고 냉소적인 표현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무대의 관계는 18∼19세기의 극장보다 셰익스피어가 활약하고 있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가무대가 훨씬 더 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세니엄 아치(proscenium arch)형 무대의 개구부(開口部)는 관객을 향하여 한 방향으로만 개방되어 있고, 그 주위는 마치 회화작품을 에워싼 액자와 같은 프레임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프로세니엄 아치형 무대는 원근법에 근거하는 회화적 공간구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한 이상적인 위치는 개구부의 중앙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관객석에 한정된다.
프로세니엄의 바깥쪽은 벽면에 에워싸여 있고, 안쪽에는 눈속임을 위한 일루전의 배경막이 걸쳐 있다.
키슬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감방과도 같은 폐쇄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상연한 바 있는 <스완 좌>는 좌우의 벽도 천장도 없는 개방공간이었다.
게다가 숙사(宿舍)의 중정(中庭)에 임시로 설치된 것이므로 고정된 객석도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은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그곳에 계속 서 있을 수도,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감상할 수도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중정이 있는 그대로 무대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을 대립시키는 공간의 이분화는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여기서는 프로세니엄 아치형 극장처럼 연극행위가 무대 위에 한정되는 일도 없다.
객석을 포함하는 주위의 공간도 극적 세계의 일부였던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연극에서도 이 같은 공간구조를 찾아볼 수 있는데, 몇몇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객석에서의 해프닝은 물론 야외극과 같이 아예 극장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공연을 통해 극장공간에 대한 보수적인 이해를 타파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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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는 ‘장력(張力 tension)’을 단순히 건축공학적 기술이 아니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기존의 극장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극장 공간의 혁신은 주로 건축적 측면에 주목한 새로운 상연 공간의 제안을 유도하게 된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극장>이외에도 1926년 에르빈 피스카토르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전체극장> 계획안, 엘 리시츠키가 브세폴로드 메이어홀드의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를 위하여 고안한 무대, 그리고 M. 버크닌의 <메이어홀드 극장> 등이 대표적 예이다.
그중에서도 피스카토르는 그로피우스와의 공동 작업에 의한 ‘피스카토르 뷰네’-일반적으로 <전체극장>으로 알려져 있는 계획안-의 성립에 대하여 키슬러의 언급과 일치하는 말을 했다.


극장의 건축양식은 상연되는 드라마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은 상호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드라마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시대적 사회적 형식에 따르고 있다.


오늘날을 지배하고 있는 무대형식은 절대주의의 유산인 궁정극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1층석, 2층석, 입석, 칸막이석 등의 구별에 의해 봉건사회의 사회적 계급을 반영하고 있다.2


키슬러의 구상은 단지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보다 자유롭게 구성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셸(shell) 구조체의 연속적인 장력을 이용해 극장의 내부를 에워싸는 건조물을 제안했다.
키슬러는 셸 구조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실현했다.
구형의 건축물 내부의 공간 및 그 안에서 자유롭게 전개되는 드라마가 바로 그가 구상한 이상적 형태의 연극이었다.
이같이 연속되는 곡면의 공간 속에서 키슬러는 역학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달걀껍질도 키슬러의 <엔드리스 극장>과 같은 셸 구조라는 역학적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물론 달걀 정도의 크기라면 우리와는 분리된 하나의 객관적인 대상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셸 구조를 인간이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확대시킴으로써 물리적 대상물의 범주를 넘어서 인간의 ‘생태기능’과 관련되기 시작한다.


나는 살아 숨쉬는 건축을 꿈꾸고 있다.
‘공간도시’. 그리고 기능적인 건축을! 건물은 ‘생태기능’에 자유자재로 접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3


이 인용문은 1925년에 발표된 「선언 1925」5)의 서두이다.
키슬러도-당대의 모더니스트들과 같이-‘기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후에 ‘생태 기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기능적인 건축을 추구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주장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기능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능을 명확하게 밝히는 데 의도가 있었다.
인간의 생체감각에 기준을 두는 기능. 생명체가 지니는 유연성에 부합하는 기능을 지닌 건축.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 또는 일상생활의 조건을 분석하여 그것을 외재화 하는 방법적 탐구에 의존했던 바우하우스와는 개념에서도 기능에서도 전혀 다른 것이다.


키슬러는 ‘장력(張力 tension)’을 단순히 건축공학적 기술이 아니라, 세계 또는 우주의 원리이며 인간의 생태 기능에 상응하는 ‘구조’의 일종으로 이해했다.
특히 극장 공간의 내부는 단지 정적인 구조물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며, 마치 생명체와도 같은 활력에 넘치는 동적인 에너지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력에 의해 자립하는 구체인 <엔드리스 극장>은 이러한 구상의 구체적 실천인데, 여기에 제시된 공간 개념은 별다른 변경 없이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1924)를 위해 계획된 ‘공간무대’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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