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altruism는 자기우위의 과시이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레오킴과 자크 모노의 글을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블로거들의 반응 중에 이해하고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렵다고 말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어렵다는 데 동의합니다. 생명의 정체성을 우선 규정해야 하고, 우주의 기원과 더불어서 원소들의 생성, 그리고 화학작용에 의한 최초의 단백질 생산을 밝히는 일이 과학에서도 난제이므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개념들이 등장하므로 난해합니다.


그래서 주제를 조금 바꾸어 진화와 유전자에 관한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언급한 내용과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살펴보고 다시 레오킴과 모노의 고찰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에서 자연선택은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뤄진다면서 생물 개체들 가운데는 같은 유전자들의 복제를 공유할 것 같은 혈연자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보호함으로써 ‘유전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개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타적 기부행위가 자기우위의 과시라고 말합니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 의미로서의 단위이고, 개체는 ‘운반자’ 의미로서의 단위이며, 이 둘은 완전히 종류가 별개인 단위임을 지적합니다.


도킨스에게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란 협력적 유전자cooperative gene를 의미합니다. 그는 이타주의altruism란 유전자 그룹이 자신들의 동료를 희생시켜 그 대가로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유전자가 유전자 풀 안에 있는 다른 유전자들을 배경으로 그 자신의 이기적 협의사항을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그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유전자들이 각 유전자가 살아가는 환경의 일부분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환경이란 기후, 포식자와 피식자, 식생과 토양 세균을 비롯한 같은 의미의 환경입니다. 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배경’ 유전자들이란 자신이 수많은 세대를 따라 이어온 시간여행 중 몸체를 공유하는 길동무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선택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양립할 수 있는 유전자 패들이 서로의 면전에서 호의를 받도록 주선해줍니다. 이 협력적 유전자cooperative gene의 진화는 결코 이기적 유전자의 근본 원리를 침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유전정보, 즉 유전체인 게놈genome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유전자들도 있습니다. 이를 ‘무법자 유전자’ 혹은 ‘초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릅니다.


침팬지와 인간은 진화역사 중 대략 99.5%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종만이 전지전능자로 가는 디딤돌처럼 생각합니다. 반면 침팬지는 꼴이 흉하고 엉뚱하며 괴상한 짐승으로 여깁니다. 도킨스와 같은 진보주의 진화론자들은 이를 억지스러운 인식이라고 냉소하며 하나의 종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연선택의 결과가 현재 우리가 있게 만든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82)이 처음 제기한 자연선택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화에 관한 글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연선택이란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적응한 種(종)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품종개량에서 행해지는 인위선발로부터 유추하여 찰스 다윈이 50세에 쓴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에서 생물진화의 주된 요인으로 자연선택이란 개념을 제창했으며 오늘날에도 진화요인 이론과 관계가 깊은 집단유전학의 주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윈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형질이 후대로 전해져 내려올 때 자연선택을 통해 주변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찰스 다윈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다윈은 1825년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1828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전학하여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식물학 교수 존 헨슬로John S. Henslow와 친교를 맺고 그 분야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1831년 22살 때 헨슬로의 권고로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해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두루 항해 탐사하고 1836년에 귀국했습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관찰, 즉 다른 환경의 섬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동일한 계통의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변이와의 관련은, 그로 하여금 진화사상의 심증을 굳히는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1797-1875)의 『지질학 원리 Principles of Geology』(1830)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다윈은 1839년에 『비글호 항해기 Journal of the Voyage of the Beagle』를 출간하여, 여행 중의 관찰 기록을 발표하면서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그가 정식 명칭이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인『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을 발표한 건 1859년 그가 50세 때였습니다. 진화론의 골자는 자연선택설을 요인으로 한 것입니다. 자연선택설은 종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한다는 견해입니다. 개체 사이의 경쟁은 늘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는 이론입니다.


다윈의 영향을 받은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한 사람이 바로 찰스 다윈이라고 말합니다. 도킨스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서양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많은 논쟁에 불을 지핍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진화의 산물로 이기적으로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유전자의 특질 중 가장 중요한 건 ‘비정한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egoism는 이기적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됩니다. 유전자가 한정된 이타주의를 육성함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가장 잘 수행하는 특별한 경우가 있지만, 보편적 사랑이든 종 전체의 번영이든 이러한 것은 진화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연선택의 과정을 보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온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윈 이론의 놀라운 점은 생존 가능성에 대한 사소한 작용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정의는 주관적이 아니라 행동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겉보기에 이타적 행위는 이타주의자의 죽을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수익자의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행위이지만, 자세히 고찰하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실제에 있어서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생존 가능성에 대한 행위의 실제 효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임을 의미합니다.


이기적 행동의 예로 도킨스는 검은머리갈매기를 예로 듭니다. 그것은 커다란 집단을 이루어 집을 짓는데, 둥지와 둥지 사이는 불과 수 미터밖에 안 됩니다. 갓 태어난 어린 새끼는 무방비 상태이므로 포식자에게 먹히기 쉽습니다. 어느 갈매기는 이웃 갈매기가 먹이를 찾으러 집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둥지를 습격해 어린 새끼를 삼켜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하여 그 갈매기는 먹이를 잡으러 나가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자기 둥지를 지키는 동시에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게 됩니다.


보통 파리와 같은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암사마귀에게는 동족을 잡아먹는 무서운 성질이 있습니다. 교미 때 수놈은 조심스럽게 암놈에게 접근하여 암놈을 올라타고 교미하는데, 암놈은 기회를 포착하면 수놈을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수놈이 접근할 때나 자신의 몸에 올라탄 직후, 혹은 떨어진 후에 우선 머리를 잘라먹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없다는 것이 수놈의 남은 몸통 부분의 성적 행위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곤충의 머리는 억제 중추신경의 자리이기 때문에 암컷은 수컷의 머리를 먹는 것으로 수컷의 성행위를 활발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미가 끝난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남극의 황제펭귄은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있으므로 물가에 서서 물에 뛰어들기를 주저합니다. 그중 하나가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은 바다표범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느 펭귄도 자기가 희생물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뛰어들기만 모두가 기다립니다. 때로는 서로 밀치다가 무리 중의 하나를 떠밀어 버리기도 합니다. 더욱 일반적인 이기적 행동은 먹이나 영역, 교미의 상대와 같은 가치 있는 자원을 서로 나누기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겉보기에 이타적 행동으로 보이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벌이 침을 쏘는 행위는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내장이 침과 함께 빠져 버리므로 그 벌은 곧 죽게 됩니다. 벌의 자살적 행위가 집단의 생존에 필요한 먹이 저장을 수호했더라도 일벌 자신은 그 이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타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은 새는 매와 같은 포식자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독특한 경계소리를 내고, 이 소리를 듣고 무리 전체는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경계소리를 내는 새는 포식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끌게 하므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타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타적 행위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이 새끼에 대한 어미의 행위입니다. 어미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며 큰 위험에 몸을 던져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킵니다. 그렇지만 도킨스는 생물이 종의 이익을 위해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도록 진화한다고 말하면 오류라고 말합니다. 동물의 생활은 대부분 번식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타적 자기희생적 행위는 어미가 새끼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종의 존속, 혹은 종의 번식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도킨스는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행되고 자연선택은 최적자의 차별적 생존이라고 말합니다. 다윈이 생존경쟁이라고 말함에 있어 경쟁하는 단위가 종이라면, 개체란 장기판에서의 졸에 해당합니다. 졸은 종 전체의 큰 이익을 위해 희생될 수 있습니다. 세계는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뤄진 집단이 대부분 점령하게 됩니다. 이를 학자들은 ‘그룹선택설theory of group sele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학설은 영국의 동물학자 윈 에드워즈Vero Copner Wynne-Edwards(1906~97)에 의해 소개되고 미국의 극작가 로버트 아드리Robert Ardrey(1908~80)의 『사회계약 The Social Contract』(1970)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는 진화론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던 생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진실로 받아들여진 학설입니다. 이에 반해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선택설 theory of gene selection’을 더 선호합니다.


‘그룹선택설’에 의하면 이타주의자의 집단 중에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기를 거부하는 소수파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다른 이타주의자를 이용하려고 하는 이런 이기적인 반역자가 한 개체라도 있으면, 그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생존의 기회와 새끼를 낳는 기회가 많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새끼는 각각 이기적인 특성을 이어받게 됩니다. 여러 세대의 자연선택을 거치고 나면 이 이타적 집단에 이기적 개체가 만연해 이기적 집단과 구별이 어렵게 됩니다. 흔히 집단 내의 이타주의는 집단 간의 이기주의를 동반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노동조합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국가는 이타적 자기희생의 주요한 수익자이며,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합니다. 그들은 적국인이라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타인을 살상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최근 인종차별주의자나 애국심에 반대하여 동지의식의 대상을 인류의 종 전체로 대치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진화에 있어 ‘종의 이익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인무도한 범인에 대해서조차 사형집행을 꺼려하는 데 반해 별로 해로운 야수도 아닌 동물을 쏴 죽이는 데 기꺼이 동의합니다. 태아는 성숙한 침팬지보다 경의와 법적 보호를 받습니다. 침팬지는 풍부한 감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도 하고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태아는 우리 종에 속하므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어떤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할까?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아니면 전체 생물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윤리의 혼란은 진화론적인 면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서의 이타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에서의 문제와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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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독서>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마네의 <독서 La Lecture>, 1865, 유화, 1873-75년에 다시 그림, 60.5-73.5cm.

화가가 같은 주제의 그림을 다시 그리는 건 보통 있는 일입니다. 마네의 아내 수잔의 흰 드레스와 소파의 흰색이 일체를 이루고, 화면 뒤로 전체의 배경으로 늘어진 커튼도 흰색입니다. 여기서 흰색의 다양함이 두드러집니다. 소박한 실내에서 흰 드레스로 인해 수잔은 청순하고 순진해 보입니다. 수잔의 검정구슬 목걸이와 검은 허리띠가 흰색 가운데서 드러나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마네는 종종 아내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으며, 타계하기 한 해 전에도 그녀를 모델로 그려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했습니다. 수잔 뒤로 책을 읽고 있는 남자는 마네의 아들 레옹입니다.




마네는 1865년에 수잔과 레옹을 모델로 <독서 La Lecture>를 그렸는데, 한때 파리에 유학하여 쿠르베와 마네의 영향을 받고 1859년에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활약한 미국인 화가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1834-1903)의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1863)를 상기시킬 만큼 흰색 일색이었습니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독서하는 레옹이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처럼 소파의 윗부분에 손을 얹고 몸을 의지하고 있어 환상적인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그림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화초가 잘린 채 잎들만 부분적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사물을 가장자리에서 자르는 구성은 일본 판화의 영향인 듯합니다. 사물의 가장자리가 잘리는 건 드가의 작품에서도 종종 나타나며 일본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독서>는 현대 인생의 한 장면으로 마네의 진보주의 미학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네는 1868년 수잔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그렸는데, 폴 세잔이 한 해 후에 그린 피아노 치는 여인의 모습과 비교할 만합니다.



108

마네의 <피아노 앞에서의 마네 부인 Madame Manet au Piano>, 1868, 유화, 38-46.5cm.


108-1

폴 세잔의 <탄호이저의 서곡 L'Ouverture de Tannhauser>, 1869, 유화, 57-92cm.

화면에 안락의자, 등받이가 있는 소파, 작은 의자, 피아노가 있으며,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팔과 함께 모두 직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면은 수직과 수평으로 각이 져 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빛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채, 그리고 안락의자의 미묘한 반사광이 사진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탄호이저의 서곡’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함께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1813-83)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서곡은 보통 오페라 공연에서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하는 것으로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 전개를 함축하며 짧게 요약한 것입니다. ‘탄호이저의 서곡’은 탄호이저라는 기사가 사랑받고 방황하다가 구원을 받는다는 줄거리를 요약한 것으로 바그너의 관현악곡 중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곡은 정교한 구성을 바탕으로 낭만적이면서도 숭고한 힘을 느끼게 하는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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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를 특징짓는 속성: 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


지난번 12월 19일에 ‘생명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통해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확실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더러는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종교인들은 내심 쾌거를 부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글에서 레오킴은 이러한 문제로 과학과 영성 혹은 종교가 불화할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과학으로 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영성 혹은 정신적 지도자 혹은 종교인의 의견도 청취하자는 입장입니다. 합리주의적인 태도입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에 관해 우리가 서로 반목하고 냉소하는 건 무의합니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82)이 50세에 쓴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은 19세기 말부터 철학, 종교, 정치 등 전 영역에 걸쳐 그 근본을 흔든 혁명적인 책이었습니다. 『종의 기원』은 두툼한 분량이라서 모두 읽은 독자가 아주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꼭지로 요약해서 여기에 실으려고 합니다.


진화론은 유전에 대한 물리적 이론, 즉 생물학자들의 노력 없이는 공허합니다. 유전에 대한 물리적 이론이 가능한 건 유전암호genetic code의 분자 이론이 성립되고 부터입니다. 생물학의 근본적 기초를 이루는 유전암호의 분자 이론에는 유전 물질의 화학 구조나 유전 물질이 전달하는 정보의 화학 구조에 관한 이론뿐 아니라 이러한 정보를 형태발생적, 생리적으로 표현해내는 분자적 메커니즘들에 대한 이론도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기체들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들이 유전암호의 분자 이론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거나 언제나 직접적으로 분자적 차원에서 분석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양자 이론이 화학 전반의 보편적 기초를 이루지만, 화학의 모든 것을 양자 이론을 통해 예측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암호의 분자 이론은 현재 생명체들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명의 비밀에 접근하기 불가능했지만, 유전암호의 분자 이론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의 사상 흐름에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우연과 필연 Le hasard et la nécessité』의 저자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1910-76)는 과학의 근본이 되는 공리postulat, 즉 ‘자연은 객관적objective이지 의도적인 것non projective이 아니다’라는 말을 먼저 독자에게 강조합니다. 그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인위적인 것에는 규칙성régularité과 반복성répétition이 있지만, 자연적인 것에서는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센티미터 단위로 잴 수 있는 거시적macroscopique 차원이 아닌 잉스트롬, 즉 1cm가 108angstrom인 미시적microscopique 차원에서 원자 구조 내지는 분자 구조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하학의 특징을 띠지만 이런 특징들은 의식적이거나 이성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화학 법칙들의 소산일 뿐임을 지적합니다.


모노는 구성 원자들이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는 내부적 규칙성이 외부적으로 나타나 있는 고체인 結晶(crystal결정)은 미시적 구조의 거시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가능한 결정 구조는 이미 다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인위적인 것의 예로 그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하학적 구조의 꿀벌의 벌집을 예로 들면서 그것은 벌들의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에 분명히 인위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벌들의 행위가 자동적으로automatique 이뤄지는 것이지 의식적인 의도에서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동적인 행위를 의식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모노는 거시적 구조상의 기준만을 가지고 인공물을 가려낼 수 있는 완전한 정의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모노는 인위적인 것 혹은 인공물이란 그것이 수행할 기능에 의해서, 그것의 발명자가 기대하는 성능에 의해서 규정되고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역설적으로 모노는 꿀벌이 아주 공들여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뜻 보더라도 꿀벌은 좌우대칭과 평행이동 등의 단순한 대칭성의 요소들을 뚜렷이 보여주며, 더욱이 대단히 복잡한 꿀벌의 구조가 매 개체마다 정확성으로 똑같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는 꿀벌이란 존재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는 의도적 행위에 의해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물임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모노는 말합니다.


의도가 깃들 존재들로 모노는 말을 예로 듭니다. 말과 자동차의 구조뿐 아니라 그것들의 성능도 분석하면, “둘 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안되었다는 점이 매우 유사하다. 물론 두 물체는 서로 다른 표면 위에서 이동하는데, 바로 그 점이 그것들 사이에 있는 구조상의 차이를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척추동물의 눈과 카메라를 비교해도 마찬가지로 렌즈, 조리개, 셔터, 감광성, 색소 등 두 물체는 형태만 다를 뿐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들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모노는 생명체의 기능적 적응adaptation fonctionnelle을 보여주는 자연적 기관인 눈이 어떤 의도project, 즉 영상을 포착하려는 의도의 달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한사코 부정하려 드는 일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부질없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는 카메라의 기원에는 어떤 의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눈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모든 인공물이 어떤 생명체 행위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체는 이러한 인공물을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생명체가 예외 없이 특징짓는 기본적인 속성 중의 하나를 아주 명백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속성이란 생명체는 어떤 의도가 깃든doué d'un project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체들의 구조는 어떤 의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인공물의 창조와 같은 그것들의 활동 또한 이 의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노는 이런 속성이 생명체를 규정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생명체를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구별하기 위해 합목적성téléonomie이란 속성을 제시합니다. 그는 생명체의 구조가 외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전체 형태에서부터 가장 작은 세부적 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자신 내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형태 발생적morphogénétique 상호작용에 의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의 구조는 정확하고 엄밀한 자율 결정성을 보이며, 외적 조건들이나 힘들에 대해 거의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생명체에 유기적 조직성organization을 부여하는 건 외적 조건들이나 힘들이 아니라 엄밀한 자율 결정성이란 것입니다. 생명체의 거시적 구조를 구성하는 형태발생 과정이 이와 같이 자율적이며 자발적이란 점에서 생명체는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구별됩니다. 물체들의 거시적 형태는 대부분 이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결정되는데, 모노는 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각 결정의 특징적인 기하학적 구조는 그것에 내재하는 미시적인 상호작용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의 기준에 의거한다면 결정들은 생명체들과 같은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모노는 생명체의 거시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내적인 힘이란 결정의 형태를 발생시키는 미시적 상호작용과 같은 본성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체의 지극히 복잡한 구조가 내적이고 자율적인 결정성déterminisme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건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필요로 합니다. 또한 생명체의 구조가 정보를 받아들여 표현하는 것이므로 정보를 보낸 발신자가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발신자는 항상 그 생명체와 동일한 또 다른 대상입니다. 생명체는 자기 자신의 구조를 발생시키는 정보를 불변적으로 복제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도로 복잡한 생명체의 구조를 발생시킬 정도의 엄청난 정보가 전혀 손상 없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보존됩니다. 이런 속성을 생물학에서는 ‘불변적인 복제reproduction invariante’ 혹은 간단히 ‘불변성invariance’이라고 부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생명체를 특징짓는 속성은 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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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올랭피아 Olympia>



1862년, 마네는 자신의 독특한 회화방법을 발견했으며, 그 한 해에만도 열서너 점의 크고 작은 대표작들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살롱에서 여러 점이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해 살롱에서 탈락한 작품의 수는 4천 점이 넘었으며 낙선한 예술가들 가운데는 폴 세잔, 제임스 애봇 맥닐 휘슬러, 카미유 피사로, 팡탱-라투르, 용킨트 등도 있었습니다.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혹은 misulmun49)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올랭피아 Olympia>, 1863, 유화, 130.5-190cm.

이 작품은 <풀밭에서의 오찬>보다 먼저 구상한 작품입니다. 별로 아름답지 못한 여인을 마네는 태연한 포즈의 누드로 묘사하면서 발아래에 검은 고양이를 두어 눈이 번쩍이게 했습니다. 누드의 여인은 매춘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만했습니다. 검은 고양이는 죄와 타락의 상징합니다. 흑인 여자가 배달한 꽃을 들고 와 함께 포즈를 취했습니다. 꽃다발은 숭배자를 상징합니다. 이 작품이 물의를 일으킨 건 인체를 평면적으로 처리하고 기교와 구성을 등한시 한 채 파리의 밤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검은 고양이는 한동안 파리 화단에 논란거리였습니다. 한때 마네를 옹호했던 테오필 고티에는 “침대 위에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고양이로 인해 그림이 추잡해졌다고 혹평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품 가격이 오른 마네 사후에도 1만 프랑(12,250유로)을 내고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 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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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1488-90년경-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The Venus of Urbino>, 1538년경, 유화, 119-165cm.

성시르네상스에 활약한 티치아노는 1533년에 로마 황제 카를 5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궁정 화가에 임명되었습니다. 1545년에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청을 받고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1576년 타계했을 때 그는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제작한 작품은 646점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색채주의입니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에 소장되어 있는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하얀 융단 위에 누드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있고 여인의 발끝에는 개가 웅크린 채 자고 있습니다. 두 명의 하녀가 화면 오른편에 있는데, 무릎을 꿇은 하녀는 옷장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누드 여인은 신화 속의 비너스가 아니라 베네치아의 귀족으로 몸치장을 하려고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당시 화가들이 신화의 여성을 그리기 보통이었는데 티치아노는 일반 여인에서 여성이 이상미를 찾았습니다. 이 작품은 우르비노의 구이도바르도 델라 로베레가 주문한 것이며, 그가 타계한 후 1631년 델라 로베레의 유산과 함께 피렌체의 메디치가에서 보관했다가 1736년부터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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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La Grande Odalisque>, 1814, 유화, 91-163cm.

앵그르는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한 화가입니다. 로마에서 회화를 공부하면서 한때 라파엘로에 심취했던 그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양식을 대표하는 낭만주의에 맞서 아카데미의 정통성을 옹호했습니다. 역사화에서 니콜라 푸생과 자크 루이 다비드의 양식을 따랐으나 말년에 그린 초상화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오달리스크는 터키 황제의 시중을 들던 여자노예를 말합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동방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앵그르 자신은 터키를 방문한 적이 없지만, 터키 문화를 테마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풀밭에서의 오찬>을 그린 지 몇 달 만에 마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대작이라고 할 만한 그림을 그렸는데 바로 <올랭피아 Olympia>입니다. 이 작품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이 1865년 살롱에 선보이자 사람들은 이 작품을 “고양이와 함께 한 비너스”라고 불렀습니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네는 1856년 이탈리아를 두 번째 여행했을 때 우피치 미술관에서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사했습니다. 그는 티치아노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여신을 상징하는 비너스 대신 벌거벗은 모델을 침대에 누이고 옆에 흑인 하녀를 세웠습니다. 모델은 그가 선호한 빅토린이었으며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 화류계에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풀밭에서의 오찬>보다 작지만 모델을 실물 크기로 그린 것입니다.


올랭피아란 이름의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올랭피아 말다치니 팜필리가 있는데 마네가 그림을 그릴 때 특별히 이 여인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교황 인노체시오 10세Pope Innocent X 동생의 미망인이었던 이 여인은 인노체시오 10세의 애인이 되어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바로크 회화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해 Rodriguez de Silava Velázquez(1599-1660)가 1650년 로마에 머물 때 인노체시오 10세의 요청으로 그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이 여인의 초상도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를 보면 인노체시오 10세는 눈매가 날카로우며 단호한 표정입니다. 마네는 그 초상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교황과 올랭피아의 관계는 오늘날보다 훨씬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올랭피아>에는 프라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Naked Maja>(1799-1800년경) 그리고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 Odalisque with Slave>(1842)의 요소도 혼용되어 있습니다. 에드가 드가가 말한 대로 마네는 다양한 데서 영감을 얻었고 그 요소들을 자신의 구성요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특기할 점은 마네의 필치가 전통주의 기법에 비해 훨씬 잔잔하면서도 대담하다는 것입니다. 모델에 대한 그의 의도적인 표현도 적중했으며, 평론가 귀스타브 제프루아Gustav Geffroy가 마네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간파했습니다.



"역마살이 낀 자유분방한 여인으로, 마네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술집의 바람기 있는 여인이다. … 여인의 눈빛은 신비롭고 얼굴은 매정한 어린이 같다."


마네는 빅토린의 발끝에 보일 듯 말 듯 검은 고양이를 묘사했는데 에로틱한 분위기가 고양이로 인해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의 잠든 개를 고양이로 대체시킨 것입니다. 고양이는 프랑스어로 여자의 음부를 뜻합니다. 어쩌면 보들레르의 “왕비의 발밑에서 발기하고 있는 고양이처럼”이란 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올랭피아>는 평론가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는데 테오필 고티에는 악평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해도 <올랭피아>는 침대 위에 누운 가냘픈 모델의 모습이 아니다. 색조가 더럽기 그지없다. … 반쯤 차지한 음영은 구두약을 칠한 것 같다. 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런저런 색의 조합으로 인해 매우 추하게 보인다. … 정말이지 그림 속에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든 주목을 받아보려고 애쓴 흔적밖에는.


1865년 이 그림에 대한 혹평이 극에 달했을 때 마네는 시인 보들레르의 위로를 받고 싶어 브뤼셀에 있는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보들레르 씨, 당신이 여기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를 향한 비난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 저는 제 작품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보들레르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다시 자네에게 말하지. 자네가 훌륭한 화가임을 내 입으로 선언하네. 자네에 대한 갖가지 추문은 모두 우스운 이야기들일세. 사람들이 자네를 조롱한다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군. 요컨대 사람들이 자네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지. 흔한 일일세. 자네가 명심해야 할 점은 이런 경우를 자네가 처음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일세. 자네가 자신을 샤토브리앙 혹은 바그너보다 더욱 위대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도 한때 자네처럼 조롱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라네. 그들이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지 못해 죽었나? 그렇지 않네. 자네가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할까봐 하는 말인데, 샤토브리앙과 바그너는 자네보다 위대했으며, 자기 분야에서 최고였고, 그들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나빴다네. 자네는 ‘낡은 시대의 최고’일 뿐이라네. 이렇게 허물없이 말하는 것을 용서하게. 내가 자네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줄 아네.


<올랭피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는데 왜 마네가 그것을 살롱에 출품했을까요? 그가 이 작품을 2년 동안 화실에 둔 것으로 미루어 살롱에 출품하는 데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마네의 장남 레옹은 보들레르가 출품을 권했다고 하고, 차남 자크 에밀 블랑슈는 수잔이 출품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습니다. 하지만 1865년 당시 블랑슈는 겨우 네 살이었으므로 그의 말을 믿기 힘든 데다 성격상 수잔은 마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므로 보들레르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마네는 <올랭피아>가 살롱에 받아들여졌다는 기쁜 소식을 보들레르에게 알렸습니다.


도덕주의자로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였던 에밀 졸라Emile-Edouard-Charles-Antoine Zola(1840-1902)가 마네의 솔직함을 높이 평가한 이후 <올랭피아>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시작했다. 졸라는 1867년 『새로운 회화의 기법』에서 마네가 “파리 시민을 그들 시대의 한 여인에게 소개했다”면서 적었습니다.


마네는 1865년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는 예수 Jesus Mocked by the Soldiers>와 걸작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다. 나는 감히 <올랭피아>를 걸작이라 말하며 이 말에 책임을 질 것이다. <올랭피아>는 화가 자신의 피와 살이다. 다시는 이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 그의 모든 천품을 쏟아 넣었으니까. …

파리한 빛으로 묘사된 몸뚱어리는 소녀처럼 매력적이다. 마네는 열여섯 살짜리 모델의 몸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외쳤다. 저 음흉한 몸뚱어리를 보면 화가는 한물간 여인네를 그림 속에 구겨 넣은 것이 틀림없다고. 단순히 거기 살이 그려져 있으므로. 아, 그럼 이제는 15세기 화가들이 그린 그 힘차고 감동적인 여인들의 육체는 없는가.



그리고 싶으면 벗은 여인을 그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올랭피아>가 되어도 상관없다. 밝고 빛나는 부분의 필치, 화환과 어두운 부분의 흑인 여인과 검은 고양이, 이것들이 모두 무엇을 의미하느냐? 화가인 당신조차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내가 확실히 아는 한 당신은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생생하게 이 세상을 풀어냈으며, 빛과 어둠의 진실, 사물과 인간의 실재를 고유한 문법으로 표현해냈다.


평론가 케네스 클락Kenneth Clarke은 “얼마만큼 추상화했는가와 상관없이 누드가 관람자에게 약간이라도 성적 호기심을 유발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나쁜 예술이며 또한 잘못된 도덕이라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올랭피아>에도 해당됩니다. 마네는 자신이 본 것을 그리겠다고 했으며 <올랭피아>에서 이런 의도가 충분히 표현되었습니다. 그는 빅토린을 아름답게 묘사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본 그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는데 <풀밭에서의 오찬>에서나 옷을 입은 그녀를 모델로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네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옹호했습니다.


난 본 대로 대상을 증명했을 뿐이다. <올랭피아>보다 더 자연스러운 장면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 그림을 투박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투박하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다시금 말하지만 난 본 대로 그린다.


078-3

폴 세잔의 <현대판 올랭피아 Une Moderne Olympia>, 1869-70, 유화, 57-55cm.

세잔 특유의 환상의 세계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폴 세잔은 마네에 대한 경쟁심이 대단했는데 마네의 <올랭피아>를 주제로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세잔은 1873-74년에 다시 <현대판 올랭피아 Une Moderne Olympia>를 그린 것으로 봐서 마네의 작품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잔이 마네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인지 아니면 그에게 경의를 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마네를 알고 있었고 존경했습니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습니다.


자네는 이런 시간에 나더러 <현대판 올랭피아>에 관해 말하라는 건가? 쪼그리고 누운 추악한 여자의 몸에서 흑인 하녀가 베일을 걷어내는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는 저 한심한 친구! 혹시 자네는 마네의 <올랭피아>를 기억하는가? 그 작품은 세잔이란 자의 작품에 비하면 데생, 정확도, 마무리 등이 탁월한 걸작이지.”(187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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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일까?


(지난 번에 언급한 대로 생명체에 관한 레오킴의 생각과 『우연과 필연 Le hasard et la nécessité』의 저자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1910-76)의 생각, 생명체를 특징짓는 속성: 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에 관한 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레오킴의 생각을 다음엔 자크 모노의 생각을 올리려고 합니다. 생명공학자와 생물학자의 생각을 모두 알고 우리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갖는 건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일까?

화학물질 주머니, 즉 박테리아 생식세포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생명을 밝힐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죽음과 내세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죽을 때 사라지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일까?

과학전문가들은 생명과 생명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할까?

노벨상 수상자이며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공동 발견하고 196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1916-2004)은 생명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1. 자기명령과 자기복제에 필요한 모든 장치를 복제하는 능력

2. 비교적 실수 없는 유전 정보 복제

3. 유전자와 유전자의 단백질 생산의 밀접한 근접

4. 에너지 공급


그러므로 생명이란 자기복제를 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생명은 중요한 화학반응을 촉진시킬 수 있는 단백질이나 다른 화학물질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은 또한 어떤 형태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촉매catalysis는 자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화학반응을 가속시키는 물질을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반응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입니다. 생명에 필요한 많은 화학반응들에 촉매가 필요한 까닭은 생명체 속에 있는 물질들이 안정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촉매가 없으면 살아 있는 생물을 지탱하는 많은 화학반응들은 매우 뜨거운 열과 상당한 압력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생명체에 촉매 역할을 하는 물질이 있으면 이런 화학반응은 실내온도[섭씨 20도 정도]나 그보다 좀 낮은 온도, 그리고 정상적인 대기 조건에서 발생합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이해를 돕기 위해 수소와 산소로 채워진 기구氣球를 상상해 보라고 말합니다. 이 폭발성 혼합물은 하루 정도에 걸쳐 서서히 누출될 것이라면서 만약 풍선 속에 백금platinum 같은 촉매가 있다면 그것들이 결합하여 물을 생산하므로 그 혼합물은 즉시 폭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의 촉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독특한 단백질이지만, 최초의 생명에는 단백질이 아닌 촉매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랜시스 크릭에 의하면 생명의 필요 요소는 생명에 필요한 특정 분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생명에는 어떤 복합분자가 필수적일까? 이는 간단한 질문 같아 보이며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생각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생물의 기능과 복제에 필요한 필수 분자들을 잘 알고 있지만, 초기 지구에는 산소가 없었으며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환경이 매우 열악했으므로 최초 생명의 형태를 우리가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화학물질들이 이용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레오킴은 이 사실이 자신을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과학의 선구적 분야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최초의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최초의 생명이 과연 어떤 화학성분들로부터 유래되었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유력한 과학 가설들은 모두 지구에서 발견된 화학물질, 우주에서 온 화학물질 그리고 우주에서 생성된 생물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레오킴은 한 묶음의 화학물질들을 모은 세포주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때 크릭의 말대로 단백질, RNA 혹은 DNA 같은 화학적 지시가 필요하며, 지시를 복제하거나 모사하고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젊은 행성에는 수많은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에너지 산출을 위해 반응할 수 있었던 다양한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햇빛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의 원천을 결정하고, 어떤 촉매가 지시를 복사할 수 있으며 에너지 생산반응을 일으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임의의 단백질 화학합성에서 최초의 생명이 나올 수 있었을까? 단백질에는 단백질의 기초 성분을 만드는 스무 가지의 아미노산이 있으므로 RNA나 DNA보다 더 복잡합니다. 거의 무한한 결합이 가능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 아주 작은 수만이 살아 있는 유기체에게 유용합니다.

단백질의 기초 성분인 아미노산을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운석과 혜성에서도 발견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생명에 필수적인 단백질로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프레드 호일 경이 말했듯이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한 번의 기회가 발생하더라도 단 하나의 단백질이 될 뿐입니다. 생명에는 수백, 수천 개의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건 행성의 형성 이후 비교적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기원에서 단백질이 주된 요인이 아니었다면 다른 가능성이란 무엇이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생명을 유발시키는 초기의 보다 단순한 형태의 RNA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 앤드루 H. 놀Andrew H. Knoll(1951-)은 하나의 단순한 RNA 분자는 아미노산과 단순화된 핵산에서 만들어지지 않았겠느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화된 RNA가 초기 지구의 상태에서 쉽사리 생성될 수 있었는지 하는 점과, 그런 분자들이 스스로 복제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최근 RNA의 보다 단순한 형태 가운데 하나가 보다 기다란 분자로 스스로 조립되는 사례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RNA 정보 원천이 되기에는 매우 미미합니다. 그러나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가 RNA 같은 화합물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생명의 기초가 될 수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미국의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의 과학자 레슬리 오겔Leslie Orgel(1927-2007)은 “화학자와 분자생물학자들이 합동 연구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그 간격이 좁아질 것”이라며 낙관적 입장입니다. 운석과 혜성을 포함해 우주에서 온 물체에 대한 연구에서도 생명의 시작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에 필요한 화학물질들이 지구상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물질들은 화학물질이 최초의 생명 주머니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했을까?

지구 초기에 운석과 혜성들이 지구 표면에 충돌함으로써 바다가 생겼고, 따라서 상당한 복합유기화합물들을 제공했습니다. 아미노산을 포함해 복합유기화합물은 두 가지 형태 중 하나입니다. 운석에서 발견된 L타입은 생명체계에서 발견되는 형태입니다. 1969년 서부 오스트레일리아를 강타한 머치슨Murchison 운석에서는 수많은 복합유기화합물은 물론 70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발견되었습니다. 몇몇 아미노산들은 출중한 L타입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구상의 생명에서는 보통 발견되지 않는 수많은 다른 아미노산들도 이 운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970년에 시작되어 20년 이상 지속된 이 연구를 통해 분자의 근원이 지구 대기권 밖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의 증거로 입증되었습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생화학자 존 크로닌John Cronin은 머치슨 운석은 결정적인 분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연구하는 데 새로운 차원을 보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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