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그의 영혼에게 묻는다

 

 

 

 

 

자아성찰의 시기는 그가 “그림자”의 내면상태로 고통스러운 자기비판을 하며 시작된다. “만약 내가 야수인 너를 길들인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야수를 길들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융은 영혼의 응원을 받고 “흔들리지 않고 창조”를 하지만 초췌한 내면의 남성상은 그에게 “너는 인류의 목적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이 무참하게 지속되는 가운데 융은 그의 영혼에게 묻는다.

내가 얼마나 깊은 곳까지 가야 하는가?

그러자 영혼은 네 자신과 현재를 넘어 영원히”라고 대답한다.
거의 일 년 동안 심연의 목소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융은 “새로운 책” 초안을 집필한다. 그러자 필레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너의 의지는 네 것이 아니다. 너는 전체의 의지이다 … 더 가까이 다가가, 신의 무덤으로 들어가라. 네가 작업할 장소는 납골당이다.”
죽은 자가 그의 내면의 상에 나타나자 영혼이 그에게 “죽은 자가 너의 속죄의 기도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융은 마지못해 요구를 받아들인다. 영혼은 이 세상의 잣대”가 “융의 헌신을 원하므로” 융의 두려움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왜 나입니까?”라고 융이 항의한다. “나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너는 숨겨진 채로 있으면 안 되는 단어를 갖고 있다”라고 영혼이 말한다.
융이 “선과 미의 존재”라고 느껴 왔던 필레몬이 이번에는 사제복을 입고 나타나 인간의 역할이 포함된 일종의 영지주의적 창조물인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를 한다.
분명하지 않고 무한하며 영원한 “무無이면서 모든 것인” 플레로마Pleroma[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God of gods] 안의 여러 다른 차원에서 창조가 일어난다. 선과 악, 같음과 다름 등 대극의 쌍들은 플레로마 안에서는 서로 균형을 이루고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창조된 존재에서는 별개로 보인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존재로서의 “자신만의 본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다.
“창조되고 창조되지 않은” 모든 것이 플레로마 그 자체, 존재의 전체성이다. 플레로마로부터 처음으로 현현한 존재상태는 인류가 잊은 신 아브락사스Abraxas[머리는 수탉, 몸은 인간, 다리는 뱀의 형상을 한 영지주의자들의 신]이다. 아브락사스의 존재상태는 “결과”로, “개연성이 없는 개연성이며 비현실적인 현실”의 역설을 드러낸다. 그것은 “힘, 지속성, 변화”를 함께 의미한다. 그다음 차원인 “신의 창조”에서 현현하는 신은 더욱 한정적인 성격을 지닌다. 신은 본질적으로 “실질적인 충만”함이며 그의 대극인 사탄은 본질적으로 “실질적인 공허”이다.
그 후 “상승하는” 천상의 신 또는 “쇠락하는” 땅의 신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대표적인 네 신이 태양신, 에로스, 생명의 나무, 악마이다. “신들의 악마적 실체”인 영성과 성애는 천상에는 영성, 땅에는 성애가 위치하듯 한 영역에 속한 대극들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같은 원칙에 속한” 대극들이다.
필레몬은 “일곱 가지 설교” 중 마지막 설교에서 인간은 “너희가 신들, 악마, 영혼의 외적인 세계에서 내면의 세계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관문”임을 밝힌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아브락사스”이며 자신만의 “신을 이끄는” 별을 가지고 있다.
후에 융은 동료 아니엘라 야페에게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전조였다고 말했다. 그것은 개성화, 대극들의 충돌, 인간과 신의 공동 창조 등 융 심리학의 기본 틀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레드 북』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필레몬은 융에게 인간에 관한 더 깊은 가르침을 전했다. “존재로서의 인간은 영원한 순간이다.” 그림자로서의 죽음과 별들의 표면을 덮고 있는 천상의 어머니도 나타나 융에게 우주의 아이를 낳고 싶다면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융은 “사랑에 대한 충성과 자발적인 헌신”이 “별의 성격을 지닌 나, 가장 진실되고 내면의 가장 개별적인 자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자(그리스도)가 등장한다. 필레몬은 “나의 스승이자 형제”에게 무릎을 꿇으며 그리스도에게 인간이 그의 삶을 모방하는 이상 “당신의 일은 완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각자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해야만 비로소 그때가 온다.”
끝에 이르자 필레몬에 더해 엘리야, 살로메, 땅의 영혼인 카Ka[고대 이집트인이 생각한 사람 혹은 신의 혼] 등 그동안 등장했던 내면의 존재들과 융 개인을 구분하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영혼과의 최후의 싸움에서 융은 무조건 신들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비록 “그들이 답례로 돌려주는 것이 있겠지만” 인간은 더 이상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신들은 분노했으나 결국 그의 말에 동의한다. 영혼이 융에게 말한다. “너는 법의 강제성을 무너뜨렸구나.” (그림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선물로 마지막 한마디를 해준다. 빛과 어둠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내가 너에게 고통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겠노라.”
1916년, 융이 군에 복무할 때 일련의 만다라 이미지가 그에게 떠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그린 만다라 <모든 세상의 체계Systema Munditotius>는 소우주와 대우주의 다차원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 “물질 세계의 왕”인 아브락사스가 아래에 있고 위에는 황금 날개를 가진 “신의 아이” 파네스Phanes[오르페우스 밀교 신화의 자웅 양성을 갖춘 개벽의 신]가 있다. 시간이 가면서 융은 자신의 글을 양피지에 필사체로 쓰고 삽화를 그려 그의 여정을 극적인 상징 이미지들로 표현했으며 이 모든 것을 붉은 가죽으로 제본한 600쪽의 2절판에 담았다.
융의 환자들은 그 책이 융의 서재 이젤 위에 놓여 있던 것을 기억한다. 융은 내면의 과정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만의 “레드 북”을 만들라고 환자들에게 조언했다. 크리스티나 모건은 융이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것이 당신의 교회이자 대성당이 될 것이며 당신이 부활할 수 있는 영혼의 조용한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 책 안에 당신의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융은 1930년 중국의 연금술서 『태을금화종지』(3)를 접하면서 『레드 북』 집필을 중단했다. 『태을금화종지』는 그의 사상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확인”을 받는 계기였으며 동양과 서양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1959년 융은 『레드 북』에 필사한 한쪽을 추가하여 “나는 그런 체험에 소중한 무언가가 있음을 항상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다시 강조했다. 그 내용은 문장 중간에서 끝난다.『레드 북』은 인생의 과정, 융과 그의 연구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내면의 삶을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