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위상phase
우주는 온도가 식어감에 따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되었습니다. 한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갈 때마다 대칭성이 붕괴되고 힘이 여러 종류로 분리되었습니다. 우주가 겪어온 진화과정은 연대별로 다음과 같습니다.
1. 10-43초 이전-플랑크 시대
플랑크시대Planck epoch란 전자기력・중력・강력・약력의 네 종류의 힘이 상호작용하여 하나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대를 말합니다. 플랑크에너지 영역에서(1019 전자볼트) 중력은 다른 양자적 힘들과 거의 같은 세기로 작용합니다. 그 결과 네 종류의 힘들은 초힘super force이라는 하나의 힘 속에 통합되며 우주는 완전한 무(혹은 고차원의 빈 공간)의 상태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네 종류의 힘을 하나로 통합시켜서 모든 방정식을 같은 형태로 만들어준 신비한 대칭은 초대칭super symmetry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네 종류의 힘을 통합시킨 신비한 대칭이 붕괴되면서 양자적 요동이 무작위로 발생하며 이로부터 우주의 배아에 해당되는 기포가 형성됩니다. 이 기포의 크기는 약 10-33cm 정도이며 이 값을 플랑크길이Planck length라 합니다.
2. 10-43초-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GUT) 시대
초기의 대칭이 붕괴되면서 기포가 빠른 속도로 팽창되기 시작합니다. 기포가 커짐에 따라 초힘은 네 종류로 순식간에 분리되는데, 이들 중 중력이 가장 먼저 분리되면서 우주전역에 충격파를 발산합니다. 초힘이 보유하던 대칭(SU(5)대칭으로 추정)은 좀 더 작은 대칭으로 축소되고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력・강력・약력은 여전히 대통일이론대칭 속에 통합됩니다. 이 시기에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거의 1050배까지 폭발적으로 팽창되는데, 그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온도는 약 1032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3. 10-34초-인플레이션 종료
온도가 10-27도까지 떨어지면서 강력이 분리된다. 대통일이론대칭이 SU(3)×SU(2)×U(1) 대칭으로 붕괴되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 인플레이션이 종료되면서 우주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의 예견대로 표준적인 팽창을 겪기 시작합니다. 우주는 쿼크・글루온・렙톤 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온의 플라즈마plasma(기체상태의 물질에 계속 열을 가하여 온도를 올려주면 이온핵과 자유전자로 이루어진 입자들의 집합체가 만들어집니다. 물질의 세 가지 형태인 고체・액체・기체와 더불어 ‘제4의 물질상태’로 불리며 이런 상태의 물질을 플라즈마라고 함) 상태가 됩니다. 오늘날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데 모두 사용되고 있으며 자유로운 쿼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우주의 크기는 지금의 태양계 정도였을 것입니다.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충돌하면서 모두 소멸되지만 물질의 초과분(전체 양의 10억분의 1 정도)이 남아 장차 만들어질 천체의 원료가 됩니다.
4. 3분-핵자의 탄생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면서 원자핵atomic nuclei(양전하를 띠고 원자의 중심에 위치하며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강입자hadron 중에서 중입자baryon, 중입자 중에서도 가장 질량이 작은 핵자들의 모임으로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로 이루어져 있음)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수소원자의 핵이 융합반응을 일으키면서 헬륨helium 원자핵이 만들어지며[오늘날의 성분비(수소 75% : 헬륨 25%)는 이 시기에 결정됨], 리튬lithium(알카리 금속의 첫 번째 원소) 원자핵의 일부도 이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어내는 핵융합반응(가벼운 원자핵이 고온, 고압에서 결합하여 무거운 원자핵으로 되는 핵반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섯 개의 입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전자들이 빛을 산란시켰으므로 우주공간은 불투명합니다. 학자들은 이 시기를 원시우주의 마지막 단계로 간주합니다.
5. 38만 년-원자의 탄생
우주의 온도가 절대온도 3,000K로 떨어지고 열에너지가 충분히 약해지면서 전기력에 의해 전자가 원자핵의 주변에 구속되기 시작합니다. 즉 원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자는 더 이상 흡수되지 않고 공간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됩니다. COBE(Cosmic Background Explorer)와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위성이 관측한 배경복사는 이 시기에 방출된 것입니다. 한때 플라즈마로 가득 찬 채 불투명했던 공간은 이 시기가 되어 비로소 투명해집니다. 흰색이던 우주공간이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6. 10억 년-별의 탄생
온도가 18K까지 떨어지면서 원시 불덩이가 겪었던 양자적 요동quantum fluctuation의 결과로 퀘이사quasar(아주 먼 거리에 있지만 높은 광도와 강한 전파방출이 관측되는 희귀한 천체)와 은하 그리고 초대형 성단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퀘이사(준항성체)의 크기는 1-2광년밖에 안 되지만 밝기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 정도 되는 거대은하들보다 1천 배가량 더 밝습니다. 이런 엄청난 밝기로 인해 이것들은 100억 광년 이상의 거리에서도 관측됩니다. 이런 엄청난 양의 복사는 준항성체 중심에 있는 작은 영역에서 방출됩니다. 별의 내부에서는 탄소・산소・질소 등 비교적 가벼운 원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며 폭발하는 별은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을 주변에 흩뿌립니다. 이 시기는 허블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에 해당됩니다.
7. 65억 년-드 지터식 팽창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식 팽창모드는 서서히 종결되고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중력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 물리학자 빌렌 드 지터식 팽창이 시작됩니다. 팽창속도가 점차 빨라집니다.
8. 137억 년-현재
우주공간의 온도는 2.7K(섭씨 영하 271.3도)까지 떨어지고 별・은하・행성 등 현재와 같은 우주의 모습이 형성되었습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고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론inflation theory(혹은 급팽창이론)은 우주와 관련된 여러 가지 비밀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인플레이션이론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몇 개의 이론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초신성으로부터 유도된 결과는 초신성 탄생기의 먼지구름과 비정상성anomaly 등의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여러 차례 재확인되어야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론의 진위 여부를 가려줄 가장 중요한 단서는 빅뱅 무렵에 생성된 중력파gravitational wave(중력장의 에너지가 공간 속에서 전해는 파로 질량이 큰 별이 중력 붕괴할 경우 등에 발생함)입니다. 중력파는 배경복사background radiation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주공간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으며 중력파감지기에 검출될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론은 중력파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예견하고 있으므로 감지기에 잡히면 이론의 진위 여부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론이 예견한 내용 중 가장 검증하기 어려운 것은 다중우주의 존재 여부입니다. 각 우주마다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인플레이션이론이라는 것이 아인슈타인 방정식과 양자이론의 기이한 특성을 십분 활용한 이론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다중우주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으며, 양자이론은 다중우주들 사이의 이동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M-이론(막이론)은 다중우주와 시간여행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제공해줄 강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