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의 <시변詩辨>
今之詩者금지시자: 오늘날 시를 하는 사람들이
高則漢魏六朝고칙한위륙조: 높은 수준에서는 한위ㆍ육조 시대의 것을 배우고
次則開天大曆차칙개천대력: 다음은 개천ㆍ대력 연간의 것을 배우고
最下者乃稱蘇陳최하자내칭소진: 가장 낮게는 소식蘇東坡과 진사도陳師道(1052∼1101, 송대의 시인)를 들먹이며
咸自謂可奪其位也함자위가탈기위야: 모두가 스스로 이르기를 '그 위치를 뺏을 수 있다'고 한다.
斯妄也已사망야이: 그러나 이는 망령될 뿐이다.
是不過掇拾其語意시불과철습기어의: 이것은 그 말뜻을 주워 모아
蹈襲剽盜以自衒者도습표도이자현자: 그대로 답습하고 표절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자에 불과하니
烏足語詩道也哉오족어시도야재: 이들과 어찌 시도詩道를 말할 수 있겠는가.
三百篇自謂三百篇삼백편자위삼백편: 시경詩經 3백 편은 스스로 3백 편이고
漢自漢한자한: 한漢은 스스로 한漢이며
魏晉六朝위진륙조: 위진ㆍ육조는
自魏晉六朝자위진육조: 스스로 위진魏晉ㆍ육조六朝이고
唐自爲唐당자위당: 당唐은 스스로 당唐이며
蘇與陳亦自爲蘇與陳소여진역자위소여진: 소식과 진사도 또한 스스로 소식ㆍ진사도이니
豈相倣傚而出一律耶기상방효이출일률야: 어찌 서로 모방하여 일률적으로 하였겠는가.
蓋各自成一家개각자성일가: 대개 제각기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다.
而後方可謂至矣이후방가위지의: 그런 다음에야 바야흐로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間或有擬作간혹유의작: 간혹 남의 글을 본떠 짓더라도
亦試爲之역시위지: 역시 시험 삼아 이것을 만들어서
以備一體이비일체: 하나의 체를 나름대로 갖추는 것이며
非恒然也비항연야: 늘 그런 것은 아니니
其於人脚跟下爲生活者기어인각근하위생활자: 남의 발밑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非豪傑也비호걸야: 뛰어난 자가 아니다.
然則詩何如而可造極耶연칙시하여이가조극야: 그렇다면 시는 어떻게 하여야 극에 나아갈 수 있는가.
曰先趣立意왈선취립의: 이르기를, 흥취보다 앞서 의향을 세우고
次格命語차격명어: 격조를 다음으로 하고 말을 얽는다.
句活字圓구활자원: 구절은 활기 있고 글자는 원만하며
音亮節緊음량절긴: 음향은 맑고 음절과 리듬은 굳건한 것으로 기본을 삼고
而取材以緯之이취재이위지: 소재를 취하여 엮되
不犯正位불범정위: 정당한 위치를 범하지 말고
不着色相불착색상: 색상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叩之鏗如고지갱여: 그리하여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게 하고
卽之絢如즉지현여: 만져보면 화려하게
抑之而淵深억지이연심: 내리눌러서 깊이 있게
高之而騰踔고지이등탁: 높게 올려서 치달리게 하며
闔而雅徤합이아건: 닫을 때는 맑고 힘차게
闢而豪縱벽이호종: 열 때는 호기 있고 여유 있게 하며
放之而淋漓鼓舞방지이림리고무: 생각을 멋대로 구사하여 흥취에 흠뻑 젖어 북 치고 춤추듯이 해야 한다.
用鐵如金용철여금: 쇠를 가지고 금을 만들 듯이 하고
化腐爲鮮화부위선: 썩은 것을 변화시켜 싱싱하게 하며
平澹不流於淺俗평담불류어천속: 평범하고 담담하되 천박하고 속스러운 데에 흐르지 말고
奇古不隣於怪癖기고불린어괴벽: 기이하고 고고하되 괴벽에 가깝게 말며
詠象不泥於物類영상불니어물류: 형상을 읊되 물체에 정체하지 말고
鋪敍不病於聲律포서불병어성률: 깔아서 늘이되 성률聲律에 병들게 하지 말며
綺麗不傷理기려불상리: 화려하되 이치를 손상하지 말고
論議不粘皮논의불점피: 논의는 외양을 흐리게 하지 말라.
比興深者通物理비흥심자통물리: 비흥을 깊이 있게 하는 자는 사물의 이치를 통하고
用事工者如己出용사공자여기출: 인용을 잘하는 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과 같이 한다.
格見於篇成격견어편성: 이리하여 품격이 온 편에 나타나
渾然不可鐫혼연불가전: 혼연히 흠집을 잡을 수 없고
氣出於外言기출어외언: 기력이 말 밖에 튀어나와야
浩然不可屈호연불가굴: 호연히 꺾을 수 없게 된다.
盡是而出之진시이출지: 이상의 법칙을 모두 갖춘 다음에야 내놓으면
則可謂之詩也칙가위지시야: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다.
彼漢魏以下諸公피한위이하제공: 저 한위 이하 제공들은
皆悟此而力守者也개오차이력수자야: 모두 이 법칙을 깨닫고 힘써 지킨 사람들이다.
不然則雖漢趨魏步六朝服而唐言불연칙수한추위보륙조복이당언: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한漢의 달림에다 위魏의 걸음을 걷고, 육조를 옷으로 입고 당唐으로 언동言動하며, 아, 틀린 것이다.
動御蘇陳以馳동어소진이치: 소식과 진사도를 마부삼아 치달리더라도
足自形其穢而已족자형기예이이: 그저 자신의 추함만을 드러낼 뿐이니
吁其非矣우기비의: 아, 틀린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