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논리는 인간 잠재력의 낭비이다




우리는 최소한 5만 년 내지 10만 년 전에 설계된 마음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에게 맞추어져 세팅된 것이다. 홍적세Pleistocene(지질시대 신생대 제4기의 전반의 세로 플라이스토세, 갱신세, 최신세라고도 한다.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시기를 말한다)에나 적합했던 자동 설정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스템에 유연성이 있다면 수정이 가능하다. 신경가소성neuroplaticity의 새로운 증거를 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의 인지 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것에 얽매여 의존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원래의 자동 설정 세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 환경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의 원시 인류 조상들에게는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이미 오래 전에 유용성을 상실했다.

스티븐 핑거는 “마음은 두뇌의 활동이다 The mind is what the brain does”라고 했다. 많은 현대 학자들도 같은 의견을 말했다. 즉 두뇌는 물리적 기관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 마음 혹은 두뇌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표현형을 제공한다.

원시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원이 매우 절실하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경향을 억누르는 행동을 매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폭력과 성적 공격의 충동을 참아내는 일들이 그러하다.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 세상과 그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해 더 분명하고 덜 원시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려면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은 부정확한 초자연적 믿은 체계가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뚜렷한 사례를 제시한다. 토머스 길로비치는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How We Know What Isn't So』에서 치료제 및 최음제와 관련된 미신적이며 터무니없는 믿음 때문에 학살당한 동물들의 가슴 아픈 목록을 제시한다. 같은 인간들에게 자행된 폭력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종교가 다르다는 명목으로 저질러진 폭력 문제는 21세기만의 일이 아니다.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에서 원시 논리를 물리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자신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하며 때때로 죽은 영혼이 우리 곁에 머물며 소통하고 내세에 함께할 거라는 믿음에 자신도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왜 존재하는지를 깨닫고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원시 논리는 일시적 이점이 있지만 인간의 지적 완전성이란 관점에서 너무 큰 대가를 요구한다.

한 마디로 원시 논리는 인간 잠재력의 낭비인 것이다. 자유의지란 관념은 불안정한 철학적 기반에 놓여 있긴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부심과 자기존중의 핵심이다. 개인은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걸 면밀히 살피고 제시된 증거들을 신중하게 따져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최상의 정신적 도구를 이용해 믿음을 갖고, 지각하며,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못하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능력을 고민하고 심지어는 창피해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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