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의 소년 시절

1886년 융은 열한 살이 되어 바젤의 중등학교에 입학했다. 비교적 자유롭고 부유한 환경을 접한 그는 자신의 경제적 빈곤을 깨닫고 “괴롭고 은밀한 부러움”을 느꼈다. 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교육을 통해 그의 본성의 다양한 측면들이 여러 방향으로 움직였다. 학교에서 그는 비판에 민감하고 남을 대하는 데 서툴렀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소심하게 있다가도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는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거침없이 보였다. 내적으로는 불안했지만 외적으로는 우월감에 차 자신만만했던 그의 대극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기가 있지도 않았고 특이했던 융은 관심이 있을 때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경쟁을 싫어했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아이”였다.
융의 마음속에 자신은 “외톨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의 따분함과 어느 날 우연히 쓰러진 일 때문에 신경증을 앓게 되어 집에 머물며 홀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쓰러지는 순간, “이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신경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반년 동안 신경증을 앓았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간질에 걸려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을 엿듣고 나서는 “아, 그렇다면 공부를 해야겠구나”라는 가책과 깨달음으로 성실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하나는 18세기의 권세가 노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구멍 난 양말을 신은 20세기의 가난한 남학생으로, 대부분의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체육을 싫어하고 영감을 받을 때만 그림을 그리며 수학을 “고문”으로 여겼다. 그는 대수 명제 “A=B”가 해와 달이 같다는 말처럼 “완전한 거짓말 또는 사기”라고 생각했다. 그의 머리는 수학의 공식보다는 수학에 대한 그의 “도덕적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설명을 원하고 있었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접한 종교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과 교조주의를 피상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에게 신학 수업은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따분”했으며 “주 예수”는 배우고 나서도 여전히 모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이라는 개념은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신에게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움이 있으며 “정확한 개념을 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 고유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열두 살 무렵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정적인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디뎠다.
푸른 하늘은 근사했고 해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성당의 지붕이 매끈하게 빛을 발하고 밝은 색 유약을 새로 입힌 타일이 햇빛에 반짝였다. 나는 아름다운 그 광경을 보고 감동하여“ 세상은 아름답고 대성당도 아름다우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한 하나님이 푸른 하늘 위의 옥좌에 앉아 계시구나”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이와 함께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나는 멍해지며“ 더 이상 생각하지말아야 해! 끔찍한 어떤 일이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다가가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가 일어날 거야. 왜? 나는 가장 무시무시한 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집으로 오는 먼 길을 걸으며 …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아름다운 대성당과 옥좌에 앉아 계시는 신이 자꾸만 생각났다. 하지만 그 생각은 강한 전기충격을 받은 듯 다시 흩어져 버렸다. 나는“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말자!”라고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당시 나로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금지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고 필사적으로 그것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그다음 이틀 동안 나는 완전히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으며 어머니는 내게 병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그 고통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대성당과 신을 다시 떠올리는 나를 발견하며 괴로운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 생각을 거의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항할 기운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포에 질려 땀에 젖은 채 잠을 쫓아내기 위해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제 그것이 온다. 심각한 일이야! 나는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미리 생각해야 해. 왜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가? 신에게 맹세하건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를 바라는 자는 누구인가? 그 누가 내가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강요하는가? 이런 끔찍한 의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신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이를 즉시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절박한 문제의 당사자가 신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 내가 영원한 지옥살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이 나의 도덕적 판단력과 종교의 가르침, 심지어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일, 아니면 내가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무언가를 하도록 특이한 명을 내림으로써 내가 순종하는지 시험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 나는 반복하여 생각했다 … 당장 지옥불에 뛰어들 태세로 모든 용기를 모아서 그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신이 세상 위 저 높은 곳의 옥좌에 앉아 있고 그 밑으로 거대한 똥 덩어리가 떨어져서 반짝이는 성당의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벽면을 부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큰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상상과는 달리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예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이 내려왔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한 마음에 흐느꼈다. 내가 신의 불변의 명령에 굴복하자 신의 지혜와 선의가 드러난 것이다. 깨달음을 경험한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 나에게 진정한 책임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은 그의 대성당을 왜 더럽혔을까? 그것은 무서운 생각이었다. 신은 무시무시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 흐릿하게 떠올랐다. 나는 어둡고 끔찍한 비밀을 경험했고 그것은 나의 삶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 경험이나 꿈에서 본 지하 사원의 남근상, 내가 만든 나무 인형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이런 비밀은 나의 젊은 시절 전체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 그러던 사이 이미 세상과 나의 관계는 일정한 형태로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나는 외톨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거나 보통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들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