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1872년 초 뒤랑-뤼엘은 마네의 화실을 방문하여 <달빛 아래의 블로뉴 항구>는 1천 프랑에, <연어>는 6백 프랑에 구입했습니다. 뒤랑-뤼엘은 마네의 그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튿날 다시 그의 화실로 가서 그곳에 있는 23점 모두를 3만 5천 프랑에 구입했는데, 그 가격은 마네가 요구한 것이라고 합니다. 며칠 후 그는 1만 6천 프랑에 여러 점을 또 구입했고, 그림 값 5만 1천 프랑을 분할해서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마네는 게르부아에서 친구들에게 단번에 5만 프랑어치 작품을 판 것을 자랑했습니다.
뒤랑-뤼엘은 50년 후의 회고록에서 “난 훌륭한 그림 <달빛 아래의 블로뉴 항구>와 또한 마찬가지로 빼어난 정물화 <연어>를 보았다. 1886년 뉴욕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연어>를 미스터 하베메이어에게 1만 5천 프랑에 팔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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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누드 Nude>, 1872년경, 유화, 60-49cm.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과연 마네의 작품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생소한 그림입니다. 엷은 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잡색을 대충 문질렀는데, 제한된 시간에 급히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네는 보통 그림을 그릴 때에 모델로 하여금 갖가지 포즈를 취하게 한 후 가장 적절한 포즈를 선택하여 그렸는데, 여인에게 포즈를 청한 후 단번에 그린 것 같은 이 그림에서는 그런 조심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해 마네는 <올랭피아> 이후 처음으로 벗은 여인의 상반신을 <누드>란 제목으로 그렸습니다. 검은 머리를 한 여인의 누드를 생페테르스부르그 4번지 자신의 화실에서 그렸는데, 이 모델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모델의 검은 머리로 미루어 스페인 여인 같습니다. 목에 장식한 검은색 리본과 리본에 달린 카메오를 강조했으므로 관람자들은 그것들에 시선을 주게 됩니다. 여인은 어깨와 젖가슴을 관람자를 향해 드러내면서 왼쪽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숄을 살며시 쥐어 더 이상 몸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으며, 긴장한 표정입니다. 마네는 누드보다 얼굴에 역점을 두고 그렸으며, 여인의 육체를 한 가지 색으로 평편하게 칠하고 얼굴은 감정을 나타낼 수 있도록 힘 있는 표현주의 색을 사용했습니다. 얼굴에 붉은 색을 얼룩지게 사용하여 홍조를 띤 긴장된 여인의 감성을 표현하려고 했음을 봅니다. 앵그르가 여인의 누드를 사람의 육욕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묘사했으며, 르누아르는 여인의 육체를 탐미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묘사했고, 드가는 여인을 동물과 마찬가지로 꾸밈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는데, 그들과 달리 마네는 모델의 개성을 나타내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여인의 육체를 미화하는 전통적인 방법 대신 모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앞선 표현주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불분명한 붓자국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완성되지 않은 습작처럼 보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오르세이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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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Racecourse in the Boi de Boulogne>, 1872, 유화, 73-92cm.
에드가 드가는 1860-62년에 벌써 경마 장면을 그렸습니다. 마네도 이 사실을 알고 예의상인지 몰라도 화면 하단 오른쪽에 높은 모자를 쓴 드가의 뒷모습을 일부 그려 넣었습니다. 드가 옆에 있는 여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혹시 메리 카삭일지 모릅니다. 미국 여인 카삿은 파리에 유학하던 중 유부남 드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마네는 운동선수 바레로부터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 그림을 의뢰받았지만,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홀란드의 처가에서 한여름을 보낸 후에야 그렸습니다. 그가 홀란드로 간 건 결혼식을 올린 지 9년 만입니다. 그는 6월 말 매제 페르디낭과 함께 하를렘의 할스 뮤지엄과 암스테르담의 릭스 뮤지엄을 방문했습니다. 마네는 10월 21일에야 <불로뉴의 숲속 경마장>을 완성한 후 바레에게 주고 3천 프랑을 받았습니다. 마네는 숲속의 경마장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여러 점을 스케치했으며, 현재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달리는 말을 바라보면서 스케치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눈은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하지 못합니다. 화가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달리는 말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네는 운동에 관한 영국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달리는 말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의 서재에는 운동에 관한 책이 많았습니다. 그는 베르테에게 달리는 말을 가장 잘 그린 영국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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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롱샹의 경마 Courses a Longchamp>, 1867?, 유화, 43.9-8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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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경마장의 좁은 길 Le Defile (Chevaux de Course Devant les Tribunes)>, 1866-68, 유화, 46-61cm.
마네는 이전부터 경마 장면을 그렸는데 경마를 주로 그린 드가의 영향인 듯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면 거기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는 드가는 1860년대 초부터 경마 장면을 수없이 그렸습니다. 드가가 말의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데 비해 마네는 말 자체보다는 활기가 넘치는 경마장의 풍경에 관심이 더 있었습니다. 마네는 이런 주제들을 격정적인 기법으로 유화 또는 석판화로 제작했다. 그는 <롱샹의 경마>에서 기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주에 여념이 없는 장면을 효과적으로 나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