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를 꺾은 레오나르도의 자존심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1500년 4월 피렌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그의 나이 마흔여덟 살이었습니다. 당시 일흔네 살의 세르 피에르는 비아 기벨리나의 새 집에서 네 번째 아내인 루크레지아 디 구글리엘모와 열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 같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한 통으로 아버지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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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이사벨라의 초상>, 1501, 63-46cm.
한편 이사벨라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 레오나르도가 소식이 없자 매우 궁금해 했습니다. 1501년 3월 그녀는 피렌체인 신부 프라 피에트로에게 편지를 보내 레오나르도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지와 피렌체에는 얼마나 머물 것인지 등을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또 그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아파트를 장식할 작품의 주제와 그릴 수 있는 시기, 그리고 작은 크기의 성모상을 그려줄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를 만난 후 신부는 1501년 4월 8일에 이사벨라에게 “레오나르도의 생활은 불안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답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는 레오나르도가 그 밖의 어떤 작업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가 간간이 초상화에 붓질을 하지만 제자 두 사람이 그리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신부의 청탁으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 대한 언급과 함께 스케치가 있는데, 밀라노에서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성모자와 성 앤>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벨라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관철시키는 성격이라서 계속해서 신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4월 14일에도 신부는 답장을 보내 레오나르도의 근황을 알리면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스 왕이 총애하는 플로리묑 로베르테를 위해 작은 그림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를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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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 1510년 이후, 패널에 유채, 캔버스에 옮김, 50.2-36.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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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의 습작>, 1501년경, 25.7-2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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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작업장의 <성모와 실패를 돌리는 아기의 습작>, 1501년경, 패널에 유채, 48.3-36.9cm.
이사벨라는 사람을 시켜 레오나르도에게 약속한 그림을 그려줄 것을 몇 번씩 청하고, 1504년 5월 14일에는 안젤로 델 토바글리아라는 사람을 시켜서 돈을 많이 주겠다고 제안하며, 동시에 손수 편지를 보내 마지막으로 제안했습니다.
“레오나르도 선생, 피렌체에 안주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바란다는 것을 알려드렸으며 … 선생이 오셨을 때 우리의 초상을 드로잉 한 것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채색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이곳으로 오셔야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선생이 약속하신 초상을 완성하는 대신 열두 살 가량의 아기 그리스도의 그림, 말하자면 성전에서 성서학자들과 함께 계신 모습을 선생 예술의 특징이 되는 매력적이고 온화한 분위기로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선생이 우리가 원하는 그림과 선생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될 우리가 제안한 금액에 만족하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사벨라의 집념은 대단하여 1504년 10월 30일 레오나르도에게 한 번 더 편지를 보냈습니다. 1506년에는 레오나르도가 1505년 봄, 피솔레에서 다시 만났던 피에로의 첫 번째 아내의 남동생 카논 아마도리에게 레오나르도를 설득해줄 것을 청했습니다. 이사벨라는 이런 식으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티치아노를 설득해 결국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끄는 제안과 더불어 친절한 태도를 보였지만 순순히 응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의 지나친 간섭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페루지노에게 보낸 편지에 “이 그림에서 선생의 어떠한 발명도 보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었지만, 레오나르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매우 조심성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레오나르도는 흔들리지 않고 답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