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토스테네스와 콜럼버스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 번 큰 규모의 항해를 시도했지만,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1480-1521)이 출현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일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 시대에 만들어진 지구의地球儀는 지구를 우주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지구의에서 탐험이 잘 된 지중해 지역은 기본적으로 정확하지만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부정확합니다.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n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지구를 일주하고자 나섰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대륙이 앞을 막아 회항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닷길은 항상 거침없이 열려 있었건만, 더 못 가고 돌아온 까닭은 오로지 자신의 의욕 상실과 식량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대서양의 넓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기 적합한 땅이 온대 지방에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누군가가 (세상 저편에) 산다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그곳을 또 다른 세계로 보아야 마땅하다.”

인류 탐험사의 절정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시작으로, 그 후 몇 백 년 동안 이루어진 항해들입니다. 이로써 지구의 지리적 탐사가 완성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첫 항해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람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의 계산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인도의 제국들로 가는 사업”이라 칭한 사업계획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과 중국, 인도를 목표로 항해할 때 동쪽으로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따라 배를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뱃머리를 돌려 미지의 서쪽 바다로 담대하게 뛰어드는 것입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족집게 같은 예견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고지도를 파는 떠돌이 도붓장수였습니다. 그는 옛 지리학자들에 관한 서적과 또 그들이 쓴 책들을 열성적으로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스트라본,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로 가는 사업이 성공하려면 그 긴긴 여정에서 배와 사람이 견뎌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측한 지구의 크기, 즉 4만km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잔꾀를 부려 자기의 계산을 조작했습니다. 그의 계획을 검토했던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의 교수들도 콜럼버스의 계산이 거짓이란 점을 제대로 지적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구할 수 있는 책을 다 뒤져서, 지구의 둘레로서 그중에서 가장 짧은 것을 택했으며, 아시아 대륙은 동쪽으로 가장 긴 것을 찾아낸 뒤 그 수치마저 늘렸던 것입니다. 가는 도중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콜럼버스는 쫄딱 망했을 것입니다.

지구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측한 규모와 모양 바로 그대로였으며, 대륙들의 윤곽선은 옛 지도 제작자들의 능력과 솜씨를 새삼스럽게 확인해주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