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자선의 폐지

싱어가 제시한 원칙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벅찬 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살펴본다. 예컨대, 서방국가에 사는 어느 여성이 한 해 동안 아프리카의 빈곤지역에 들어가 봉사할 기회가 왔다고 하자. 특별한 기술을 지닌 의사였기에 그녀의 의료봉사는 수백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녀가 이 기회를 포기한다면 그 나라는 예방할 수 있을 질병으로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낼 것이었다. 그런데현지에서 최선의 봉사를 하려면 자신의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남편 없이 혼자 살기에, 아이를 한 해 동안 남의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어찌해야 할까?
이제 싱어의 원칙을 적용해보자. 이 여성이 현지에 가면 얼마나 큰 선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될 뿐 아니라 무척 가치 있는 사업을 도울 수 있다. 이번에는 현지로 떠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해악을 생각해보자. 떠나기 전에 아무리 세심하게 배려해둔다고 해도, 아이는 엄마 없는 동안 무척 고생할 것이 뻔하다. 아이는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이 갑자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싱어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까?
(가) 아이들은 공공서비스나 사설 자선단체의 보살핌 아래 별다른 악영향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
(나) 설령 어떤 악영향을 받는다 해도,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질병을 예방하지 않을 때 그곳의 어린이들이 받을 악영향에 비하면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 경우 싱어와 급진주의자들은 다 같이, 이 의사는 집에 머물기보다 봉사를 떠나야만 더 많은 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싱어의 원칙에 비추어 그리고 의무와 자선의 구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비추어, 이 의사는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을 받는 것이다. 간다면 도덕적으로 적절하다 하겠고, 가기를 거부한다면 도덕적으로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싱어의 원칙은 바로 이런 식으로 현실에 적용된다. 여의사가 아프리카에 가기로 할지 알 수 없지만, 또 그렇게 한다면 좋은 일이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여의사에게 그곳에 가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여의사에게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는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의무를 내세워 여의사의 가족에 대한 의무를 무조건 짓눌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이 볼 때 이 사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는 한, 그리고 도
움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아무런 제한조차 설정돼 있지 않은 부정적 책임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어떻게 삼켜버리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어떤 희생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도움에 힘입어 얻어질 선을 넘어설 만큼 크지 않은 한, 결코 큰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한편 공리주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의 부담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일에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이들은 빈곤층이 날마다 질병, 굶주림, 죽음에 시달리는 가운데 부유층이 자신들의 자유, 사치품, 가족생활의 즐거움에만 집착하는 것을 허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