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야 했다

먼저 중동이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된 이후 세계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역사 밖에 존재했었다는 점부터 짚어볼까 한다. 아랍국가들의 경우 권위주의 정권이 갖은 박해를 자행하며 통치하다가, 2011년 1월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튀니지 시디 부자이드에서 어느 노점상이 임의로 사업이 몰수된 데 대해 분신시위를 벌이자, 이것이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어 10일 후 독재자 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야 했다. 같은 달, 튀니지 주민들의 시위는 알제리와 요르단, 예멘 및 시리아로 퍼졌고, 중동의 중심지인 이집트까지 확산되었다. 18일간 지속된 군중 시위— 1월 25일부터 2월 11일까지— 는 결국 30년간 집권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축출로 이어졌다. 아랍의 봄은 이 장의 주제— 민주정치를 둘러싼 이슬람주의자들의 의지력— 를 완전히 판이하게 바꾸었다. 이를테면, 이슬람주의 당의 공직 선출이 이론적인 장래의 결과였다가 조만간 벌어질 전망이 된 것이다. 이슬람세계의 핵심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정치로 이행하려는 것이므로 이슬람주의 조직의 입지를 분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음의 세 가지 요점이 분석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1989년 탈공산주의 유럽이 대부분 그랬듯이, 해체된 권위주의 정부가 민주정치를 발전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국왕이 폭정을 일삼다가 1979년 이후에는 이슬람주의자인 아야톨라٥가 이를 답습했다. 둘째는 이슬람주의가 다국적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 터키의 AKP는 서로 연줄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고, 『뉴욕 타임스』지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글로벌 에디션에 따르면, “에르도안 당은 이미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 결연을 맺었다— 에르도안 전 총리가 중동에서 오랫동안 반이스라엘의 선동자로 나선 결과— 고 한다. …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원 중 셋은 … 터키의 후원을 받는 선박에 탑승했는데… 2010년 5월에 이스라엘 군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86 그리고 마지막은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이 항시 이슬람주의의 세속적 보루를 자처했다는 것인데, 무바라크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 서방세계는 민주화의 강력한 변수로서 이슬람주의를 미화하려는 추세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을 취재한 『뉴욕 타임스』지의 글로벌 에디션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무슬림 형제단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고 시인했고, 이 같은 불확실성은 “실권을 잡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편리한 허울임이 입증될지도 모를” 조직의 중도정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중동에서 벌어진 동요가 이슬람주의자를 비롯한 그들의 지지자들이 촉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는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고난을 감내해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예컨대, 튀니지 행상인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열악한 경제적 형편에 항의하기 위해 분신을 기도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각계각층에 관계된 저항세력에 가담했다.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폭동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치적 현실이 되어버린 폭동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존의 이슬람주의 조직을 합류시키지 않는다면 이슬람세계의 아랍・중동에서 계획된 정책이 전무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민주적인 참여정부라도 이 조직을 제외시킨 채 민주적 원칙에 충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록 비민주적인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나, 폭력을 버린 이슬람주의자를 가담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참여와 위임은 뚜렷이 구분되는 쟁점이다. 이슬람주의를 합류시키는 것은, 레바논과 가자지구, 이라크 및 터키에서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에 권한을 부여하거나, 민주정치라는 미명 하에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진정한 민주정치 세력을 대변하는 평형추를 반대편에 세워야 좀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무바라크 정권 이후, 이집트에서 벌어질 사건은 1979년 국왕이 축출된 후 이란에서 벌어진 것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이란과 이집트는 각각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의 중심지다. 차이가 있다면, 수니파 무슬림은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의 9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의 소요사태가 극에 이르렀을 당시, 2011년 1월 31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보도되었던 상반된 양상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CIA 정치적 이슬람세계 전략분석프로그램Political Islam Strategic Analysis Program의 국장을 지낸 에밀 나클레는 “새 정부가 수립되면 세속인과 이슬람주의자를 연합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슬림 형제단은 이미 선거에 참여해온 데다 다른 집단과 공조할 의지가 있다” 고 밝혔다. 결론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당에서 기회를 노리는 아야톨라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88 수니파 이슬람교에는 아야톨라가 없으니 발언 자체는 허위가 아니다. 수니파 성직자는 카이로의 알아즈하르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나, 무슬림 형제단의 발생지는 그곳이 아니다.— 이란 시아파의 성지인 쿰Qum에서 태동한 아야톨라와는 다르다. 수니파 이슬람주의 조직은 대개 일반 국민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