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리아국가의 질서는 전통 이슬람교의 샤리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향후 진로를 두고는 누구도 진단을 내릴 수 없겠지만 이집트를 좀 더 안다면 분명한 가닥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서방 언론의 논평과 기사 수십 건을 읽어 보니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기고한 브레트 스티븐스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무슬림 형제단이 제멋대로 군다면 이집트는 이란을 모델로 한 수니파의 신정국가가 될 것이다.
알다시피, 이슬람주의의 목표가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스티븐스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점쳐봄직한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이를테면, “무슬림 형제단의 앞잡이이자, 군대 통수권을 행사할 수 없는 나약한 의회제도는… 특히 주도권을 예상하고 있는 엘바라데이가 형제단의 정치적 연대와 부딪친 이후에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널리 존경받는 이집트인이자 뉴욕과 빈에서 주로 활동한 전 유엔 관리인데, 리더가 없는 야권의 리더를 자처하기 위해 카이로에 복귀했다. 그는 정치인도 아니고 숱한 경쟁조직을 포섭할 토대도 갖추지 않았다. 민주정치의 구호를 제외하면 그에게는 분명한 아젠다도 없다. 한편, 엘바라데이를 비롯한 야권세력과는 달리, 무슬림 형제단은 추종자와 아젠다를 모두 겸비했다. 조만간 형제단은 이집트에 민주정치를 세우는 데 참여할 것이나— 꼭 그래야 한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이 이슬람주의의 아젠다는 아니다. 나는 아얀 히르시 알리의 견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집트의 세속 민주정치 세력이 무슬림 형제단보다 훨씬 열세한 이유가 무엇” 이냐며문제를 제기한 데에는 공감한다. 대체로 비이슬람주의 야권은 무바라크를 축출하리는(현재는 성취되었지만) 당장의 목표를 넘어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으나… 공통적인 이데올로기를 이룩할 접착제는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아얀 히르시 알리가 지적한 대로, 무슬림 형제단은 “차기 선거뿐 아니라,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내세가 오기 전까지는 정치적 프로그램과 비전이 있을 것이다. … 샤리아를 확립하려는 무슬림 형제단은… “그들에게 던진 표는 알라 신의 법을 지지하는 표와 같다” 고 주장할 것이며… 유력한 조직이 없는 세속 민주정치 세력은 또 다른 독재자 앞에서는 쉽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를 면하려면 1979년 이란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에는 아야톨라가 아닌 이란 국민이 독재자를 축출했음에도 이슬람주의자들이 공백을 채웠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정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개입하긴 했으나 이는 민주정치 제도 수립을 일컫는 민주적인 조치로서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이집트의 민주정치는 민주적 정치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선거전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 과정에서 무슬림 형제단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집트의 미래를 둘러싼 그들의 비전만은 모든 민주정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해야 마땅하다. 무슬림 형제단 사무총장인 후세인 마무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와의 인터뷰에서 친민주정치 “신이슬람주의” 를 표방하며 이집트의 민주정치 제도를 적극 찬성했다. 그러나 무슬림 형제단이 시위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형제단이 다원주의적 민족 정부에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히르시 알리의 의혹에 대해서는— “샤리아국가를 건설할 생각이냐” 는 질문에—“예, 이슬람의 샤리아가 자유와 권리를 부여하니까요. … 샤리아는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며… 국가에는 문명화된 행복한 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해줄 겁니다. … 이집트는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국가로… 무슬림이 사는 도리를 규정한 샤리아를 두고 있습니다. … 이집트는 종교를 탈피한 국가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역사와 문명을 거스르는 작태이기 때문” 이라고 대꾸했다. 이 같은 견해는— 6장에서도 언급하겠지만—민주정치와 대립될 뿐 아니라, 이집트의 역사 및 전통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슬람주의가 강요하려는 샤리아국가의 질서는 전통 이슬람교의 샤리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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