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재료의 특징은 독특한 행동을 유발한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2010, 출판사 知와 사랑)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미술 검사를 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재료를 달리했을 때 아이의 반응, 즉 촉각적, 운동적, 시각적, 언어적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술치료사는 아이가 재료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즉 재료의 쓰임새와 한계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관찰해야 한다.
각 재료의 특징은 독특한 행동을 유발한다.
또한 재료의 쓰임새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재료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낳는다.
각 재료에는 저마다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은 아이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고 일깨운다.
그래서 아이가 어떤 재료를 선택하며, 그 재료에 내재된 가능성과 한계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관찰하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젤에 도화지를 세워놓고 그리다가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문제에 처했을 때,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는 상당히 다양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가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보면, 그 아이가 좌절감을 느낄 때 전반적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또 융통성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다.
손가락 그림물감과 점토는 주변이 온통 지저분해지며, 몇 번이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점토는 마음껏 두드리거나 내리칠 수 있으며,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점토를 뭉쳐 새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손가락 그림물감으로는 그림을 그렸다가 싹 문질러 지운 후 새로운 모양을 그릴 수 있다.
다섯 살 로제는 손가락 그림물감으로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종을 그렸다가 그 다음에는 하트 모양을 여러 번 고쳐 그렸다.
그 다음으로 구불구불한 선을 하나 그리더니 그것이 “똬리를 튼 뱀”이라고 했다.
그 후 “뽀뽀하는 뱀 두 마리”라며 얼굴처럼 생긴 동그라미가 달린 구불구불한 선 두 개를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얘네 둘은 매일 똬리를 틀어요!”
로제가 다음으로 그리려 한 건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고쳐 그리더니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을 쏟아냈다.
“전 화가는 아니에요. 에잇! 나쁜 아이 같으니.”
로제는 물감을 문질러 소년을 재빨리 지워버리고는 다시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뱀을 그리던 중 걱정스런 투로 이렇게 말했다.
“끝을 어디로 해야 하지. 이 뱀에는 꼬리가 없어. 이거 뱀보다는 말 같아 보이네.”
그렇게 뱀에서 시작했던 그림은 결국 ‘타코’가 되었다.
로제는 나중에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타코는 풀을 먹으려고 하는 소년 말이에요. 타코의 엄마나 빨리 저녁 먹으로 오라고 부르지만, 타코는 먹으로 가지 않아요. 타코는 왜 배가 고픈데도 먹으로 가지 않는 걸까요? 타코가 계속 가지 않으면 타코의 아빠가 엉덩이를 찰싹 때릴 거예요. 타코의 엄마도 타코를 때릴 거예요. 타코는 더 이상 풀을 못 먹을 거예요. 왜냐하면 화가 나서 타코가 아기 말을 때렸디 때문이에요! 타코가 엄마에게 아기 말을 때렸다고 말했고, 엄마가 타코를 혼내줬어요. 다른 사람들이 타코 엄마에게 타코가 아기를 때렸다고 말할 거예요!”
로제가 연속적으로 그린 그림들과 로제의 행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로제는 손가락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지저분해질까 봐 걱정했다.
손가락 그림물감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뽀뽀하는 한 쌍의 뱀을 그렸다.
소년 그림과 뱀의 꼬리를 그리기 힘들어했다.
로제가 그린 꼬리 없는 소년 말은 배가 고픈데도 엄마가 차린 저녁을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소년 말은 엄마가 주는 음식은 안 먹고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한 데다 아기가지 때렸으니 나쁜 말이다.
우리는 이를 토대로 로제가 부모에게서 배제당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으며,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에도 질투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제는 자신의 배고픔과 분노를 ‘나쁘다’고 여기고 있으며, 아기처럼 마음껏 어지르고픈 욕구 또한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로제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동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