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

가장 오래된 판본인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에 대한 풀이, 최재목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는 중국 초楚나라 때의 무덤(약 2300년 전)에서 출토된 죽간竹簡의 형태이다.


『노자老子』(혹은 『도덕경道德經』)는 노자老子라는 인물 혹은 그 동조자나 후계자의 격언집 그대로가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개작 작업을 거쳐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판본으로 틀이 잡힌 뒤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 작업이 가해져 완비된 형태의 현재의 판본이 이뤄진 것이다.

노자老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司馬遷(BC. 145?-86?)이 쓴 『사기史記』 속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 노자老子, 신불해申不害(BC. ?-337?), 한비韓非(BC. 280?-233)에 관한 열전」(약칭 「노자열전」)에 나온다. 『사기史記』는 후대에 원본을 보완, 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史記』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노자老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의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자를 담聃이라 했으며, 주周(東周)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관리史였다. 공자孔子가 주나라로 (그를) 찾아가서 예禮에 대해서 묻자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옛날 사람(유명인들)은 이미 그 육신과 뼈가 썩어 없어져버렸고 오직 말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오. 또 군자라는 사람도 때를 잘 만나면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쑥대밭을 걸어다니는 것이오. 나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한 곳에 보관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물건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덕을 많이 쌓은 군자의 태도도 겉보기에는 어수룩하게 보인다’고 들었소.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그대는 교만함과 욕심을 버려야 하며, 잘난 체하거나 뽐내지 말아야 하고, 쾌락을 멀리 하길 바라오. 그런 것들은 그대에게 무익한 것들이오. 내가 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오.

공자는 돌아가서 제자에게 말했다.

새는 날 수 있고, 고기는 헤엄칠 수 있으며, 짐승은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놈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놈은 낚시로 잡으며, 나는 놈은 활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용龍은 잡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뵈었는데 마치 용과 같더라!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닦았는데, 그 학문은 자신을 숨기고 이름 없이 사는 이른바 자은무명自隱無名을 추구했다. 그는 주나라에 오래 머물렀는데, 주나라가 쇠해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곳을 떠나 관소關(하남河南 섬서陝西에 있는 함곡관函谷關으로 추정)에 이르렀다. 관문을 지키는 우두머리關令인 윤희尹喜가 “선생님께서 은둔하려 하시니, 어려우시더라도 저에게 저서를 남겨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노자는 도道와 덕德에 관한 5천여 자의 상, 하편 저서를 남기고 관소를 떠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공자가 예를 물었다는 노담老聃은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초간본)을 쓴 사람으로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의 인물로 도가의 선구자이다. 뒤에 『노자老子』를 저술한 태사담太史儋은 공자 사후 129년(실제로는 106년)인 ‘진秦 헌공獻公 11년(BC 374)조’에 언급되는 전국시대 중엽의 인물이다. 태사담은 초간본을 다시 정리하면서 새로운 문자와 학설을 첨가하여 『노자老子』를 썼다. 노담과 태사담의 연대 차이는 적어도 100여 년이다. 『노자老子』는 저자, 내용이 다른 두 가지, 즉 노담의 초간본과 태사담이 초간본을 개작한 『노자老子』가 이어서 나왔다. 전자는 춘추시대 말기나 전국시대 초기의 것이며, 후자는 전자보다 100여 년 뒤인 전국시대 중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초간본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는 공자의 선배였던 노담의 원본을 개작한 것으로 보이고, 이 책은 늦어도 전국 초에는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100여 년 뒤 태사담이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을 근거로 당시 상황에 부합하는 학설을 첨가해서 개증改增(1차 개작본)했다. 장자莊子(BC 369-286)와 한비韓非는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老子』를 본 사람들이다.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老子』를 다시 개작改作한 것이 1973년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백서본帛書本(백서란 비단에 글을 쓴 책이란 뜻이다) 『노자老子』(갑본, 을본, 2차 개작본=今本)이다. 백서본 『노자老子』에는 갑본, 을본이 있는데, 전자는 진대秦代의 판본이고, 후자는 한대漢代의 판본으로 보인다. 현재 통행되는 왕필본王弼本 『노자老子』와 같은 것은 백서본 『노자老子』 등 앞선 판본들을 반유가적反儒家的인 이념에 서서 또다시 개작,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진대秦代, 한대漢代의 백서본 『노자老子』, 기원 후 진대晉代의 왕필본 『노자老子』와 같은 개작본은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老子』를 근거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왕필본王弼本 『노자老子』(왕본王本이라고 한다)는 위魏나라 천재 사상가로 위진현학魏晉玄學을 대표하며 24세로 요절한 왕필王弼(226-249)이란 인물이 19세에 주석을 단 책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현행본 『노자老子』 혹은 『도덕경道德經』은 이것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왕필본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 이후의 일이다. 이 책은 문인文人들에 의해 점차 수용되다가 청대 이후에는 기본 교재로 정착되었다.

백서본帛書本의 시기는 기원전 168년경이다. 백서본 『노자老子』에는 갑본, 을본이 있는데, 여기에는 가차자假借字(빌린 글자)가 많다. 이는 선진 및 한 대 초기만 해도 널리 쓰인 글자가 많지 않았던 탓인데, 당시 학습, 상요하던 글자가 3,300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백서본 『노자老子』의 갑본은 진대秦代의 판본이고, 을본은 한대漢代의 판본으로 보인다. 을본은 갑본을 토대로 다듬어진 것이다. 갑본에 쓰인 많은 가차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표준 글자 속으로 흡수되어 갔고, 그 결과가 을본에 반영되었다. 즉 진秦나라 시황始皇은 천하를 통일한 뒤, 전국 6국의 하나인 진秦의 표준적인 서체를 개혁하여 소전小篆(대전大篆체를 소전체로 개혁하여 진전秦篆으로 만듦)으로 통일하는데, 서동문자書同文字(수레바퀴 간격의 규격 통일, 문자 통일)가 그것이다. 을본은 진의 문자 통일로 많은 문자가 생긴 뒤이며, 또 통일되지 않은 글자가 어떤 표준 글자 속으로 활발히 통일되어 가던 시기에 필사된 것이므로 글자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글자의 면에서 볼 때 갑본보다 을본이 훨씬 통행본에 가까운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선진 및 한 대 초기의 3,300자에 불과했던 문자는 기원후 20년경에 이르러 6,100여 자로 확충되었으며, 동한 때에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10,639자가 실려 있을 정도로 글자가 풍부해지게 되었다.

백서본 『노자老子』 갑본, 을본은 두 종류 모두 지금의 체제와 달리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어 『덕도경德道經』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덕도경德道經』의 형태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도경道經에서는 도만 논하고 덕경德經에서는 덕만 논한 것은 아니며 양자의 내용이 뒤섞여 있다. 백서본帛書本 『노자老子』를 왕필본王弼本 『노자老子』와 비교하면 80% 이상 일치한다. 따라서 거의 같은 판본의 계통에 속한다. 전국 말기의 사상가이자 『노자老子』의 최초 주석가인 한비韓非가 처음 보았다는 『노자老子』는 백서본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태사담의 1차 개작본을 다시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백서본 『노자老子』가 출토되고 20년 뒤인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楚나라 무덤에서 죽간竹簡으로 된 『노자老子』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노자老子』가 출토되보다 2세기 가까이 연대를 소급할 수 있는 것이다. 초간본 『노자老子』는 통행본과 비교할 때 저자 및 저작 시기가 다를 뿐 아니라 사상 내용 또한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老子』에 대한 종래의 주장을 흔들어놓았다. 초간본은 문자 통일정책에 의한 표준 자형字形이 아닌 가차자 등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 1993년 곽점 초묘에서 나온 자료는 그 분량이 이전 것에 비해 적었지만, 춘추 말기에서 전국 초기 사이에 쓰인 도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공자로부터 맹자로 이어지는 근 150년 동안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초간본은 기원전 4세기 중엽이나 5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자사子思(BC 482-402), 자상子上(BC 429-383, 자사의 아들), 맹자孟子(BC 390-305), 장자莊子(BC 380?-300?) 등이 생존했던 시기이다. 이때는 원시 유가와 원시 도가 사이에 현격한 학설이나 사상의 차이가 없이 각각 그 원형이 보장되어 있을 시기라서 그 자료는 더욱 절박한 형태이며, 매우 귀중한 것이다.

초묘에서 출토된 죽간은 모두 804매이며, 이 가운데 글자 기록이 있는 것들은 730매로 보존 상태가 좋고 문자도 선명하여 판독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804매의 초묘 죽간 가운데 『노자老子』의 분량은 71매이며, 글자 수는 대략 2,046자이다. 이는 통행본 5천여 자의 약 5분의 2에 해당한다. 적은 분량이지만 그 자체로 내용이 온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 죽간은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세 묶음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갑甲(39매, 1170자), 을乙(18매, 510자), 병丙(14매, 322자)이라 이름 붙여 세 편으로 나눠 연구했다.

노자의 사상 혹은 그것이 담긴 『노자老子』의 비조鼻祖는 노담老聃이며, 그는 실존인물로 보아야 한다. 노자老子의 노老는 성姓이 아니고 존칭이며, 노자老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늙은 선생old master를 의미한다. 노담은 기원전 571년 이전에 하남성 녹읍현 출생이며, 기원전 535년에서 522년 사이 공자孔子(17-30세)가 방문했을 때, 그에게서 예禮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원전 384년에 함곡관에서 윤희에게 도, 덕에 대한 상, 하권 두 권의 5천여 언으로 된 책을 주었고, 기원전 374년에 진 헌공을 만나러 떠난 태사담은 노담과는 다른 인물이며, 백서본 『노자老子』, 왕필본 『노자老子』와 같은 개작본은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老子』를 근거로 이뤄진 것이다.

곽점에서 출토된 초간본 『노자老子』는 통행본의 성립과정에 잇는 것으로 노담, 그 사람의 사상이 기록된 혹은 그의 직계나 그의 뜻에 동조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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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치료사와의 실제적인 분리도 준비해야 한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마음속 자아의 갈등을 처음 인지한 후, 불안을 느끼지 않고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미술치료에는 많은 ‘분리’의 과정이 수반된다.
망상과 사실의 분리, 환상과 현실의 분리,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행을 야기한 갈등으로부터의 분리의 과정이 수반된다.
그 과정에서 미술치료사와 아이 사이에는 강력한 애착이 형성된다.
아이는 치료사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게 되며, 그런 관계 속에 아이의 무의식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 과정을 ‘전이transference’라 부른다.

무의식적 생각이나 충동이 미술 재료와 도구들을 이용한 미술 활동에 투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기대가 중립적인 치료사에게 투사된다.
치료사는 미술 활동의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아이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왜곡된 반응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아이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아이는 정서적으로 얽혀있는 부모와 치료사를 동일시하던 전이에서 분리되어 나와야 하며, 동시에 미술을 통해 자신을 도와준 치료사와의 실제적인 분리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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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장애를 가진 영재들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며

『아이브레인 iBrain』(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종종 제도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학교에 가는 걸 따분해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교과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집이나 학교에서 멍하게 있기도 하고, 간혹 적대적이고 논쟁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들 중 많은 아이들은 능력에 비해 성적이 낮으며 전형적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ADHD, 즉 충동적이며, 안절부절 못하고, 정리에 서툴며, 멍하니 있고, 세세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학습장애를 가진 영재들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하며, 무질서하고 산만하게 행동한다. 이들 중 일부는 두뇌 회전을 빠르지만 다른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는 정리를 하거나 말을 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공간적 능력은 뛰어나다.

연구에 의하면 창의성 표준화 검사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동의 3분의 1이 100점 만점에 90점을 기록했지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복용하면 이 결과가 달라졌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약을 복용한 결과 뛰어난 지적 능력이 다소 떨어진 것이다.

17년 동안 307명의 아동을 조사한 결과, 뇌 발달의 패턴이 다르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IQ가 121-149인 높은 지능의 아이들은 13세경에 이르면 대뇌피질 같은 뇌세포의 바깥층이 최대로 두꺼워진 반면, IQ가 83-108 사이의 평범한 지능의 아이들은 7세에 피질의 두께가 가장 두꺼워졌다. 피질의 두께가 최고조에 이른 후에는 뇌신경회로가 성인기에도 지속되는 가지치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잘 다듬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피질이 두꺼워지고 뇌신경망을 솎아내는 기간이 길어지는 이런 패턴이 명재들의 가소적이고 유연한 뇌신경회로를 만드는 미세한 조정과정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런 차이는 부분적으로 유전에 의해 발생하지만, 음식과 교육, 그 밖의 다른 요인들도 차이를 유발시킨다.

코넬 대학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월드먼Michael Waldman은 두 살 된 아들이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에 문제가 있는 신경발달장애로 증상이 심한 자폐증부터 증상은 약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아스퍼거Asperger 증후군까지 포괄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autism spectrum disorder) 진단을 받은 후에 자폐증의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월드먼은 아들이 자폐증 진단을 받기 전 여름에 텔레비전을 유난히 많이 본 것을 알아냈다. 그때는 그의 여동생이 태어난 때였다. 그래서 월드먼은 아들이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했다. 6개월 후에 아들의 증세가 호전되었고, 결국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월드먼과 그의 동료들은 비나 눈이 오는 날씨에 아동들이 평균적으로 텔레비전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연간 강수량 패턴을 확인하여 강수량이 많은 기간에 자라는 아동들이 주로 자폐증 진단을 받았음을 밝혀냈다. 그들은 케이블 TV를 수신하고 있는 가정에서 자폐증이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것도 발견했다.

자폐증은 언어 능력과 사회성 문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 운동기능, 주의집중, 문제해결 등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 광범위한 뇌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자폐증 환자에게 얼굴 인식 과제를 주면서 fMRI로 뇌를 스캔하자, 전두엽의 신경회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정보를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과학자들은 자폐증이 뇌의 다양한 부분에서 오는 복잡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추측한다.

자폐증의 공통적인 증상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꺼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얼굴을 맞대고 눈으로 개인적인 교류를 하는 걸 매우 어려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직접 보면서 교류함으로써 친밀감이나 위협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데, 자폐증에 걸린 사람에게 이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다. 연구에 의하면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은 아몬드 형의 편도체 영역이 보통사람보다 작았다. 이 부분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눈으로 교류하려는 의지가 약했다.

자폐아의 형제들도 자폐아만큼은 아니지만 눈을 맞추는 것을 약간 꺼려하는 경향이 있고, 이들도 자폐증이 없는 아동보다 편도체가 약간 작은 경향이 있어 과학자들은 이를 유전적 요인으로 보기도 한다.

자폐아들이 특별한 지적 능력과 창의력을 가진 것처럼, 많은 디지털 신동들도 선별적인 테크놀로지 기술에 있어서는 유사한 능력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원주민은 장시간 인터넷을 하기 때문에 눈을 맞대고 접촉하는 경우가 적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혼자 작업한다는 점에서 뇌의 진화와 더불어 우리 사회가 점점 자폐적으로 될 것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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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전달이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특정 아이에게 잘 맞는 언어와 이미지, 준거 틀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특히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지능이 낮거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소통방식을 찾기란 더욱 까다로울 수 있다.

미술치료사는 치료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와 원활하게 관계 맺기 위한 언어적, 비언어적 방법의 조합을 찾아내야만 한다.
또 그 조합은 시간의 흐름과 아이의 성장에 맞춰 면밀하게 조정되어야만 한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파장을 찾기란 쉽지 않으며 치료사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때로는 알맞은 방법을 찾기 위해 치료사로서 모험을 감행해야 할 수도 있다.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없다면 미술치료를 통해 어떤 진전도 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으려는 아이와 소통communicating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건 특히 힘겹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런 경우 미술 활동의 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이가 용기를 내서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그 내용에 직면facing할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일 때, 심리치료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혹감과 난처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 굳이 아이를 자신 내면의 생각이나 감정에 직면하도록 이끌 필요는 없다.
특히 정신장애나 불안이 심하지 않거나 아주 어린이의 경우에는 직면하더라도 별다른 소용이 없을 수 있다.
대부분의 의사전달이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미술이나 역할극을 이용한 승화된 표현을 통해 감정이나 생각을 분출하도록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미리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치료가 다른 심리치료의 부수적인 요법으로 쓰인다면 단순히 감정과 생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미술치료사들은 미술적 표현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관계 맺을 줄 모르는 아이들과 독립적으로 일해야만 하는 때가 많다.
오로지 치료를 목적으로만 한다면 미술 활동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그럴 경우에는 치료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역할극 놀이, 동작치료, 음악치료, 글쓰기 등의 방식을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미술치료를 하다보면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잘 맞는 표현방식을 자연스레 찾아간다.
치료사는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는 방식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미술치료사의 주된 도구는 미술 활동이지만 이야기 등의 표현적인 방식들도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무시무시한 환상이나 감정에 대한 직면을 쉽게 만들어주는 도구는 아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모든 미술 양식은 어느 정도의 거리감과 가장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에 투사적 접근법을 치료실 안팎 모두에서 더욱 나아지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표현한 내용과 자기 자신 사이의 관계를 깨닫도록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할 때, 직면 과정은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면하도록 돕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이들은 대개 그 과정을 회피하거나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아이가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이해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이의 욕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방어하는 기이하고 ‘나쁜’ 환상들을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아이의 방어기제를 꼭 해제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잘못된 갈등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용납하기 어려운 무의식적 바람과 생각들에 직면하기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어린이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르던 생각과 바람에 직접 대면하려면 얼마나 힘겹겠는가.
하지만 아이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중하고 주의 깊은 태도로 내면의 생각과 감정에 직면하도록 도와주면, 아주 어린이라 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느끼는 순간을 수차례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의 내면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지는 연령과 지능에 좌우된다.
하지만 내면의 생각과 감정에 직면하는 데는, 새로 얻은 깨달음을 통해 내면을 변화시켜 더욱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고하고 느끼며, 행동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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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의 과도내각

<한국정당정치 실록>(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 무렵 사태수습을 협의 중에 있던 국회는 3·15선거의 무효화 선언과 내각책임제의 개헌 등을 수습방안으로 채택했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발표되자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권고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국회의 결의가 전달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7일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대통령직 사임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이어 이승만은 이튿날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옮겼다.


4월 27일 국회의 결의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이 발표되자 허정 외무장관은 자동적으로 대통령 서리에 취임했다.
시민의 시위가 막바지에 달했을 때 이승만은 4월 24일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인 허정을 외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허정은 취임과 더불어 내외 기자단과 회견을 갖고 선거를 위한 과도정부의 당면과제로 첫째, 정·부통령 선거는 국회와 협의하여 실시하며, 둘째, 경찰의 중립화를 법안으로 추진하고, 셋째, 과도정부의 각료는 비정당인으로서 구성한다는 등의 3개항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허정 내각수반은 ‘비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명’을 수행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면서 4월 28일 과도정부의 입각자 명단을 발표했다.


내무장관: 이호

법무장관: 권승렬(유임)

재무장관: 윤황병

문교장관: 이병도

부흥장관: 전예용

상공장관: 전택무

보사장관: 김성진

교통장관: 석상옥
(이하는 5월 2일에 발표된 입각자 명단)

국방장관: 이종찬

체신장관: 오정수

농림장관: 이해익

공보실장: 서석순


허정 내각은 5월 2일 첫 국무회의를 열어 혼란 상태에 있는 정국을 수습하고 난맥 상태에 있는 경제위기를 타개할 것을 다짐했다.
다음은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당면 정책 다섯 가지이다.


1. 부정선거 관련자를 엄중 처벌한다.

2. 경제사범을 엄단한다.

3. 경제적 민주화를 지향하는 시책을 추진한다.

4. 중소기업 육성에 재정적으로 뒷받침한다.

5. 악질 세무 관리를 엄단한다.


허정은 첫째, 반공주의를 더 한층 강화하고, 둘째, 부정선거 처벌대상은 고위 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자에게만 국한하며, 셋째, 4·19혁명 당시 미국의 행위를 내정간섭 운운하는 것을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넷째, 한국과 일본 관계의 정상화 노력과 일본 기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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