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우주는 완전 대칭의 상태에서 시작했다


 
20세기 초 당시로서는 최대 구경의 반사 망원경이 윌슨 산 정상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망원경이 먼 은하들의 적색 이동 현상을 발견하게 해주었지만, 당시에 이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윌슨 산 정상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시가 멀리 내려다보이는데, 그때는 악명 높은 스모그도 없었고 시가지의 야간 조명 또한 미미한 수준이어서 윌슨 산의 밤하늘은 맑고 어두워 천문 관측이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천문대 건설 당시 망원경의 거대한 부품들을 산 정상으로 옮기는 데 노새들이 동원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자 영국 유학을 마친 에드윈 허블Edwin Hubble(1889-1953)이 윌슨 산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천문학계 바깥에 발이 넓으며, 세련된 매너를 갖춘 미남이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단 1년 간 로즈 장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익힌 영국식 억양을 자랑스레 구사한 인물이었습니다. 나선 모양의 성운들이 ‘섬 우주island universe’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이 바로 허블입니다. 섬 우주는 우리 은하와 같이 수많은 별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인데, 허블은 어떤 부류의 별들의 절대 고아도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 먼 은하들의 거리를 측정했습니다. 거리 측정에 쓰이는 이런 부류의 천체들을 우리는 ‘표준 초standard candle’라고 부릅니다.

은하 하나에서 오는 빛은 그 은하를 이루는 수십억 개의 별들이 방출하는 빛의 총합입니다. 별에서 비교적 온도가 낮은 외곽부의 대기는 별 내부에서 나오는 특정 파장들의 빛을 흡수하여 스펙트럼 사진에 여러 개의 흡수선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 스펙트럼의 파장을 측정하면 별의 대기를 구성하는 화학 조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도 우리 태양과 같은 성분의 물질로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적색 이동을 가장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방편은 이것이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의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도플러 효과란 파동을 발생시키는 파원과 그 파동을 관측하는 관측자 중 하나 이상이 운동하고 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파원과 관측자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 때에는 파동의 주파수가 더 높게, 거리가 멀어질 때에는 파동의 주파수가 더 낮게 관측되는 현상입니다. 적색 이동은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력으로 후퇴한다는 추론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있는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허블의 발견은 우주의 기원이 대폭발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적색 이동이 우주 팽창의 유일한 증거는 아닙니다. 적색 이동과는 별도로 우주 배경 복사도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는 중요한 관측 사실입니다. 하늘의 어느 방향을 보든 미약한 세기의 전파 신호가 잡힙니다. 잡힌 전파 신호의 세기가 파장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하면, 이 신호를 내는 물질의 온도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에서 측정한 온도가, 식어버린 화구 온도의 추정 값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우주 배경 복사 역시 우주 팽창의 훌륭한 증거가 됩니다. 정밀한 전파 망원경을 U-2 비행기에 실어서 지구 대기의 최상부로 올려 보내 하늘의 모든 방향을 세밀하게 관측하고 거기서 얻은 결과를 부차적으로 근사 분석하니 우주 배경 복사의 세기가 완벽에 가까운 대칭적 분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대폭발 순간에 화구가 모든 방향으로 일정하게 팽창했다고 미루어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우주는 완전 대칭의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관측 결과를 좀 더 정밀한 방법으로 분석하니 우주 배경 복사에 약간의 비대칭성이 드러났습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우리 은하수 은하가 자신이 속해 있는 국부 은하군의 다른 은하들과 함께 처녀자리 은하단 방향으로 초속 600km 이상의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앞으로 드러난 이 비대칭성은 대부분 깨끗하게 설명된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의 속력이면 우리는 100억 년 이내에 처녀자리 은하단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은하의 연구가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처녀자리 은하단은 여태껏 알려진 은하단들 중에서 구성원이 가장 많은 초대형의 은하단으로서 나선 은하, 타원 은하, 불규칙 은하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우주의 보석상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은하는 처녀자리 은하단으로 돌진하고 있는 걸까? 우주 배경 복사를 고공에서 관측한 조지 스무트George Fitzgerald Smoot III(1945-)와 그의 동료들은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력 작용으로 우리 은하수 은하가 이 은하단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라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20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스무트는 그 은하단 내부에 여태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은하들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 은하단이 차지한 공간 역시 20억 광년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관측 가능한 우주가 수백억 광년의 규모라는 것과 처녀자리 은하단의 크기가 20억 광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먼 거리에 비슷한 규모의 초은하단들이 또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탄생 초기에 물질 분포의 비균질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라서 지금의 처녀자리 초은하단 정도의 질량을 끌어 모으기에는 우주의 나이가 충분치 않습니다. 따라서 스무트는 대폭발 당시 우주의 물질 분포에는 상당한 수준의 비균질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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