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외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그의 인격을 제1인격으로 삼았다

주로 학교에서 펼쳐지는 어린 융의 외적인 삶은 그의 본모습과 그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모습 간의 차이를 더욱 벌려 놓으면서 그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융은 외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그의 인격을 제1인격으로, 내면의 본성을 제2인격으로 삼았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대극들이 있긴 하지만 융에게 두 모습의 차이는 더욱 선명하고 의식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만족스러운 태도로 돌 위에 앉아서 자신이 돌인지, 돌이 자신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학교 친구들과 불을 피우면서도 불꽃에 비밀스러운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에게 점차 다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나와 나 자신을 분리시키고 있음을 알았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집에서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집에서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새로운 장난을 떠올렸다. 혼자 있을 때도 모든 종류의 상상을 다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변화가 학교 친구들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어 그들이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거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본모습에서 벗어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속한 더 넓은 세상이 전부 수상해보인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은 나에게 모호하게 보였으며 막연하긴 하지만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고 있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나의 내적인 안정을 위협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사회가 그의 내면에 가하는 위협에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남몰래 나무를 깎아 5센티미터 정도의 인형을 만들어 검은색으로 칠하고 모직 코트를 입힌 후 필통을 침대 삼아 그 인형을 눕혔다. 또한 아무도 모르게 매끈하고 길쭉하며 거무스레한 돌멩이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색을 입혀 “영혼의 돌”을 만들었다.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그것을 다락방에 숨겼다.
누구도 나의 비밀을 찾아서 파괴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편해졌고 내가 자신과 충돌한다는 고통스러운 느낌이 사라졌다 …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내 성격을 형성하는 데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 작은 나무 인형과 돌은 의식적이지 않았으며, 유치하긴 했지만 나의 비밀을 형상화한 첫 번째 시도였다. 나는 늘 그것에 빠져 있었으며 그것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후에 융은 영혼의 돌에 대한 그의 추억이 호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 토착민과 같은 고대 종족의 전통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그 순간은 유년 시절의 “정점이며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