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해: 신앙과 신화

 

 

 

 

 

고대 서아시아인에게 신앙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틀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만물 창조의 비밀을 캐낼 수 없었던 고대인은 모든 존재에 그 의미를 부여해줄 새로운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삼라만상의 창조자,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통해 세상의 질서가 지금과 다름없이 영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았다. 역설적인 점은 이 초월적인 존재들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을 꼭 닮았다는 것이다. 신들의 본래 기능은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이런 기대는 수메르인뿐 아니라 셈족의 신앙에서도 발견된다. 수메르의 위대한 여신 이난나는 비를 관장했다. 그녀는 촉촉한 봄비를 내려 메마른 땅을 신록으로 물들였다. 충만한 성적 매력의 소유자였던 이난나는 사랑의 여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매춘부의 벗이자 수호신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이 서사시의 주인공인 영웅 길가메시에게 자신의 몸을 취하라는 제안을 하는 이난나 여신이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여신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그녀의 분노를 산다. 사실 길가메시는 미인계의 치명적인 함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매춘부 샘핫’을 보내 야인 엔키두를 미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엔키두는 샘핫의 몸에서 질리도록 쾌락을 취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의 무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서 자란 엔키두에게 가족이라곤 야생 동물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꿈 같은 환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야생동물 무리는 이동했고 그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외톨이가 된 엔키두를 부른 것은 문명의 달콤함이었다. 우르를 들썩이게 하는 화려한 축제, 도시에 성행하는 매춘, 위대한 통치자 길가메시의 명성 등, 도시의 매력에 대한 샘핫의 감언이설에 마음을 빼앗긴 엔키두는 홀린 듯이 길가메시의 품으로 향한다.
셈족의 언어인 아카드어로 기록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길가메시 설화 판본에서 이난나 여신은 이슈타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난나는 본래 수메르의 여신이었다. 이 막강한 여신이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신전에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바빌로니아 신전 입성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빌로니아인은 이난나 여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신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일대 변혁이 필요했다. 싸움을 즐기는 민족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활과 화살을 손에 잡은 이난나는 호전적인 성향과 함께 턱 밑에 자라나는 구불구불한 수염을 얻었다. 심하게 손상된 점토판 파편에서 남편 탐무즈를 애도하는 이슈타르 여신의 통곡에 대한 아카드어 기록이 발견되었다. 탐무즈는 매년 죽음의 땅을 밟았다 다시 살아나 이난나와 결합하는 남신이다. 이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신년 혼인의식의 신랑은 아카드판 두무지라 할 수 있다. 이난나가 악마들에게 내어주어 매해 수메르의 저승으로 가는 비운의 남편 두무지의 아카드식 변형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도 이 죽음과 부활의 신 탐무즈를 숭배했다. 오죽했으면 예언자 에스겔(혹은 에제키엘)이 여호와의 집 대문 앞에 탐무즈를 위해 애곡하는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고 통탄했겠는가.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탐무즈를 위하여 애곡하더라.(「에스겔」 8: 14)

 

<솔로몬의 노래>에 이 혼인의식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살펴보았다. 하지만 유대의 왕이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성행한 신성한 혼인의식, 즉 살아 돌아와 첫날밤을 치루는 혼인의식을 거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예루살렘 시민은 죽은 것으로 여겨지던 왕이 아침에 살아 돌아오는 부활의식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해 아침을 맞았다. 「시편」에는 이런 부활의식을 조명한 대목이 등장한다.

 

환난에 빠진 백성이 이렇게 외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시편」 18: 4~5)

 

유대의 왕이 부활의식에서 이 같은 고통을 실제 겪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왕이 만백성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후대의 예언자들은 이러한 원시 종교의식을 배격했다. 숭배문화에 대한 예언자들의 우려는 「출애굽기」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동족의 모습에 경악한다. 예언자들에게 백성의 거듭된 우상숭배는 또다시 겪어야 할 종교적 박해의 전조라 할 수 있었다. 여러 신들을 모시는 사람들의 땅 서아시아에 정착하면서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대인이 또다시 겪어야 할 참혹한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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