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재는 하나의 환영, 불완전한 우리 세계의 표현이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인간의 실재는 하나의 환영, 불완전한 우리 세계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과 지성 모두가 어떻게 신기루로 기록될 수 있을까? 만물이 에너지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주위 가족들의 모습, 의자에 앉는 느낌, 대화 소리, 음식 냄새와 맛,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정보에 의해 전환된 에너지에서 오는 걸까? 그는 저서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가에 대해 과학 이론을 연구하면서 그런 문제가 “실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실재는 “저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재에 대한 중대한 미스터리는, 어떻게 공간과 에너지 모두 우리가 체험하는 것으로 되는가입니다. 그 답의 일부는 실재를 나타내는 우리의 뇌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쓴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뇌가 재현하는 건 대단히 복잡한 세계를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단순화시킨 구성입니다. 우리의 지각이 불완전하다는 걸 깨닫는 것이 실재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화학공부를 할 때 원자는 원자핵 궤도를 도는 전자들로 이루어졌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졌다고 배웁니다. 고등학교 수업에서의 모형은 대략 농구공만한 원자 중심에 야구공만한 원자핵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구공만한 원자핵의 약 15cm 거리에서 궤도를 선회하는 전자의 크기는 대략 구슬만하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비율을 위해 원자핵의 지름을 30cm로 할 경우 양성자와 중성자는 지름 약 3cm 공간을 점유합니다. 일상 온도로 한정하면 작은 아원자 입자는 매우 활동적입니다. 따라서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매초 6만 4,000km로 서로 스쳐갑니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전자들은 매 순간 약 42km 멀리 있기 때문에 아마 거의 광속으로 사방에 있다 없다 할 것입니다. 왜 ‘아마’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하면 전자는 주어진 장소에 있을 어떤 가능성만 갖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부피가 없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자 부피의 1조분의 1에 불과한 것이 원자핵입니다. 나머지는 공간입니다. 원자핵조차 그 자체는 속에 약간의 에너지가 있는 공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원자와 분자는 공간과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레오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확실히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만물은 그 속에 에너지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에너지에는 면적이 없으므로 뇌가 복잡한 실재를 단순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감각으로 알아내려는 우리 뇌의 시도를 설명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의 재료과학자 윌리엄 틸러William Tiller와 월터 디블Walter Dibble은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게 하는 ‘거꾸로 안경upside-down glasses’을 끼는 실험을 했습니다. 약 두 주 동안 피실험자들은 거꾸로 안경을 쓰고 거꾸로 된 세계를 보았는데, 그래도 그들의 뇌가 이미지를 바로 세웠습니다. 틸러와 디블은 피실험자들이 거꾸로 안경을 벗은 뒤에 이미지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2주 동안 거꾸로 된 세계를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는 예입니다. 세계가 거꾸로 되었더라도 본 것을 이해하게 하려는 우리 뇌의 시도가 시각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안경을 쓰지 않은 그 밖의 모든 시간은 어떤가? 우리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레오킴은 우리가 허위 이미지를 보도록 진화되었다고 말합니다.

빛은 다양한 주파수를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한 형태입니다. 주파수는 에너지나 빛이 여행하면서 진동하거나 흔들리는 비율입니다. 광자는 진동 가능 폭이 매우 넓으며, 우리는 이 주파수의 약 10억분의 1만 빛으로 볼 뿐입니다. 내가 한 물체를 볼 때 내가 보는 건 그 물체의 분자들을 눈에 반사하는 광자들(빛)입니다. 분자가 그 속에 약간의 에너지를 가진 공간이라면 빛이 어떻게 반사될 수 있을까? 빛은 원자에너지나 분자에너지와의 상호 작용이 느려질 때 반사됩니다. 우리는 맑은 유리가 광원과 각을 이룰 때 반사광을 봅니다. 이는 운전하는 동안 햇빛이 자동차 유리에 바로 비칠 때 생생하게 예증됩니다. 너무 눈부시면 시력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빛은 유리 분자에너지와의 상호 작용에 의해 느려지고, 반사 각도에서 굴절됩니다. 이는 자동차의 절반 정도는 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다른 절반은 자갈길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갈길 쪽은 타이어와 자갈길의 상호 작용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가 느려지는 반면 포장도로 위의 타이어는 느려지지 않습니다. 이 경우 자동차는 자갈길 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우리와 빛 사이에서 유리를 똑바로 세우고는 반사광을 보지 못합니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고 우리가 보는 모든 건 밝은 빛입니다. 이는 도로 위를 운전하다가 자갈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앞바퀴들이 동시에 자갈길과 상호 작용하므로 그 자동차는 길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속도가 늦어집니다.

물리학자이며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 경은 원자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참으로’ 빈 공간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색은 무엇일까? 호박은 정말 오렌지색 분자나 오렌지색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일까? 거기에 실제의 색이란 없습니다. 빛에는 색이 없습니다. 색은 환영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눈에 들어오는 가시광선의 상이한 주파수들을 뇌가 처리하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좋게 지도를 채색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뇌는 수집된 정보를 다양한 색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가시광선은 다양한 진동수들의 혼합입니다. 빛이 같은 주파수를 가진 원자나 분자 속의 전자를 비추면 그 빛은 흡수됩니다. 흡수되지 않은 주파수는 반사됩니다. 눈이 이런 빛의 주파수들을 받아들이며, 뇌는 입수된 것들을 계산하여 색으로 칠합니다. 모든 가시광선이 전부 흡수되면 뇌는 그 부분을 검정색으로 칠합니다.

눈은 눈에 반사된 광자들을 처리하여 그 정보를 두뇌에 전달합니다. 이때 뇌는 그 정보를 우리가 보는 것의 진정한 재현이라고 느끼는 이미지로 처리합니다. 즉 우리 눈에 도달한 빛은 상호 작용한 에너지 형태의 어떤 정보로서 우리 뇌에 전달될 뿐입니다. 우리의 뇌는 빛 에너지가 제공하는 정보를 처리하여 건물과 바위, 땅과 별 등 우주 만물과 같은 물질적 대상으로 그 에너지를 재현해주는 것입니다.

뇌는 유효 에너지의 아주 작은 비율을 알 만한 정보로 전환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뇌는 에너지/정보의 실재를 단순화시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E. 온스타인Robert E. Ornstein(1942-)은 저서 『멀티마인드 Multimind』에서 “우리 세계가 그런 방식으로 보이는 까닭은, 세계가 그래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뇌와 눈은 빛의 좁은 스펙트럼을 포착하며, 실제로 저편에 있는 것을 나타내지는 못해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세계 속에서 활동하도록 도와주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인간과 대부분의 동물들은 가시광선이라는 스펙트럼의 구획을 인지하도록 진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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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정신적이며 영적이다


우리는 우리 태양계의 만물과 함께 시속 약 92만km로 은하 주변으로 움직이며, 우주는 그보다 몇 배나 더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간에서 우리와 우리 주변의 것들은 시속 160만km 이상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우리와 우주 만물이 유픽셀로 구성되어 초당 107×1012×1012×1012번(혹은 플랑크의 시간 5.391×1044번) 존재의 내외부로 들락거린다고 말합니다. 유픽셀들의 자리 뺏기 운동은 움직임의 비유적 설명이며 이것은 평행우주들 혹은 끈 이론의 다른 차원들과 일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영역은 실재입니다. 정보 영역, 진공 영역, 양자와 유픽셀 영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영역입니다. 이 영역에서 양자 입자들은 결합하여 우리가 알고 관측하는 것과 같은 물질을 산출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위의 모든 것입니다. 하나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정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이 실재 영역 안에 기록됩니다. 또 다른 영역 안에서 우리는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는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본질적인 측면입니다.

레오킴은 실재의 이미지를 확대하면 그 그림이 먼저 낟알 모양이 되었다가 흩어진 픽셀들이 있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우리 세계의 그 외의 96%가 내포된 낟알들 사이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근대 과학시대의 시초입니다. 20세기 초에 양자 이론은 유물론과 언어를 넘어서는 초월로 이끌었습니다. 21세기에 새로 드러난 사실들과 함께 우리는 과학과 영성의 개념이 융합되는 새로운 진실의 새벽을 맞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진실은 우리의 세계관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와 하나이며 이런 동일성, 정보, 마음, 의식이 우주이며 또한 우리입니다.

레오킴은 우리의 실재가 정보에 의해 전환된 에너지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영성이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는 정신적이며 영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과학과 영성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는 큰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수천 년 동안 동인도인과 중국인은 만물은 에너지라고 가르쳤으며, 많은 동양 종교 역시 인생이 환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은 말했습니다.

실재reality에 관해 말할 때 어떤 이는 늘 분명하고 잘 알려진 것을 의미하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대단히 어려운 과제는 분명 실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본다. 이 역시 내가 늘 과학과 종교가 어떤 방법으로든 관련이 있음을 강조할 때, 말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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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되지 못한 레오나르도의 기마동상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밀라노에서 파견된 루도비코의 특사가 1489년 7월 22일자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보낸 편지에는 루도비코가 그의 아버지를 기념하는 기마상을 레오나르도에게 의뢰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루도비코 경께서는 부친을 위해 묘비를 만들 계획을 갖고 계시며, 이를 위한 모델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작하도록 이미 명하신 상태로 갑옷으로 무장한 프란체스코 공작께서 말을 타고 계신 모습을 거대한 청동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경께서는 이 작품이 매우 훌륭하고 전례에 없는 것이 되기를 바라시며, 저더러 전하께서 이런 작품에 재능이 있는 피렌체 예술가 한두 명을 보내달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경께서는 이미 레오나르도에게 위임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레오나르도가 제대로 완성해낼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편지에 언급된 루도비코의 청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로렌초는 피렌체 조각가를 보내지 않았으며, 루도비코도 더 이상 청하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몇 달 뒤 이 작업을 위한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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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스포르차 기념비에 관한 필사본 페이지>, 1493년경, 21-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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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바닥에 장치할 용광로와 ‘스포르차 말’을 뜨기 위한 투시도 디자인>, 27.8-1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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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의 기념 기마상>, 대리석 위에 청동, 말과 가마자의 높이 395cm.


레오나르도는 1484~5년부터 기마상을 청동으로 제작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면서 소일하고 지냈습니다. 그는 말을 드로잉으로 습작했으며 커다랗게 청동으로 뜨는 기술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중세 사람은 4.24m나 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을 세웠지만, 이런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도나텔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1453년 처음으로 기념비적인 청동조각 <가타멜라타>를 제작했으며 파비아에 있는 이 작품은 높이가 3.2m나 됩니다. 다시금 거대한 크기의 청동조각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베로키오 역시 이에 관심이 많아 1478~88년 베네치아에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의 기념 기마상>을 세웠는데 4m 가까운 조각을 청동으로 뜬 것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이런 거대한 작업을 하고 싶어 한 건 당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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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매장 기념 기마상을 위한 스케치>, 27.8-19.8cm.


그러나 레오나르도가 지난 6, 7년 동안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이 프로젝트는 그에게 위임되지 않았습니다. 공학 건축가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그가 이 작업을 완성시킬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것입니다.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구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구상한 조각은 <동방박사의 경배> 배경 왼쪽에 말을 탄 사람의 모습으로 말이 앞다리를 들고 서 있는 장면입니다. 그의 드로잉에도 앞다리를 든 말 위에 누드의 남자가 바톤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왁스로 작은 크기의 이런 형상을 만들었을 테고 더 나아가 청동으로도 제작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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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의 <기마상에 대한 습작>, 28.8-25.5cm.


하지만 이런 형상을 작게 제작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주 큰 규모로 제작할 때는 앞다리를 든 말을 고정시키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만이 이런 형상을 고안한 것은 아니고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를 포함한 몇 사람도 이런 구상을 했습니다. 이런 형상은 드로잉할 때에는 매우 훌륭하지만 청동으로 실현시키기에는 불가능합니다. 수 톤에 이르는 무게를 말의 뒷다리로 지탱하게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앞다리 하나라도 더 있어야 지탱할 수 있습니다. 루도비코는 실재 말보다 서너 배 크고 장려한 형상으로 제작하기를 원했으므로 레오나르도의 구상대로 실현시키기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1496년경 그가 쓴 노트북에는 “말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데, 언제 가능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가 수년 전에 제작한 흙으로 빚은 모델은 금이 가고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동상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과연 레오나르도에게 그것을 제작할 능력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미켈란젤로에 의해 제기되었고 사람들은 동상이 제작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레오나르도에게 돌렸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가 지나치게 야심을 갖고 작업에 집착했지만 완성시키지는 못했다면서 페트라르카의 싯귀를 인용하여 “그 작품은 욕망에 의해 연기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미완성은 당시의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나폴리, 프랑스와의 전쟁의 위기 속에서 그만한 청동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200년이 지난 후 프랑스 조각가 프랑수아 지라르동은 루이 14세의 동상을 높이 6.82m로 제작했는데, 레오나르도가 고안한 청동 뜨는 법과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이 동상은 프랑스 혁명 때 파괴되어 현존하지 않지만, 당시의 기록에는 레오나르도가 실험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기술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당시의 위급한 상황으로 인해 청동을 구할 수 없었던 데 원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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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대리모 논란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대리모 논란’으로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뉴저지 주의 테너플라이에 살던 부부 윌리엄 스턴과 엘리자베스 스턴의 대리모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스턴은 생화학자이고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는 소아과 의사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어 아기를 가지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스턴 부부는 불임센터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대리출산을 알선해주었습니다. 센터는 대리모를 찾는다는 광고를 냈고,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이 광고에 응한 여성 중 하나였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고 환경미화원의 아내로 당시 29살의 그녀는 1985년 2월에 스턴 부부와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메리 베스는 윌리엄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거쳐 임신한 뒤 출산과 동시에 아기를 윌리엄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윌리엄은 아기를 넘겨받는 순간 그녀에게 1만 달러와 함께 의료비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불임센터에 거래 알선비용으로 7500달러를 지불했습니다. 스턴 부부는 아기에게 멜리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메리 베스는 1986년 3월에 여자아기를 출산했지만, 막상 출산하고 보니 아기와 떨어질 수 없었던 메리 베스는 아기를 데리고 플로리다로 도망쳤으며, 스턴 부부는 그녀가 아기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법원 명령을 얻어냈습니다. 플로리다 경찰은 메리 베스를 찾아냈고, 아기는 스턴 부부에게 넘겨졌으며, 양육권 다툼은 뉴저지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아기 M' 사건의 재판을 맡은 하비 소코우 판사는 애초의 합의에 손을 들어주면서 계약의 신성함을 강조했습니다. 계약은 계약이니, 생모에게는 단지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계약을 파기할 권리가 없습니다.

양자 중 어느 쪽도 거래에서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 않았다. 양자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 각자 수행할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정했고 계약을 체결했다. 양자 중 어느 쪽도 상대방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어느 쪽도 거래에서 우월하거나 열등한 처지가 아니었다.

소코우 판사는 돈을 받고 임신하는 행위를 돈을 받고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에 비교했습니다. 남자가 자신의 정자를 팔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도 자신의 생산능력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이 사건을 뉴저지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법원은 만장일치로 소코우 판사의 판결을 뒤집어 대리출산계약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아기 M의 양육권을 윌리엄 스턴에게 주면서, 그것이 아이에게 최선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메리 베스에게는 아기 어머니라는 지위를 돌려주었고, 하급 법원에 방문권 부여결정을 요청했습니다.

대법원장 로버트 우리렌츠는 판결문에서, 대리출산계약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 계약이 전적으로 자발적이지 않았으며, 거기에는 아기를 파는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선 그 계약에 문제가 있는데, 임신해서 아기를 낳으면 바로 넘겨주겠다는 메리 베스의 약속은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자발적이지 않습니다.

그 계약에 따르면, 친모는 자신과 아기의 강한 유대감을 알기도 전에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을 했다. 그는 전적으로 자발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갖춘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충분한 정보에 근거할 수 없다는 점이 아주 분명하다.

일단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분명한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내리는 결정은 “소송 위협에, 그리고 1만 달러의 유혹에” 어쩔 수 없이 내리는 결정이라서 “전적으로 자발적일 수 없는” 결정입니다. 더군다나 돈이 궁하다 보면 가난한 여성이 부자를 위해 대리모가 되기로 선택할 확률이 높습니다. 윌렌츠 판사는 이 점 역시 이 계약의 자발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라고 말합니다. “저소득층 불인 부부가 부유층 대리모를 찾는 일이 있을지 의문이다.

윌렌츠 판사는 근본적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 여성이 얼마나 돈이 필요했든 간에, 그리고 계약의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했든 간에, 우리는 그녀의 합의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윌레츠의 주장에 따르면, 상업적 대리출산은 아기를 판매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며, 아기를 판매하는 행위는 아무리 자발적이더라도 옳지 않습니다.

이는 아기를 판매하는 행위이거나 적어도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판매하는 행위이며, 그나마 참작할 만한 점은 구매자 중 한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 중개인은 이익을 추구하느라 판매를 부추긴다. 당사자들이 어떤 이상을 품고 일을 추진했든 간에, 이 거래에 기어들어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거래를 지배한 것은 이익 추구이다.

샌델은 ‘아기 M' 사건에서 계약을 인정한 1심 법원이 옳았던 것일까 아니면 계약을 무효로 만든 상급 법원일까 하고 묻습니다. 대리출산계약을 지지하는 주장은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이 계약이 선택의 자유를 반영한다는 근거를 내세웁니다. 성인들이 합의해 맺은 계약을 지키는 것이 자유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반면 공리주의는 전체 행복이 커진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양 당사자가 계약에 합의했다면, 둘 다 이익이나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거래로 다른 사람의 공리가 줄지 않는다면 대리출산계약을 비롯해 서로에게 이로운 교환은 장려되어야 합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 선택을 존중해야 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의를 자유 존중으로 보는 다른 이론들은 선택의 조건에 약간의 제한을 둡니다. 이들은 윌렌츠 판사가 ‘아기 M’ 사건에서 그랬듯이,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합의는 진정한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기나 여성의 출산 능력을 사고파는 행위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비하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태도의 바탕에는 재화나 사회적 행위의 가치가 단지 우리가 부여하기 나름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다. 존중과 사용은 가치를 부여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입니다. 대리출산계약은 여성의 노동과 아기를 상품화함으로써 그것을 비하합니다. 비하는 그것에 합당한 가치보다 낮은 가치를 부여하여 취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주장은 공리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단지 쾌락을 극대화하여 고통의 양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재화를, 그로 인한 쾌락이나 고통을, 단 하나의 통일된 방법으로 무게를 달아 가치를 평가하면 그만입니다. 벤담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공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든 것을 공리로 평가하는 건 아기, 임신, 부모 노릇처럼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사회적 행위와 재화를 비하하는 것이 됩니다. 그 높은 기준을, 각 재화와 사회적 행위에 걸맞은 평가 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샌델은 한 가지 답으로 자유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을 꼽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 물건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시각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한 사람이 이마누엘 칸트입니다.

아기 M'으로 알려진 멜리사 스턴은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종교를 공부하고 졸업했습니다. 뉴저지에서 그녀의 양육권을 두고 싸움을 벌어진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대리모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상업적 대리출산을 금합니다. 미국에서는 10여 개 주가 이를 합법화했고, 10여 개 주가 금했으며, 다른 주는 법적 상황이 애매합니다.

새로운 불임 치료술이 개발되면서 대리출산 경제학에 변화가 생기고 윤리적으로 더욱 골치 아픈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체외수정으로 한 여성이 난세포를 제공하고 다른 여성이 그것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난자, 자궁, 어머니가 하나로 연결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대리출산으로, 기존의 법적, 감정적 문제가 줄고 시장도 새롭게 활성화되었습니다. “난자와 자궁을 한 묶음으로 구매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되자, 대리출산 중개자들은 이제 “난자는 특정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궁은 특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라는 식으로 더욱 차별화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될 사람은 자기 아기를 임신할 여성의 유전적 특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다른 곳에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출산 뒤에 아기의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법정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줄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임신을 대신해주고, 임신 기간에 술, 담배, 마약을 하지 않는 행동 규범을 준수할 건강한 여성입니다. 이처럼 대리출산 양상이 바뀌면서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도 늘어났습니다. 대리모는 현재 임신 한 건당 2만-2만5천 달러를 받습니다. 그리고 의료비와 법적 비용을 포함한 총비용은 보통 7만5천-8만 달러에 이릅니다. 가격이 이 정도까지 치솟다 보니, 값싼 대안을 찾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2002년, 인도는 외국인 고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상업적 대리출산을 합법화했습니다.

인도의 방갈로르가 콜센터(고객이 미국에 있는 기업에 전화를 걸면 인도 방갈로르 콜센터 직원이 대신 응대하는 서비스)로 유명하듯, 인도 서부의 도시 아난드는 곧 유급 임신으로 유명해질 것입니다. 2008년에는 이 도시 여성 50여 명이 미국, 타이완, 영국 등에 사는 부부를 위해 대신 임신해주었습니다. 아난드의 어느 병원은 가정부, 요리사, 의사를 갖춘 단체 주거시설을 마련해놓고, 대리모 열다섯 명을 수용해 전 세계에서 고객을 맞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이 벌어들이는 4500-7500 달러는 이들이 보통 15년 이상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으로, 이 돈으로 집도 사고 자녀 학비까지 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상업적 대리출산이 ‘아기 M’ 사례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대리모가 난자가 아닌 자궁과 임신이라는 노동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아기는 유전적으로 대리모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아기는 거래되지 않으며, 대리모가 아기의 소유권을 주장할 개연성도 적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리출산으로도 도덕적 문제는 남습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둘이 아닌 셋으로, 즉 양부모, 난자 공여자, 자궁만 제공하는 대리모로 나눈다고 해서, 아기에 대한 소유권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하는가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체외수정 외주 임신은 오히려 도덕적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리 임신을 결정한 여성은 분명 경제적 이익을 얻겠지만, 그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게다가 대리임신산업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정책을 장려하면서, 대리출산은 여성의 몸과 출산능력을 도구로 전락시켜 여성을 비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샌델은 정의의 문제가 곧 윤리의 문제임을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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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수준의 입자는 광속보다 빨리 전달될 수 있다


항구에서 파도를 막고 있는 방파제처럼 부식되어 두 개의 틈이 생긴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히면, 파도는 그 틈들을 지나 항구로 빠져나갑니다. 항구의 파도는 두 틈에서 서로 충돌하고 간섭합니다. 이와 같이 빛은 좁은 틈을 통과하면서 만나고 간섭 패턴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나의 광자나 전자가 좁은 면도날 크기나 그보다 작은 틈을 통과할 때 양자 이론의 참으로 신기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하나의 광자가 두 개의 작은 틈이 있는 벽을 지나 각 틈 뒤에 있는 탐지기에 닿으면 하나의 파동이 두 개의 틈 모두를 통과한 것과 같은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는 논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의 실체가 어떻게 동시에 두 곳을 통과할 수 있을까?

양자 이론은 하나의 광자, 혹은 양자 수준의 어떤 것이든 A에서 B를 지나는 모든 가능한 통로를 취함을 암시합니다. 이 광자는 우리가 측정하거나 관측하지 않는 한 파동처럼 작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측하려고 하면 이내 눈에서건 장비에서건 그 파동은 사라지고, 광자 입자는 두 틈 중 하나 뒤에는 나타나지만 다른 하나의 뒤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미스터리를 풀려고 하면 이내 자연이 그 파동을 한쪽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견고한 세계에서 그것들은 역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공간이고 에너지라면 왜 에너지가 공간을 채우지 못하고 A와 B 사이의 모든 가능한 통로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과학자들은 공간에 있는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광자와 전자 같은 ‘물질’과 ‘입자’의 은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은유는 실재가 아닙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또한 입자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없고 파동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미리 생각한 것에 그 파동을 끼워맞추려 할 뿐이다.

파동이 A에서 B를 지나기 때문에 입자는 가능한 통로 모두를 취할 수 없다는 선입견은 세계가 당구공처럼 견고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에 불과합니다. 실재 견고한 입자란 없고 오직 공간을 채우는 에너지 파동만 있을 뿐입니다.

양자 세계는 80년 동안 과학에서 가장 탁월한 사고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합의된 설명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spooky”이라고 부른 것은 양자 세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입니다.

양자 수준의 입자는 순식간에, 광속보다 빨리 전달될 수 있습니다. 비국지성nonlocality이라 불리는 이런 효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입자를 이용해 증명된 적이 있습니다. 양자 수준의 입자는 개연성 상태로 존재하며, 모든 상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호 작용을 할 때는 각기 다른 양자의 상태를 알고 거리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그 속성들과 짝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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