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일기
토요일에는 수원으로 향했다.
정조 행군을 재현한다는 말을 듣고 그걸 보기 위해 수원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그 전철을 탄 건 처음이다.
타고 느낀 건 시간을 거슬러 1960년대 혹은 70년대로 가는 시간여행이란 것이었다.
옛날 완행열차처럼 덜커덩거리며 천천히 가는 전철과 그 속에 탄 사람들의 얼굴과 옷차림을 보니 영락없는 1960년대 혹은 70년대 풍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아도 보이는 풍경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그 시절의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수원역에 내리니 확성기로 커다란 소리로 틀어놓은 “예수 믿으라”는 외침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게다가 저만치에서는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각자 십자가를 들고 또한 확성기를 튼 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치며 지나간다.
이런 풍경이 존속하는 것이 놀라웠다.
역 맞은편 십 층쯤 되는 건물은 온통 간판으로 뒤덮였다.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간판들만 보인다.
삶의 무질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는 누군가가 뱉은 침이 여기저기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버스를 타고 수원성으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의 하루.
수원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가 본 수원성은 일품이었다.
정조의 행군이 그렇게 기다랗게 펼쳐진 것인지 처음 보고 놀라웠다.
행군에 참여한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억지로 끌려나와 하는 것처럼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이 정통복장으로 참여한 뒤편의 행군은 보기에 좋았다.
외국인들은 싱글벙글거리면서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행군에 참여한 것이 자랑스러운 태도였다.
행군은 축제인데 그래야 되는 것 아닐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힘에 겨워 억지로 하는 듯이 보인 반면, 외국인들의 환한 얼굴이 축제를 빛내주었다.
수원에서의 행운은 뒷골목에서 점심식사로 먹은 돌게장 백반이다.
KBS2에 방영되었다는 포스터가 식당 안에 걸려있는데, 모자를 쓴 할머니의 모습이 부엌에서 혼자 일하는 그 할머니였다.
여전히 야구 모자를 쓰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가격은 7천 원이었지만, 만 원 또는 만이천 원을 줘도 아깝지 않은 맛난 게장이었다.
수원성을 걸어 돌면서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성의 울타리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꼈다.
길이가 5.7km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걷다가 만두로 소문난 집으로 가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먹었는데, 김치만두는 팍팍했고, 고기만두는 아주 맛났다.
수원에서의 한 나절을 잘 보내고 전철을 거꾸로 타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가 너무 사람들이 많이 이리저리 밀리다 포기하고 합정역에서 내려 절두산 아래 한강 가로 갔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토요일의 하루는 그렇게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처럼 화려하게 마감되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지인들과 강화도로 향했다.
새우와 전어를 먹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지난 주말에 충남 남당항에 가서 새우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다시금 새우구이에 입맛이 당긴 것이다.
강화도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그러니까 김포의 끝자락 뻘 옆에 ‘바다 이야기’란 식당들이 모여 있는 그 옆 새우와 전어만 취급하는 널따란 식당으로 갔다.
나무 아래 나무로 만든 마루에 자리를 잡고 새우와 전어를 밥통에 차곡차곡 쌓았다.
복분자와 포도주를 마셨는데, 고창 복분자는 우리나라 와인이고 포도주는 칠레 와인으로 둘이 잘 결합되었다.
지인의 집에서 두 가지 차를 번갈아가며 차로 배를 채웠다.
감자 한 가마에 조 한 말을 부으면 들어가듯이 가득 채워진 밥통 사이사이에 차가 스며들었다.
그렇데 먹었는데도 날이 어둡기 시작하자 지인 하나가 신촌의 ‘닭 한 마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신촌에는 자주 가는 편인데 그곳에 맛난 집이 있다고 하니 궁금증에 따라 갔다.
맑은 국물에 끓여주는 닭은 처음 먹어보았는데, 칭찬할 만 했다.
그 국물에 밥을 넣고 죽을 만들어 먹었다.
모처럼 배를 가득 채운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먹을 빵이 떨어진 것이 생각이 나 바게트를 하나 사서 돌아왔다.
그렇게 먹고도 아침 먹거리를 생각하고 사서 들고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