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주목한 작품 레오나르도의 <성모자와 성 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성 모자와 성 앤>, 패널에 유채, 168-130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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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 모자와 성 앤을 위한 습작>, 1501년경, 21.8-16.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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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오른쪽으로 얼굴을 4분의 3을 향한 성모의 머리>, 20.3-1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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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코 사이를 확대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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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의 붉은색을 더욱 확대한 이미지


이사벨라 측근의 말로는 1501년 4월 레오나르도는 세르비테 가족이 주문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바사리의 기록에는 레오나르도가 <성 모자와 성 앤> 을 그리고 있을 때 그것을 보러 온 모든 화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며,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틀 동안이나 몰려와 마치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보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작품의 완전함에 망연해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 사람은 산을 배경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일체를 이룹니다. 이 작품을 위한 습작을 보면 성모는 어머니 앤의 무릎 위에 앉아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을 상징하는 양에 올라타려고 하는 아기 예수를 오른팔로 안고 있고 앤은 딸의 팔을 잡으려고 몸을 성모에게 약간 기대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가 이 작품에서 모성애를 찬양하고 있다면서 성모와 앤이 비슷한 나이의 모습으로 일체가 되게 묘사했음을 지적하고, “레오나르도가 아기 예수에게 어머니로서의 행복에 도취되어 축복의 미소를 짓는 우아한 두 어머니를 선사했다”고 적었습니다. 더러 학자들은 성모자와 앤을 레오나르도와 그의 친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피에로의 첫 번째 아내와 연관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레오나르도가 두 여인을 그림 속에서 한데 어우러지게 했다는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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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성 모자와 성 앤, 그리고 세례 요한을 위한 습작>, 1501-06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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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양을 붙들고 있는 갓난아기 습작>, 21-1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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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 모자와 성 앤을 위한 습작>, 1503, 17.23-24.5cm.


성모자와 성 앤이라는 주제는 마사초 등 몇몇 화가들에 의해 그려져 왔던 것입니다. 외경에는 성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3의 인물로 성모의 어머니 앤이 등장하고 성모와 앤, 그리스도가 삼위일체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세 사람을 피라미드 구성으로 화면 아래에 다리가 셋이 보이도록 했고 세 사람을 겹겹이 한 덩이가 되게 했습니다. 신학적 사고도 고려하여, 아기 예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십자가에 처형되는 희생이 정해져 있음을 양을 통해서 표현했습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드로잉의 경우 레오나르도는 아기 예수가 양 대신 세례 요한과 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니어서 다시 양으로 고쳐 그렸습니다. 성모는 우수에 젖은 얼굴로 상징적인 이 동물과 노는 아기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려고 하고 앤은 이미 예정된 희생임을 알고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성모자와 성 앤>은 9년이나 걸려 그렸으면서도 배경의 풍경과 성모의 파란색 겉옷을 완성시키지 않아 미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이 작품은 피렌체에서 소개되었고 나중에 프랑스로 옮겨졌다고 하나, 언제 그곳으로 운반되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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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이의 <성 모자와 성 앤>, 1520년경, 레오나르도의 작품 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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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이야기: 벤틀리의 역설Bentley‘s Paradox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2~1727)은 1687년에 그 유명한 논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출간했습니다. 이를 줄여서 『프린키피아 Principia』라고 합니다. 이 논문으로 인해 천체운동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건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프린키피아』는 우주의 생성과정에 대해 다양한 역설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프린키피아』를 출간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뉴턴은 자신의 중력이론에 풀리지 않는 역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692년 성직자였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1662~1742)는 뉴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중력이라는 것이 잡아당기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면 은하를 이루고 있는 모든 별은 결국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와해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곳은 고요하고 정적인 무대가 아니라 모든 별이 한데 뭉개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벤틀리는 반대의 경우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무한하다면 임의의 물체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는 힘도 무한할 것이므로 이 경우에도 모든 별은 조각조각 찢어지면서 혼돈에 찬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벤틀리는 중력이론을 우주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역설적 결과를 최초로 지적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비판적 통찰력과 폭넓은 지식을 겸비한 벤틀리는 1694년에 왕립도서관 관장이자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170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의 학장에 선임되었으며, 1717년에는 신학부의 흠정欽定교수가 되었습니다. 학장으로 재임한 동안 그는 교수진과 마찰과 법정소송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오만한 기질로 동료교수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그들이 여러모로 그를 내좇으려고 했으며, 그로 인해 그 후 30년 동안 논쟁과 반목 속에 휘말렸습니다. 그러나 벤틀리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고전연구를 계속했으며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했습니다.

벤틀리의 편지를 읽고 한동안 심사숙고한 뉴턴은 다음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하나의 별이 무한히 많은 다른 별들에 의해 당겨지고 있다면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서로 상쇄될 것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들도 동일한 원리로 상쇄될 것입니다. 모든 별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정적인 우주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습니다. 뉴턴은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한다는 가정 하에서 벤틀리의 역설을 피해가면서 이 우주가 “무한하면서 균일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벤틀리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제 논리에 틀린 점이 없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아님을 인정하겠습니다.

뉴턴이 생각했던 ‘무한하면서 균일한 우주’는 불안정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매우 불안하여 우주에서 별 하나가 요동을 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와해되어 결국 우주전체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붕괴됩니다. 뉴턴은 신의 전능한 힘이 이런 대형 사고를 막아주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태양과 항성들이 중력에 의해 한 지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전지전능한 신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뉴턴에게 우주는 탄생초기에 신이 태엽을 감아놓은 시계와도 같았습니다. 이 시계는 뉴턴이 발견한 운동법칙에 따라 태엽이 풀리면서 매순간마다 특정시간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시계라면 한번 태엽을 감아놓은 후 더 이상 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뉴턴은 우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한 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가끔씩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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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를 꺾은 레오나르도의 자존심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1500년 4월 피렌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그의 나이 마흔여덟 살이었습니다. 당시 일흔네 살의 세르 피에르는 비아 기벨리나의 새 집에서 네 번째 아내인 루크레지아 디 구글리엘모와 열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 같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한 통으로 아버지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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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이사벨라의 초상>, 1501, 63-46cm.


한편 이사벨라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 레오나르도가 소식이 없자 매우 궁금해 했습니다. 1501년 3월 그녀는 피렌체인 신부 프라 피에트로에게 편지를 보내 레오나르도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지와 피렌체에는 얼마나 머물 것인지 등을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또 그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아파트를 장식할 작품의 주제와 그릴 수 있는 시기, 그리고 작은 크기의 성모상을 그려줄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를 만난 후 신부는 1501년 4월 8일에 이사벨라에게 “레오나르도의 생활은 불안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답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는 레오나르도가 그 밖의 어떤 작업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가 간간이 초상화에 붓질을 하지만 제자 두 사람이 그리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신부의 청탁으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 대한 언급과 함께 스케치가 있는데, 밀라노에서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성모자와 성 앤>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벨라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관철시키는 성격이라서 계속해서 신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4월 14일에도 신부는 답장을 보내 레오나르도의 근황을 알리면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스 왕이 총애하는 플로리묑 로베르테를 위해 작은 그림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를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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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 1510년 이후, 패널에 유채, 캔버스에 옮김, 50.2-36.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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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의 습작>, 1501년경, 25.7-2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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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의 습작>, 1501년경, 패널에 유채, 48.3-36.9cm.


이사벨라는 사람을 시켜 레오나르도에게 약속한 그림을 그려줄 것을 몇 번씩 청하고, 1504년 5월 14일에는 안젤로 델 토바글리아라는 사람을 시켜서 돈을 많이 주겠다고 제안하며, 동시에 손수 편지를 보내 마지막으로 제안했습니다.

레오나르도 선생, 피렌체에 안주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바란다는 것을 알려드렸으며 … 선생이 오셨을 때 우리의 초상을 드로잉 한 것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채색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이곳으로 오셔야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선생이 약속하신 초상을 완성하는 대신 열두 살 가량의 아기 그리스도의 그림, 말하자면 성전에서 성서학자들과 함께 계신 모습을 선생 예술의 특징이 되는 매력적이고 온화한 분위기로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선생이 우리가 원하는 그림과 선생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우리가 제안한 금액에 만족하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사벨라의 집념은 대단하여 1504년 10월 30일 레오나르도에게 한 번 더 편지를 보냈습니다. 1506년에는 레오나르도가 1505년 봄, 피솔레에서 다시 만났던 피에로의 첫 번째 아내의 남동생 카논 아마도리에게 레오나르도를 설득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이사벨라는 이런 식으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티치아노를 설득해 결국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끄는 제안과 더불어 친절한 태도를 보였지만 순순히 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의 지나친 간섭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페루지노에게 보낸 편지에 “이 그림에서 선생의 어떠한 발명도 보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지만, 레오나르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매우 조심성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레오나르도는 흔들리지 않고 답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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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유대인의 장례


유대사회에서는 망자에게 반드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망자에 대한 예의는 항상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시신을 깨끗이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존경받는 사람이 시신을 씻습니다. 이는 유대사회에서 대단한 명예로 여겨집니다.

될 수 있는 한 속히 매장해야 하는데, 관례상 화장하지 않고 매장합니다. 원칙적으로 죽은 다음날에 매장합니다.

망자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장례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중 한 사람, 랍비가 조사를 읽고, 상주가 기도의 말을 읽습니다. 그들은 같은 예배당에 가서 같은 기도를 1년 동안 매일 올리게 됩니다.

매장이 끝나면 가족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1주일 동안 이와 같은 일을 집에서 되풀이 합니다. 마루에 앉아서 촛불을 켜놓고, 거울에는 모두 덮개를 덮은 뒤 항상 열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기도문을 외웁니다.

상주는 1주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예배당에도 그 1주일이 끝나야 가게 됩니다. 1주일 동안 그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집을 조문합니다. 그 1주일이 끝나면 가족은 집 밖으로 나가 집 둘레를 돕니다.

한 달 동안 얼굴을 씻어서는 안 되고, 1년 동안 화려하고 즐거운 장소가 가서도 안 됩니다. 그 후 해마다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상복을 입습니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가족은 달걀을 먹습니다. 유대인들의 망자에 대한 생각은, 사람은 누구라도 가족이 죽으면 슬퍼하지만, 1주일 동안 상을 치른 뒤 밖으로 나간다는 건 너무 슬픔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슬픔이 너무 깊어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주일 후에 밖으로 나가서 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입니다.

달걀을 먹고 집 둘레를 도는 건, 원은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생명도 원과 같이 끝이 있어서는 안 되며, 항상 돌고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가장 깊은 슬픔에 잠기는 건 1주일 동안입니다. 그 다음 한 달 동안의 초상 기간이 있지만, 이 기간은 앞의 1주일만큼 슬픔에 잠기지는 않습니다. 다음 1년 동안도 슬픔이 덜해집니다. 1년 후에는 기일을 제하곤 상복을 입지 않습니다. 이 1년 동안 상복을 입는 건 부친이나 모친의 경우일 때 뿐이고,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1주일 더하기 한 달로 모든 상이 종료됩니다.

달걀을 꼭 먹어야 하는데, 식사가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망자가 살아 있는 사람을 지배하면 완 된다는 원칙으로 계속 살아가는 중요성을 유대인은 가르칩니다. 또한 자살을 큰 죄로 인식합니다.

장례식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학자나 교육이 없는 자라도 유대에서는 모두 같은 관과 같은 옷으로 행합니다. 인간의 지위나 부귀에 의해서 장례식의 형태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평등이라는 걸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모자를 쓰고 기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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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킴의 마음 그리고 마음-물질의 문제


많은 과학자들이 마음을 유물론적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을 취합니다. 그들은 뇌의 작용을 통해 정신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좀 더 추궁하면 인체 역시 마음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마음-물질의 문제에는 “어떻게 하면 물질을 통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따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 즉 뇌와 인체가 없다면 마음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뇌의 모든 활동이 멈추면 마음도 사라진다는 주장에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

유물론자는 마음과 의식이라는 내면의 우주가 뇌의 세포와 분자, 신경세포, 시냅스, 아교세포, 그리고 수백 종의 화학적 전달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유물론자는 양자를 고려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론이 마음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이 같은 환원주의적,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뇌의 활동을 의식 및 마음과 동일하게 봅니다. 반면 양자 수준의 접근법이라 함은, 강력한 전자 현미경으로 지금 보고 있는 이 페이지에 인쇄된 잉크의 모든 알갱이와 종이의 섬유질을 원자 수준에서 샅샅이 조사한다는 의미와도 같을 것입니다. 양자적 수준에서 뇌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하면 이처럼 면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현실이라는 책을 해독하려면 분자라는 문장과, 원자라는 단어와, 소립자라는 글자와, 유픽셀이라는 미세한 잉크 알갱이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요소와 진공 공간과 정보의 원천을 알아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이 메시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주는 법칙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메시지가 주는 정보를 놓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마음과 의식의 비밀을 풀어줄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양자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는 건 합리적인 일입니다.

유물론은 물리적인 세계만이 진실이라는 믿음입니다. 만약 마음과 의식이 뇌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단순히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결과물이라면, 육체의 사망 이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논리에 맞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믿음을 신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영적 종교적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레오킴은 유물론에도 과학과 영성의 불화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가 양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제는 양자 수준의 연구가 마음과 의식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과학과 영성은 다시 화해를 이룰 수도 있다고 레오킴은 말합니다.

신경세포, 뇌, 인체로 마음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이론은 수없이 많습니다. 레오킴은 이에 대한 여섯 가지 이론을 제시합니다.

기능주의는 만사를 물질로 규정하기 때문에 마음-물질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합니다. 기능주의에서 마음이란 뇌 작용의 결과일 뿐입니다. 부수현상설과 창발적 유물론은 비슷한 이론이며 마음이 뇌 활동을 통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합니다. 불가지론적 물리주의에서는 마음이 뇌의 산물이라고 가르치지만, 비물질적인 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이 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먼저라고 여깁니다. 이원적 상호 작용설에서는 마음과 의식이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치며 마음이 뇌를 형성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 다섯 가지 이론에서는 기본적으로 뇌를 통해 만사를 설명할 수 있으며, 마음이 비물질적인 상태를 기초로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편, 과정철학에서는 마음과 뇌가 동일한 한 가지 현실에 의해 발현되며, 이 현실은 끊임없는 흐름과도 같다고 주장합니다. 과정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로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를 들 수 있습니다.


기능주의Functionalism는마음을 뇌의 상태로 봅니다. 이 이론은 의식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마음-물질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입니다.

부수현상설Epiphenomenalism은마음이 존재하지만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마음 상태의 원인은 뇌이며, 뇌가 모든 현상을 이미 발생시키기 때문에 마음은 아무런 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주체가 뇌인 것처럼 의식은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창발적 유물론Emergent Materialism은 마음이 뇌의 활동에 의해서만 생겨나지만, 뇌의 정보처리 과정으로는 마음의 작용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이론에서는 마음이 물리적, 정신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마음의 활동은 신경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양자적 설명이 불필요합니다.

“불가지론적” 물리주의 “Agnostic” Physicalism는마음을 뇌 활동의 산물로 보며 물질과는 무관한 힘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지론적”이란 비물질적인 힘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며, 이 이론에서는 종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은 마음과 뇌가 동일한 현실에 의해 발현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흐름 속에 두 가지가 모두 변한다고 여깁니다.양자 이론과 동일합니다.

이원적 상호 작용설Dualistic Interactionism은 마음과 의식을 뇌와 상관없는 독립적 상태로 보며, 마음의 이면에는 비물질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이론을 옹호하는 이들은 사후세계를 믿습니다.


화이트헤드는, 20세기 들어 인류가 물질도 에너지의 형태이며 에너지는 순수한 활동에서 발생한다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난 4세기 동안 공간과 물질을 중심으로 형성했던 세계관이 과정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변모했다고 믿었습니다. 과정철학에서 “과정”이란 여기에서 온 말입니다.

제프리 슈워츠Jeffrey Schwartz와 샤론 베글리Sharon Begley는 자신들의 저서 『마음과 뇌 The Mind and the Brain』에서 과정철학에 대해 말했습니다.

과정철학은 그러므로 전통적인 불교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불교에서는 덧없는 변화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꿰뚫어본다. …… 따라서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현실은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복잡하고 상호 의존적인 경험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관점은 최근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양자물리학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사람들은 의식이란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의식이 없이 마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식은 마음의 일부일까? 의식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고 그 가운데에는 의식의 상태를 에둘러 표현한 말들도 있습니다. 레오킴은 주위 환경이나 스스로의 생각을 인지하고 자신이 그처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때를 의식적 상태로 규정합니다. 의식의 문제에 대해서 수많은 견해가 있지만, 그는 의식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는 마음-물질의 문제와 의식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이원론Dualism은 의식을 신의 선물이거나 외부에서 온 것으로 봅니다. 이원론에서는 자연과학으로는 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이상주의적 일원론Idealist monism은 의식을 마음의 상태로 봅니다.이상주의적 일원론에서는 우주가 전적으로 마음이나 정신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유물론적 일원론Material monism은 현실이 물질적 또는 물리적인 것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유물론적 일원론 신봉자들 가운데에는 뇌의 한 부분 또는 몇몇 부분에서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뇌의 여러 영역이 함께 모여 의식을 형성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양자적 과정론Quantum processes은 양자적 과정이 의식에 관여한다고 봅니다.

철학적 문제Philosophical matter는 의식이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마음-물질의 문제와 의식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을 살펴보고 레오킴은 대부분의 이론들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1. 마음/의식/창조주가 곧 현실의 실체라고 보는 이론

2. 물질이 마음과 의식의 실체라고 보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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