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천부적 재능의 예고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계단의 성모>, 1492년경, 대리석 릴리프, 55.9-40cm.
미켈란젤로의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계단의 성모>는 149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일명 ‘밀어 넣은 릴리프 squashed relief’로 불리는 이 작품은 그가 열여섯 살 혹은 그 이전에 제작했다는 데서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으며, 천부적 재능을 시위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것은 조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의 솜씨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아 나중에 보완했거나 아니면 열다섯 살 이전에 이미 돌 깎는 기술을 익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기술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고가의 대리석을 함부로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이는 그가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돌판에 그림을 새긴 듯한, 두께가 얇고 회화적 원근법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실험적이지만, 완숙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단의 성모>는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놀라운 구성 솜씨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높이 55.9cm의 대리석에 성모를 가득 차게 구성했으며, 이런 점은 그의 조각에서 특허와도 같은 요소가 됩니다. 성모는 정방형 토대 위에 앉아 있고, 우미한 옷자락이 주름진 채 아름답게 돌 위로 흘러내립니다. 성모의 옆모습은 가장 이상화된 고전적인 모습으로 둥근 후광 안에 있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천의 주름이 코의 선과 평행을 이뤄 후강을 좀 더 강조해줍니다. 주름진 옷은 작은 폭포처럼 어께를 시작으로 팔을 감아 내려가 다리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 가장자리 프레임에 살짝 닿습니다. 계단 위의 아이들은 관람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보이게 함으로써 원근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약간 떨군 아기의 도톰한 손이 옷 주름 위에 올려 있습니다. 성모의 오른발이 왼쪽 다리 안으로 비스듬히 빠져나와 미켈란젤로가 의도적으로 구성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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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의 <헤롯의 향연>, 1433-35년경, 대리석 릴리프, 50-7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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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의 <성모와 아기>, 1425-28년경, 대리석 릴리프, 33.5-32.2cm.
계단에 앉아 있는 성모라는 주제는 생소한 것으로 메디치 가의 소장품이었던 도나텔로의 <헤롯의 향연>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과 <성모와 아기>를 합성해 제작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해 제작한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 자신이 소장했다가 이후 그의 조카 레오나르도가 그것을 메디치 가에 주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피렌체의 카사 부오나로타(미켈란젤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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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켄타우로스의 전투>, 1492년경, 대리석 릴리프, 33.5-3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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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켄타우로스의 전투>의 부분
약간 볼록한 우유빛 대리석에 제작하면서 전투에 임한 사람들을 모두 누드로 묘사했는데, 고대 미술에 대한 관심의 결과로 보이며, 격렬한 전투에 주된 인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람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구성 자체에 관심을 쏟았음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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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켄타우로스의 전투>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천부적 재능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작품이 <켄타우로스의 전투>이며, 이것 역시 149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단의 성모>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대리석에 릴리프로 회화와 같은 효과를 낸 것으로 보아 그가 일찍이 회화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알게 해줍니다. 15세기의 거장 도나텔로가 이런 릴리프를 많이 제작했으며, 어린 미켈란젤로는 거장과 솜씨를 겨루기라도 하듯 일찍이 릴리프를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켄타우로스의 전투>는 운반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대리석 작품으로 <계단의 성모>보다 세 배 이상 크며, 거장 도나텔로의 많은 작품들보다 큽니다. <켄타우로스의 전투>에서는 <계단의 성모>에서와는 달리 공간의 깊이를 따로 창조하지 않고 사람들이 겹치고 겹치는 가운데 절로 공간의 깊이가 생기게 했으며, 사람들을 가득 새기면서 상단의 빈 여백을 거친 모양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미켈란젤로가 공간의 모호함을 해소하지 못하고 일관성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상단에 거칠게 남긴 부분은 의도적인 것으로 건축에서 미완성으로 남기는 요소를 사용한 듯 보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고대 로마 석관의 구성을 취한 적으로 보아 그가 피사 근처에 잇는 많은 석관들을 보고 연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작품의 주제에 관해 콘디비는 <데자니라의 강간>으로 보았으며, 바사리는 <헤라클레스와 켄타우로스>라고 적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켄타우로스의 전투>로 봅니다. 이 제목이 타당한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더라도 이 릴리프는 사람들이 전투에 휩쓸려 몸과 몸이 겹치고 겹쳐져서 혼돈을 이루고 있으며, 왼쪽의 두 사람은 난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향해 막 돌을 던지려는 공세를 취하고 있어 전투상황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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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도 디 조반니의 <기마병들의 전투>, 1475년경, 청동 릴리프, 4.3-9.9cm.
전투장면은 당시 흔한 주제로 베르톨도 디 조반니Bertoldo di Giovanni(1435/40-91)의 <기마병들의 전투>가 메디치 궁전에 있었으므로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늘 보았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무기와 갑옷이 등장하는 전투장명을 표현하지 않고 목욕하던 병사들이 경계신호를 듣고 허겁지겁 물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장면이 기념비적인 벽화로 그려질 수 있었다는 데서 당시 피렌체인들의 예술적 취향이 매우 발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파른 강둑을 기어오르고 무릎 꿇고 몸을 이래로 굽히며 용감하게 일어나 갑옷을 입고 외치거나 달려가는 등 다양한 동작들을 묘사하는 가운데 벌거벗은 신체들을 표현했습니다. 피렌체 예술가 중 해부학에 능한 사람들은 벌거벗은 남자들의 전투장면을 기꺼이 묘사했습니다.
안토니오 델 폴라이우올로는 이런 장면을 동판화로 두 점 제작했으며, 베로키오는 집의 정면에 벌거벗은 전투자들을 장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미켈란젤로의 작품에는 모든 동작이 새롭게 창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다양한 움직임을 묘사할 수 있었던 건 해부학에 상당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단의 성모>와 이 작품은 과거에도, 그리고 미켈란젤로 동시대에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