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노의 인문주의



당시 미술품 수집가로 변신한 코시모 데 메디치가 경제와 정치 외에도 문학, 학문, 철학, 예술에 관심을 기울인 건 이탈리아에 행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코시모는 지성인이었고 예술에 대한 훌륭한 취향이 있었으며 라틴어에 능통했고 수박 겉핥기였지만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라비아어를 익혔습니다. 그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1387-1455)의 신실한 신앙을 표현한 그림, 기베르티의 고전양식의 부조, 도나텔로의 조각, 근대 건축 양식의 선구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 on Battista Alberti(1404-72)의 고상함, 브루넬레스키의 장려한 성당,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1463-94)와 이탈리아의 지도적 플라톤주의 철학자 피치노Marsilio Ficino(1433-99)의 신비적 플라토니즘 등을 좋아했으며 그들 모두를 후원했습니다.


법학과 철학을 수업하고 신비철학적 설교로 그리스도교 신학을 보강한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1486년에 『인간의 존엄에 관하여 De hominis dignitate oratio』를 발표한 뒤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자로 몰려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플라톤과 그의 후계자들의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 주해하는 데 노력한 피치노는 이 사업을 위해 메디치 가의 경제적 후원을 받았으며, 1462년 이후 그의 칼리지는 ‘피렌체 아카데미’라 호칭되었으며, 그는 그곳에서 연구, 강의했습니다. 그는 플라톤철학과 신플라톤적 사상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강하는 데 불가결하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종교도 신에 접근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논했습니다.


코시모는 자녀들에게 고대 그리스 문학과 언어를 배우게 하고 자신은 피치노로부터 12년 동안 그리스어와 로마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고전문헌을 수집했으며, 인문주의자 니콜로 데 니콜리Niccolo de Niccoli(1364-1437)가 고대 사본 구입에 정열을 모두 쏟을 때 코시모는 그에게 메디치 은행으로부터 무제한으로 돈을 가져다 구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1437년 니콜리가 사망했을 때 그가 사본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6천 플로린(약 150,000달러)에 달했으며 갚지 못한 돈도 어느 정도 되었습니다. 코시모는 마흔다섯 명의 필사자들을 고용해 자신이 살 수 없는 사본들에 대해서는 필사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것들을 산 마르코 수도원과 피솔레 수도원에 보관하거나 자신의 도서관에 소장하고 자신이 수집한 사본들을 교사나 학생들에게 무료 열람하게 해주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에 의해서 이 시기 인문주의자들의 관심은 종교에서 철학으로, 천상에서 지상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지고 예술에 관한 이교도의 풍부한 사고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을 통해서 인체의 아름다움, 인간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 유혹에 약한 이성의 권위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주의입니다. 1445년 코시모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플라톤을 연구하게 했으며 피치노로 하여금 플라톤의 저작을 번역하게 했습니다.


피렌체에서 의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곳과 피사에서 의학, 철학을 수학한 피치노는 플라톤 아카데미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이 아카데미는 플라톤에게 바쳐진 학문의 전당으로 고대 플라톤주의와 중세 가톨릭 신앙을 철학의 범주에서 새롭게 종합하여 당대의 철학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플라톤과 플로티누스의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한 피치노는 플라톤의 학설과 가톨릭의 신학이 일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읽는 가운데 플라톤의 철학에 매료된 것 같았습니다.


르네상스에 와서 예술에 대한 인식이 한층 고양된 것은 플라톤과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피치노 때문입니다. 그가 쓴 플라톤의 저작에 대한 주석과 플로티누스의 번역으로 인해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의 연관이 회복되었으며, 이는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성과 있는 일이었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그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의 저작 번역을 마친 후 플로티누스의 『에네아데스 Enneades』를 번역했습니다.


피치노는 상상력을 감각에 의한 표현을 조화시키는 능력으로 보고 환상을 미적 지각의 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으로 간주했습니다. 사람이 묵상하는 가운데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플라톤이 말하는 형상들에 대한 순수한 이성적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이때 영혼이 미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미가 낮은 수준의 감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적 능력에 의해 포착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피치노에 의해서 미술이 매우 고상한 예술로 격상된 사실은 특기할 만합니다.


피치노는 1469년 플라톤의 『향연 Symposion』에 대한 주석을 썼으며, 『영혼 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신학 Theologia Platonica de Immortalitate Animarum』을 1484년에 출간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과 피타고라스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영혼불멸설이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그 책은 플라톤 철학과 가톨릭 신학의 일치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영혼불멸에 대한 그의 논증은 플라톤과 플로티누스 및 그 외의 신플라톤주의자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한데 섞인 것입니다. 그는 1484년부터 플로티누스에 관한 번역과 주석을 쓰기 시작하여 1492년에 발간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뿐 아니라 중세의 신비사상과도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사유를 통해 영혼이 더욱 심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사유의 삶이 영혼으로 하여금 항상 더 고상한 수준의 진리와 존재로 상승하게 하며, 종국에는 일시적으로 신의 비전과 지식 안에서 절정에 달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식의 상승이란 신비주의에서 절대존재와 일체를 이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을 향한 영혼의 상승은 지성과 의지라는 두 가지의 도움으로 달성됩니다. 신에 대한 지식은 신에 대한 에로스를 수반하며 궁극적인 비전은 즐거움의 행위를 수반합니다. 피치노는 『영혼 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신학』에서 대부분 영혼의 불멸에 관해 논했으며 영혼불멸설에 대한 옹호의 논증을 플라톤, 플로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의 사상에서 빌려왔습니다. 그의 논증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한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영혼불멸사상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쳐 육체의 아름다운 표현을 통해 불멸하는 신의 광휘를 갈구하게 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전성기의 미켈란젤로에게 이것이 예술적 신념이 되어 이같은 정신을 작품에 구현하게 했습니다.


피치노는 자연을 미 혹은 선의 작품으로 보고 선과 자연이 일치하는 데 사람의 영혼이 매개적 존재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는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표명이기도 합니다. 영혼이 매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육체는 땅에서 왔지만 영혼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신성을 지녔으므로 마땅히 불멸성을 지니며 인간의 존엄성 또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피치노는 영혼의 불멸을 인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로 보고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을 가톨릭의 자비나 사랑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하여 심리적 요소와 신학적 요소가 융합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적 사랑 amor Platonicus’이란 말을 만들어 플라톤이 묘사한 정신적인 사랑, 혹은 그 자신이 말한 신적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플라토닉 러브’란 말을 피치노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정신에는 이데아가 있고, 영혼에는 이성이 있으며, 자연에는 영혼이 생성될 수 있는 씨앗Semina이 있고, 질료에는 형상이 있으며, 미의 원리가 되는 선은 모든 미적 사물들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은 자연에서 선의 특색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게 되고 자연의 힘, 즉 자연에 내재한 미에서 선의 위력을 어림할 수 있으며, 이런 자연의 유용성에서 선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미는 선의 광휘로서 변화의 현상을 나타내지만 그 자체는 불변합니다. 자연미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미가 지닌 형상의 반영으로 완전한 미는 아닙니다. 이와 같은 피치노의 사랑과 미에 대한 사고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정신에 내재한 추상적 형상을 질료로 구현하게 했으며, 그들은 그렇게 하는 데서 형상의 구체성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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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야기: WMAP 위성


우주론의 창시자 데이비드 윌킨스David Wilkinson(1959~)의 이름을 딴 정밀한 계측기를 탑재한 WMAP 위성이 2001년에 발사되었습니다.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 관측을 위해 발사된 이 위성이 2003년 2월 빅뱅 후 38만 년이 지난 초기우주에 관한 데이터를 전송했습니다. 별과 은하를 생성시키고 남은 원시우주의 에너지가 그 후 지금까지 수십억 년 동안 우주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WMAP 위성이 전송한 에너지 분포 데이터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자료로부터 재현된 빅뱅의 잔해로 전 우주공간에 퍼져있는 복사에너지인 우주배경복사의 지도가 학자들의 넋을 빼앗아갔습니다. 미국 뉴저지주에 프린스턴에 소재하는 1930년에 설립된 프린스턴 고등과학원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존 노리스 바콜John Norris Bahcall(1934~2005)은 WMAP 위성의 관측결과를 “우주론을 사색이론에서 정밀한 과학의 장으로 끌어올린 쾌거”로 평가했습니다. WMAP 위성의 자료가 정확했던 이유는 거기에 탑재된 망원경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를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주공간은 일종의 타임머신time machine입니다. 달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2초가 걸리므로 우리는 항상 달의 2초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8분 20초가 걸립니다. 이와 같이 밤하늘에 빛나는 모든 별은 각기 다른 시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망원경이 지구로부터 100광년 떨어진 별을 포착했다면 관측자는 100년 전의 별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1광년light year은 약 9조5천억km입니다. 멀리 있는 은하로부터 방출된 빛은 수억 년 내지 수십억 년 동안 우주공간을 달려와야 지구의 망원경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빛들은 은하에서 생성된 ‘빛의 화석’인 셈입니다.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천제들 중 가장 멀리 있는 것은 강력한 전파원電波源이며, 항성상恒星狀 천체 혹은 항성상 전파원라고 하는 퀘이사quasar로 지구로부터 120억 내지 130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변방에서 현재도 외롭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WMAP 위성이 복사를 관측하는 데 성공한 것은 그보다 먼 곳에서 날아온 빛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약 137억 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7억 년이란 값에 대한 오차는 1%라서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프로젝트는 199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The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에서 처음 제안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 정식 승인되었습니다. WMAP 위성은 델타 II호 로켓에 실려 2001년 6월 30일에 태양과 지구 사이의 궤도를 향해 발사되었으며, 목적지는 라그랑주Lagrange 제2지점(지구 근처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점으로 흔히 L2라고 한다)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WMAP 위성은 태양・지구・달의 반대편을 향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광활한 우주공간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위성의 본체는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고 가로 3.8m, 세로 5m의 크기에 무게는 840kg에 불과합니다. 보통 크기의 전구 5개에 불과한 419와트의 전력으로 작동되는 천체망원경은 마이크로복사파의 관측데이터를 지구로 꾸준히 전송합니다. WMAP 위성의 임무는 6개월을 주기로 우주배경복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지구로부터 약 160만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지표에 붙어있는 천체망원경과는 달리 대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위성입니다. 우주 저편에서 날아오는 희미한 신호도 감지할 수 있는 WMAP 위성이 보내온 배경복사에 의하면 그것의 절대온도absolute temperature는 2.7249K~2.7251K(섭씨 영하 270도) 정도입니다. 물질을 이루는 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저온도인 절대온도를 기준점(영도)으로 합니다. 눈금간격을 섭씨온도와 같게 한 눈금단위를 켈빈이라 하며 K(Kelvin)로 표기합니다. 켈빈 온도는 모든 과학적 온도 측정의 기본단위로 쓰이며 섭씨온도에 273.16을 더한 값을 갖습니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우주의 구성성분을 수소로부터 시작해 약 100종의 원소가 등장하는 주기율표periodic table of the elements로 요약했습니다. 주기율표는 현대 화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WMAP 위성이 이 확고한 믿음을 일순간에 날려버렸습니다. WMAP 위성이 관측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은 우주의 총 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합니다. 이 4% 중 대부분이 수소hydrogen(우주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질량의 약 75%를 차지함)와 수소 다음으로 가벼운 헬륨helium(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풍부하며 별에 집중되어 있는데 핵융합에 의해 수소로부터 합성됨)으로 되어 있으며 무거운 원소는 0.03%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우주 대부분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물질로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관측 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23%는 암흑물질dark matter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은하의 주변을 에워싼 것으로 추정되지만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관측 자료는 없습니다. 우리의 태양계에 속하는 은하수Milky Way galaxy의 도처에 골고루 퍼져있는 암흑물질은 은하수 안에 있는 모든 별들의 질량을 합한 것보다 10배나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암흑물질은 빛의 궤적locus에 변형을 일으키므로 광학적 방법을 이용해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WMAP 위성이 전송한 관측자료 중 놀라운 것은 우주의 73%가 미지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암흑에너지의 개념은 1917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가 곧 폐기처분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일을 가리켜 자신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최근 들어 암흑에너지가 천문학계에 다시 등장하면서 우주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를 은하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반중력antigravity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중력에 반대되는 물질로 모든 것을 밀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이 암흑에너지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진공 속에 숨어있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의 입자이론을 근거로 암흑에너지를 계산하면 10120(1 다음에 0이 120개 붙는다)의 큰 값이 얻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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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진화란 막무가내로 생겨난 일이다


복제 과정은 완전하지 않아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엉뚱한 복제가 진정한 의미의 개량을 불러일으키고, 오류가 생기는 건 생명 진화의 진행을 위해 필수적이었습니다. 최초의 자기복제자가 어떻게 자기의 사본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들의 자손인 현재의 DNA 분자는 인간의 가장 정확한 복사 기술에 비해 놀랄 정도로 정확하기는 하지만, 그 DNA 분자까지도 때로는 오류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이런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진화는 오류가 누적된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처럼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고 그것이 확대되면서 원시 수프는 모두가 똑같은 복제자의 개체군이 아닌, 선조는 같으나 형태를 달리한 몇 개의 ‘변종 자기복제자’의 개체군으로 채워졌다고 말합니다. X형 분자와 Y형 분자가 같은 시간에 존속하여 같은 속도로 사본을 만들 때 X형 분자가 평균 10회에 1회 정도 틀린 사본을 만드는 데 비해 Y형 분자가 100회에 1회밖에 틀리지 않는다면, Y형 분자 쪽이 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개체군 내의 X형 분자단은 빗나간 자식 그 자체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손 혹은 가능성이 있는 자손을 모두 잃게 됩니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진화를 막연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진화하고 싶다고 바라는 건 없습니다. 도킨스는 진화란 자기복제자(유전자)가 오류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생겨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원시 수프는 여러 가지의 안정된 분자, 즉 개체의 분자가 오랜 시간 존속하거나 복제 속도가 빠르거나 또는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안정된 분자에 의해 점유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안정성이 진화적 경향으로 향합니다. 일정한 시기를 두고 원시 수프에서 샘플을 취할 경우 두 번째 샘플에서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성 등 세 가지 점에서 우수한 분자의 함유율이 더욱 높아졌을 것입니다. 이는 진화를 의미하며, 즉 자연선택인 것입니다.

자기복제자의 변종 간에도 생존경쟁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복사나 경쟁 상대의 안정성을 감소시키거나 새롭고 더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갖게 하는 복제 오류는 모두 자동적으로 보존되고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증가시켜 경쟁 상대의 안정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효과적으로 되어 가고, 그중에는 상대 변종의 분자를 화학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방출된 구성요소를 자기복사 제조에 이용하는 재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원시 육식자는 먹이를 얻음과 동시에 경쟁 상대를 배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도킨스는 자기복제자가 화학적 수단을 강구하든 그들 자신의 둘레에 단백질로 물리적 벽을 만들거나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탄생한 것입니다. 도킨스에 의하면 살아남은 자기복제자는 자기가 사는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를 스스로 축조한 것들입니다. 생존기계는 더욱 커지고 더욱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되고 전진적이었습니다. 개량을 위한 시간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오늘 날 자기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때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해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것들의 유지가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인 것입니다. 자기복제자는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기계인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까지도 생존기계입니다.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종류의 분자이고,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복제자, 즉 DNA로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기계입니다. DNA(deoxyribonucleic acid, 자연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핵산 중에서 디옥시리보오스를 가지고 있는 핵산으로 유전자의 본체를 이루며 디옥시리보핵산이라고도 함) 분자는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당, 인산, 염기가 1:1:1로 결합되어 있는 화합물로 핵산의 기본 단위)로 불리는 소형 분자를 구성단위로 하는 긴 사슬입니다. 단백질 분자가 아미노산의 사슬인 것과 같이 DNA 분자도 뉴클레오티드의 사슬입니다. DNA 분자는 ‘이중 나선’으로 ‘불멸의 코일’로 불립니다. DNA는 세포 속에 분포해 있고, 우리 몸의 세포의 수는 평균 1015입니다. 인간의 설계도는 46권(46개의 염색체)이며, 각 권을 염색체chromosome라고 합니다. 유전자는 기다란 실 모양의 염색체에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습니다. DNA의 지령은 자연선택에 의해 조립되어 온 것으로 물론 ‘건축가’ 혹은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DNA 분자는 스스로 사본을 만들며, 복제는 우수합니다. 인간은 1015의 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처음 수정되었을 때는 설계도의 원본 하나가 들어 있는 1개의 세포였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이 세포가 사본으로 2개의 세포가 되고 다시 분열하여 4, 8, 16, 32, 64 ... 등으로 증가해 몇 조가 되었습니다. 분열할 때마다 DNA의 설계도는 착오 없이 복제되어 왔습니다. DNA 분자의 두 번째 역할은 다른 종류의 분자인 단백질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헤모글로빈은 많은 종류의 단백질 분자의 일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백질은 몸의 물리적 구조를 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포 내의 화학적 과정 전반에 예민한 제어 기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화학적 과정의 스위치를 선택적으로 켰다 껐다 합니다.

유전자는 인체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영향은 엄격하게 일반통행입니다. 이는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생애에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더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중 단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몸은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도킨스에 의하면 유전자가 배embryo(다세포생물의 발생 과정에서 초반에 해당하는 단계) 발생을 제어하는 사실이 진화상에서 갖는 중요성은 유전자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장래의 자기 생존에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배 발생의 제어 기술이 뛰어난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유전자에는 선견지명이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란 걸 명심해야 합니다. 최근 6억 년 동안 자기복제자는 근육, 심장, 눈 등과 같은 생존기계 기술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우리의 몸은 수십만이나 되는 유전자를 가진 하나의 운반자입니다. 유전자들 가운데는 다른 유전자군의 작용을 제어하는 지배 유전자master gene의 작용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유전자란, 설계도의 각 페이지에 건물의 각 부분에 관한 지시가 쓰여 있고, 각 페이지는 수많은 다른 페이지의 앞뒤를 참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유전자에는 어느 정도 상호 의존성이 있습니다.

한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개체의 몸을 통해 살아가는 단위입니다. 46개의 염색체는 23쌍의 염색체로 이뤄졌습니다. 각각의 염색체는 부모의 정소 혹은 난소 안에서 조립됩니다. 아버지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23개이고 어머니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23개입니다. 한 쌍의 염색체가 짝을 이루는 건 아버지 기원의 각 권의 페이지가 어머니 기원의 특정한 권의 페이지와 대응하는 의미에서 직접적 대립물입니다. 두 페이지에 같은 것이 쓰인 있는 경우도 있으나 눈동자 색깔을 예로 들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갈색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푸른 눈을 만들기 위한 지령이 무시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푸른 눈을 만드는 지령이 자손에게 전해지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이처럼 무시되는 유전자를 ‘열성 유전자’라고 합니다. 열성 유전자의 반대되는 것이 ‘우성 유전자’입니다. 갈색 눈을 만드는 유전자는 푸른 눈을 만드는 유전자에 대해 우성입니다. 갈색 눈의 유전자와 푸른 눈의 유전자와 같이 2개의 유전자가 염색체상의 동일 위치에서 경쟁자일 경우 ‘대립 유전자’라고 합니다. 대응하는 2개의 사본이 모두 푸른 눈을 추천할 경우에만 푸른 눈이 되는 것입니다. 더 일반적인 경우는 대립하는 유전자가 동일하지 않을 때 타협의 결과를 이끌어내는데, 몸을 중간 형태의 설계도에 따라 짓거나 또는 양쪽과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유전자가 개개의 생존기계 속에 구속되어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킨스는 단일 유전자를, 시작과 종결의 상징 사이에 1개의 단백질 사슬을 암호로 나타내고 있는 일련의 뉴클레오티드 문자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전자의 기능 단위를 시스트론cistron(폴리펩티드의 아미노산 배열을 결정함에 있어 유전정보의 전달체로서 완전하게 작용해야만 하는 유전 물질의 최소 단위)이라고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유전자와 시스트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도킨스는 염색체의 조각을 교환하는 과정인 ‘교차 crossing over’는 시스트론 간의 경계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시스트론 내에서도 쪼개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시스트론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유전자는 염색체의 일부입니다. 하나의 염색체 전체를 유전 단위로 가정하면, 그 생활사는 한 세대밖에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의 염색체는 감수분열과 혼합과정으로 생겨난 것으로 조부로부터 온 염색체 일부가 함께 이뤄진 것입니다. 그 염색체는 1개의 정자 내에 배치된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 정자는 수백만의 거대한 함대를 이룬 작은 배들 가운데 한 척으로 배들은 일제히 어머니 쪽으로 노를 저어 들어갑니다. 그 정자는 어머니의 난자 중 하나에 도달하여 우리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의 염색체는 우리의 나머지 모든 유전 물질과 함께 스스로 복제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복제된 형태로 우리 몸 곳곳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식을 만드는 차례가 되면 이 염색체는 우리의 난자 혹은 정자를 만들 때 파괴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염색체는 예전의 염색체보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매우 다르고 매우 유일한 것입니다. 1개의 염색체 수명은 한 세대입니다.

더욱 작은 유전 단위의 수명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부모의 한 사람으로부터 유전 단위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럴 확률은 99%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은 유전 단위의 선조를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최초의 창조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단계에서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의 정소 혹은 난소 내에서 창조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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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제일가는 자랑거리는 도서관과 그 부속 박물관들



코스모스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카오스Chaos에 대응되는 개념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의 제일가는 자랑거리는 도서관과 그 부속 박물관들이었습니다. 박물관museum이란 명칭 그대로를 옮기면 뮤즈muse라고 불리던 아홉 여신의 전공 분야에 각각 바쳐진 연구소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연구 현장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모여 물리학, 문학, 약학, 천문학, 지리학, 수학, 철학, 생물학, 공학 등을 두로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과 학문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전 세계의 천재들이 몰려와서 함께 용약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모든 지식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집대성하려던 곳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활동한 학자들 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외에도 별자리의 지도를 작성하고 별의 밝기를 추정한 히파르코스Hipparchos(BC 146?-127)가 있었으며, 기하학을 명쾌하게 체계화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로 끙끙거리던 왕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건넨 유명한 유클리드Euclid(BC 330?-275?)가 있었습니다. 기하학에 유클리드가 있었다면, 언어학에는 트라키아Thracia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가 있어 말의 품사를 정의하고 언어학의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생리학자였던 헤로필로스Herophilos는 지능이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은 톱니바퀴 열차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 Automata』를 저술했습니다. 페르가Perga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원추곡선임을 밝힌 수학자였습니다. 아폴로니우스가 원추곡선에 관한 저작물을 남긴 지 18세기가 지난 후에 케플러가 이 이론을 행성의 운동을 기술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행성, 혜성, 별들의 귀도는 원추곡선으로 기술됩니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BC 287?-212)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출현하기 전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천재적인 공학자였습니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AD 85?-165?)는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이라 할 점성술을 수집하여 정리했습니다. 그가 주창한 지구 중심 우주관인 천동설이 1,500년 동안 맹위를 떨쳤습니다. 지성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형편없이 틀릴 수가 있음을 상기하게 하는 인류사의 좋은 예입니다. 이러한 위인들 중에 위대한 여인도 있었습니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히파티아Hyoatia는 도서관의 마지막 등불을 지킨 여인으로서, 초석을 쌓은 지 700년이 된 이 도서관이 파괴되고 약탈당할 때 그곳에서 함께 순사殉死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곳곳에 분수대가 있었으며 멋지게 늘어선 원기둥들, 식물원, 동물원, 해부실, 천문관측대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식당에서 학자들이 여유롭게 토론하며 중요한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책임자는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 책을 사들였고 장서를 확충해나갔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상선을 관리의 검문을 받았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찾기에 있었습니다.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즉시 빌려다가 베낀 뒤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정확한 수치를 어림하긴 어렵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일일이 손으로 쓴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이 50만여 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고전 문명이 붕괴되면서 도서관도 서서히 파괴되어 장서의 극히 일부만이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그나마 남은 것도 사방으로 흩어져서, 고작 글 몇 줄, 종이 몇 조각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Samos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BC 310?-230?)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전 문명이 이룩한 업적의 숭고함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바빌론의 사제인 베로소스Berosos가 쓴 3권짜리 세계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작품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천지 창조부터 대홍수까지를 다룬 제1권에서 베로소스는 그 기간을 43만2천 년으로 잡았습니다. 이는 구약성서의 연대기보다 100여 배나 긴 기간입니다.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약 150억-200억 년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폭발 혹은 빅뱅이라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입니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없었습니다. 그저 휘황한 불덩이가 우주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입니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입니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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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토스테네스와 콜럼버스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 번 큰 규모의 항해를 시도했지만,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1480-1521)이 출현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일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 시대에 만들어진 지구의地球儀는 지구를 우주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지구의에서 탐험이 잘 된 지중해 지역은 기본적으로 정확하지만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부정확합니다.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n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지구를 일주하고자 나섰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대륙이 앞을 막아 회항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닷길은 항상 거침없이 열려 있었건만, 더 못 가고 돌아온 까닭은 오로지 자신의 의욕 상실과 식량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대서양의 넓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기 적합한 땅이 온대 지방에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누군가가 (세상 저편에) 산다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그곳을 또 다른 세계로 보아야 마땅하다.”

인류 탐험사의 절정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시작으로, 그 후 몇 백 년 동안 이루어진 항해들입니다. 이로써 지구의 지리적 탐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첫 항해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람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의 계산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인도의 제국들로 가는 사업”이라 칭한 사업계획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과 중국, 인도를 목표로 항해할 때 동쪽으로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따라 배를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뱃머리를 돌려 미지의 서쪽 바다로 담대하게 뛰어드는 것입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족집게 같은 예견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고지도를 파는 떠돌이 도붓장수였습니다. 그는 옛 지리학자들에 관한 서적과 또 그들이 쓴 책들을 열성적으로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스트라본,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로 가는 사업이 성공하려면 그 긴긴 여정에서 배와 사람이 견뎌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측한 지구의 크기, 즉 4만km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잔꾀를 부려 자기의 계산을 조작했습니다. 그의 계획을 검토했던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의 교수들도 콜럼버스의 계산이 거짓이란 점을 제대로 지적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구할 수 있는 책을 다 뒤져서, 지구의 둘레로서 그중에서 가장 짧은 것을 택했으며, 아시아 대륙은 동쪽으로 가장 긴 것을 찾아낸 뒤 그 수치마저 늘렸던 것입니다. 가는 도중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콜럼버스는 쫄딱 망했을 것입니다.

지구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측한 규모와 모양 바로 그대로였으며, 대륙들의 윤곽선은 옛 지도 제작자들의 능력과 솜씨를 새삼스럽게 확인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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