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장력(張力 tension)’을 단순히 건축공학적 기술이 아니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기존의 극장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극장 공간의 혁신은 주로 건축적 측면에 주목한 새로운 상연 공간의 제안을 유도하게 된다.
키슬러의 <엔드리스 극장>이외에도 1926년 에르빈 피스카토르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전체극장> 계획안, 엘 리시츠키가 브세폴로드 메이어홀드의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를 위하여 고안한 무대, 그리고 M. 버크닌의 <메이어홀드 극장> 등이 대표적 예이다.
그중에서도 피스카토르는 그로피우스와의 공동 작업에 의한 ‘피스카토르 뷰네’-일반적으로 <전체극장>으로 알려져 있는 계획안-의 성립에 대하여 키슬러의 언급과 일치하는 말을 했다.


극장의 건축양식은 상연되는 드라마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은 상호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드라마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시대적 사회적 형식에 따르고 있다.


오늘날을 지배하고 있는 무대형식은 절대주의의 유산인 궁정극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1층석, 2층석, 입석, 칸막이석 등의 구별에 의해 봉건사회의 사회적 계급을 반영하고 있다.2


키슬러의 구상은 단지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보다 자유롭게 구성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셸(shell) 구조체의 연속적인 장력을 이용해 극장의 내부를 에워싸는 건조물을 제안했다.
키슬러는 셸 구조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실현했다.
구형의 건축물 내부의 공간 및 그 안에서 자유롭게 전개되는 드라마가 바로 그가 구상한 이상적 형태의 연극이었다.
이같이 연속되는 곡면의 공간 속에서 키슬러는 역학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달걀껍질도 키슬러의 <엔드리스 극장>과 같은 셸 구조라는 역학적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물론 달걀 정도의 크기라면 우리와는 분리된 하나의 객관적인 대상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셸 구조를 인간이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확대시킴으로써 물리적 대상물의 범주를 넘어서 인간의 ‘생태기능’과 관련되기 시작한다.


나는 살아 숨쉬는 건축을 꿈꾸고 있다.
‘공간도시’. 그리고 기능적인 건축을! 건물은 ‘생태기능’에 자유자재로 접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3


이 인용문은 1925년에 발표된 「선언 1925」5)의 서두이다.
키슬러도-당대의 모더니스트들과 같이-‘기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후에 ‘생태 기능’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기능적인 건축을 추구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주장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기능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능을 명확하게 밝히는 데 의도가 있었다.
인간의 생체감각에 기준을 두는 기능. 생명체가 지니는 유연성에 부합하는 기능을 지닌 건축.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 또는 일상생활의 조건을 분석하여 그것을 외재화 하는 방법적 탐구에 의존했던 바우하우스와는 개념에서도 기능에서도 전혀 다른 것이다.


키슬러는 ‘장력(張力 tension)’을 단순히 건축공학적 기술이 아니라, 세계 또는 우주의 원리이며 인간의 생태 기능에 상응하는 ‘구조’의 일종으로 이해했다.
특히 극장 공간의 내부는 단지 정적인 구조물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며, 마치 생명체와도 같은 활력에 넘치는 동적인 에너지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력에 의해 자립하는 구체인 <엔드리스 극장>은 이러한 구상의 구체적 실천인데, 여기에 제시된 공간 개념은 별다른 변경 없이 유진 오닐의 <황제 존스>(1924)를 위해 계획된 ‘공간무대’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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