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로댕의 2인전

1889년 조르주 프티가 파리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모네와 로댕을 묶어서 대규모로 회고전을 개최하고 싶다고 모네에게 알려왔습니다. 이는 모네가 심히 바라던 바였습니다. 로댕을 존경한 그는 로댕과 함께 전시회를 갖는다면 파리 화단에서 자신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프티의 제안에 대단히 만족해 2월 28일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 “선생과 제가 함께 힘을 모은다면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을 줄 압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모네는 전시회에 소개하려고 뒤레와 포르, 뒤랑-뤼엘에게 자신의 작품을 빌려줄 것을 요청했는데, 뒤랑-뤼엘은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모네는 프티가 딜러로 성공하는 것을 시기한 뒤랑-뤼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프티 화랑에서 제 작품과 로댕의 조각품을 함게 전시하겠다는 계획에 찬성했습니다. 이는 대단한 사건입니다. 전시회는 국제전 관람차 파리를 방문하는 외국인을 고려해서 그 기간에 맞춰 3개월 동안 열릴 것입니다. 해서 말씀드리는데, 몇 가지 필요한 작품이 있습니다. 근래의 작품들과 함께 지난날에 제작한 것들도 전시하고 싶어서입니다. 선생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이 전시회는 어느 정도 성공이 예상되므로 선생에게도 작품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줄 압니다.”(1889. 5. 1)
‘모네, 로댕 2인전’은 1889년 6월 21일에 열렸습니다. 모네는 145점, 로댕은 36점을 소개했습니다. 모내는 ‘야외 인물 스케치’란 제목으로 지베르니에서 그린 네 점을 포함시켰는데, 알리스의 딸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었습니다. 모네는 알리스의 딸들을 “나의 어여쁜 모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네에게는 25년 동안의 작업을 결산하는 중요한 전시회였습니다. 카탈로그 서문을 쓴 미르보는 ‘야외 인물 스케치’를 “아름다운 지베르니의 인물화”라고 적었습니다. 로댕을 소개하는 글은 제프루아가 맡았습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
로댕은 원래 칼레의 시민들을 한 사람씩 따로따로 위치시켜 전채로 구성하려다가 하나의 고정된 조각으로 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포박하여 항복하는 시민들의 비장함을 나타내어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했습니다.
로댕은 이번 전시회에 처음 선보일 <칼레의 시민들>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 시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전시가 열리던 날 제프루아는 자신이 관여하는 잡지 『정의』에 “이 전시회는 클로드 모네의 화가로서의 생애를 담은 이력서다”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전시장을 보고 대단히 실망한 모네는 조르주 프티에게 원망을 편지를 썼습니다.
“로댕의 군상들을 죽 늘어 전시했으므로 뒤에 있는 제 작품은 완전히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불운으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인전을 개최하기로 했으면, 각자의 작품을 어떻게 진열할 것인지에 관해 서로 의논해야 한다는 점을 로댕이 마땅히 알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 이 문제에 관해 저와 의논하고 제 작품에 조금이라도 배려했더라면, 서로 마음 상하는 일 없이도 작품을 배열하는 일은 아주 수월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제 제가 바라는 일은 오직 하나, 지베르니로 돌아가서 평온을 되찾는 것입니다.”
36점의 조각, 그것도 실제 사이즈이거나 실제보다 더 큰 조각들을 진열하자니 자연히 관람자와 벽 사이의 공간이 가려져서 모네의 작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에게 전시 자체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가까이 가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네는 혼자 속을 달래고 이 문제로 로댕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전시는 대호평이었고, 이후로도 모네와 로댕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품 활동을 격려했습니다.
1898년 살롱을 통해 <발자크>를 소개했을 대 파리 시민들의 반발로 몹시 화가 나 있던 로댕에게 모네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마침내 선생의 <발자크>를 보았습니다. 물론 아름다우리라 기대하고 간 것인데, 그 작품은 저의 모든 예상을 초월했습니다. 이는 제 진심입니다. 그러니 평론가들의 떠들어대는 소리는 아예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 작품은 과거 어느 작품에 비해서도 훌륭했으며, 아름답고 웅대했습니다.”(1898. 6. 30)
로댕은 모네의 편지를 받고 몹시 기뻐하며 일주일 후 답장을 보냈습니다.
“<발자크>를 감상했다는 선생의 편지를 받고 대단히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의 평이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풍경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선생의 혁신적인 작품을 두고 사람들이 냉소했을 때에 선생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겠지만, 저는 지금 욕을 한껏 먹고 있습니다. ... 선생의 전시회 성공은 현재의 저처럼 박해받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힘이 됩니다. 안개에 싸인 성당! 지금까지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너무 멋진 효과!”(1898.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