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역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4월 14일에 태어났고 이듬해 그의 가족은 뮌헨으로 이사하여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숙부 야코프 아인슈타인은 조그만 전기공장을 세우고 전기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열두 살 때 거시세계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3년 후 역사・지리・어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졸업장도 못 받고 학교를 나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는데,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밀라노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유명한 취리히의 국립공과대학 폴리테크닉연구원Polytechnic Institute에서 4년 동안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1900년 봄에 졸업한 뒤 스위스 시민이 되었지만 마땅한 취직자리를 얻지 못해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가 그의 자만심 강하고 오만한 태도를 싫어해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에 교수의 강의가 신통치 않다는 이유로 종종 수업을 빼먹곤 한 것이 지도교수의 반감을 산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 뒤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고 부모에게 학비를 타 쓰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심지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리학으로 취직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보험회사를 첫 직장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월급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이 때문에 직장상사와 말다툼을 벌인 뒤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여자친구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ci가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다는 생각에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인슈타인의 딸 리세럴Lieseral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무렵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면서 아인슈타인은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생각했습니다.
1901~02년은 아인슈타인의 평생을 통틀어 최악의 해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친구이자 수학자 마르첼 그로스먼Marcel Grossman(1878~1936)이 아인슈타인을 스위스 베른에 소재한 특허청의 하급사원으로 추천함으로써 불세출의 천재는 암울한 시기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관련 서류들을 일찍 정리한 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생각해온 자신의 꿈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독일의 유대인 과학자 아론 번스타인Aaron Bernstein(1812~84)의 『자연과학 입문서 People's Book on Natural Science』를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번스타인은 “전깃줄을 타고 전송되는 전보를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 같은 맥락에서 “빛과 동일한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만약 내가 C라는 속도(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빛은 정지해 있는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학electromagnetics에 관한 맥스웰의 방정식Maxwell's equations에 따르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소년 아인슈타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 빛은 정지상태의 파동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20세기의 여명에 물리학은 뉴턴의 역학 및 중력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18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1831~79)은 빛이 진동하는 전기장electric field과 자기장magnetic field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간파하여 고전 전자기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서로 상충된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고전물리학의 명예로운 퇴장을 최초로 예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방정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따르면 빛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는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좇아가면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고 해도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 C가 모든 관성계inertial reference frame(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준좌표계reference frame)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공간을 표류하는 우주비행사가 빛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릴 경우 그 비행사는 우주선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서 빛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립니다. 이 광경을 지구에 있는 관측자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빛과 우주선이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빛과 속도경쟁을 벌이는 우주비행사의 눈에는 빛이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C의 속도로 멀어져 갈 것입니다. 우주선이 정지해 있을 때나 달릴 때나 빛의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아인슈타인은 1905년 초에 독일의 유명한 월간학술지 『물리학 연보 Annalen der Physik』에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 A New Determination of Molecular Dimensions」이라는 논문을 냈는데, 이 논문으로 나중에 취리히의 국립공과대학 폴리테크닉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에 처음 실렸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법칙이 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빠르기로 흐른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관측자의 운동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릅니다. 시간은 뉴턴의 생각과 달리 절대적인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시간이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한 속도로 흐르며 지구에서의 1초가 화성과 목성에서의 1초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뉴턴의 시간이 범우주적으로 맞출 수 있는 절대시간인 반면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우주의 각 지점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물체의 길이와 질량, 에너지 등도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빛을 제외한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또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양임을 간파하여 이것들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증가하는 것은 운동에 의한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현상도 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E=mc2으로 표현했는데, 이 방정식에 의하면 극소량의 질량이라도 일단 에너지로 변환되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에너지와 질량을 연결하는 비례상수(광속의 제곱, c2)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식이 알려진 뒤 미지로 남아있던 별의 비밀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별의 내부에서는 핵융합반응을 통해 매순간마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밝은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의 시계는 걸어가는 사람의 시계보다 늦게 가고, 그의 체중은 평상시보다 무거워지며, 그의 몸은 앞뒤 방향으로 납작해집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중력에 적용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중력이론이 뉴턴의 중력이론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우주전역에 걸쳐 즉각적으로 전달됩니다. 아무리 먼 곳이라 해도 중력이 전달되는 데는 아무런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태양이 사라질 경우 뉴턴 식으로 생각하면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태양의 부재로 인한 중력의 소멸을 동시에 즉각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에 다르면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금지조항은 움직이는 물체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신호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태양이 갑자기 사라질 경우 그곳에서 구형의 중력충격파가 형성되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이 구면파球面波(공간의 어떤 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한결같이 퍼져가는 파동)가 도달하지 않는 곳에서는 태양의 중력이 여전히 작용하며(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육안 상으로 태양은 아직 멀쩡합니다), 구면파가 이미 도달한 지점에서는 태양의 부재를 실감하게 됩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태양의 모습도 함께 사라집니다. 중력과 빛은 정확하게 같은 속도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과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4년 4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프로이센 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었고, 아카데미 당국은 아인슈타인이 때때로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헤어짐으로 몇 해 뒤에 아인슈타인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일반상대성이론에 전념했으며, 이 이론은 1916년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가설의 핵심은 중력이,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의 질량의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field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별빛이 태양 가까이 지날 때 별빛의 휘어짐에 의해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별빛은 개기일식 동안에만 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두 배의 빛의 휘어짐을 예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