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蘇軾의 <상벌을 성실하고 돈후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

 

 

 

형상충후지지론刑賞忠厚之至論(상벌을 성실하고 돈후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

 

堯舜禹湯文武成康之際요순우탕문무성강지제: 요 순 우 당 문 무 성 강 때에는

何其愛民之深하기애민지심: 그 백성을 사랑함이 깊고

憂民之切우민지절: 그 백성을 걱정함이 절절하여

而待天下之以君子長者之道也이대천하지이군자장자지도야: 천하 사람들을 모두 군자나 어른의 예로써 대했다.

有一善유일선: 착한 사람이 있으면

從而賞之종이상지: 찾아가 상을 주고

又從而詠歌嗟歎之우종이영가차탄지: 송가를 만들어 선행을 기렸는데

所以樂其始而勉其終소이락기시이면기종: 이것은 그의 선행을 칭찬하고 끝까지 힘쓰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有一不善유일불선: 나쁜 짓을 하면

從而罰之종이벌지: 찾아가 벌을 주면서도

又從而哀矜懲創之우종이애긍징창지: 불쌍히 여기며 징계했는데

所以棄其舊而開其新소이기기구이개기신: 이것은 그가 옛 습관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故其吁兪之聲고기우유지성: 선현들의 칭찬하고 한탄하는 말과

歡忻慘戚환흔참척: 기뻐하고 슬퍼하는 표정이

見於虞夏商周之書견어우하상주지서: 모두 <서경>의 하상주의 기록에 보인다.

成康旣沒성강기몰: 성왕과 강왕께서 돌아가시고

穆王立而周道始衰목왕립이주도시쇠: 목왕께서 즉위하신 후 주나라의 도가 쇠미해지기 시작했다.

然猶命其臣呂侯연유명기신려후: 그러나 신하 여후를 파견하여

而告之以祥刑이고지이상형: 형벌을 신중히 하라고 일렀다.

其言憂而不傷기언우이불상: 그의 말은 걱정하는 듯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고

威而不怒위이불노: 위험이 있었으나 원망과 노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慈愛而能斷자애이능단: 자애로우나 결단력이 있었다.

惻然有哀憐無辜之心측연유애련무고지심: 측은하게 생각하고 무고한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어서

故孔子猶有取焉고공자유유취언: 그래서 공자님께서도 거기서 본받을 만한 것이 있었다.

傳曰전왈: 옛 책에 이르기를

賞疑從與상의종여: 상을 내리려는데 의심되는 점이 있어도 그냥 상을 내려라.

所以廣恩也소이광은야: 이것은 은혜를 넓게 펴기 위한 것이다.

罰疑從去벌의종거: 벌하려는데 의심되는 점이 있으면 벌을 내리지 마라.

所以謹刑也소이근형야: 이것은 형벌을 신중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當堯之時당요지시: 요 임금 때

皐陶爲士고도위사: 고요가 옥관을 맡았는데

將殺人장살인: 사형에 처해야 할 사람이 생겼다.

皐陶曰고도왈: 고요가 이르기를

殺之三살지삼: 그 사람을 사형에 처하라고 세 번이나 말했으나

堯曰요왈: 요임금께서 이르기를

宥之三유지삼: 용서해주라고 세 번 말씀하셨다.

故天下畏皐陶執法之堅고천하외고도집법지견: 그래서 천하 사람들은 고요가 엄격히 법 집행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而樂堯用刑之寬이락요용형지관: 요금께서 너그럽게 형 집행하는 것을 좋아 했다.

四岳曰사악왈: 사악이 이르기를

鯀可用곤가용: 곤은 등용할 만하다고 하자

堯曰요왈: 요임금께서 이르기를

不可불가: 안 된다.

鯀方命圮族곤방명비족: 곤은 명령을 어기어 나라를 무너뜨릴 사람이라고 하신 뒤

旣而曰試之기이왈시지: 이르기를 등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何堯之不聽皐陶之殺人하요지불청고도지살인: 어찌하여 요 임금께서 고요가 사형시키자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而從四岳之用鯀也이종사악지용곤야: 사악이 곤을 등용하는 것은 허락하셨는가.

然則聖人之意연즉성인지의: 그러하니 성인들께서 마음 쓰는 것을

蓋亦可見矣개역가견의: 가히 알 수 있다.

書曰서왈: <서경>에 이르기를

罪疑惟輕죄의유경: '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죄가 가벼운 쪽을 택하여 벌을 내려야 하고

功疑惟重공의유중: 공로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공로가 많은 쪽을 택하여 상을 내려야 한다.

與其殺不辜여기살불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寧失不經녕실불경: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 것이 낫다고 했다.

嗚呼오호: 아,

盡之矣진지의: 자세히도 말씀하시었구나.

可以賞가이상: 상을 베푸는 것이다.

可以無賞가이무상: 벌을 내릴 수도 있고 내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벌을 내리면

賞之過乎仁상지과호인:

可以罰가이벌:

可以無罰가이무벌:

罰之過乎義벌지과호의:

過乎仁과호인: 의가 지나친 것이다.

不失爲君子불실위군자: 지나치게 인을 베푸는 것은 군자의 행동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過乎義과호의: 의가 지나치면

則流而入於忍人즉류이입어인인: 잔인한 사람에 속한다.

故仁可過也고인가과야: 그래서 인은 지나칠 수 있지만

義不可過也의불가과야: 의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古者賞不以爵祿고자상불이작록: 옛 사람들은 작록으로 상을 내리지 않고

刑不以刀鋸형불이도거: 도거로 형벌을 내리지 않았다.

賞以爵祿상이작록: 작록으로 상을 내리는 것.

是賞之道시상지도: 이것이 상의 올바른 방법이다.

行於爵祿之所加행어작록지소가: 작록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내리고

而不行於爵祿之所不加也이불행어작록지소불가야: 받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는 내리지 않았다.

刑以刀鋸형이도거: 도거로 벌을 내리는 것이

是刑之威시형지위: 형벌의 위엄이다.

施於刀鋸之所及시어도거지소급: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도거를 사용하고

而不施於刀鋸之所不及也이불시어도거지소불급야: 벌 받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는 도거를 사용하지 않았다.

先王知天下之善不勝賞선왕지천하지선불승상: 선왕께서 천하의 착한 사람에게 일일이 모두 상을 내릴 수 없고

而爵祿不足以勸也이작록불족이권야: 작록으로 그들을 권면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知天下之惡不勝刑지천하지악불승형: 또 천하의 악한 사람에게 일일이 형벌을 줄 수 없고

而刀鋸不足以裁也이도거불족이재야: 도거로 그들을 제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아셨다.

是故疑則擧而歸之於仁시고의즉거이귀지어인: 그래서 의심나는 것이 있어도 인자로 취급하시고

以君子長者之道待天下이군자장자지도대천하: 군자와 덕망 있는 사람의 예의로써 천하 사람을 대신하여서

使天下相率而歸於君子長者之道사천하상솔이귀어군자장자지도: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이끌어 군자와 덕망 있는 사람의 길로 들어오게 하였던 것이다.

故曰고왈: 그래서 이르기를

忠厚之至也충후지지야: 성실하고 순후함이 지극함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

詩曰시왈: <시경>에 이르기를

君子如祉군자여지: '군자는 현인의 복된 말에 나아가

亂庶遄已란서천이: 혼란스런 일을 빨리 그치게 한다.

君子如怒군자여노: 군자는 참언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어

亂庶遄沮란서천저: 혼란스런 일을 빨리 그치게 한다고 했다.

夫君子之已亂부군자지이란: 군자가 혼란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豈有異術哉기유이술재: 어찌 특별한 방법이 있겠는가.

制其喜怒제기희노: 다만 적당히 희로애락을 억제하여

而不失乎仁而已矣이불실호인이이의: 인의 도를 잃지 않을 뿐이다.

春秋之義춘추지의: <춘추>의 의리는

立法貴嚴립법귀엄: 법을 엄격하게 하나

而責人貴寬이책인귀관: 사람을 책하는 데는 관대한 것을 귀하에 여기는 것이니

因其襃貶之義以制賞罰인기포폄지의이제상벌: 이러한 도리로 상벌을 제정하면

亦忠厚之至也역충후지지야: 역시 성실하고 순후함이 지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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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빈혈에 대한 행법

 

1. 반좌(책상다리)로 앉아서 엄지손가락을 손안에 넣어 가볍게 주먹을 쥐고 호흡한다.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두 팔을 높이 쳐든다. 숨을 멈춘 채로 고개를 좌로 세 번 돌리고 나서 입으로 숨을 내쉰다. 다시 코로 숨을 들이쉬고 이번에는 고개를 우로 세 번 돌리고 나서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두 팔을 내린다.

빈혈이란 혈액의 순환 장애를 말한다. 단순히 영양부족으로 혈액의 양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몸을 꽁꽁 죄었을 때에도 발생한다. 브래지어나 거들 등으로 몸을 꽁꽁 죄고 있는 여성에게 빈혈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빈혈을 일으켰을 때 응급조치는 우선 압박하고 있는 것을 모두 늦추어주고 몸을 편안하게 쉬게 해주는 것이다.

이 행법을 아침과 밤에 3회씩 일주일 동안 하면 빈혈로 쓰러지는 일은 없다. 그 이유는, 목은 뇌로 혈액이 흐르는 중요한 통로인 동시에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담으로 인해 노화가 빨리 오는 부분이다. 따라서 고개를 천천히 크게 돌려주면 그만큼 목이 유연해지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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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 학교에서의 파티

 

 

 

6월 5일 지인들과 함께 양평으로 가서 한화콘도에 여장을 푼 뒤 곧바로 슈타이너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학교 설립자 김은영 선생과 교사들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되재고기 삼겹살, 목살, 새우, 소시지, 버섯, 호박, 고구마 등을 굽고 술은 다양하게 소주, 청하, 맥주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기운을 받으며 술잔을 기울이니 술을 취하지도 않고 적당한 술기운이 유지되었습니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던지.

 

슈타이너 학교의 교사들은 장애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모두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장애인 교육에 온 정열을 쏟는 분들입니다.

파티에 참석한 학부형과 오래 대화했는데, 다운증후군의 아들을 4년째 이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형은 대단히 만족해했습니다.

부모가 만족해하는 교육이라면 그건 매우 훌륭한 교육입니다.

아이 하나하나에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들은 다양한 증세를 나타냅니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것이 교수들의 몫입니다.

가능성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보통 학교에서 이룰 수 없는 교육적 성취를 이런 대안학교에서는 이룰 수 있습니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아동들의 발전은 곧 교육의 성과이자 교사와 학부모들의 최대 즐거움입니다.

슈타이너 학교 교사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고, 아치 8시에 기상했습니다.

김은영 선생이 커피와 구운 가래떡을 꿀과 함께 배달해주어 아침식사를 하고 용문사로 향했습니다.

용문사는 세 번째 간 것인데, 절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천 년 된 은행나무를 보러 가는 것입니다.

마의태자가 신라가 고려에 합병되자 금강산으로 가던 중 그곳에 은행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것이 전래되는 이야기입니다.

천 년 된 나무라면 신목神木입니다.

어쩜 그렇게도 건강한 모습인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생명을 거느린 채 젊은 모습으로 늠름하게 위로 솟은 나무입니다.

수많은 싱싱한 잎으로 온 몸을 감싸고 그 높은 가지 끝에까지 물을 길어 올립니다.

자하의 물을 그 높은 데까지 천 년이 넘도록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절에서 내려와 그곳에 식당에서 더덕구이에 부추파전, 감자전, 더덕쌈밥, 동동주, 더덕주로 배를 채우고 지난밤의 술 위에 또 술을 부었습니다.

옥천 냉면에 대한 욕심에 근처 화니 찻집에 가서 빙수를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위장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옥천 냉면집으로 향했습니다.

식후 두 시간 만에 냉면을 먹는 건 위장에 매우 송구한 일이지만, 맛있게 해치웠습니다.

 

그리곤 예술의 전당 앞 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존 포일의 개인전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존은 아일랜드 화가입니다.

매우 성실한 화가이며 순진한 화가입니다.

주로 북한산의 풍경을 추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와 오래 대화하고 귀가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집을 떠난 지 불과 27시간에 불과했지만, 27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활동을 했다는 느낌입니다.

아울러 시간은 쓰기에 따라서 27시간 동안에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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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의 존재인 인간과 불멸의 존재인 신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수메르 도시국가들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신들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각 도시국가에서 살아가는 수메르인은 자신들의 도시의 신을 살뜰하게 모셨다. 우르 사람들은 달의 신 난나를, 라르사 사람들은 해의 신 우투를, 키시 사람들은 모신母神 닌후르사그를, 에리두에서는 물의 신 엔키를, 우룩인은 하늘을 다스리는 엔릴을 섬겼다. 간혹 죽음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수메르의 신들도 있었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과 불멸의 존재인 신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심지어 수메르인은 초기 왕들에게 신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메르인은 신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과 신을 엄격히 구분하는 셈족의 종교관이 수메르인에게 영향을 미친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운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셈족과 수메르인이 다르지 않았다. 두 종족은 모든 운명이 신에 의해 결정되며, 신이 자신들의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오직 신들의 영화를 위해 우주의 삼라만상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메르인은 신들의 결정에 내포되어 있는 크고 작은 결함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진흙으로 최초의 인간을 만들어낸 것은 엔키다. 뿌듯한 마음에 엔키는 연회를 열었고, 연회에 참석한 여러 신들은 부어라 마셔라 도수가 센 맥주를 마셔댔다.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엔키와 그의 아내 닌후르사그는 ‘인간창조 내기’를 한다. 닌후르사그는 사람을 창조하기에 앞서 그녀가 만드는 사람이 “어떤 운명을 타고나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만취상태에서 한 일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닌후르사그는 한 군데씩 모자란 구석이 있는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이 인간들에게 쓰임새를 찾아주자니 엔키의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을 관장하는 신 엔키는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여 이들로 하여금 “빵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준다. 불구인 자는 왕의 시종이 되고, 눈먼 자는 왕의 음유시인이 된다. 또 불임인 여성이 황제의 할렘에 들어가게 되고, 무성無性인 자는 사제가 된다. 엔키의 인간창조 이야기는 가정을 꾸리지 않는 자들의 운명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에 샘핫과 같이 몸을 파는 여성들은 신성한 직업을 가진 이들로 떠받들어졌다. 이런 여성들이 여러 명의 ‘남편’과 몸을 섞는 것은 단순히 이난나 여신의 대역을 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 아니었다. 바그다드 동남쪽에 있는 니푸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이런 ‘신성한 매춘’이 행해지는 동안 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벗은 몸에서 60명이 안식을 얻었네. 젊은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여신은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네.

 

 


사원뿐만 아니라 선술집에서도 울려 퍼졌을 이 노래에 담긴 의미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사』에서 바빌로니아 여성들이 신성한 기운을 받기 위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 앞뜰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기록했다. 부정확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리스의 사랑의 여신과 수메르의 이난나,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 같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여신들 간의 관계를 암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사』에서 언급한 여신 중 아프로디테와 가장 가까운 여신으로는 키프로스인이 숭배하던 고대 페니키아의 여신 아스타르테(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가 있다.
헤로도토스는 “키프로스 섬 거주민들이 바빌론의 이런 풍습을 따랐다”고 기록했다. 키프로스는 아프로디테가 탄생한 섬이다. 키프로스의 짙푸른 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 신의 남근에서 나온 거품 속에서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애매하지만 우라노스 신이 아프로디테의 아버지인 셈이다. 남근에서 태어난 여신의 존재에서 이난나・이슈타르・아스타르테가 유럽에 미친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수메르인이 고대 서아시아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특히 그리스 신들의 조상 오케아노스와 테티스 부부 신화의 내용은 바빌로니아의 창세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에누마 엘리시』는 네부카드네자르 1세 치세 하에 기록된 바빌로니아의 창세 서사시로 천지창조 이전에 벌어진 신들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신들의 어머니 티아마트는 자신의 잘린 신체에서 신들을 탄생시킨다. 마르두크도 티아마트의 자손이다. 불어난 신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 티아마트는 신들을 멸망시키려 한다. 티아마트와 그녀의 자녀들 사이에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결국 마르두크가 티아마트를 죽인다. 마르두크는 모든 신들의 존경을 받으며 ‘최고신’이 된다. 그리고 신들이 마르두크에게 선사한 50개의 영광스런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이 서사시는 끝을 맺는다. 이 서사시는 “그때 높은 곳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때 높은 곳에서”를 바빌로니아어로 말하면 바로 이 서사시의 제목인 『에누마 엘리시』가 된다. 이 서사시의 첫머리를 살펴보자.

 

 


그때 높은 곳에서는 아직 하늘의 이름이 없었고 아래에는 딱딱한 땅의 이름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태고의 단물 아프수, 그리고 모든 것을 품고 있던 쓴물 티아마트가 있었으며, 그들의 물은 하나로 섞여 있었다. 아직 초원이 생겨나지 않았고, 갈대도 없었으며, 습지도 없었다. 어떤 신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도 이름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운명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때 그들 중에서 신들이 태어났다.

 

쓴물의 여신 티아마트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여신 테티스는 남편 오케아노스와 세상 끝에서 살고 있었다. 오케아노스는 테티스 여신의 오빠이자 남편으로 지구를 둘러싼 모든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다. 테티스에 대해서는 이 이상 알려진 바가 없었으므로 그리스인은 이 여신을 열렬히 숭배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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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해: 신앙과 신화

 

 

 

 

 

고대 서아시아인에게 신앙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틀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만물 창조의 비밀을 캐낼 수 없었던 고대인은 모든 존재에 그 의미를 부여해줄 새로운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삼라만상의 창조자,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통해 세상의 질서가 지금과 다름없이 영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역설적인 점은 이 초월적인 존재들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을 꼭 닮았다는 것이다. 신들의 본래 기능은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런 기대는 수메르인뿐 아니라 셈족의 신앙에서도 발견된다. 수메르의 위대한 여신 이난나는 비를 관장했다. 그녀는 촉촉한 봄비를 내려 메마른 땅을 신록으로 물들였다. 충만한 성적 매력의 소유자였던 이난나는 사랑의 여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매춘부의 벗이자 수호신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이 서사시의 주인공인 영웅 길가메시에게 자신의 몸을 취하라는 제안을 하는 이난나 여신이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여신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그녀의 분노를 산다. 사실 길가메시는 미인계의 치명적인 함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매춘부 샘핫’을 보내 야인 엔키두를 미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엔키두는 샘핫의 몸에서 질리도록 쾌락을 취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의 무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서 자란 엔키두에게 가족이라곤 야생 동물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꿈 같은 환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야생동물 무리는 이동했고 그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외톨이가 된 엔키두를 부른 것은 문명의 달콤함이었다. 우르를 들썩이게 하는 화려한 축제, 도시에 성행하는 매춘, 위대한 통치자 길가메시의 명성 등, 도시의 매력에 대한 샘핫의 감언이설에 마음을 빼앗긴 엔키두는 홀린 듯이 길가메시의 품으로 향한다.
셈족의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길가메시 설화 판본에서 이난나 여신은 이슈타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난나는 본래 수메르의 여신이었다. 이 막강한 여신이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신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바빌로니아 신전 입성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인은 이난나 여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신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일대 변혁이 필요했다. 싸움을 즐기는 민족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활과 화살을 손에 잡은 이난나는 호전적인 성향과 함께 턱 밑에 자라나는 구불구불한 수염을 얻었다. 심하게 손상된 점토판 파편에서 남편 탐무즈를 애도하는 이슈타르 여신의 통곡에 대한 아카드어 기록이 발견되었다. 탐무즈는 매년 죽음의 땅을 밟았다 다시 살아나 이난나와 결합하는 남신이다. 이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신년 혼인의식의 신랑은 아카드판 두무지라 할 수 있다. 이난나가 악마들에게 내어주어 매해 수메르의 저승으로 가는 비운의 남편 두무지의 아카드식 변형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도 이 죽음과 부활의 신 탐무즈를 숭배했다. 오죽했으면 예언자 에스겔(혹은 에제키엘)이 여호와의 집 대문 앞에 탐무즈를 위해 애곡하는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고 통탄했겠는가.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탐무즈를 위하여 애곡하더라.(「에스겔」 8: 14)

 

<솔로몬의 노래>에 이 혼인의식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살펴보았다. 하지만 유대의 왕이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성행한 신성한 혼인의식, 즉 살아 돌아와 첫날밤을 치루는 혼인의식을 거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예루살렘 시민은 죽은 것으로 여겨지던 왕이 아침에 살아 돌아오는 부활의식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해 아침을 맞았다. 「시편」에는 이런 부활의식을 조명한 대목이 등장한다.

 

환난에 빠진 백성이 이렇게 외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시편」 18: 4~5)

 

유대의 왕이 부활의식에서 이 같은 고통을 실제 겪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왕이 만백성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후대의 예언자들은 이러한 원시 종교의식을 배격했다. 숭배문화에 대한 예언자들의 우려는 「출애굽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동족의 모습에 경악한다. 예언자들에게 백성의 거듭된 우상숭배는 또다시 겪어야 할 종교적 박해의 전조라 할 수 있었다. 여러 신들을 모시는 사람들의 땅 서아시아에 정착하면서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이 또다시 겪어야 할 참혹한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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