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시공이 휘면 물체들의 경로도 휜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per」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논문에서 그는 물리학의 법칙들, 특히 광속이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모든 관찰자들에 대해서 동일해야 한다는 간단한 전제를 채택했습니다. 곧 밝혀졌지만, 이 전제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 안의 관찰자가 보기에 비행기 내부의 동일한 장소에서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두 사건의 거리는 제로zero이지만, 지상에 있는 관찰자가 보기에는 제로가 아니라, 두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들 사이의 시간 간격 동안 비행기가 이동한 거리가 됩니다.

두 관찰자가 동일한 물리적 과정을 보면서도 시간을 다르게 측정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 간격에 대한 측정 결과는 이동거리에 대한 측정 결과와 마찬가지로 측정을 하는 관찰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효과는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에 담긴 이른바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을 이해하는 열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정지와 운동이 절대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절대적이지 않음을, 뉴턴이 생각한 절대시간absolute time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관찰자가 제각각 나름의 시간 척도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관찰자의 시간 측정값은 일치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각각의 사건에 모든 관찰자가 동의할 시간 좌표를 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특수상대성이론은 우리의 일상에서는 그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실험에 의해 거듭 입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 중심에 시계를 두고, 또 다른 시계를 지구 표면에 두고, 세 번째 시계를 비행기에 실려 지구의 자전 방향이나 그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고 할 경우, 지구 중심의 시계를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 방향인 동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실린 시계는 지구 표면에 있는 시계보다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구 궁심의 시계를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 방향의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실린 시계는 더 느리게 움직입니다. 이 같은 효과는 1971년 10월, 매우 정밀한 원자시계를 비행기에 싣고 수행한 실험에서 정확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래 살기를 원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날아가면 원하는 대로 됩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 지체 효과는 지구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약 10억 분의 180초 정도로 매우 작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시간을 공간의 3차원, 즉 좌우, 앞뒤, 위아래와 별개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으므로 네 번째 차원인 과거와 미래를 추가해 한꺼번에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결합된 시간과 공간을 ‘시공space-tine’이라고 부릅니다. 시공의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은 공간의 세 차원과 별개가 아닙니다. 공간의 세 차원, 즉 좌우, 앞뒤, 위아래가 관찰자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방향도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다양한 속도로 운동하는 관찰자들은 시공에서 시간의 방향을 다르게 선택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개념을 제거한 새로운 모형입니다.

얼마 후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상대성이론과 조화시키려면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뉴턴의 중력이론에 의하면 임의의 시점에서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은 그것들 사이의 거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절대시간의 개념을 폐기했으므로 물체들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시점을 확정할 길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뉴턴의 중력이론은 상대성이론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고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이 문제는 이론을 약간 손보면 디는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11년 동안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상대성이론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일반상대성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의 개념은 뉴턴의 중력 개념과는 전혀 다르며, 기존의 생각과 달리 시공이 평편하지 않고 질량과 에너지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호킹은 시공의 휘어짐curvature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좋은 방법은 지구의 표면을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지구의 표면은 2차원이더라도 우리가 그 표면을 휘어진 공간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휘어진 2차원 공간은 휘어진 4차원 공간보다 직관적으로 떠올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표면과 같은 휘어진 공간의 기하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에 의해 구축된 수학 체계인 유클리드 기하학Euclidean geometry이 아니라면서 호킹은 예를 들어 지구의 표면에서 두 점 사이의 최단경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선이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이른바 대원great circle이라고 말합니다. 대원이란 지구의 표면에 있으며 그 중심이 지구의 중심과 일치하는 원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적도의 임의의 지름을 중심으로 적도를 회전시켜서 얻은 임의의 원이 대원입니다.

호킹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우리가 위도가 거의 같은 뉴욕에서 마드리드로 여행할 경우, 지구의 표면이 평편하다면 가장 짧은 여행경로는 곧장 동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5,966km를 여행해야 마드리드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지구의 표면은 휘었기 때문에 평면 지도에서는 곡선이 더 길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짧은 경로가 됩니다. 우리가 대원 경로를 선택하여 처음에는 북동쪽으로 출발해 방향을 점차 동쪽으로 바꾸고 이어서 남동쪽으로 바꾸면서 여행한다면 5,802km를 이동하여 마드리드에 도착하게 됩니다. 두 경로의 길이 차이는 지구 표면의 휘어짐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항공사들은 그 차이를 알기 때문에 대원 경로를 선택합니다.

뉴턴의 운동법칙에 따르면 포탄, 크루아상, 행성 등의 물체가 중력의 힘을 받지 않을 경우 직선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중력은 질량이 시공을 휘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물체는 측지선geodesic(혹은 최단선)을 따라서 이동합니다. 휘어진 공간에서 측지선은 평편한 공간에서의 직선과 마찬가지로 두 점 사이의 최단경로입니다. 직선은 평편한 공간에서의 측지선이고 대원은 지구 표면에서의 측지선입니다. 호킹은 물질이 없을 때, 4차원 시공에서의 측지선은 3차원 공간에서의 직선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질이 있어 시공이 휘면 그 시공에 대응하는 3차원 공간에서 물체들의 경로도 휜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뉴턴 이론은 그 휨을 중력의 끌어당김으로 설명했습니다. 시공이 평편하지 않을 때 물체들의 경로는 휘어져 물체들이 어떤 힘을 받는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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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생명의 진화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일부 화석들이 가리키는 대로 일부 과학자들은 일찍이 39억 년 전에 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이는 지구가 형성된 지 불과 5억 년 이후이므로 과학자들은 생명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형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곤혹스러워합니다.

진화론에서는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고, 돌연변이를 통해 좀 더 적응할 수 있는 후손을 진화시켰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초기 생명에서 유전자들은 어떻게든 자유롭게 교환되었으며 따라서 유전자를 교환하는 다양한 유기체들의 공동체가 진화했습니다. 이는 박테리아가 빠르게 유전자를 교환한 이래 지금까지도 여전한 사실입니다. 이 정보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생명이 연관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는 정도를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초기 지구는 말 그대로 딴 세상이었습니다. 산소가 없고, 바다는 뜨거웠으며, 대기 압력과 혜성 및 운석들의 끊임없는 충돌로 숨 막히는 곳이었습니다. 최초의 생명이 우주에서 왔든 지구상의 성분에서 출현했든 우리가 아는 건 이것입니다.

첫째, 39억~19억 년 전 사이에 시안기를 함유한 박테리아cyanobacteria가 출현하여 우리의 행성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박테리아가 빛과 물,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유기물질로 전환시켰습니다. 대기 중의 산소는 6억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최초의 생명을 어떻게 규정하든 그것은 고도의 적응력을 갖춘 미생물을 생산하도록 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생명과 유기체들은 화학물질 주머니로서 재생과 같은 생명의 단순한 기능만 했을 뿐입니다.

초기의 모든 생명은 단세포, 즉 전기화학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화학물질 주머니로 구성된 미생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박테리아는 좀 더 커다란 박테리아 내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약 15억 년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실마리로서, 단세포들이 주머니 안에 주머니를 지닌 유기체로 진화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주머니인 세포핵은 미생물의 DNA를 둘러싼 세포막입니다.

그 외의 세포막 같은 구조들도 나타났습니다. 세포 내에 있는 이런 상이한 종류의 주머니들은 분리될 수 있었습니다. 재생조직을 수용한 세포핵 에너지를 생산하는 성분을 가진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세포 소기관의 하나로 세포호흡에 관여하며, 호흡이 활발한 세포일수록 많은 미토콘드리아를 함유하고 있음], 햇빛과 이산화탄소, 물을 당糖과 산소로 전환하는 분화된 화학물질들을 품은 엽록체가 그것입니다. 세포 내에 있는 이런 주머니들의 결과로 생명은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들은 포획된 미생물들에서 생겨났습니다. 현대 DNA 분석이 가리키는 대로 미토콘드리아가 되는 본래의 박테리아는 대부분의 유전자들을 숙주인 세포핵에게 기증까지 합니다. 박테리아는 진화하면서 복합적인 유기체가 되었습니다. 그 같은 내부의 주머니들과 함께 유기체들은 수백 수천의 미토콘드리아가 양성자 펌프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박테리아보다 수천 배나 커질 수 있었습니다.

진화된 화학물질 주머니들을 가진 단세포 유기체들이 지속적으로 밀집하여 군체群體를 이루었습니다. 현대의 아메바들은 여전히 이런 특징, 즉 점균류slime mold로 밀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포 안에 있는 기능이 분화되면서 주머니들은 좀 더 복잡한 유기체가 되었으며, 세포다발은 좀 더 정교한 생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물이 약 10억 년 전에 발달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포다발을 감싸는 줄기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많은 세포들을 가진 좀 더 복잡한 유기체로 진화했는데, 이 유기체의 세포는 박테리아보다 수천 배나 큽니다. 이 유기체들은 특화된 다양한 세포자루들을 가졌으며, 각 화학물질 자루는 특화된 기능들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장기organ들과 몸체의 여러 부분들이 생겨났습니다. 단순한 몸체의 윤곽이 입과 창자, 젤라틴 모양의 몸체로 나타났습니다. 한 예가 대합조개로서 이것은 7억2천만 년 전에 생겨났습니다. 대합조개는 뇌의 초기 형태까지 갖고 있습니다.

5억4,4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의 진화는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 지구에는 오직 세 과divisions(혹은 유형types)의 동물만 있었는데, 이 과를 필라phyla[동물 분류상의 문門phylum의 복수. 계界kingdom와 종류class/kind 사이의 분류군을 말함]라고 합니다. 이런 속도로는 인간과 같은 복잡한 유기체로의 진화를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5억4,400만 년 전부터 백만 년 동안에 필라의 수가 3에서 38로 급증했습니다. 이는 고고학자들이 캐나다와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동물이 급증한 것을 보여주는 화석의 발견으로 알아낸 사실입니다. 찰스 다윈은 이런 급증이 자신의 진화론을 거스르는 잠재적 증거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당황해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이 미스터리는 과학자들을 계속 난처하게 만들었으며, 만족할 만한 이론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후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매우 그럴 듯해 보이는 한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자 앤드루 파커Andrew Parker는 저서 『눈 깜빡할 사이에 In the Blink of an Eye』(2003)에서 생명 형태가 급증한 건 가장 최근에 분화된 세포자루인 눈을 가진 생물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이론화했습니다. 동물들은 환경을 분별하는 데 단지 감각과 화학적 수용체에 의존하기보다 제한적이지만 시각을 가졌습니다. 시각은 먹이를 쉽게 포획하고 포식자들을 미리 경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눈은 또 생명체들이 시각적으로 배우고 서로 모방하게 해주었습니다. 5억4,300만 년 전에 발생한 가장 유용한 감각, 시각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생명은 다섯 가지 주요 사건을 겪었습니다.

첫째,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지구상에 생명이 시작된 것이고, 둘째, 세포핵과 그 외 세포기관이 형성되었으며, 셋째, 다세포 생물이 부상했고, 넷째, 뇌와 같은 기관이 분화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눈이 생겨난 것입니다.

앤드루 파커의 이론은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의문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하나는 무엇이 눈의 진화를 유발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종종 과학은 하나의 수수께끼를 풀고 또 다른 수수께끼를 발견하곤 합니다.

진화에 대해 일부 종교단체들은 하나의 생명 형태가 다른 생명 형태로 진화한 것을 증명해줄 두 종 사이의 ‘사라진 고리missing links’를 요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바다 생물이 육지에 적응한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2006년에 그런 고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약 3억8,500만 년 전에 살았던 사지가 있는 물고기 같은 화석을 발견한 것입니다.

2억5,100만 년 전 화석에 의하면 가장 극적인 대량 멸종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육지와 바다에 살던 모든 종의 95%가 전멸했습니다. 공룡은 약 6,500만 년 전에 멸종했는데,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식물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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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처음으로 밀라노로 가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처음 밀라노로 간 건 서른 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간 해를 1476년이라고 적었지만, 1481년 초겨울이었고 그 이전에는 그가 피렌체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밀라노로 떠나면서 밀라노 최고 지도자를 위해 악기를 소지했습니다. 바사리는 그 악기를 레오나르도가 직접 고안한 것으로 류트와 유사한 것이며 주로 은으로 제작되었다면서 “말의 머리 형상을 한 이 낯선 악기는 강력한 하모니와 완전한 음을 냈다”고 적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열린 경연대회에서 이 악기를 연주하여 모든 음악가들을 물리치고 음악을 사랑하는 로렌초의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당시 피렌체에는 다양한 악기가 있었고, 레오나르도가 사용한 동물 머리 형상의 현악기 류트와 칠현금 리라 다 브라치오lira da braccio도 주로 노래 반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리라 다 브라치오는 마사초, 코시모 투라, 카르파초, 라파엘로, 만테냐 등의 작품에서 천사가 사용한 악기로 등장합니다.


217

마사초의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1426, 패널에 에그 템페라, 135.5-73cm.


218

코시모 투라의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의 부분, 1475-76년경, 패널에 유채와 에그 템페라, 239-102cm.

1450-95년에 주로 활약한 코시모 투라Cosimo tura(1430?-95)는 조각에 있어서 만테냐의 영향을 받았고, 1449년경 페라라에 와서 그림을 그리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 장엄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우의적 인물>, <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그리고 20세기 표현주의를 예견한 듯한 화풍으로 방향을 돌린 <광야의 성 제롬>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것에 대한 확신은 노트북에서 얻을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이 발명한 악기는 물론 아쿠스틱acoustic 악기들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비올라 오르가니스타viola organista, 그릴산도와 녹음기, 북과 키보드가 있는 종을 발명했으며, 바이올린도 발명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악보를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악보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적절하게 설명했습니다. 그가 쓴 악보는 현존하지 않지만 즉흥적 작곡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종종 보표와 음표를 이합체와 수수께끼 가운데 사용하여 창조적으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몇 페이지에 걸쳐 쓴 악보를 보면 음자리표 다음에 보표를 낚시바늘(이탈리아어로 아모amo)로 그린 후 아모amo라는 글자를 쓰고 레re 솔sol 라la 미mi 파fa 레re 미mi를 적었으며, 길게 선을 그은 후, 라 솔 미 파 솔을 표기하고 글자 레치타lecita를 적었습니다. 이것은 ‘아모레 솔 라 미 파 레미라레 라 솔미 파 솔레치타 Amore sol la mi fa remirare, la solmi fa sollecita’가 되고 번역하면 ‘오직 사랑만이 나의 심장을 휘저음을 기억하게 만든다’가 됩니다. 또 다른 가사는 ‘사랑이 내게 즐거움을 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219-1

레오나르도의 <음악가의 초상>, 1485년경, 패널에 유채, 43-31cm.



레오나르도는 밀라노 음악가 서클에 곧 알려졌습니다. 그가 밀라노에서 처음 그린 초상화는 밀라노 공작이 아니라 음악가였습니다. <음악가의 초상>은 1905년에야 세상에 알려졌으며, 들고 있는 악보에는 보표와 함께 ‘칸트. 앙 Cant. Ang’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칸트 앙’은 ‘칸티쿰 안젤리쿰 Canticum angelicum’을 의미하고 이는 밀라노 대성당의 합창단장 가푸리우스로 알려진 프랑치노 가푸리오의 작곡명입니다. 따라서 초상화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가푸리우스로 보입니다. 레오나르도는 가푸리우스의 이론서 『실용적 음악 Practica musicae』에 관한 삽화를 그린 것으로도 알려졌으며, 이는 하모니의 관념을 분석한 최초의 논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파비아 사람 로렌초 구나스코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악기를 생산하고 매매하는 사람으로 오르간, 합시코드, 류트, 비올viol(중세 현악기로 바이올린 류의 전신) 등 다양한 악기들을 취급했으며, 밀라노, 페라라, 만토바 등지의 궁정에 납품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작업장에서 다양한 악기들을 제작 실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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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미완성의 완성 <동방박사의 경배>,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 1485-86년경, 패널에 템페라, 175-280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위한 제단화


216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동방박사의 경배>, 1488, 패널에 템페라, 285-240cm.


211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 1481-82년경, 미완성, 패널에 유채와 템페라, 24.3-24.6cm.

레오나르도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감히 구주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조금 떨어진 데서 경배하는 장면으로 묘사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늙은 현인들로 수수한 의상에 겸허하고 지친 모습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박사들 중 한 명은 발타사르로 흑인으로 알려졌지만, 이 그림에서는 모두 백인입니다.


209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 브라운 수채, 16.3-29cm.


169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


208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



로렌초는 레오나르도를 산 마르코 정원에서 작업하게 하고 막강한 동맹국 밀라노의 공작을 알현하여 그를 위해 수금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이는 로렌초가 레오나르도를 예술가로서 높이 평가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1480년경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나기 몇 달 전, 제단화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피렌체 근처 스코페토의 산 도나토 수도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2.5m(243cm×246cm)의 정사각형 크기로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작은 인물화가 아니라 수십 명이 등장하는 장대한 규모로 구성했습니다. 아직 여러 회화적 요소에 마음이 동요되던 15세기의 특성이 나타나 있지만, 주요 대상을 부각시키는 방법이 새롭게 드러납니다.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도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렸지만, 이들은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성모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처음으로 성모를 두드러지게 구성했습니다. 독립적이고 단순하게 모습을 드러낸 성모와 그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의 대조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통 화가들이 성모를 다리를 벌린 자세로 옥좌에 앉은 모습으로 그린 데 비해, 그는 두 무릎을 모은 섬세하고도 여성적인 자세로 표현했고 이는 후대 화가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피에로가 산 도나토 수도회 수도승들의 법적 문제를 취급하고 있었으므로 아들을 그곳에 소개한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481년 3월 아버지가 작성한 특이한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수도승들이 작품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대신 발델사에 있는 땅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제단화를 24~30개월 사이에 완성시켜야 한다는 단서도 있었으나 레오나르도는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210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 28.4-21.3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레오나르도는 성서의 기록에 제한받지 않으면서 관람자가 직감적으로 <동방박사의 경배>가 어떤 사건인지 알 수 있도록 묘사했습니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을 보면 마굿간과 소, 당나귀가 그려져 있어 처음에는 전통 도상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 그림에는 이런 공현축일의 전통적 요소들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 화면에 담는 15세기의 특성은 있지만, 주요 대상을 부각시키는 방법은 레오나르도의 새로운 감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장면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필요한 상황의 세밀한 묘사를 생략했으며, 세 가지 예물 중 유향과 몰약을 바치는 것으로 제한했습니다. 이 그림을 위한 드로잉에는 배경에 낙타가 있지만, 최종 그림에는 낙타는 없고 말을 탄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배경에 종려나무와 쥐엄나무가 보이는데, 종려나무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이고 쥐엄나무는 세례 요한의 상징이자 유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212

레오나르도의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


214

레오나르도의 <용과 싸우며 두 다리로 선 말 탄 사람>, 13.6-18.9cm.


이 작품에는 그 외 성서가 언급한 내용에 관한 상징물이 없습니다. 13세기 멘데의 주교 기욤 두랑드가 “교회 안에 있는 그림과 장식은 평신도들을 위한 읽기이다”라고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회화적 동기는 그의 다른 종교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성서에 대한 그의 해석은 교회의 입장과 사뭇 달랐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위한 습작>에서 보듯 상단에는 말 탄 사람들이 서로 살상하며 전투를 벌이고 있어 고대 세계의 혼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쥐엄나무 주변에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아는 무리가 놀라움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구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서에 대한 그의 해석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필리포 리피, 기를란다요, 보티첼리가 감동을 받았고, 특히 라파엘로가 영감을 받아 이런 요소를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에 프레스코화를 그릴 때 응용했습니다. 미켈란젤로도 성모 주변의 어둠 속에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무리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산 도나토의 수도승들은 레오나르도의 이처럼 특이한 작품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가 속히 완성하기를 바랐습니다. 1481년 6월 수도원은 계약서를 정정해서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의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물감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지불해주었습니다. 또한 수도승들은 그에게 수도원의 시계를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하게 하고 장작 한 짐과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주었습니다. 7월 수도원은 그에게 28플로린을 지불하고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밀 한 부셰르(약 2말)를, 9월 28일에는 붉은 포도주 한 통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수도원 기록부에 적힌 내용 전부였고, 어려운 경제사정에 처한 레오나르도는 겨울이 다가올 무렵 더 큰 작업을 얻기 위해 밀라노로 갔습니다. 1481년은 그가 다른 예술가들과 더불어 바티칸에 초대되지 않았고, 어려운 경제상황에 빠진 최악의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동방박사의 경배>를 거의 완성단계에까지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완성하지 않은 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16세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 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의 이 작품을 왜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의문이 됩니다. 이 점에 대해 바사리는 아주 간단하게 그가 “변덕스럽고 불안정했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에 관한 지식이 많은 그는 많은 프로젝트를 받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성시킬 수 없었는데, 자신이 생각한 완전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으며, 또한 문제가 “너무 난해하고 너무 기묘하므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라 했습니다. 바사리가 말한 대로 레오나르도는 이 작품과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에서 미학적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에 완성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평론가들은 이 상태를 완성으로 봅니다. 이 상태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의도가 명확하게 달성되었다고 보며, 이는 완성에 대한 르네상스 개념과 오늘날의 개념이 매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200

레오나르도의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 1478-80년경, 미완성, 호두나무 패널에 유채와 템페라, 102.8-73.5cm.

'교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롬은 로마와 가울에서 살다가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안디옥 근처 샬시스 광야로 가서 수행자의 생활을 하면서 지냈고, 베들레헴에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주석을 달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후 사자의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은 정확하게 언제 그렸다는 기록은 없고 148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레오나르도는 제롬을 나이를 초월한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바싹 마른 체구에 움푹 들어간 눈으로 표현했습니다. 제롬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구주를 바라보듯 어딘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앞에는 사자가 앉아 있고 제롬의 오른손에는 돌이 들려 있는데, 자신의 가슴을 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메디치 가와 몇몇 피렌체의 부유한 가문에서는 야생동물을 길르고 사자 외에도 기린 등을 길렀지만, 실제 사자를 화폭에 옮겨놓은 것은 레오나르도가 처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를 위해 이 작품을 패널에 그리기 시작했으며 왜 미완성으로 남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머리 부분의 패널은 훼손된 채 18세기까지 남아 있다가 19세기에 와서야 보수되었습니다. <베노이스 성모>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르게 남아 있다가 19세기 초 우연한 기회에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아저씨뻘이 되는 추기경 페슈는 어느 날 로마의 거리를 걷다가 고물상 뒤켠에 훌륭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찬장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본 그는 르네상스 대가의 작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찬장 문은 다름 아닌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의 머리 부분이었습니다. 페슈는 머리 부분을 떼어낸 나머지 패널이 로마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믿고 여러 달 동안 수소문한 끝에 한 구두점에서 발견했습니다. 구두수선공이 그것을 의자에 못을 박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페슈는 머리 부분을 부착하여 유약을 발라 보수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1845년 바티칸이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레오나르도가 인물을 묘사할 때 얼마나 해부학적 정확함을 추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제롬의 목과 앙상한 갈비뼈가 실재 인체를 묘사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이 작품은 절망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알게 해줍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스물아홉 살 내지 서른 살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절망감에 빠져 있었고, 외로움을 느낄 때였습니다. 비탄의 글을 많이 쓴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며칠 전에 말했듯이 난 완전히 의욕을 잃었고 … ”라고 적었습니다. 그의 노트북에는 단어를 갖고 발음으로 뜻이 되게한 글들이 있습니다. 그는 증조부의 이름 디 세르 피에로di ser Piero를 di. s. p. ero로 적어 ‘절망한다dispero’가 되게 했습니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서재의 성 제롬>, 1475, 패널에 유채, 45.7-36.2cm.


많은 화가들이 제롬을 그렸는데,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서재에 있는 학자의 모습을 그렸으며, 코시모 투라는 은둔자로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투라와 마찬가지로 제롬을 학자보다는 참회하며 고행하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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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동물의 모든 소통에는 처음부터 속이는 요소가 포함되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기계가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 경향의 극치라고 말합니다. 뇌는 생존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또한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피임하는 것과 많은 아기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와 관련해서 도킨스는 유전자가 일차적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집행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실제의 방침 결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의 비유와 인간의 의사 결정권과의 비교가 적절할 수 있으나, 진화는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 생존력의 차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행동패턴이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다른 행동을 위한 경쟁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 풀 속에서 더 잘 살아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타적 행동을 위한 유전자란 신경계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쉽도록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입니다.

꿀벌은 부저병foul brood(꿀벌의 유충이 발육 도중에 죽어서 썩게 되는)이라는 세균성 전염병에 걸립니다. 이것은 벌집 속의 애벌레를 해치는 병입니다. 양봉업을 하는 사람이 키우는 꿀벌에서 이 병이 많이 생기는데, 애벌레를 끄집어내어 벌집 밖으로 버림으로써 병을 빨리 근절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꿀벌은 위생적이지 않습니다. 위생적 형질의 유전자가 열성인 것입니다. 여왕벌과 수벌을 이용하여 잡종 제1세대와 위생적 형질의 계통과를 ‘역교배 back cross’한 결과 태어난 꿀벌은 3개의 그룹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그룹은 완벽한 위생적 행동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 그룹은 전혀 위생적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어중간한 행동을 합니다. 맨 나중 그룹은 병에 걸린 애벌레가 있는 벌집의 뚜껑을 뜯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뒤의 행동이 따르지 않아 애벌레를 버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는 뚜껑을 뜯는 데 관한 것과 애벌레를 버리는 것에 관한 두 종류의 유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정상적인 위생계통은 양쪽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두 개의 유전자 모두의 라이벌인 대립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중간한 일밖에 못하는 잡종은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두 배수로 가지고 있으나 버리는 쪽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겉보기에 완전히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꿀벌의 그룹 중에 애벌레를 내버리기 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잃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그룹이 숨겨져 있으므로 뚜껑을 땔 경우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절반의 벌들이 완전히 정상적인 ‘애벌레 버리기’ 행동을 보여줍니다. 유전 실험에서 애벌레를 버리는 유전자와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세대를 통한 그들의 여행에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것들은 단일 협력단위로 생각될 수 있으나, 복제에서는 두 개가 자유롭고 독립된 인자입니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프로그램 작성자의 우두머리이며,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기계가 생애에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대처하는 능력을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의해 심판받습니다. 그러나 생존기계와 생존기계를 위해 의사 결정을 하는 뇌의 최우선 순위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입니다. 그래서 동물은 먹이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나섭니다. 한 생존기계가 다른 생존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생존기계는 그의 상대와 소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개가 꼬리치는 동작이나 털을 세우는 행동, 침팬지의 이빨을 내보이는 행동, 인간의 몸짓이나 말씨 등 생존기계의 많은 동작은 다른 생존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 간접적으로 자기의 유전자의 번영을 증진시킵니다. 동물들은 이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매우 정교하고 신비스런 노래는 그 음역이 무척이나 넓습니다. 꿀벌은 다른 벌에게 먹이의 방향과 거리의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춤을 춥니다. 그 소통의 교묘함은 인간의 언어에 필적할 만합니다.

동물 행동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통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서로 이익을 얻도록 진화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병아리는 길을 잃거나 추우면 큰 소리로 삐악거려 어미의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이 행동은 자연선택이 길을 잃으면 우는 병아리와 그 울음소리에 적절히 반응하는 어미 모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미에서 상호 이익을 위해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통 시스템이 진화할 때는 누군가가 그 시스템을 자기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위험이 늘 존재합니다.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자들의 이해가 다양화되면 늘 거짓이나 속임수나 소통의 이기적 이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동일한 종의 개체들도 그렇습니다. 도킨스는 동물의 모든 소통에는 처음부터 속이는 요소가 포함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동물의 모든 상호작용에는 적어도 무엇인가의 이해 충돌이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도킨스는 한 생존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생존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 대상들이기도 합니다. 자연선택에 의해 선택되는 건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입니다. 이는 같은 종이나 다른 종에 상관없이 다른 생존기계를 가장 잘 이용한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종은 다른 생존기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같은 종의 생존기계는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끼칩니다.

동물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킨스는 동물의 싸움은 복싱이나 펜싱의 규칙처럼 규칙에 따라 싸우는 형식을 갖춘 시합이라고 말합니다. 위협과 겁주기가 목숨을 건 결투를 대신합니다. 승자는 항복의 몸짓을 인정하지만 때려죽이거나 물어 죽이거나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뚜렷한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B와 C가 나의 경쟁자이지만, 이기적 개체인 내가 B를 죽이지 않는 건 B가 C와도 경쟁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B를 죽이는 건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해 C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B를 살려두어서 B가 C와 싸우게 하는 것이 내게 이득이 됩니다. 농작물에 심한 피해를 입히는 해충을 없애면 이 해충의 절멸로 다른 해충이 더 큰 이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보다 더 심한 상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전략입니다.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짧기는 하지만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생기고 개체군 내에도 변동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에 도달하면 그것은 그대로 남습니다. 자연선택은 이 전략에서 이탈되는 행위를 벌할 것입니다.

개개의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증대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개개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행합니다. 유전자는 남의 몸속에 앉아 있는 자기복제자까지도 도울 수 있으며, 이는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더라도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일란성 쌍생아는 상대방의 행복을 자기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기는데, 쌍생아 이타주의 유전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쌍생아의 쌍방이 반드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쪽이 다른 쪽을 살리고 영웅적으로 죽어도 그 유전자는 살아남습니다. 도킨스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돌봄은 혈연 이타주의의 특수한 예라고 말합니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갓난아기인 동생이 고아가 되었을 경우, 형제들은 자기의 친자식처럼 어린 동생을 열심히 돌보게 됩니다. 근친도가 똑같이 1/2이기 때문입니다. 일란성 쌍생아끼리의 근친도는 1이고, 친형제와 친자식은 1/2이며, 삼촌과 고모, 조카와 조카딸, 할아버지와 손자, 배다른 형제자매는 근친도가 1/4이고, 사촌끼리의 근친도는 1/8이며, 6촌끼리의 근친도는 1/32이다. 8촌끼리의 근친도는 1/128로서 지나가는 행인과 같습니다. 혈연선택kin selection이 가족 내 이타주의를 설명합니다. 혈연이 진하면 진할수록 선택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근친상간의 금기는 인간의 위대한 친족 의식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근친상간 금기의 유전적 이익은 이타주의와는 무관하다면서, 아마도 근친상간에 의해 나타나는 열성 유전자의 유해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종에서 어미는 아비보다 자기 자식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미는 눈으로 보고 만져 볼 수 있는 알을 낳고나 새끼를 갖습니다. 도킨스는 아비는 속기 쉽다면서, 그래서 아비는 어미만큼 육아에 열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에 비해 손자에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친할머니보다 강한 이타주의를 나타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외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와 동등하게 손자에게 확신이 갑니다. 같은 식으로 외삼촌은 친삼촌에 비해 조카의 행복에 더욱 관심이 있고, 일반적으로 이모와 동등하게 이타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남편의 외도가 매우 흔한 사회에서는 외삼촌이 아버지보다 이타적일 것입니다. 외삼촌 쪽은 그 아이와의 근친도에 대한 확신에 확실한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적어도 자기의 반자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대하는 것보다 훨씬 자식의 시중을 잘 듭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쪽이 나이도 많고 매사에 더 능숙해서 자식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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