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역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4월 14일에 태어났고 이듬해 그의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하여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숙부 야코프 아인슈타인은 조그만 전기공장을 세우고 전기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열두 살 때 거시세계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3년 후 역사・지리・어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졸업장도 못 받고 학교를 나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는데,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밀라노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유명한 취리히의 국립공과대학 폴리테크닉연구원Polytechnic Institute에서 4년 동안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1900년 봄에 졸업한 뒤 스위스 시민이 되었지만 마땅한 취직자리를 얻지 못해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가 그의 자만심 강하고 오만한 태도를 싫어해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에 교수의 강의가 신통치 않다는 이유로 종종 수업을 빼먹곤 한 것이 지도교수의 반감을 산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 뒤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고 부모에게 학비를 타 쓰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심지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리학으로 취직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보험회사를 첫 직장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월급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이 때문에 직장상사와 말다툼을 벌인 뒤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자친구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ci가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다는 생각에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인슈타인의 딸 리세럴Lieseral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무렵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면서 아인슈타인은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생각했습니다.

1901~02년은 아인슈타인의 평생을 통틀어 최악의 해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친구이자 수학자 마르첼 그로스먼Marcel Grossman(1878~1936)이 아인슈타인을 스위스 베른에 소재한 특허청의 하급사원으로 추천함으로써 불세출의 천재는 암울한 시기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관련 서류들을 일찍 정리한 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생각해온 자신의 꿈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독일의 유대인 과학자 아론 번스타인Aaron Bernstein(1812~84)의 『자연과학 입문서 People's Book on Natural Science』를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번스타인은 “전깃줄을 타고 전송되는 전보를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맥락에서 “빛과 동일한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만약 내가 C라는 속도(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빛은 정지해 있는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학electromagnetics에 관한 맥스웰의 방정식Maxwell's equations에 따르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소년 아인슈타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 빛은 정지상태의 파동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20세기의 여명에 물리학은 뉴턴의 역학 및 중력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18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1831~79)은 빛이 진동하는 전기장electric field과 자기장magnetic field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간파하여 고전 전자기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서로 상충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고전물리학의 명예로운 퇴장을 최초로 예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방정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따르면 빛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는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좇아가면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고 해도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 C가 모든 관성계inertial reference frame(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준좌표계reference frame)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공간을 표류하는 우주비행사가 빛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릴 경우 그 비행사는 우주선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서 빛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립니다. 이 광경을 지구에 있는 관측자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빛과 우주선이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빛과 속도경쟁을 벌이는 우주비행사의 눈에는 빛이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C의 속도로 멀어져 갈 것입니다. 우주선이 정지해 있을 때나 달릴 때나 빛의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아인슈타인은 1905년 초에 독일의 유명한 월간학술지 『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에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이라는 논문을 냈는데, 이 논문으로 나중에 취리히의 국립공과대학 폴리테크닉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에 처음 실렸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법칙이 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빠르기로 흐른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관측자의 운동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릅니다. 시간은 뉴턴의 생각과 달리 절대적인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시간이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한 속도로 흐르며 지구에서의 1초가 화성과 목성에서의 1초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뉴턴의 시간이 범우주적으로 맞출 수 있는 절대시간인 반면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우주의 각 지점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물체의 길이와 질량, 에너지 등도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빛을 제외한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또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양임을 간파하여 이것들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증가하는 것은 운동에 의한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현상도 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E=mc2으로 표현했는데, 이 방정식에 의하면 극소량의 질량이라도 일단 에너지로 변환되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에너지와 질량을 연결하는 비례상수(광속의 제곱, c2)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식이 알려진 뒤 미지로 남아있던 별의 비밀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별의 내부에서는 핵융합반응을 통해 매순간마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밝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의 시계는 걸어가는 사람의 시계보다 늦게 가고, 그의 체중은 평상시보다 무거워지며, 그의 몸은 앞뒤 방향으로 납작해집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중력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중력이론이 뉴턴의 중력이론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우주전역에 걸쳐 즉각적으로 전달됩니다. 아무리 먼 곳이라 해도 중력이 전달되는 데는 아무런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태양이 사라질 경우 뉴턴 식으로 생각하면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태양의 부재로 인한 중력의 소멸을 동시에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에 다르면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금지조항은 움직이는 물체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신호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태양이 갑자기 사라질 경우 그곳에서 구형의 중력충격파가 형성되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이 구면파球面波(공간의 어떤 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한결같이 퍼져가는 파동)가 도달하지 않는 곳에서는 태양의 중력이 여전히 작용하며(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육안 상으로 태양은 아직 멀쩡합니다), 구면파가 이미 도달한 지점에서는 태양의 부재를 실감하게 됩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태양의 모습도 함께 사라집니다. 중력과 빛은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4년 4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프로이센 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었고, 아카데미 당국은 아인슈타인이 때때로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헤어짐으로 몇 해 뒤에 아인슈타인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일반상대성이론에 전념했으며, 이 이론은 1916년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가설의 핵심은 중력이,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의 질량의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field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별빛이 태양 가까이 지날 때 별빛의 휘어짐에 의해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별빛은 개기일식 동안에만 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 배의 빛의 휘어짐을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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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회화적 대결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가 1503년 8월에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더러 그가 부주의로 독약을 마셨다고 말합니다. 교황이 죽자 아들 보르지아는 망명할 수밖에 없어, 처음에는 나폴리로 갔다가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이때 피렌체와 피사 사이에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시청

피렌체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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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궁전의 대회의실


레오나르도는 10월 피렌체 화가 길드에 다시 등록한 후 시뇨리아의 주문을 받아 전투장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베키오 궁전에 있는 대회의실 벽에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벽화를 의뢰받은 것입니다. 대회의실은 매우 컸고 길이가 53m에 폭이 22m나 되었습니다. 10월 24일 그에게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아파트가 주어졌는데, 그와 제자들을 위한 배려였으며 교황들의 방으로 알려진 곳을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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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안기아리 전투에서의 말 습작>, 1503-04, 19.6-3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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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안기아리 전투>, 1503-05, 패널에 유채, 85-115cm.


레오나르도는 이때 <안기아리 전투>를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맞은편 벽에 <카시나 전투>를 그렸습니다. 시의회가 두 사람에게 작품을 의뢰한 것은 그리스도의 보호를 표방하고 피렌체가 과거에 거둔 군사적 승리를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희생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의도는 두 대가로 하여금 미학적 경쟁심을 유발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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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안기아리 전투를 위한 두 병사의 머리 습작>, 1503-04, 19.2-18.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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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안기아리 전투에서의 병사 머리 습작>, 22.7-18.6cm.


레오나르도 자신이 <안기아리 전투>를 주제로 선택한 것인지, 마키아벨리가 주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은 세로 8m 가로 20m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가장 큰 그림입니다. 대의원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1504년 5월 4일부터 이 그림에 대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35플로린을 먼저 받고 4월부터 매달 15플로린을 받으며 이듬해 2월까지 그리기로 약속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시뇨리아의 지불자가 어느 날 월급을 잔돈으로 지불하자 레오나르도는 받기를 거부하면서 “나는 잔돈이나 받는 화가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는 데 3년 이상 소요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지아 반대편 벽에 피렌체와 피사 사이에 벌어진 카시나 전투에서 피렌체가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작품을 의뢰받았습니다. 시의회가 카시나 전투장면을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할 때만 해도 피렌체는 아직 피사에게 굴복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벌거벗은 남자들의 혼란스러운 장면을 그리기로 했는데, 과격한 전투장면을 누드로 그린 것은 처음입니다. 그가 선택한 에피소드는 역사가 필리포 빌라니와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역사』에 기술한 내용으로 두 사람의 기록이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364년 7월 29일 무더운 날 피렌체 군인들은 카시나 근처 아르노 강에서 미역을 감고 있었는데, 피사 군인들에 의해 포위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피렌체 지휘관이 실수로 한 경고에 놀라 허겁지겁 뭍으로 올라왔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이것을 소재로 한 드로잉을 보면 군인들은 재빨리 옷을 걸치고 무장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투장면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시의회는 영웅이 등장하고 피렌체가 승리하는 장면을 원했을 텐데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익살스러운 에피소드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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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안기아리 전투 유채 스케치>

안기아리 전투는 1440년 보르고 산 세폴크로 근처 안기아리에서 피렌체와 밀라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밀라노군을 참패시킨 유명한 사건입니다. 피렌체 군대는 40개의 기병 대대와 2천 명의 보병 그리고 포병이 동원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기록에 의하면 승리한 피렌체군은 실수로 낙마한 단 한 명의 사상자만 냈을 뿐입니다.


<카시나 전투>는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반대편 벽에 <안기아리 전투>를 그리고 있던 연장자이며 예술의 위대한 적 레오나르도와 대결하게 했습니다. 세로 7m 가로 17.5m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커다란 그림을 그린 경험이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일그러진 남자 누드를 그리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고, 나중에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릴 수 있게 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남자 누드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그릴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해부학에 전념한 데 기인하기도 하지만, 정신에 내재하는 형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각상이 신적 광기의 황홀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믿었으며, 이는 영혼이 개별적인 사물 속에서 지상으로의 하강 이전에 누린, 피치노의 말로 하면 “형언할 수 없는 신적 광휘”를 일시적으로 목격한 흥분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적 사랑의 광기에 의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영혼의 상승을 조각상에서 나타내려고 했으며, 형상이 질료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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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아노(아리스토텔) 다 상갈로의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 모사>, 1542년경.

바사리의 부탁을 받고 이 작품을 모사할 무렵 원작은 이미 상당히 훼손되었으며, 바스티아노의 그림은 20년 전의 드로잉을 베낀 2차 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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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사도 동상과 카시나 전투를 위한 습작>, 1504-04, 18.7-18.4cm.


기록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염색공들의 병원 오스페달레 데이 틴토리에서 그렸다고 하지만, 그 드로잉은 17세기 중반에 모두 사라져 현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542년 바스티아노(아리스토텔) 다 상갈로의 모사작이 있어 부분적으로나마 어떤 작품인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갈로가 모사한 장면은 중앙 부분으로 좀 더 많은 사람과 말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배경이 생략되어 전체적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바사리는 적었습니다.

똑바로 선 자세, 무릎끓은 자세, 몸을 겹친 자세, 엉거주춤한 자세, 원근을 맞추기가 까다로운 자세 등 다양하다. 게다가 뭉쳐진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려졌다. 마치 회화에 대한 지식을 뽐내기라도 하듯 목탄으로 윤곽선을 그리거나 선을 이용해 음영을 표시하거나 흰색으로 부드럽게 명암을 표현하는 방식을 두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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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미켈란젤로의 다윗에 대한 습작>


레오나르도가 처음 미켈란젤로를 만난 건 1504년 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레오나르도는 52살, 미켈란젤로는 29살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의 <안기아리 전투>의 일부를 모사했고, 레오나르도는 그의 <다윗>을 모사함으로써 서로의 재능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일화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자기보다 명성이 높고 사교성도 좋은 레오나르도를 상당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레오나르도가 화가 조반니 디 가비나와 함께 스피니 궁전 앞 산타 트리니타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벤치에서 잡담을 하던 사람들이 레오나르도를 불러 세우고는 단테의 글에서 난해한 부분을 지적하며 그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때 마침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광장에 나타나자 레오나르도가 말했습니다. “여기 미켈란젤로가 오고 있군. 그가 자네들에게 말해줄 걸세.”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벌컥 화를 내면서 레오나르도에게 말했습니다. “선생 스스로 대답하시오. 선생은 말을 모델로 만들었지만 청동으로는 뜨지 않고 포기했다는 것을 부끄러운 줄 아시오.” 미켈란젤로는 발걸음을 돌렸고, 레오나르도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뒤돌아 선 채 다시 말했습니다. “밀라노인들은 어리석었기 때문에 선생을 믿었던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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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를 위한 스케치>, 1503-04, 23.5-3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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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누드의 뒷부분>, 1504년경, 40.8-28.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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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의 앉아 있는 인물 습작>, 1503-04


409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를 위한 습작>, 1503-04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켈란젤로의 화풍이 레오나르도와 상당히 닮았다는 점입니다. 이후 레오나르도는 <안기아리 전투>를 완성시키지 않고 1506년 5월에 밀라노로 돌아갔습니다. 미켈란젤로도 <카시나 전투>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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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미토콘드리아와 바이러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 속에는 미코콘드리아mitochondria(세포 소기관의 하나로 세포호흡에 관여한다)라고 불리는 작은 몸체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니다. 미코콘드리아는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의 유사 세포와 힘을 합치게 된 공생 박테리아가 그 기원이었다는 최근의 논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생적인 유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인 것임니다. 바이러스virus(세균보다 작아서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입자로, 생존에 필요한 물질로 핵산과 소수의 단백질만을 가지고 있어 숙주host에 의존해 살아감)는 유전자 집합체에서 이탈된 유전자일 것입니다. 기성적 존재의 바이러스는 단백질 옷을 입은 순수한 DNA(또는 이와 유사한 다른 자기 복제분자)입니다. 반역 유전자인 바이러스는 정자와 난자라고 하는 일반 운송수단에 관계없이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직접 공중 여행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일부의 바이러스는 상리공생의 협력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에 실려 몸에서 몸으로 이동함니다.

인간의 특이성은 문화이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함니다. 언어는 비유전적 수단에 의해 진화하며 그 속도는 유전적 진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릅니다. 문화적 전달은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뉴질랜드 앞바다 섬에 사는 안장새의 노래 소리가 있습니다. 약 9종류의 다른 노래 소리가 있으며, 각각의 수놈은 이것들 가운데 하나 혹은 몇 가지만 지저귑니다. 젠킨스P.F.Jenkins에 따르면 인접한 영역을 차지한 8마리의 수놈이 ‘CC sing’으로 불리는 특정한 노래를 했습니다. 다른 그룹은 각각 다른 노래를 했다. 젠킨스는 아비와 수놈 새끼릐 노래를 비교하여 노래의 패턴이 유전적으로 아비에게서 수놈 새끼에게로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개개의 젊은 수놈은 근처에 영역을 갖는 다른 개체의 노래를 인간의 경우처럼 모방이라는 수단에 의해지는 것입니다. 젊은 수놈들은 ‘노래 풀’을 형성하고 그로부터 소수의 노래법을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젠킨스는 젊은 수놈이 옛 노래법을 모방하다가 새로운 노래를 발명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새로운 노래는 음 고저의 변화, 같은 음성의 추가, 음성의 탈락 혹은 다른 노래법의 부분적 편입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노래의 형식은 갑자기 출현하는데, 그 후에는 몇 년에 걸쳐 매우 인정된 형태로 유지되었습니다. 다시 몇 개의 예에서 변이형의 노래가 새로운 형식대로 어린 초보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어 그 결과 그와 유사한 가수들의 그룹이 새로이 다른 것과 식별될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젠킨스는 새로운 노래의 출현을 ‘문화적 돌연변이 cultural mutation’로 표현했습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할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모방이 모방의 풀 내에서 번식할 때는 뇌에서 뇌로 건너다닙니다.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입니다. 이를 뇌에서 뇌로 자기복제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독신주의 습관은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성 곤충에서 볼 수 있는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독신주의의 모방은 모방의 풀 속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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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랍비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혜롭고 머리가 무척 좋지만 얼굴이 못생긴 랍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주가 그를 보고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지혜가 이처럼 못생긴 그릇에 담겨 있군요.

그러자 랍비가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공주님, 이 왕궁 안에 술이 있습니까?

공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술은 어떤 그릇에 들어있습니까?

보통의 항아리나 주전자 따위의 그릇에 들어 있지요.

랍비는 깜짝 놀란 듯 말했습니다.

로마의 공주님이신 훌륭한 분께서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도 많으실 텐데 하필이면 그런 보잘것없는 질그릇에 술을 담아두십니까?

이 말을 들은 공주는 시녀들을 불러 이제껏 금과 은으로 된 그릇에 담긴 물과 질그릇에 담긴 술을 바꿔 담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술맛이 변하여 맛이 없게 되었습니다. 황제가 노하여 크게 꾸짖었습니다.

누가 이런 그릇에 술을 담는 어리석은 짓을 했단 말이냐?

공주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황공하옵니다. 제가 생각이 모자라서 그렇게 하도록 잘못 시켰습니다.

공주는 그렇게 사과한 뒤 곧 랍비에게로 가서 화를 내며 항의했습니다.

랍비님, 어찌하여 제게 그런 어리석은 일을 시켰단 말입니까?

랍비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전 다만 몹시 귀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때론 보잘것없는 질그릇에 담아두는 편이 훨씬 나은 경우도 있단 사실을 공주님께 가르쳐드리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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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개미 무리 중에는 개미를 노예로 삼는 종이 있다


꿀벌은 장수말벌류, 개미류, 흰개미와 더불어 고도의 사회성을 가진 곤충의 한 예입니다. 꿀벌은 꿀 도둑을 침으로 쏘고 그 싸움에서 죽게 됩니다. 사회성 곤충의 공적은 전설적인데, 그중에서도 협력 행동의 능력과 외관적인 이타주의는 놀랄 만큼 뛰어납니다. 적을 찌르는 자살행위는 그들이 가진 자기포기의 경이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꿀단지개미 가운데 괴이하게 부풀고 꿀을 잔뜩 꾸려 넣을 수 있는 배를 가진 일개미가 있습니다. 그들의 전 생애에 있어 오직 하나뿐인 일은 천장에 붙은 전구처럼 축 늘어져 다른 일개미들의 먹이 저장소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개체성은 외관상 사회의 복지성에 종속된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성 곤충의 집단 내의 대부분의 개체는 불임의 일벌레입니다. ‘생식 계열 germ line’(불사신의 유전자를 계속 전하는 계열)은 번식능력을 가진 극히 소수의 개체로서 번식자의 몸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번식능력을 가진 소수의 개체는 정소나 난소 중에 들어있는 우리의 생식세포와 유사합니다. 불임의 일벌레들은 우리의 간, 근육, 그리고 신경세포에 해당합니다. 일벌레들이 행하는 자살적 행위와 다른 형태의 이타주의 및 상호 협력은 그들이 불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일벌은 자기의 자식을 만들지 않습니다. 일벌들은 자식이 아닌 근친자를 돌보는 데 전력을 쏟고 스스로의 유전자를 보존하려고 합니다. 한 마리의 불임의 일벌이 죽는 것은 자기의 유전자에게는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사회성 곤충에서 개체는 애 낳는 자와 애 키우는 자의 두 주요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애 낳기를 담당하는 자는 번식력이 있는 암컷과 수컷이고 애 키우기를 맡는 자는 일벌레들입니다. 일벌레 중에서 흰개미류의 경우는 암수가 모두 불임인데 기타의 모든 사회성 곤충에서는 암놈이 불임입니다. 일종의 ‘부모에 의한 조작’ 이론에 의하면 여왕은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일벌레에게 화학 물질에 의한 조작을 가해 자신이 낳는 많은 새끼의 시중을 들게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 얻는 이익은 모두 여왕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론에 의하면 일벌레는 애 낳는 벌레를 “자기의 이익을 위해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벌레들은 번식 층에 조작을 가하여 그가 일벌레의 몸속에 있는 유전자의 복제물을 더 많이 증식하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개미류, 꿀벌류, 장수말벌류에서의 일벌레는 여왕보다 한 배embryo(다세포생물의 발생 과정에서 초반에 해당하는 단계) 새끼와의 근친도가 실제로 높습니다.

개미류, 꿀벌류, 장수말벌류 등을 포함하는 그룹을 막시류Hymenoptera이라고 합니다. 막시류는 세계 도처에 분포하며 생활환경에 잘 적응하고 기생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대략 10만 종류가 알려져 있습니다. 이 종류의 곤충은 매우 특이한 성 결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흰개미는 이 종류에 포함되지 않으며, 또 이 특이한 성 결정 양식도 공유하지 않습니다. 막시류의 전형적인 집에는 성숙한 여왕이 한 마리밖에 없습니다. 여왕은 젊어서 결혼 비행을 한 번 하고, 그때에 저장한 정자로 나머지 전 생애(10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애 낳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암놈은 정자를 일정량씩 방출하여 수란관을 통과하는 알을 수정시킵니다. 그러나 모든 알이 수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수정란이 발육하면 수놈이 됩니다. 즉 수놈에게는 아비가 없습니다. 수놈의 몸의 모든 세포 중에는 두 세트의 염색체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한 조의 염색체(모두 어미 혈통)밖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암놈에게는 아비가 있는데, 암놈의 체세포들 속에는 보통과 같은 두 세트의 염색체가 들어있습니다. 어떤 암놈이 일벌레가 되느냐 여왕이 되느냐는 유전자가 아닌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즉 암놈은 여왕을 만드는 유전자의 완전한 세트와 일벌레를 만드는 유전자의 완전한 세트(또는 일벌레, 병정 등 개개의 특수화된 계급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완전한 세트들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적합할 것이다)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세트에 유전자가 전해질지는 그 암놈이 어떻게 양육되느냐, 특히 어떤 먹이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막시류의 성 결정 유성생식의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경우 한 남자에게서 유래하는 정자는 모두 틀린 유전자 조성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막시류의 시스템에서 한 마리의 수놈이 만드는 정자는 모두 같은 정자로 되어버립니다. 막시류 수놈의 몸속 세포는 두 세트가 아니라 한 세트의 유전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수놈에서 유래하는 정자는 모두 같습니다.

개미 무리 중에는 개미를 노예로 삼는 종이 있습니다. 노예 사역 일개미 혹은 병정개미가 하는 일은 노예를 사냥하는 것뿐입니다. 대립하는 군대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사람과 사회성 곤충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개미류에서 병정개미는 무시무시한 전투용 턱을 가지고 있어 집단을 위해 다른 개미 군대와 싸우는 일을 도맡습니다. 병정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집을 공격해 집을 방위하고 있는 일개미나 병정개미를 죽이고 성충이 되기 전의 애벌레들을 빼앗아갑니다. 애벌레는 포획자의 보금자리에서 성충이 되어 노예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경계에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자기와 같은 종의 보금자리에서 일반적으로 행했을 모든 일을 해치웁니다. 노예개미가 보금자리에 머물러 청소, 먹이 구하기, 새끼 돌보기 등 개미집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에 정성을 쏟는 동안 병정개미는 다시 노예사냥 원정을 계속합니다. 노예들은 자기들이 시중들고 있는 여왕이나 새끼가 남이란 것을 모릅니다. 노예 사역종의 여왕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성비를 기울게 할 수 있습니다.

개미류는 재배용의 식물뿐만 아니라 가축도 소유하고 있다. 진딧물이 그것입니다. 진딧물류는 식물의 즙을 흡입하기 위해 고도로 특수화된 곤충입니다. 그들은 식물의 즙을 매우 효율적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소화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양을 빨아댑니다. 또한 영양가를 조금만 흡수하고 나머지 액체는 분비합니다. 당분을 많이 포함한 ‘꿀방울’이 몸의 후미에서 대량으로 흘러 넘쳐 나오며, 자기의 체중을 넘는 정도의 꿀방울을 매시간 분비할 때도 있습니다. 꿀방울은 비처럼 지상에 떨어집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주신 양식인 만나manna는 이 꿀방울이었을 것입니다. 개미 중에는 그 꿀방울이 진딧물의 몸에서 이탈되는 순간 즉시 그것을 탈취하는 종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더듬이와 다리로 진딧물의 궁둥이를 비벼서 꿀을 짭니다. 진딧물도 개미에게 반응하는데, 개미가 건드리기 전까지 작은 꿀방울을 내지 않다가 개미가 받을 준비가 될 때에 그것을 분비합니다. 이 상호 관계로 진딧물이 얻는 것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젖소처럼 그들도 보호받는 생활을 하는 것임니다. 개미가 자기들의 지하 집 속에서 진딧물의 알을 돌봐주는 예도 있습니다. 이 경우 개미는 진딧물의 애벌레에 먹이를 주고, 마침내 그들이 성장하면 그들을 보호받을 수 있는 풀밭에서 풀을 뜯도록 조심스럽게 운반합니다. 이런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상리공생mutualism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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