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이야기: 벤틀리의 역설Bentley‘s Paradox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2~1727)은 1687년에 그 유명한 논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출간했습니다. 이를 줄여서 『프린키피아 Principia』라고 합니다. 이 논문으로 인해 천체운동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건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프린키피아』는 우주의 생성과정에 대해 다양한 역설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프린키피아』를 출간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뉴턴은 자신의 중력이론에 풀리지 않는 역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692년 성직자였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1662~1742)는 뉴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중력이라는 것이 잡아당기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면 은하를 이루고 있는 모든 별은 결국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와해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곳은 고요하고 정적인 무대가 아니라 모든 별이 한데 뭉개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벤틀리는 반대의 경우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우주가 무한하다면 임의의 물체를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는 힘도 무한할 것이므로 이 경우에도 모든 별은 조각조각 찢어지면서 혼돈에 찬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벤틀리는 중력이론을 우주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역설적 결과를 최초로 지적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비판적 통찰력과 폭넓은 지식을 겸비한 벤틀리는 1694년에 왕립도서관 관장이자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170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의 학장에 선임되었으며, 1717년에는 신학부의 흠정欽定교수가 되었습니다. 학장으로 재임한 동안 그는 교수진과 마찰과 법정소송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오만한 기질로 동료교수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그들이 여러모로 그를 내좇으려고 했으며, 그로 인해 그 후 30년 동안 논쟁과 반목 속에 휘말렸습니다. 그러나 벤틀리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고전연구를 계속했으며 저술활동을 왕성하게 했습니다.
벤틀리의 편지를 읽고 한동안 심사숙고한 뉴턴은 다음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하나의 별이 무한히 많은 다른 별들에 의해 당겨지고 있다면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서로 상쇄될 것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들도 동일한 원리로 상쇄될 것입니다. 모든 별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정적인 우주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습니다. 뉴턴은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한다는 가정 하에서 벤틀리의 역설을 피해가면서 이 우주가 “무한하면서 균일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벤틀리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제 논리에 틀린 점이 없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아님을 인정하겠습니다.”
뉴턴이 생각했던 ‘무한하면서 균일한 우주’는 불안정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매우 불안하여 우주에서 별 하나가 요동을 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와해되어 결국 우주전체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붕괴됩니다. 뉴턴은 신의 전능한 힘이 이런 대형 사고를 막아주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습니다.
“태양과 항성들이 중력에 의해 한 지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전지전능한 신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뉴턴에게 우주는 탄생초기에 신이 태엽을 감아놓은 시계와도 같았습니다. 이 시계는 뉴턴이 발견한 운동법칙에 따라 태엽이 풀리면서 매순간마다 특정시간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시계라면 한번 태엽을 감아놓은 후 더 이상 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뉴턴은 우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한 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가끔씩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