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랍 민족주의자들은 대중의 감성에 호소했다

 

 

 

 

중동에서 적용할 수 있는 민주정치를 도입하는 것은 초기 이슬람 진보주의의 관심사였다. 19세기, 유럽으로 건너간 아랍 무슬림 진보주의자들은 프랑스 민주정치에서 귀감을 얻었다. 첫 사례로는 프랑스에 살면서, 이슬람법과 대립되지 않는다면 서방세계의 문화를 차용해도 된다고 주장한 개혁자 리파아 알타타위를 꼽을 수 있다. 이에 동조한 아랍 무슬림은 진보적이면서도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민주정치와 샤리아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한 탓에 샤리아를 전면 폐지했다.
이슬람세계에 민족국가54가 형성되었던 20세기 중엽, 탈식민화에 이어 민주정치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대두되었다. 이집트와 시리아 및 이라크의 아랍 무슬림 엘리트는 의회 민주정치 제도를 구성함으로써 근대화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식민지 시대에도 이를 접해본 적은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 전통이 잔재해 있는 곳은 민주정치가 이슬람주의 당인 헤즈볼라의 위협을 받고 있는 레바논뿐이다. 다른 국가의 민주정치는 기틀이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데다, 이집트의 나세르와 시리아 및 이라크의 바스당과 같은 민족주의 군사정권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범아랍 민족주의자들은 대중의 감성에 호소했으나, 아랍 국민들에게 낯설다는 이유로 민주정치는 포기했다. 군부의 대중 영합주의적인 통치는 다당제를 채택하는 민주정치의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세속적인 범아랍 포퓰리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국민의 통합을 강조하면서도, 아랍국가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다원주의와 다당제는 배격한다. 민주정치를 대놓고 거부하지 않는 쪽은 통합에 기반을 둔 특정 아랍 민주정치를 지지하나, 이는 아랍
의 진정성이라는 미명하에 내세우는 기만에 불과하다.
민주정치가 실패한 원인은 서양인들의 음모가 아니라 미개발의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개발에는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제도 및 문화적인 개발도 포함되어야 한다. “개발도상 문화” 는 이슬람세계에 민주정치를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무슬림 진보주의자들은 민주주의 문화와 개인의 인권을 정립하지 못했다. 알카라다위는 실패한 민주정치의 책임을 외부 열강에 전가하여 아랍국가를 피해자로 설정하고, 민주정치를 폐기처분하기 위해 이를 지적했다.
세속 민족주의자들은 (이를테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민주화라는 허울 아래 샤리아를 부활시키려는 이슬람주의자들로 대체되고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967년의 6일전쟁에서 세속 민족주의 정권이 당한 굴욕은 아랍세계 전체에 자신감의 위기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환멸감에 빠진 아랍 지식층이 주창한 “계몽” 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57 그들은 전례가 없던 자아비판까지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카라다위가 이슬람교식 해결책으로 규정한 것은 지식층이 뿌린 계몽의 씨앗에 독을 주입하는 선동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오늘날 정치적 이슬람교는 아랍세계 중 실세가 아닌 곳에서도 으뜸가는 정치세력으로 꼽힌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잔존해 있던 가장 유력한 민족주의 정권을 제거해버렸다. 그러자 이슬람주의 조직들은 민주화 실험의 일환으로 권력을 위해 제도적 방편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는 정권교체가 민주화와 동의어는 아니었다. 민주정치는 보편적이긴 하나 현지의 형편과 문화적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슬람주의자들은 민주정치의 보편적 가치관을 배격하며 진정성의 일환으로 특수성을 합법화했다.
순결의 문화적 토대라는 진정성(알아살라)은 진보적인 실험을 폐기하는 구실이 된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민주정치의 이름으로 샤리아를 재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는 민주정치와 개인의 인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국가질서인, 이슬람의 샤리아에 기초한 국가(다울라 이슬라미야)를 확립하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한 수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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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샤리아의 모순

 

 


 

 

 

 

 

 

아랍이나 이슬람식 민주정치가 따로 있을까? 아마 서방세계의 민주정치 양상은 이슬람세계에서는 적절히 적용되거나 성공하지 못할 공산이 크므로, 민주정치의 뿌리는 보편적이지만 정통 아랍 및 이슬람세계의 특징도 아울러 채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샤리아가 이슬람세계에서 민주정치의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진 않을까? 이슬람의 정치질서를 꼭 내부에서 찾아야 할까? 이 문제는 6장에서 면밀히 파헤치기로 하고 지금은 이슬람주의의 샤리아가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꾸며낸 전통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슬람주의 샤리아는 이슬람교식으로 민주정치를 도입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의 개념에 가깝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의 상대주의는 일단 민주정치의 정치 문화는 제쳐두고, 선거에 중점을 두면서 이슬람주의와 샤리아에 기초한 이슬람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긍정적으로 분석한다. 혹자는 이슬람주의자가 이해하는 민주정치는 다른 데다,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서방세계의 특정 사상을 무슬림 문화에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깨어 있는 무슬림들은 민주정치의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민주정치와 그 반대급부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답변한다. 반대급부로는 이슬람주의의 샤리아국가가 될 것이다.
이 장의 도입부에서 거론했듯이, 이슬람주의를 대변하는 권위자 셋 중 하나로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꼽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세속주의와 민주정치 및 문화적 근대화는 권력과 패권주의로 점철된 서방세계의 문명과 맞닥뜨리면서 이슬람세계에 들어섰다고 하나, 결론은 타당하지 않다. “포위된 이슬람교” 라는 그의 사상을 감안하면, 어째서 인도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는데도 민주정치 국가와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식민지가 아니었던 아랍 및 무슬림 국가(예를 들면,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프가니스탄)는 그러지 못했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를 명쾌히 해명하지는 못하나, 민주정치를 아랍세계에 도입하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고 주장한다. 세속화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치 역시 이슬람세계에서는 이방의 문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슬람교가 규범적인 원칙에서 이슬람교는 세계문명 가운데 외부 영향력에 특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회학적인 사실에 이르는, 외부의 사상을 더욱더 거부하게 했다. 이 또한 다른 이슬람주의 사상처럼 꾸며낸 역사에 좌우될 것이다.
사실, 민주화 문제는 최근에 떠오른 쟁점이 아니다. 문화 차용의 긍정적 측면을 감안하여 민주정치를 채택하자는 것이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이슬람문명은 유럽이 이를 재발견하기 훨씬 전에 헬레니즘을 흡수했을 뿐 아니라, 그 유산을 이슬람 혈통에 심어 이를 서방세계로 전수하는 중개 역할을 감당했다. 문명사학자 레슬리 립슨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옆문으로 유럽에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가 귀환한 까닭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잘 아는 아랍인들 덕분” 이라고 밝혔다.51 이슬람교의 전통 유산에는 이 같은 문화 차용 기록이 상당히 많다. 헬레니즘 철학은 법률학(피크)과 상반되는, 전통 이슬람교의 합리주의(팔사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7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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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와 자선의 폐지

 

 

 

 

싱어가 제시한 원칙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벅찬 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살펴본다. 예컨대, 서방국가에 사는 어느 여성이 한 해 동안 아프리카의 빈곤지역에 들어가 봉사할 기회가 왔다고 하자. 특별한 기술을 지닌 의사였기에 그녀의 의료봉사는 수백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녀가 이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 나라는 예방할 수 있을 질병으로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낼 것이었다. 그런데현지에서 최선의 봉사를 하려면 자신의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남편 없이 혼자 살기에, 아이를 한 해 동안 남의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어찌해야 할까?
이제 싱어의 원칙을 적용해보자. 이 여성이 현지에 가면 얼마나 큰 선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될 뿐 아니라 무척 가치 있는 사업을 도울 수 있다. 이번에는 현지로 떠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해악을 생각해보자. 떠나기 전에 아무리 세심하게 배려해둔다고 해도, 아이는 엄마 없는 동안 무척 고생할 것이 뻔하다. 아이는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이 갑자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싱어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까?

 

(가) 아이들은 공공서비스나 사설 자선단체의 보살핌 아래 별다른 악영향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

(나) 설령 어떤 악영향을 받는다 해도,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질병을 예방하지 않을 때 그곳의 어린이들이 받을 악영향에 비하면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 경우 싱어와 급진주의자들은 다 같이, 이 의사는 집에 머물기보다 봉사를 떠나야만 더 많은 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싱어의 원칙에 비추어 그리고 의무와 자선의 구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비추어, 이 의사는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을 받는 것이다. 간다면 도덕적으로 적절하다 하겠고, 가기를 거부한다면 도덕적으로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싱어의 원칙은 바로 이런 식으로 현실에 적용된다. 여의사가 아프리카에 가기로 할지 알 수 없지만, 또 그렇게 한다면 좋은 일이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여의사에게 그곳에 가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여의사에게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는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의무를 내세워 여의사의 가족에 대한 의무를 무조건 짓눌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이 볼 때 이 사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는 한, 그리고 도
움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아무런 제한조차 설정돼 있지 않은 부정적 책임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어떻게 삼켜버리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어떤 희생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도움에 힘입어 얻어질 선을 넘어설 만큼 크지 않은 한, 결코 큰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한편 공리주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의 부담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일에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들은 빈곤층이 날마다 질병, 굶주림, 죽음에 시달리는 가운데 부유층이 자신들의 자유, 사치품, 가족생활의 즐거움에만 집착하는 것을 허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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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주의자들의 반응: 의무와 자선의 폐지

 

 

 

 

 

물론 이 주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귀를 기울이면 급진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잘 알려졌듯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해도, 사정에 따라 그러한 권리 역시 제약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보다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가 과연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급진주의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대체 이 권리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이 권리란 것은 잘사는 사람들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려고 만들어놓은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이런 가상의 권리란 고작 부유한 나라들이 제 가진 것을 움켜잡고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들과 공유하기를 거부하려고 고안해낸 산뜻한 도구가 아닐까?(이 대목에서 지적할 점은 권리와 자율을 내세우는 이론이 주로 산업화한 서방국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대응논리가 어디로 귀착하는지를 보면, 급진주의 견해와 톰슨의 견해는 도덕적 사고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톰슨의 견해는 인간이 자율의 권리를 지녔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행동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자유를 보전하고 유효하게 행사하려면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도와주라고 강제하는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톰슨의 이론은 도움을 제공한 결과로 빚어질 심각한 해악을 방지해야 하며, 따라서 그러한 해악을 감당할 의무를 일정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책임을 부정적 책무라 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행한 결과에서 오는 부담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지 않은 데서 뒤따르는 부담이다. 우리가 순전히 부정적인 책임만을 진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선택할 여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채 오직 도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휘둘리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제공해야 할지만을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끝없는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톰슨의 견해는 우리가 어떤 특정 종류의 행동, 즉 살인, 절도, 강간 등을 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고, 이를 어기려 할 때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부정적 책임, 다시 말해서 도울 수 있는 데도 돕지 않았기에 져야 할 책임에도 한계를 설정해놓는다.
급진주의자라면 서구 사람들의 자기 배 쓰다듬기라고 할 톰슨의 결론에 실망한 나머지 톰슨의 출발점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할 것이고, 톰슨처럼 부정적 책임을 거부하는 대신에 (혹은 부정적 책임을 오직 제한된 형태로만 받아들이는 대신에) 부정적 책임이론을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또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시급한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도와야만 한다고 말할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벗어나려고 자유로운 선택을 구실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한편 톰슨의 견해는 의무와 자선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의무나 권리에 따라 마땅히 도와야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상의 요구를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돕는 경우인데 이를 실행할 때에 칭찬을 듣거나 심지어 성스럽게 비칠 수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실행하도록 요구할 일은 아니란 것이다. 톰슨은 이러한 구별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 영역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급진주의자들은 이렇듯 권리와 자유의 영역을 내세우는 주장이 단순히 자기 이익만을 지키고 빈곤한 사람들의 요구를 제쳐놓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이러한 구분을 폐지하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곤경에서 벗어나 우리처럼 살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에게 지워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피터 싱어도 자신의 논문 「기근, 풍요, 그리고 도덕Famine, Affluence and Morality」에서 똑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싱어는 톰슨이 내세우는 바와 같은 우파적인 견해를 배격하는 동시에 선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도덕의 참 원칙은 앞서 살펴본 원칙, 곧 비용이 적게 드는 한, 남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원칙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한 원칙, 곧 도움을 제공하는 데 따르는 희생이 도움을 제공한 결과로 실현될 선보다 중요하지 않다면,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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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蘇軾의 <초연대기超然臺記>

 

 

 

소식蘇軾(1037~1101)의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사천四川 미산眉山 사람으로, 아버지 순洵, 아우 철轍과 함께 3소三蘇라 불리며, 모두 당송8대가에 속한다. 소식은 시, 사, 문, 음악, 서법 등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정치에도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21세 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들어섰으나, 북송 때의 격렬한 변법운동變法運動 및 신구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몇 차례 좌천당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불운을 겪었다.혁신 정치세력에 밀려 항주杭州, 밀주密州(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제성諸城), 서주徐州(지금의 강소江蘇), 호주湖州(지금의 절강浙江) 등의 지방관을 주로 역임했다. 휘종徽宗이 왕위를 이은 뒤에 귀양으로부터 풀려나 수도로 돌아가는 도중 상주常州에서 병사했다. 저작으로는『동파전집東坡全集』,『동파악부東坡樂府』,『동파지림東坡志林』,『구지필기仇池筆記』,『애자잡설艾子雜說』등이 있다.허균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분은 텅 빈듯하면서도 한없이 넓은 마음씨로서 사람들과 경계를 다투지 않으셨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즐겁게 어울렸으니 유하혜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의 풍모를 갖춘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본받고 싶지만 역부족이다.

 

 

초연대기超然臺記

 

凡物皆有可觀범물개유가관: 무릇 만물은 무엇이나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

苟有可觀구유가관: 진실로 감상할 만한 것이 있다면

皆有可樂개유가락: 모두 즐거워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니

非必怪奇偉麗者也비필괴기위려자야: 반드시 괴상하고 이상하며 진기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餔糟啜醨포조철리: 술지게미를 먹고 묽은 술을 마시더라도

皆可以醉개가이취: 다 취할 수 있고

果蔬草木과소초목: 과일과 야채 혹은 풀과 나무를 먹어도

皆可以飽개가이포: 다 배는 부를 수 있다.

推此類也추차류야: .이를 미루어 생각해보면

吾安往而不樂오안왕이불락: 이렇다면 내가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

夫所爲求福而辭禍者부소위구복이사화자: 사람들이 복을 구하고 화를 피하는 것은

以福可喜而禍可悲也이복가희이화가비야: 복은 기쁜 것이고 화는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

人之所欲無窮인지소욕무궁: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나

而物之可以足吾欲者有盡이물지가이족오욕자유진: 우리의 욕심을 채워줄 물질은 한계가 있다.

美惡之辨戰乎中미악지변전호중: 그래서 좋고 싫음을 변별하느라 마음에 싸움이 생기고

而去取之擇交乎前이거취지택교호전: 버리고 취하는 선택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則可樂者常少칙가락자상소: 그러나 즐거워할 만한 것은 항상 적고

而可悲者常多이가비자상다: 슬퍼하는 것은 항상 많게 되니

是謂求禍而辭福시위구화이사복: 사람들이 화를 구하고 복을 피하게 된다.

夫求禍而辭福부구화이사복: 화를 구하고 복을 피하는 것이

豈人之情也哉기인지정야재: 어찌 사람들이 본심이겠는가.

物有以蓋之矣물유이개지의: 이렇게 되는 것은 물욕에 의해 우리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彼遊於物之內피유어물지내: 물질세계에서 노니는 사람은

而不遊於物之外이불유어물지외: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노닐지 못한다.

物非有大小也물비유대소야: 물질이란 대소의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고

自其內而觀之자기내이관지: 물질의 내면에서 보면

未有不高且大者也미유불고차대자야: 높고 크지 않는 것이 없다.

彼其高大以臨我피기고대이임아: 물질이 나에게 높고 크게 다가오면

則我常眩亂反覆칙아상현란반복: 나는 현란함을 반복하니

如隙中之觀鬪여극중지관투: 좁은 틈 사이로 싸움을 보는 것과 같으니

又焉知勝負之所在우언지승부지소재: 또 어찌 승부의 결과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是以美惡橫生시이미악횡생: 이런고로 아름답고 흉함이 멋대로 생겨나

而憂樂出焉이우락출언: 근심과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니

可不大哀乎가불대애호: 참으로 슬픈 일일 아닌가.

余自錢塘여자전당: 내가 전당에서

移守膠西이수교서: 교서의 지사로 부임해서

釋舟楫之安석주즙지안: 배 타는 편리함을 버리고

而服車馬之勞이복차마지로: 거마 타는 고생을 하고

去雕墻之美거조장지미: 궁실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而蔽采椽之居이폐채연지거: 채연으로 지은 집에 살며

背湖山之觀배호산지관: 호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버려두고

而適桑麻之野이적상마지야: 뽕나무와 삼이 자라는 들을 거닐게 되었다.

始至之日시지지일: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

歲比不登세비불등: 해마다 흉년이 들어 들에는

盜賊滿野도적만야: 강도가 들끓었고

獄訟充斥옥송충척: 송사도 끊이지 않았으며

而齋廚索然이재주색연: 부엌은 쓸쓸하여

日食杞菊일식기국: 날마다 푸성귀만 먹고 살았다.

人固疑余之不樂也인고의여지불락야: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處之期年처지기년: 그곳에 있은 지 일 년이 되었는데

而貌加豐이모가풍: 오히려 살찌고

髮之白者발지백자: 하얗던 머리도

日以反黑일이반흑: 날이 지나 검게 되었다.

余旣樂其風俗之淳여기락기풍속지순: 나는 이곳 풍속이 순박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而其吏民이기리민: 이곳 아전과 백성들이

亦安予之拙也역안여지졸야: 또한 졸렬한 나른 좋아하게 되었다.

於是治其園圃어시치기원포: 이에 밭을 손질하고

潔其庭宇결기정우: 뜰과 집을 청소했다.

伐安丘高密之木벌안구고밀지목: 안구와 고밀 지역 나무를 베어

以修補破敗이수보파패: 부서지고 망가진 곳을 수리하여

爲苟全之計위구전지계: 그럭저럭 집을 완성했다.

而園之北이원지북: 그리고 밭 북쪽에 있는

因城以爲臺者舊矣인성이위대자구의: 성을 이용해서 세운 곳이 있는데

稍葺而新之초즙이신지: 조금 손질하여 새롭게 꾸민 후

時相與登覽시상여등람: 사람들과 자주 올라 멀리 바라보면서

放意肆志焉방의사지언: 마음의 회포를 풀었다.

南望馬耳․常山남망마이상산: 남쪽으로 마이산과 상산을 바라보니

出沒隱見출몰은견: 나타났다 숨었다하고

若近若遠약근약원: 가까운 듯 먼 듯하여

庶幾有隱君子乎서기유은군자호: 은둔하는 군자가 있는 듯했다.

而其東則盧山이기동칙노산: 동쪽으로는 노산이 있는데

秦人盧敖之所從遁也진인노오지소종둔야: 진나라 사람 노오盧敖가 숨었던 곳이다.

西望穆陵서망목릉: 서쪽으로 목릉이

隱然如城郭은연여성곽: 숨은 듯 성곽 같이 보이는데

師尙父․齊威公之遺烈사상부․제위공지유열: 임금의 스승이었던 여상과 제나라 환공의 공적이

猶有存者유유존자: 아직 남아 있는 곳이다.

北俯濰水북부유수: 북쪽으로 유수를 내려다보며

慨然太息개연태식: 슬퍼 한숨 지며

思淮陰之功사회음지공: 회음의 업적을 생각하고

而弔其不終이조기불종: 그가 좋게 세상을 마치지 못한 것을 슬퍼한다.

臺高而安대고이안: 이 대는 높지만 안정되고

深而明심이명: 깊지만 밝다.

夏涼而冬溫하량이동온: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雨雪之朝우설지조: 비오고 눈 내리는 아침이나

風月之夕余未嘗不在풍월지석여미상불재: 바람 불고 달뜨는 저녁 할 것 없이 이 대에 오르는데

客未嘗不從객미상불종: 객도 언제나 따랐다.

擷園蔬힐원소: 밭에서 야채를 뽑고

取池魚취지어: 못에서 고기 낚으며

釀秫酒양출주: 차조로 술 빚고

瀹脫粟而食之약탈속이식지: 거친 밥 먹으면서도 한가하니

曰樂哉遊乎왈락재유호: 정말 좋다고 한다.

方是時余弟子由適在濟南방시시여제자유적재제남: 마침 아우인 소철이 제남에 있으면서

聞而賦之문이부지: 이 소식을 듣고서 시를 짓고

且名其臺曰超然차명기대왈초연: 이 대를 초연이라 하였다.

以見余之無所往而不樂者이견여지무소왕이불락자: 이는 내가 어디를 가든 즐거워하는 것이

蓋遊於物之外也개유어물지외야: 세속 밖에서 노닐기 때문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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