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유전자의 합목적성이 ‘의식’이라고 부르는 특성을 진화시켰다


 

리처드 도킨스는 세포가 유전자의 화학 공장이라고 말합니다.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 생긴 생존기계는, 처음에는 경쟁자들과의 화학전에서 우연히 발생한 분자 충격의 피해로부터 몸을 지키는 벽을 유전자에게 제공하는 데 불과했습니다. 처음에 그것들은 수프 속에서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유기분자를 먹이로 했습니다. 이런 편안한 생활이 끝난 건 오랜 세월에 걸쳐 활발한 햇빛의 영향으로 원시 수프 속에 형성된 유기적인 먹이가 사라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식물의 생존기계는 스스로가 직접 햇빛을 사용해 단순한 분자에서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 원시 수프의 합성과정을 더 빠른 속도로 재연했습니다. 동물의 생존기계는 식물을 먹든지 다른 동물을 먹든지 하여 식물의 화학적 노동을 가로채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식물과 동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욱 교묘한 책략을 발달시켜 끊임없이 새로운 생존방법을 개발해갔습니다. 그것들은 각각 바다에서 지상에서 공중에서 땅 속에서 나무 위에서 더 나아가서는 다른 생물체 내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특수하고 전문화된 방법에 있어 다른 것을 능가했습니다.

 

동식물은 모든 세포에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복사가 분배되어 있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해왔습니다. 도킨스는 사람의 몸이 세포의 공동체colony라고 말합니다. 세포를 유전자의 화학 산업의 편리한 작업 단위에 비유합니다. 인간은 주관적으로 스스로를 하나의 공동체가 아닌 하나의 단위라고 생각합니다. 적은 자원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하거나 다른 생존기계를 잡아먹기 위해 또는 먹히지 않기 위한 매정한 싸움에서 공동체와도 같은 몸의 내부는 통제가 없는 것보다 중추에 의해 통합되어 있는 쪽이 더 유리할 것입니다. 유전자 간의 상호 공진화가 계속 진행되어 왔으므로 오늘 날 개개의 생존기계가 공동체적인 성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더 많이 전하려고 애쓰는 대리자이며,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은 동물의 어떤 개체가 별개의 개체에 대해서 행해지는 행동을 말합니다.

 

동물은 민첩하고 활발한 유전자의 운반자, 즉 유전자 기계가 되었습니다. 동물은 식물보다 수십만 배나 빨리 움직이는 방법을 발달시켰습니다. 동물이 빠른 운동을 하기 위해 진화시킨 기관이 근육입니다. 근육은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 같이 화학 연료에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해 기계적 운동을 발생시키는 엔진입니다.

 

인간의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neuron(신경세포체soma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뉴런의 기본 기능은 자극을 받았을 때 전기를 발생시켜 다른 세포에 정보를 전달한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게는 뉴런이 있습니다. 뉴런은 그 자체 세포이고 다른 세포처럼 핵과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세포막은 가늘고 길며,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뉴런에는 축삭돌기axon(신경 섬유nerve fiber)라는 특별히 긴 줄이 한 가닥 있습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축삭돌기의 폭은 몇 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축삭돌기는 보통 다발로 되어 있으며, 많은 가닥이 꼬여 굵은 케이블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신경입니다. 신경은 메시지를 운반합니다. 뇌는 기능상 입력 패턴을 분석하여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조회한 후 복잡한 출력 패턴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컴퓨터와 유사합니다. 진화 중에 감각기관이 뇌를 거치지 않고 근육과 연결되어 있던 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말미잘은 현재도 이 상태에서 별로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타이밍과 근수축의 타이밍 사이에서 더욱 복잡하고 간접적인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매개물로서 일종의 뇌가 필요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진보는 기억이라는 것을 진화적으로 발명한 것입니다.

 

도킨스는 생존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가 합목적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동물 유전자의 생존에 필요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목적의식을 가진 행동과 매우 닮았습니다. 동물이 먹이를 찾거나 배우자를 찾거나, 또는 잃어버린 새끼를 찾는 것을 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찾을 때 경험하는 종류의 주관적 감정을 그 동물도 갖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감정에는 욕망 또는 목적 내지는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합목적성이 ‘의식’이라고 부르는 특성을 진화시켜왔다고 말합니다. 이들 기계는 기본적으로 극히 단순하며 의식이 없으면서도 목적의식이 있는 듯이 행동합니다. 도킨스는 이와 관련되는 기본원리가 ‘네거티브 피드백 negative feedback’(occurs when the output of a system acts to opposite changes to the input of the system)으로 ‘목적 기계’, 즉 의식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 내지는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바랐던’ 상태와의 차이를 측정하는 일종의 특정 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차이를 좁혀가며, ‘바랐던’ 상태에 도달하면 기계는 멈춥니다. 현대의 목적기계는 더욱 복잡한 ‘살아 있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달성하기 위해 네거티브 피드백과 같은 기본원리를 확장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도미사일은 적극적으로 목표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사정거리 내에서 표적을 발견하면 도망칠 수 있는 방향과 진로를 바꾸는 것 등을 계산하여 때로는 그것을 예측 혹은 예상까지 하여 추격합니다. 사람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컴퓨터에 넣기만 할 뿐입니다.

 

유전자는 스스로가 직접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의 생존기계의 행동을 제어합니다. 유전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미리 생존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후에 생존기계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며 유전자는 그 속에서 그저 수동적인 상태가 됩니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우리를 인형에 매달린 끈으로 직접 조종하지 못하는 이유로 시간 지연을 꼽습니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일을 통해서 작용합니다. 이는 세계를 조정하는 강력한 방법이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배embryo(다세포생물의 발생 과정에서 초반에 해당하는 단계)를 만드는 데는 인내를 갖고 몇 개월 동안 단백질(합성)의 끈을 조작해야만 합니다. 반면 행동의 특징으로 중요한 점은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몇 초 또는 몇 분의 1초라는 시간 단위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부엉이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고, 키 큰 풀숲이 부스럭거리며 포획물이 있는 곳을 알리면 1/1000초 단위로 신경계가 흥분하여 근육이 떨립니다. 유전자는 그처럼 신속한 반응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신속히 작동하는 컴퓨터를 조립하여 예측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가능성들을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두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장기 게임이 그렇듯이 생물은 너무 많은 사건들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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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종말과 웜홀


WMAP 위성은 초기우주의 모습을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종말을 구체적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반중력이 우주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량과 에너지의 73%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은하들 사이의 거리를 더욱 빠르게 증가시키면서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팽창을 저지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앞으로 1천5백억 년이 지나면 은하수 주변에 있는 다른 은하의 99.9999%는 관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은하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때문에 빛조차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관측 가능한 은하는 약 1천억 개이지만, 1천5백억 년 후에 이 숫자가 수천 개로 줄어들 것입니다.

국소적으로 뭉쳐있는 은하들 사이의 중력은 팽창을 극복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시야에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국소적으로 뭉쳐있는 36개의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지 않습니다. 미래의 천문학자들은 우리의 우주가 36개의 은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적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반중력이 계속 작용한다면 우주는 꽁꽁 얼어붙은 채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공간이 팽창하면 온도가 계속 하강하게 되고 절대온도 OK(섭씨 영하 273도)에 이르면 모든 분자의 움직임이 사라지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수조 년 후에는 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핵융합반응nuclear fusion reaction이 일제히 멈추면서 모든 별이 빛을 잃고 우주는 암흑으로 덮이게 됩니다. 하늘에는 검은 왜성dwarf과 중성자별neutron star, 블랙홀black hole 등만 남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블랙홀의 모든 에너지가 증발되면서 소립자들로 이루어진 차가운 안개만이 우주를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동사라는 최후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Parallel worlds 평행우주』(2005)의 저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加來道雄 1947~)는 수조 년 후 우주의 종말을 맞이할 우리의 후손은 차원을 넘나드는 방주를 만들어 더 젊고 따뜻한 우주로 이주하든지, 타임머신을 타고 온도가 높았던 과거의 우주로 시간이동을 감행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최첨단의 물리학을 이용하여 차원을 넘나드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신비한 에너지와 블랙홀을 통해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은 말했습니다. “웜홀은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이다. 웜홀을 통하면 은하의 반대편으로 여행 갔다가 저녁식사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웜홀wormhole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벽의 구멍으로 블랙홀이 입구가 되고 화이트홀이 출구가 됩니다. 웜홀은 블랙홀이 회전할 때 만들어집니다. 웜홀의 입구가 너무 작아 탈출을 시도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동안 인류가 이루어놓은 모든 문명과 정보를 분자의 규모로 축소시켜 차원입구를 통해 전송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의 모든 문명이 초공간(초소형 규모이기는 하지만)에서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재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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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미학적 대변인 스테판 말라르메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생라자르 역 Gare Saint-Lazare>, 1873, 유화, 94-115cm.

기차가 파리 시내를 달리게 된 건 1830년 말부터였습니다. 철도를 둘러싼 갖가지 정경은 현대를 알리는 풍속으로 도미에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마네도 철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배경으로만 사용했습니다. 화면에 기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차가 방사한 연기만 보이는데ㅡ 기차가 지금 역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기는 기차의 혼이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에 떠 움직입니다. 이 구도에는 참신함이 있고, 청색과 흰색의 조화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올랭피아>의 모델 빅토린을 모델로 한

마지막 그림입니다. 그녀는 미국으로 갔다가 얼마 전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책을 펴서 무릎에 놓은 채 관람자를 바라보는 빅토린의 얼굴에서 아무런 감정도 발견할 수 없는데, 10년 전의 <올랭피아>에서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입니다. 빅토린 옆에 파란 리본을 허리에 장식한 흰 드레스를 입고 관람자에게 등을 돌린 채 기차를 바라보는 소녀는 화가 알퐁스 이르슈의 딸로 화면에서는 빅토린의 딸처럼 보입니다. 마네는 알퐁스의 정원에서 소녀의 모습을 그렸으며, 그 모습을 여기에 삽입해 구성했습니다.


마네는 1873년에 유화 20점을 그렸습니다. 전년도의 10점에 비하면 두 배나 작업한 셈입니다. 그해 그린 <생라자르 역>을 이듬해 살롱에 소개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에 나타난 철로는 마네의 화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라자르 역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마네의 고도의 기교와 지성적 복잡함이 나타난 가장 이상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가 인물화 화가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론가 란드는 “벨라스케스는 반사된 공간의 복잡함을 <라스 메니나스>에서 구성했고, 마네는 마음의 복잡함을 반영하는 <생라자르 역>을 구성했다”고 평했습니다. 평론가들은 마네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지나치게 모방한다고 비난했는데, 벨라스케스와 그의 관계가 잘 나타난 것이 이 작품입니다.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회화에서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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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빨래 Washing>, 1875, 유화, 145-115cm.

말라르메는 “이 작품은 우리의 모든 사고를 화면에 옮기는 방법에 대한 오나전하고 결정적인 모범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마네가 10년 연하의 스테판 말라르메를 만난 것은 1873년 10월이었습니다. 이때 젊은 말라르메는 독특한 시로 파리 문단에 막 이름을 알리고 있었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 평론을 썼습니다. 그는 보들레르와 졸라에 이어 마네의 중요한 후원군이 되었고, 곧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1874년에 ‘마네의 1874년 그림들’이라는 글을 썼으며, 1876년에 쓴 ‘인상주의와 에두아르 마네’는 런던의 한 신문에 실렸는데, 이 글에서 마네의 <빨래>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화가로서의 마네의 삶에 한 획을 긋는 것으로,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미술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 투명한 빛으로 반짝이는 대기는 얼굴, 옷, 나뭇잎에 내려와 걸린다. 이때 사물은 자체의 실체를 확고하게 붙들고 있는 듯하지만, 이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햇빛과 거대한 공간이 그것들의 윤곽을 침범해 들어가면서, 실체를 방어하는 껍질에 불과한 윤곽은 무참히 녹아 대기 속으로 날아 가버린다. 예술이 고집스럽게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것의 실체를 바야흐로 대기가 완전히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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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예술가 The Painter>, 1875, 유화, 193-130cm.

이것은 화가이면서 판화가 그리고 극작가이자 화상 마르셀랭 데부탱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풍채만 모델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성격 또한 “그림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데부탱은 피렌체 근교에 광대한 땅을 유산으로 받았지만 탕진했고, 1870년 파리로 돌아와 판화로 초상화를 제작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마네는 초상화를 그릴 때에 “특이한 인격을 그린다”고 했는데, 데부탱의 자만심과 불안을 훌륭하게 부각시켰습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1876년 살롱에 출품했는데, 심사위원 열다섯 명 대부분은 당시의 대담한 두 경향, 즉 인상주의 화법과 자연주의 주제를 혼용한 이 그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 외에도 카페 게르부아에 자주 오던 화가이면서 판화가인 마르셀랭 데부탱을 모델로 그린 <예술가>도 출품했는데, 모두 낙선했으므로 몹시 화가 나 있던 마네에게 말라르메의 글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해 4월 5·6·7일자 신문에 마네가 살롱에 낙선한 이야기가 보도되어 파리 시민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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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 Portrait of Stéphane Mallarmé>, 1876, 유화, 27.5-36cm.

말라르메는 샤를 보들레르 다음으로 마네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이 상징주의 시인은 꾸준히 마네의 미학을 옹호했습니다. 마네는 서른네 살의 시인의 모습을 매우 사변적인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널리 퍼진 두 눈썹, 상념으로 산발이 된 머리카락, 손가락 사이에 있는 불이 붙여진 시가, 노트 위에 올려놓은 오른손과 엄지손가락만 내놓고 주머니 속에 넣은 왼손 등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말라르메는 이런 모습으로 앉아서 마네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해 하며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마네는 그리기를 마친 후 너무 작게 그린 걸 후회하고 오른쪽에 2cm가량 캔버스를 늘이고 벽지의 색을 칠했습니다.


마네는 말라르메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해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8년 전에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화는 사실주의에 근거했지만, 말라르메의 초상은 힘 있는 표현주의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라르메가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배경의 벽지는 단순한 디자인에 엷은 색이라서 말라르메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붓놀림과 색조로 미루어 그가 단번에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르주 바타유는 이 그림을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유아시절의 대부분을 파리 남동쪽으로 65마일 떨어진 시골 상스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학교에 재학할 때 라틴어, 그리스어, 영어에 뛰어났고, 이미 시를 썼습니다. 이바뇽과 투르에서 교사 경험이 잇는 그는 1871년 파리로 와서 생라자르 역 근처에 잇는 퐁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4년 후 이사한 롬 가는 마네의 화실에서 걸어서 몇 분밖에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말라르메는 수업이 끝나면 마네의 화실에 들러 오래 대화를 하다 가곤 했습니다. 앙리 드 레니에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말라르메는 화가들의 천재적 소질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마네의 인간성에도 크게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는 늘 마네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그의 말에는 마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가득했다.

마네는 말라르메를 위해 그가 번역한 에드거 앨런 포의 『갈가마귀 The Raven』에 삽화를 그렸고, 그의 다른 작품을 위해서도 여러 점의 목판화를 제작했는데, 그것들이 1876년 4월에 출간되었습니다. 말라르메는 마네가 죽고 2년 후 “나는 10년 동안 거의 매일 소중한 마네를 보아왔다. 그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말라르메는 그해 롤랭 대학 영어 교수가 되었는데, 마네가 재학했던 학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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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이 말하는 전기력과 자기력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우주가 과학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행동이 모형화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수학의 언어로 기술된 힘은 중력이었습니다. 1687년에 발표된 뉴턴의 중력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만유인력의 법칙)은 우주의 모든 물체가 다른 모든 물체를 자신의 질량에 비례하는 힘으로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당대의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주의 한 측면을 정학하게 모형화할 수 있음을 최초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약 50년 전 갈릴레오에게 내려진 이단판결의 빌미가 된 것과 유사한 쟁점을 부각시킵니다. 예를 들면 성서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에서 고대 셈계 부족으로 기원전 2천년부터 기원전1천6백 년까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아모리족Amorite과 싸우는 중, 환한 낮 시간을 더 연장시켜 전투를 마무리하려고 해와 달이 운동을 정지하도록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그의 기도로 태양이 대략 하루 동안 멈추었습니다. 이는 지구가 하루 동안 자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뉴턴의 법칙에 따라서 지면에 묶여있지 않은 모든 물체가 지구의 원래 속도인 시속 170km로 계속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야 했습니다. 뉴턴만 해도 신이 우주의 운행에 개입할 수 있으며 실제로 개입한다고 거리낌 없이 믿었습니다.

중력 다음으로 법칙이 발견된 우주의 또 다른 측면은 전기력electric force과 자기력magnetic force입니다. 자기력이란 하전 입자들이 운동할 때 그 운동 때문에 입자 사이에 발생하는 인력 또는 척력을 말합니다. 자석이 철을 당기는 기본 힘이 전기력입니다. 전기력이 정지해 있는 전하 사이에 작용하며, 움직이는 하전 입자 사이에는 전기력뿐 아니라 자기력도 존재합니다. 자기력과 전기력은 여러 면에서 유사합니다. 자기력으로부터 전기력을 만들어낼 수 있고(발전소), 반대로 전기력으로부터 자기력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전자석). 만유인력은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으로만 작용하지만, 자기력과 전기력은 자하와 전하의 부호에 따라 인력 또는 척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종류의 전하electric charge들이나 자석의 극들을 서로 밀어내고 다른 종류의 전하들이나 자석의 극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전기력과 자기력은 중력보다 훨씬 세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거시적인 물체가 지닌 양전하와 음전하는 개수가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시적인 물체들 사이의 전기력과 자기력은 대개 거의 제로입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동안 발견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전기력과 자기력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전하는 자석에 힘을 가하고, 움직이는 자석은 전하에 힘을 가한다는 사실입니다. 전기력과 자기력의 관련성을 가장 먼저 안 사람은 덴마크 물리학자이며 화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였습니다. 그는 1820년 대학 강의를 준비하다가 전지에서 나온 젼류가 근처에 있는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후 움직이는 전기가 자기력을 산출한다는 걸 깨닫고 ‘전자기력electromagnetism’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몇 년 뒤 영국 물리학자이며 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1791-1867)는 전류가 자기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자기장도 전류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추론했습니다. 그는 1831년에 그가 추론한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그로부터 14년 뒤에 패러데이는 전자기력과 빛 사이의 연관성도 발견했습니다. 그는 강한 전자기력이 편광된 빛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패러데이는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런던 근처의 가난한 대장장이의 집에 태어나서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점에서 사환 겸 제본 기술자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그는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읽고 여유시간에 간단하고 저렴한 실험을 하면서 과학을 배웠습니다. 마침내 그는 위대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 경의 실험실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패러데이는 이후 평생 그 실험실에 머물렀으며, 데이비가 타계한 후에는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패러데이는 수학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수학을 많이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관찰한 이상한 전자기 현상들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그에게 벅찬 과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해냈습니다.

패러데이가 이룩한 지적 혁신들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장force field이란 개념이었습니다. 뉴턴 이후 패러데이까지의 수백 년 동안 물리학의 최대 수수께끼 중 하나는, 물리학 법칙들이 시사하는 대로 하면,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물체들 사이의 빈 공간을 뛰어넘어 작용을 하고 있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패러데이는 그런 원격 작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상을 움직이려면 무엇인가가 그 대상과 접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전하들과 자석들 사이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 관tube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 관들이 물리적으로 서로 밀고 당긴다고 상상했습니다. 패러데이는 그 고나들을 역장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역장을 가시화하는 좋은 방법은 막대자석 위에 유리판을 놓고 그 위에 철가루를 뿌리는 것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누구나 했을 법한 이 실험에서 유리판과 철가루 사이의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유리판을 몇 번 가볍게 두드리면, 철가루가 보이지 않는 힘에 밀리는 것처럼 움직여서 자석의 양극을 잇는 圓弧(원호)들의 패턴으로 배열됩니다. 그 패턴은 공간에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자기력의 지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힘이 장field에 의해서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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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872년 초 뒤랑-뤼엘은 마네의 화실을 방문하여 <달빛 아래의 블로뉴 항구>는 1천 프랑에, <연어>는 6백 프랑에 구입했습니다. 뒤랑-뤼엘은 마네의 그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튿날 다시 그의 화실로 가서 그곳에 있는 23점 모두를 3만 5천 프랑에 구입했는데, 그 가격은 마네가 요구한 것이라고 합니다. 며칠 후 그는 1만 6천 프랑에 여러 점을 또 구입했고, 그림 값 5만 1천 프랑을 분할해서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마네는 게르부아에서 친구들에게 단번에 5만 프랑어치 작품을 판 것을 자랑했습니다.

뒤랑-뤼엘은 50년 후의 회고록에서 “난 훌륭한 그림 <달빛 아래의 블로뉴 항구>와 또한 마찬가지로 빼어난 정물화 <연어>를 보았다. 1886년 뉴욕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연어>를 미스터 하베메이어에게 1만 5천 프랑에 팔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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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누드 Nude>, 1872년경, 유화, 60-49cm.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과연 마네의 작품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생소한 그림입니다. 엷은 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잡색을 대충 문질렀는데, 제한된 시간에 급히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네는 보통 그림을 그릴 때에 모델로 하여금 갖가지 포즈를 취하게 한 후 가장 적절한 포즈를 선택하여 그렸는데, 여인에게 포즈를 청한 후 단번에 그린 것 같은 이 그림에서는 그런 조심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해 마네는 <올랭피아> 이후 처음으로 벗은 여인의 상반신을 <누드>란 제목으로 그렸습니다. 검은 머리를 한 여인의 누드를 생페테르스부르그 4번지 자신의 화실에서 그렸는데, 이 모델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모델의 검은 머리로 미루어 스페인 여인 같습니다. 목에 장식한 검은색 리본과 리본에 달린 카메오를 강조했으므로 관람자들은 그것들에 시선을 주게 됩니다. 여인은 어깨와 젖가슴을 관람자를 향해 드러내면서 왼쪽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숄을 살며시 쥐어 더 이상 몸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으며, 긴장한 표정입니다. 마네는 누드보다 얼굴에 역점을 두고 그렸으며, 여인의 육체를 한 가지 색으로 평편하게 칠하고 얼굴은 감정을 나타낼 수 있도록 힘 있는 표현주의 색을 사용했습니다. 얼굴에 붉은 색을 얼룩지게 사용하여 홍조를 띤 긴장된 여인의 감성을 표현하려고 했음을 봅니다. 앵그르가 여인의 누드를 사람의 육욕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묘사했으며, 르누아르는 여인의 육체를 탐미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묘사했고, 드가는 여인을 동물과 마찬가지로 꾸밈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는데, 그들과 달리 마네는 모델의 개성을 나타내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여인의 육체를 미화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모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앞선 표현주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불분명한 붓자국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완성되지 않은 습작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오르세이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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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Racecourse in the Boi de Boulogne>, 1872, 유화, 73-92cm.

에드가 드가는 1860-62년에 벌써 경마 장면을 그렸습니다. 마네도 이 사실을 알고 예의상인지 몰라도 화면 하단 오른쪽에 높은 모자를 쓴 드가의 뒷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습니다. 드가 옆에 있는 여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혹시 메리 카삭일지 모릅니다. 미국 여인 카삿은 파리에 유학하던 중 유부남 드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마네는 운동선수 바레로부터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그림을 의뢰받았지만,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홀란드의 처가에서 한여름을 보낸 후에야 그렸습니다. 그가 홀란드로 간 건 결혼식을 올린 지 9년 만입니다. 그는 6월 말 매제 페르디낭과 함께 하를렘의 할스 뮤지엄과 암스테르담의 릭스 뮤지엄을 방문했습니다. 마네는 10월 21일에야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을 완성한 후 바레에게 주고 3천 프랑을 받았습니다. 마네는 숲속의 경마장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여러 점을 스케치했으며, 현재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달리는 말을 바라보면서 스케치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눈은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하지 못합니다. 화가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달리는 말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네는 운동에 관한 영국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달리는 말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의 서재에는 운동에 관한 책이 많았습니다. 그는 베르테에게 달리는 말을 가장 잘 그린 영국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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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롱샹의 경마 Courses a Longchamp>, 1867?, 유화, 43.9-8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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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경마장의 좁은 길 Le Defile (Chevaux de Course Devant les Tribunes)>, 1866-68, 유화, 46-61cm.


마네는 이전부터 경마 장면을 그렸는데 경마를 주로 그린 드가의 영향인 듯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면 거기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는 드가는 1860년대 초부터 경마 장면을 수없이 그렸습니다. 드가가 말의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데 비해 마네는 말 자체보다는 활기가 넘치는 경마장의 풍경에 관심이 더 있었습니다. 마네는 이런 주제들을 격정적인 기법으로 유화 또는 석판화로 제작했다. 그는 <롱샹의 경마>에서 기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주에 여념이 없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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