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가 떼 지어 덤벼도 인간의 뇌를 당해낼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릅니다. 슈퍼컴퓨터가 떼 지어 덤빈다 해도 인간의 뇌를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1.5kg도 안 되는 뇌는 전구 하나보다도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면서 100억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과 맞먹는 정보를 저장하고, 동시에 50조 개의 세포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전기적 활동을 통제합니다. 슈퍼컴퓨터 1천 대를 합친다 해도 의식을 생성하기는커녕, 하나의 뇌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인지 작용이나 창의적인 기능조차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들이 상호 작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트랜지스터도 다른 트랜지스터들과의 연결을 강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들과의 연결을 강화하여 장기기억을 생성합니다. 특정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면 다른 신경세포들과의 특별한 연결이 강화됩니다. 게다가 뇌에서는 현재의 컴퓨터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수백 종의 화학물질들이 의사소통에 관여합니다. 우리의 뇌는 그 얼개와 작용이 컴퓨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복잡합니다.

우리는 배우고 자각하며, 패턴과 모양과 음영을 구분하고, 추상적인 예술작품 속에서 형상과 상징을 해석해냅니다. 우리는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미각과 후각 같은 감각을 활용하며 기억을 회상합니다. 우리는 기억의 창고에 빠르게 접속하여 기억을 참고로 행동을 취합니다. 대부분의 컴퓨터는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인간의 뇌와 컴퓨터의 작업 방식 사이에 일부 유사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컴퓨터는 우리의 유픽셀들이 만들어내는 사고와 마음의 세계처럼 진정한 통찰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레오킴은 우리의 뇌가 원시 파충류와 포유류 뇌의 특징도 유지하고 있다면서, 파충류의 뇌는 소화, 순환, 호흡, 생식 같이 생존에 필요한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합니다. 원시 포유류의 뇌는 그보다 조금 더 정교합니다. 원시 포유류의 뇌에는 감정을 조절하고, 동작을 통제하고, 투쟁-도주반응Fight or Flight reaction[갑작스런 자극에 대해 투쟁할 것인가 도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본능적인 반응]을 관장하는 변연계(또는 중뇌)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좀 더 수준이 높은 뇌 기능 덕에 원시 포유류는 많은 파충류들을 멸종으로 내몰 수 있었습니다.

인간과 영장류와 동물들의 뇌에는 대뇌피질이라는 제3의 요소가 있으며, 대뇌피질은 약 3mm 두께의 주름진 층으로 뇌의 상부와 전면을 덮고 있습니다. 대뇌피질은 우리에게 언어 능력과 수리 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선사하며 기억력과 창의력 발달에도 관여합니다.

이 세상에 같은 뇌는 하나도 없습니다. 출생 전후의 영양 상태, 약물, 알코올, 유전자 같은 요인들은 뇌의 건강에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아인슈타인의 뇌에는 흥미롭게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뇌에는 일반인에게 있는 뇌 주름이 하나 없는 대신 보통은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뇌 주름 두 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덕에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소통이 더 빠르고 쉽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호를 확장하는 뇌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뇌에 대한 수많은 저서를 펴낸 심리학자 로버트 온스타인Robert E. Ornstein(1942-)은 이런 이들을 “하이-게인 피플High-Gain peop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고요와 고독을 좋아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로우 게인 피플Low-Gain people”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초적인 자극을 추구합니다.

지문과 마찬가지로 뇌의 다양성은 인간들이 저마다 독특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하드웨어는 어떻게 배우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인지하고, 말하고, 상상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얻고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내는 걸까?

우리는 크기와 무게가 성인 뇌의 1/4에 불과한 뇌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신생아는 성인과 거의 비슷한 수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뇌의 크기와 무게가 더 증가해야 할까?

아기의 뇌는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덜 된 뇌와 같습니다. 신경세포들은 출생 이후로 계속 사멸과 재조합 과정을 거칩니다. 뇌의 크기와 무게가 증가하는 이유는 신경세포가 팽창하고, 뇌 세포 사이의 연결이 늘어나며, 신경세포들이 변형되고, 수십 억 개의 아교세포가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뇌에 양분을 공급하는 혈관들이 새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뇌가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조직화되고 발달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시각 발달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온스타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각 계통은 출생 시점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인체의 발달과 함께 변해가는 머리의 크기에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태를 재평가하고 변화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시각 계통이 변화하지 않고 출생 시점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의 뇌에서는 혈관이나 아교세포 생성 같은 세포의 변화와 함께 세포 사이의 연결도 강화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배움과 인격 형성의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5세 아동의 뇌는 성인 뇌의 90%에 달하는 크기가 된다. 침팬지는 22개월만 돼도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침팬지의 뇌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에 뇌세포가 적절히 연결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이해하며 존재의 목적을 사유하고 영적인 존재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라면 아이의 뇌가 자라나는 몇 년 동안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보호를 받은 아이들이 더 많이 생존했고, 우리는 그러한 진화의 혜택을 입은 조상들의 후손입니다.

출생 9~4개월의 아이는전착상 약 3주 후부터 뇌가 형성되고 신경세포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1분당 약 50만 개의 신경세포 생기고, 착상 후 60일경에는 전뇌, 중뇌, 후뇌 구분 가능해집니 출생 5개월 전 아이에게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기는 속도 다소 감소합니다.1분당 약 25만 개의 신경세포가 생깁니다. 출생 시아이는 1천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와 아교세포 보유합니다. 척수와 뇌간 구성이 완료됩니다. 뇌 무게는 약 400g이며, 성인과 같은 수의 신경세포 보유합니다. 뇌간과 척수가 신체 기능 조절에 관여합니다. 1~3개월의 아니는 소뇌와 중뇌의 세포 변형이 일어납니다. 아교세포가 추가됩니다. 신경세포 연결 발달 및 확장되고, 신생 혈관이 추가됩니다. 3개월~1년생후 약 1년경의 아이는 전뇌와 대뇌피질에 변형이 시작되며,동작 조절 및 감각 처리 발달이 시작됩니다. 1~20년의 사람의전뇌와 대뇌피질은 연속적으로 발달합니다.인지, 기억, 판단, 언어 기능이 1차적으로 발달하고, 이후에 계획 능력 발달 및 인격이 성숙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렌초 데 메디치가 타계하다


작품을 Daum'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로렌초 데 메디치의 흉상>


309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임종>


미켈란젤로가 <계단의 성모>와 <켄타우로스의 전투>를 제작하면서 조각가로서의 길을 걸으려고 노력하던 때 피렌체의 지도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렌초는 아내가 사망한 후 정성을 다해 일곱 명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그들의 결혼을 통해 피렌체에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장남 피에로 데 로렌초를 오르시니 가문의 여자와 결혼시켜 로마에 친구들을 만들어두었으며, 막내아들 줄리아노를 사보이의 공녀와 결혼시켜 프랑수아 1세로부터 느무르의 공작 칭호를 받게 했으며, 프랑스와 피렌체 사이에 다리 놓는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성격이 좋고 예의바르며, 라틴어에 능통하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둘째 아들 조반니는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로렌초는 이노켄티우스 8세로 하여금 선례를 깨뜨리고 열네 살인 둘째 아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하게 했습니다.

로렌초는 늙으면서 관절염과 팔 다리 염증에 시달렸고, 열서너 차례에 걸쳐 다양한 치료를 받았지만, 고통을 더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적인 일과 사업을 장남 피에로에게 물려주고 시골로 내려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평화로운 생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잠시, 1492년 3월 21일 복부의 통증이 매우 심해지자 전문 의사들이 달려가 그에게 보석들을 마시게 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로렌초는 미란돌라와 폴리자노에게 자신이 더 이상 고대 사본들을 수집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 사제를 불러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했지만, 사제는 로렌초가 자유를 파괴하고 잚은이들을 부패하게 했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로렌초는 서둘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불러들였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것, 더 살게 되면 삶의 태도를 바꾸겠다고 약속할 것,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 등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에게 서운하게 대했던 로렌초가 미켈란젤로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로렌초는 특별히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해주었으며, 일찍이 그의 보호 아래 들어간 미켈란젤로는 정신적으로 그에게 의지했습니다. 1492년 4월 9일 43살의 로렌초가 타계하자 미켈란젤로는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셈이었습니다. 콘디비는 로렌초의 타계가 예술가로서의 미켈란젤로가 맞이한 첫 시련의 국면이었으며, 미켈란젤로는 슬픔이 커서 한동안 작업을 할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로렌초의 타계와 함께 미켈란젤로의 정기적인 수입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경우 예술가들은 보통 기존 예술가의 작업장에 소속되어 조수로 일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작업장을 열고 스스로 일감을 찾아야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새로운 후원자를 물색했습니다. 자신의 작업장을 갖는다는 건 집세를 내고 재료를 사들여야 하며 일감을 얻기 위해 경쟁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는데, 열일곱 살의 그로서는 이런 일들을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312

요하네스 데 케탐의 <인체해부>, 1493, 채색목판화, 30.4-20.6cm.


미켈란젤로는 1492-93년 겨울 해부를 통해 인체를 연구했는데, 당시 해부는 감독자 하에 숙련된 의사의 해부장면을 보면서 연구하는 것으로 겨울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해부를 금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교회가 금한 건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에서 해부학을 공부했습니다.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의 부원장 조반니 비키엘리니는 미켈란젤로가 해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수도원의 방 하나를 사용하도록 선처했습니다. 그는 해부를 통해 인체를 연구했으며, 주로 사람보다는 동물을 더 많이 해부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회화와 조각을 위해 해부한 것이지 해부학을 위해 한 건 아니었으므로 근육과 뼈의 구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콘디비는 그가 1553년까지 해부했고, 그의 해부학적 지식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정도에 그쳤을 뿐 상세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313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처형>, 1492-93년경, 나무에 채색, 135-135cm.

피렌체의 카사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의 부원장 조반니 비키엘리니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수세기 동안 사라졌다가 1962년에 발견되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두꺼운 칠이 입혀 있었습니다.


콘디비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이 시기에 <십자가 처형>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 조각은 근래 산토 스피리토 수도원에서 발굴된 것으로 그의 유일한 나무조각입니다. 현재의 이 작품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원작에는 그리스도의 허리에 옷이 걸쳐져 있었을 것이나 현존하지 않으며, 이마에 패인 부분으로 미뤄 가시관이 머리에 얹혀져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킹, TV에서 우주배경복사를 볼 수 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아인슈타인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가는 가능성은 허블의 논문이 발표되기 전, 아인슈타인 자신의 방정식에서 도출된 이론적 근거를 발판으로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 알렉산데르 프리드만Alexander Alexandrovich Friedman(1888-1925)은 1922년에 수학을 대폭 단순화하는 두 전제를 기초로 삼은 모형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했습니다. 두 전제란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우주의 모습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프리드만은 두 전제에 기초하여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발견했습니다. 프리드만의 모형 우주는 크기 제로에서부터 팽창하며, 중력 때문에 팽창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다시 수축합니다. 프리드만은 이 연구를 하고 몇 년 후 타계했으며, 그의 생각은 허블의 발견이 있기까지 대체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1927년 물리학 교수이며 로마 가톨릭 성직자인 조르주 에두아르 르메트르George Edouard Lematre(1894-1966)가 비슷한 생각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우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주는 점점 더 작아지고 마침내 창조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한 창조 사건을 우리는 빅뱅big bang이라고 부릅니다.

빅뱅이란 단어는 194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1915-2001)이 정적인 우주를 믿으면서 빅뱅 이론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는 1965년에야 나왔습니다. 그 해에 발견된,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희미한 마이크로파microwave 배경복사가 그 증거였습니다. 이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CMBR(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는 전자레인지에서 작동하는 마이크로파와 같지만 훨씬 약합니다.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를 직접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켠 뒤 사용되지 않는 채널을 틀면 볼 수 있습니다. 어지러운 점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의 몇 %가 우주배경복사로 인한 것입니다. 우주배경복사는 마이크로파 안테나에 항상 끼어드는 잡음을 제거하려고 애쓰던 1925년에 설립된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의 과학자 두 명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처음 그들은 그 잡음이 안테나ㅣ에 둥지를 튼 비둘기들의 배설물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 잡음의 기원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직후의 아주 뜨겁고 조밀했던 우주가 남긴 복사입니다. 그 시절의 복사가 우주 팽창 과정에서 식어 오늘날 우리가 관찰하는 희미한 마이크로파가 된 것입니다. 현재의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가 음식물을 데운다면 절대영도보다 겨우 3도 높은 섭씨 영하 270도까지 데울 수 있습니다.

우주의 물질 총량에서 헬륨이 차지하는 비율을 관찰한 결과와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매우 이른 초기의 우주에 관한 빅뱅 이론의 기술을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증거들입니다.

우주의 팽창의 첫 단계를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inflation(급팽창)이라고 부릅니다. 우주의 인플레이션 기간에 우주는 10-35초 동안 1030배로 팽창되었습니다. 이는 지름 1cm 동전이 갑자기 우리 은하의 넓이보다 1천만 배나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아무것도 빛보다 빠르게 운동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상대성이론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상대성이론의 속도 제한은 공간 자체의 팽창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만물에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에너지와 인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 속에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의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치료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일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우리는 현대 의료장비를 사용하여 체내에서 양성자를 펌프질하고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작은 세포 주머니들을 측정해내고 스스로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란 보편적인 은유입니다. 왜냐하면 현대 과학은 이미 생체 에너지를 측정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생명을 비롯한 만물에 에너지가 깃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에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이란 근육을 움직이거나 생각을 하거나 신체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음식과 음료를 섭취함으로써 인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칼로리를 얻습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우리가 단순히 열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칼로리를 연소하는 화학 반응 주머니의 집합체가 아니라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체의 세포들은 모두 저마다 전기 에너지를 생성하며, 이 에너지가 유픽셀이나 양자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말합니다.

세포의 전기 에너지로 인해 인체는 심장의 상태를 진단하는 심전도와 뇌 스캔에 사용하는 뇌전도에 나타나는 전자기장을 형성합니다. 뇌전도는 대뇌피질에서 생겨나는 전기 활동을 기록하며 두피에 20개 이상의 전극을 붙여 측정합니다. 심전도는 심장의 전기적 활동에 의해 인체의 표면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전압을 감지, 증폭, 기록하는 전압 센서를 통해 측정합니다. 이를 통해 얻은 기록은 심장의 전기적 출력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에너지는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합니다. 심전도와 뇌전도가 비정상이면 환자에게 병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심전도와 뇌전도 모니터에 파동이 나타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니터에 파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의식과 마음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이상은 오히려 치유의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인체의 전기적 특성을 주창한 의사, 로버트 베커Robert Becker(1923-2008)는 인체의 에너지를 이해하면 의학과 과학에 일대 혁명이 일어나며 자가치유의 길도 열리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발견들이 생물학과 의학의 혁명을 예고한다고 믿는다. …… 이 신지식은 의학을 더 위대한 겸손의 경지로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체 기관에 있는 자가치유의 잠재력을 발견하면 지금껏 우리가 이룬 모든 의학적 업적들이 빛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체의 복잡한 네트워크는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들과 거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뇌는 에너지를 정보로 바꿉니다. 뇌는 어떻게 에너지를 정보로 전환할까? 뇌의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들은 현재 중요한 연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뇌의 전체적인 네트워크는 뇌와 인체 사이의 네트워크와 뇌세포 간의 복잡다단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에너지와 전기장도 생겨납니다. 뇌를 이해하려면 세포 연접과 유전자, 환경, 그리고 복잡한 네트워크 등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세포는 1초당 1천 회까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경세포가 활성화될 때는 매번 이온이 방출되면서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합니다. 각 신경세포는 1천~1만 개의 시냅스synapse를 통해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냅스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부에 있는 미세한 간극으로,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해 신경 활동을 서로 전달합니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유전학자 딘 해머Dean Hamer(1951-)는 뇌 속에 줄잡아 1010,000,000,000개의 정보처리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추정합니다. 정보처리 시스템이란 기억과 사고를 포함한 뇌의 다양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는 뇌의 힘을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뇌는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황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고처리 과정을 충분히 조절하고도 남는 계산력을 가지고 있다.

네트워크에는 다양한 중심점이 있습니다. 뇌의 네트워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발전하고 변화합니다. 신경세포는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세포 그 자체가 뇌의 중심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뇌에서는 끊임없이 신경세포가 죽어나갑니다. 그러므로 뇌의 중요한 영역들이 계속 작동하려면 수많은 경로가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뇌에서 넓은 부분이 파괴되거나 없어진다 해도 기억과 기능은 기존의 경로들을 대신하는 대체 경로를 통해 보존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해 보이는 잉여부분이라도 뇌의 기능과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터넷도 이와 비슷합니다. 인터넷은 수백만 개의 중심점, 즉 컴퓨터가 공존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이며, 컴퓨터 사이의 연결이 파괴됐을 때를 대비한 여분의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서도 네트워크의 상당부분이 손상되거나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기능은 보존됩니다. 예컨대, 초당 수조 비트에 달하는 정보를 전송하는 유럽의 중요한 광케이블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새로운 경로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기능을 유지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마누엘 칸트의 빤한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


 
칸트는 콩스탕과 교류하기 몇 년 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습니다. 왕과 검열관은 종교에 관한 칸트의 글을 읽고 그가 그리스도교를 우습게 본다고 판단해, 그 주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했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소인은 폐하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앞으로 종교에 관해 공개강의를 일절 삼가고 논문도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칸트는 이 말을 지어낼 즈음 왕이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뒤 왕이 죽자, 칸트는 이 약속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폐하의 충직한 백성”일 때만 해당되는 약속이었으니까. 훗날 칸트는 “영원히가 아니라 폐하가 살아 있는 동안만 ... 자유를 빼앗기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정직함을 대표하는 이 인물은 상황을 영악하게 피해간 덕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검열관을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의 차이란 무엇일까? 둘 다 의도는 같다. 그렇지만 용의주도하게 회피하는 말은 빤한 거짓말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위무에 경의를 표합니다. 거짓말을 피하고, 상대를 오도하지만 엄밀히 따져 진실인 말을 애써 꾸며내는 사람은 비록 애매할지라도 도덕법에 존중을 표하는 셈입니다.

오도하는 진실에는 두 가지 동기가 담겨 있습니다. 살인자에게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곤경에 빠진 친구를 보호하려는 한 가지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렇지 않고 살인자에게, 얼마 전에 친구가 가게로 가는 걸 봤다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친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진실 말하기라는 의무를 지지하는 두 가지 동기가 담겨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친구를 보호한다는 칭찬할 만한 목적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의무 수행이라는 동기에 따라 이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는 두 번째뿐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빤한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을 구별하는 건 칸트의 도덕 이론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과 달리 칸트는 정치론에 관해 이렇다 할 저술을 남기지 않은 채, 몇 편의 수필만을 썼을 뿐입니다. 그러나 윤리를 다룬 글에 담긴 도덕과 자유에 관한 설명에는 정의를 함축하는 힘 있는 주장이 나타납니다. 칸트는 그 함축적인 내용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가 옹호한 정치론은 공리주의를 거부하고 사회계약을 기초로 한 정의론을 지지랍니다.

우선 칸트는 공리주의를 개인 도덕성의 기초만이 아니라 법의 기초로서도 거부합니다. 그가 보기에, 공정한 헌법이라면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공리는 기본권 결정에 “결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라는 경험적 목적에 관해, 그리고 행복의 구성요소에 관해 저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공리는 정의와 권리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공리를 권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행복에 관한 여러 견해 가운데 사회가 어느 하나를 지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만의 목적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가 무시됩니다. “어느 누구도 나더러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치론에 나타난 두 번째 두드러진 특징은 정의와 권리를 사회계약에서, 다소 특이한 사회계약에서 도출한다는 점입니다. 존 로크를 비롯해 사회계약을 주창한 초기 사상가들은 합법 정부는 사회계약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때 사회계약은 자신이 포함된 집단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정한 사람들이 결정합니다. 그러나 칸트는 계약을 달리 봅니다. 합법 정부는 맨 처음 만들어진 원초적 계약을 기반으로 해야 하지만, “이 계약이 ... 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원초적 계약이 진짜가 아닌 상상의 계약이라고 주장합니다.

샌델은 공정한 헌법이 상상의 계약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이유는 국가가 형성된 이래 사회계약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아며, 도덕 원칙이 경험한 사실에서만 나올 수 없다는 철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도덕법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듯이, 정의의 원칙도 공동체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헌법에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헌법이 지금도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상상의 계약이란 “이성이라는 관념”입니다. “관념이지만 거기에는 의심할 바 없는 실제 현실성이 담겨 있다. 그 이유는 입법자들에게, 국가 전체의 뜻을 통일한다면 어떤 법이 만들어질까를 고려해 법의 틀을 짜도록 명령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각 시민에게는 “동의한 듯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집단적 동의라는 상상의 행위가 “모든 공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잣대”라고 결론짓습니다.

칸트는 상상의 계약이 어떤 모양새이어야 하는지, 혹은 우리가 어떤 정의의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두 세기가 지나,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1921-2002)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롤스는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1971)에서 공리주의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정의 원리를 “공정으로서의 정의론”으로 전개했습니다.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격차원리隔差原理’를 주장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