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샤리아의 모순

아랍이나 이슬람식 민주정치가 따로 있을까? 아마 서방세계의 민주정치 양상은 이슬람세계에서는 적절히 적용되거나 성공하지 못할 공산이 크므로, 민주정치의 뿌리는 보편적이지만 정통 아랍 및 이슬람세계의 특징도 아울러 채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샤리아가 이슬람세계에서 민주정치의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진 않을까? 이슬람의 정치질서를 꼭 내부에서 찾아야 할까? 이 문제는 6장에서 면밀히 파헤치기로 하고 지금은 이슬람주의의 샤리아가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꾸며낸 전통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슬람주의 샤리아는 이슬람교식으로 민주정치를 도입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의 개념에 가깝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의 상대주의는 일단 민주정치의 정치 문화는 제쳐두고, 선거에 중점을 두면서 이슬람주의와 샤리아에 기초한 이슬람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긍정적으로 분석한다. 혹자는 이슬람주의자가 이해하는 민주정치는 다른 데다,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서방세계의 특정 사상을 무슬림 문화에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깨어 있는 무슬림들은 민주정치의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민주정치와 그 반대급부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답변한다. 반대급부로는 이슬람주의의 샤리아국가가 될 것이다.
이 장의 도입부에서 거론했듯이, 이슬람주의를 대변하는 권위자 셋 중 하나로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꼽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세속주의와 민주정치 및 문화적 근대화는 권력과 패권주의로 점철된 서방세계의 문명과 맞닥뜨리면서 이슬람세계에 들어섰다고 하나, 결론은 타당하지 않다. “포위된 이슬람교” 라는 그의 사상을 감안하면, 어째서 인도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는데도 민주정치 국가와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식민지가 아니었던 아랍 및 무슬림 국가(예를 들면,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프가니스탄)는 그러지 못했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를 명쾌히 해명하지는 못하나, 민주정치를 아랍세계에 도입하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고 주장한다. 세속화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치 역시 이슬람세계에서는 이방의 문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슬람교가 규범적인 원칙에서 이슬람교는 세계문명 가운데 외부 영향력에 특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회학적인 사실에 이르는, 외부의 사상을 더욱더 거부하게 했다. 이 또한 다른 이슬람주의 사상처럼 꾸며낸 역사에 좌우될 것이다.
사실, 민주화 문제는 최근에 떠오른 쟁점이 아니다. 문화 차용의 긍정적 측면을 감안하여 민주정치를 채택하자는 것이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이슬람문명은 유럽이 이를 재발견하기 훨씬 전에 헬레니즘을 흡수했을 뿐 아니라, 그 유산을 이슬람 혈통에 심어 이를 서방세계로 전수하는 중개 역할을 감당했다. 문명사학자 레슬리 립슨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옆문으로 유럽에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가 귀환한 까닭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잘 아는 아랍인들 덕분” 이라고 밝혔다.51 이슬람교의 전통 유산에는 이 같은 문화 차용 기록이 상당히 많다. 헬레니즘 철학은 법률학(피크)과 상반되는, 전통 이슬람교의 합리주의(팔사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7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