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누엘 칸트의 빤한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


 
칸트는 콩스탕과 교류하기 몇 년 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습니다. 왕과 검열관은 종교에 관한 칸트의 글을 읽고 그가 그리스도교를 우습게 본다고 판단해, 그 주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했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소인은 폐하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앞으로 종교에 관해 공개강의를 일절 삼가고 논문도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칸트는 이 말을 지어낼 즈음 왕이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뒤 왕이 죽자, 칸트는 이 약속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폐하의 충직한 백성”일 때만 해당되는 약속이었으니까. 훗날 칸트는 “영원히가 아니라 폐하가 살아 있는 동안만 ... 자유를 빼앗기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정직함을 대표하는 이 인물은 상황을 영악하게 피해간 덕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검열관을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의 차이란 무엇일까? 둘 다 의도는 같다. 그렇지만 용의주도하게 회피하는 말은 빤한 거짓말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위무에 경의를 표합니다. 거짓말을 피하고, 상대를 오도하지만 엄밀히 따져 진실인 말을 애써 꾸며내는 사람은 비록 애매할지라도 도덕법에 존중을 표하는 셈입니다.

오도하는 진실에는 두 가지 동기가 담겨 있습니다. 살인자에게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곤경에 빠진 친구를 보호하려는 한 가지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렇지 않고 살인자에게, 얼마 전에 친구가 가게로 가는 걸 봤다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친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진실 말하기라는 의무를 지지하는 두 가지 동기가 담겨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친구를 보호한다는 칭찬할 만한 목적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의무 수행이라는 동기에 따라 이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는 두 번째뿐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빤한 거짓말과 오도하는 진실을 구별하는 건 칸트의 도덕 이론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과 달리 칸트는 정치론에 관해 이렇다 할 저술을 남기지 않은 채, 몇 편의 수필만을 썼을 뿐입니다. 그러나 윤리를 다룬 글에 담긴 도덕과 자유에 관한 설명에는 정의를 함축하는 힘 있는 주장이 나타납니다. 칸트는 그 함축적인 내용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가 옹호한 정치론은 공리주의를 거부하고 사회계약을 기초로 한 정의론을 지지랍니다.

우선 칸트는 공리주의를 개인 도덕성의 기초만이 아니라 법의 기초로서도 거부합니다. 그가 보기에, 공정한 헌법이라면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공리를 극대화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공리는 기본권 결정에 “결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행복이라는 경험적 목적에 관해, 그리고 행복의 구성요소에 관해 저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공리는 정의와 권리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공리를 권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행복에 관한 여러 견해 가운데 사회가 어느 하나를 지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만의 목적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가 무시됩니다. “어느 누구도 나더러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치론에 나타난 두 번째 두드러진 특징은 정의와 권리를 사회계약에서, 다소 특이한 사회계약에서 도출한다는 점입니다. 존 로크를 비롯해 사회계약을 주창한 초기 사상가들은 합법 정부는 사회계약에서 탄생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때 사회계약은 자신이 포함된 집단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정한 사람들이 결정합니다. 그러나 칸트는 계약을 달리 봅니다. 합법 정부는 맨 처음 만들어진 원초적 계약을 기반으로 해야 하지만, “이 계약이 ... 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원초적 계약이 진짜가 아닌 상상의 계약이라고 주장합니다.

샌델은 공정한 헌법이 상상의 계약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이유는 국가가 형성된 이래 사회계약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기 때문아며, 도덕 원칙이 경험한 사실에서만 나올 수 없다는 철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도덕법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듯이, 정의의 원칙도 공동체의 이익이나 욕구에 좌우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헌법에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헌법이 지금도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상상의 계약이란 “이성이라는 관념”입니다. “관념이지만 거기에는 의심할 바 없는 실제 현실성이 담겨 있다. 그 이유는 입법자들에게, 국가 전체의 뜻을 통일한다면 어떤 법이 만들어질까를 고려해 법의 틀을 짜도록 명령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각 시민에게는 “동의한 듯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집단적 동의라는 상상의 행위가 “모든 공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잣대”라고 결론짓습니다.

칸트는 상상의 계약이 어떤 모양새이어야 하는지, 혹은 우리가 어떤 정의의 원칙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두 세기가 지나,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1921-2002)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인 롤스는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1971)에서 공리주의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정의 원리를 “공정으로서의 정의론”으로 전개했습니다.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격차원리隔差原理’를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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