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재는 하나의 환영, 불완전한 우리 세계의 표현이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인간의 실재는 하나의 환영, 불완전한 우리 세계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과 지성 모두가 어떻게 신기루로 기록될 수 있을까? 만물이 에너지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주위 가족들의 모습, 의자에 앉는 느낌, 대화 소리, 음식 냄새와 맛,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정보에 의해 전환된 에너지에서 오는 걸까? 그는 저서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가에 대해 과학 이론을 연구하면서 그런 문제가 “실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실재는 “저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재에 대한 중대한 미스터리는, 어떻게 공간과 에너지 모두 우리가 체험하는 것으로 되는가입니다. 그 답의 일부는 실재를 나타내는 우리의 뇌가 우리에게 “속임수”를 쓴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뇌가 재현하는 건 대단히 복잡한 세계를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단순화시킨 구성입니다. 우리의 지각이 불완전하다는 걸 깨닫는 것이 실재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화학공부를 할 때 원자는 원자핵 궤도를 도는 전자들로 이루어졌으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졌다고 배웁니다. 고등학교 수업에서의 모형은 대략 농구공만한 원자 중심에 야구공만한 원자핵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구공만한 원자핵의 약 15cm 거리에서 궤도를 선회하는 전자의 크기는 대략 구슬만하다고 했습니다.

정확한 비율을 위해 원자핵의 지름을 30cm로 할 경우 양성자와 중성자는 지름 약 3cm 공간을 점유합니다. 일상 온도로 한정하면 작은 아원자 입자는 매우 활동적입니다. 따라서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매초 6만 4,000km로 서로 스쳐갑니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전자들은 매 순간 약 42km 멀리 있기 때문에 아마 거의 광속으로 사방에 있다 없다 할 것입니다. 왜 ‘아마’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하면 전자는 주어진 장소에 있을 어떤 가능성만 갖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부피가 없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자 부피의 1조분의 1에 불과한 것이 원자핵입니다. 나머지는 공간입니다. 원자핵조차 그 자체는 속에 약간의 에너지가 있는 공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원자와 분자는 공간과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레오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확실히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만물은 그 속에 에너지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에너지에는 면적이 없으므로 뇌가 복잡한 실재를 단순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감각으로 알아내려는 우리 뇌의 시도를 설명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의 재료과학자 윌리엄 틸러William Tiller와 월터 디블Walter Dibble은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게 하는 ‘거꾸로 안경upside-down glasses’을 끼는 실험을 했습니다. 약 두 주 동안 피실험자들은 거꾸로 안경을 쓰고 거꾸로 된 세계를 보았는데, 그래도 그들의 뇌가 이미지를 바로 세웠습니다. 틸러와 디블은 피실험자들이 거꾸로 안경을 벗은 뒤에 이미지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2주 동안 거꾸로 된 세계를 보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님을 분명히 말해주는 예입니다. 세계가 거꾸로 되었더라도 본 것을 이해하게 하려는 우리 뇌의 시도가 시각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안경을 쓰지 않은 그 밖의 모든 시간은 어떤가? 우리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레오킴은 우리가 허위 이미지를 보도록 진화되었다고 말합니다.

빛은 다양한 주파수를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한 형태입니다. 주파수는 에너지나 빛이 여행하면서 진동하거나 흔들리는 비율입니다. 광자는 진동 가능 폭이 매우 넓으며, 우리는 이 주파수의 약 10억분의 1만 빛으로 볼 뿐입니다. 내가 한 물체를 볼 때 내가 보는 건 그 물체의 분자들을 눈에 반사하는 광자들(빛)입니다. 분자가 그 속에 약간의 에너지를 가진 공간이라면 빛이 어떻게 반사될 수 있을까? 빛은 원자에너지나 분자에너지와의 상호 작용이 느려질 때 반사됩니다. 우리는 맑은 유리가 광원과 각을 이룰 때 반사광을 봅니다. 이는 운전하는 동안 햇빛이 자동차 유리에 바로 비칠 때 생생하게 예증됩니다. 너무 눈부시면 시력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빛은 유리 분자에너지와의 상호 작용에 의해 느려지고, 반사 각도에서 굴절됩니다. 이는 자동차의 절반 정도는 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다른 절반은 자갈길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갈길 쪽은 타이어와 자갈길의 상호 작용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가 느려지는 반면 포장도로 위의 타이어는 느려지지 않습니다. 이 경우 자동차는 자갈길 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우리와 빛 사이에서 유리를 똑바로 세우고는 반사광을 보지 못합니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고 우리가 보는 모든 건 밝은 빛입니다. 이는 도로 위를 운전하다가 자갈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앞바퀴들이 동시에 자갈길과 상호 작용하므로 그 자동차는 길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속도가 늦어집니다.

물리학자이며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 경은 원자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참으로’ 빈 공간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색은 무엇일까? 호박은 정말 오렌지색 분자나 오렌지색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일까? 거기에 실제의 색이란 없습니다. 빛에는 색이 없습니다. 색은 환영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눈에 들어오는 가시광선의 상이한 주파수들을 뇌가 처리하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좋게 지도를 채색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뇌는 수집된 정보를 다양한 색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가시광선은 다양한 진동수들의 혼합입니다. 빛이 같은 주파수를 가진 원자나 분자 속의 전자를 비추면 그 빛은 흡수됩니다. 흡수되지 않은 주파수는 반사됩니다. 눈이 이런 빛의 주파수들을 받아들이며, 뇌는 입수된 것들을 계산하여 색으로 칠합니다. 모든 가시광선이 전부 흡수되면 뇌는 그 부분을 검정색으로 칠합니다.

눈은 눈에 반사된 광자들을 처리하여 그 정보를 두뇌에 전달합니다. 이때 뇌는 그 정보를 우리가 보는 것의 진정한 재현이라고 느끼는 이미지로 처리합니다. 즉 우리 눈에 도달한 빛은 상호 작용한 에너지 형태의 어떤 정보로서 우리 뇌에 전달될 뿐입니다. 우리의 뇌는 빛 에너지가 제공하는 정보를 처리하여 건물과 바위, 땅과 별 등 우주 만물과 같은 물질적 대상으로 그 에너지를 재현해주는 것입니다.

뇌는 유효 에너지의 아주 작은 비율을 알 만한 정보로 전환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뇌는 에너지/정보의 실재를 단순화시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E. 온스타인Robert E. Ornstein(1942-)은 저서 『멀티마인드 Multimind』에서 “우리 세계가 그런 방식으로 보이는 까닭은, 세계가 그래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뇌와 눈은 빛의 좁은 스펙트럼을 포착하며, 실제로 저편에 있는 것을 나타내지는 못해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세계 속에서 활동하도록 도와주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인간과 대부분의 동물들은 가시광선이라는 스펙트럼의 구획을 인지하도록 진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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