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이 최소한의 증거를 과잉 해석하는 모듈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자 헨리 플로트킨은 “우리의 생존은 세상의 인과구조에 대한 잘 조율된 지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과성에 대한 환상은 인간이나 쥐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유발된다”고 말한다.

『양복을 입은 원시인 Caveman Logic』(2010, 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행크 데이비스Hank Davis는 두 가지 유형의 인과 탐지 오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의 일부 행동이 특정한 사건을 불러왔다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늘 이런 오류를 저지른다. 1948년, 심리학자 스키너는 비둘기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먹이를 주는 실험을 했다. 비둘기가 무슨 일을 하든 관계없이 먹이가 제공되었다. 그런데 각각의 비둘기들에게서 각자 다른 반복적인 행동 패턴이 나타났다. 같은 행동을 하는 비둘기는 없었다. 어떤 놈은 왼쪽으로 돌았고, 어떤 놈은 오른쪽으로 돌았다. 뒤쪽으로 걸어가는 놈, 반복적으로 머리를 까딱거리는 놈도 있었다. 안쪽에 설치된 지렛대나 반응키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도록 만들어진 스키너가 고안한 실험상자인 스키너 상자skinner box 비둘기라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반응키를 쪼아대는 것이 실제로 음식 보상을 가져오고, 그것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쉽게 배운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비둘기들이 행동을 하든 안 하든 먹이가 제공되었다. 그런데 어떤 비둘기도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만히 있는 놈은 없었다. 이 실험의 비둘기들은 자신들만의 행동 패턴을 만들어냈다. 자기가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난 알아냈어! 뭘 해야 하는지 난 안다고!”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런 비둘기들의 바보 같은 정신적 실수를 비웃고 세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코웃음을 치지만, 슬프게도 많은 심리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인간도 같은 상황에서 비슷하게 행동한다.

스키너는 ‘미신적 행동 superstitious behavior;이라는 특이한 용어로 이러한 비둘기의 행동을 설명했다. 비둘기들은 자신들이 유발한 사건과 자신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일어난 사건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쥐, 비둘기, 사람 모두 자신들의 행동과 자신들에게 닥친 일 사이의 관계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선택이 최소한의 증거를 과잉 해석하는 모듈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모듈이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인과성을 찾는 것 외에 더 큰 피해는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평온 기도는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바꿀 수 없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일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이 기도의 지혜가 되는 아이디어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바꾸거나 통제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 기도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그 차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원인-결과 관계의 탐지에만 몰두하는 정신적 모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듈은 유아 때부터 자리를 잡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정도를 과장하곤 한다. 스키너 상자 안의 쥐와 다를 바 없이 우리는 모든 사건이 내 행동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행운의 셔츠를 입어야 돼” 혹은 “우리 팀이 계속 이기려면 절대 양말을 갈아 신지 말아야 해.

두 번째 오류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행동이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신적 오류는 인간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농작물을 망치게 된 농부가 기도한다. “양을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를 내려준다면 저의 소중한 것을 내놓겠습니다.” 농부는 나는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에게도 중요시 여기는 어떤 가치가 있을 테고, 그걸 알아내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일부 통제력을 얻기 위해 다른 자의 권력을 정확하게 탐지해낸다.

운동선수들이 승리를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공으로 돌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가령 “9회 말에 홈런을 때리게 해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와 같은 말은 선수 자신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한편 경건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들리게 한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의 발생을 자기 행동의 결과라고, 혹은 다른 누군가가 준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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