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판매] 앤디 워홀 타임캡슐 ANDY WARHOL TIME CAPSULE 신고 URL복사

저자
매트 위비컨,제랄린 헉슬리 공저/김광우 역
출판사
미술문화 2012-12-20 ISBN 9788991847903 판형 268X305 페이지수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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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책소개

‘팝의 교황’, ‘팝의 디바’,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죽은 지 25년 만에 타임캡슐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팝의 교황’, ‘팝의 디바’,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하던 한 남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흘렀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되었고,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려버린 팝아트의 선구자이자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인 앤디 워홀. 그는 콜라병, 달러 지페, 캠벨수프깡통, 마릴린 먼로, 마오와 같은 강력한 이미지를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미술가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았던 그는 280여 편에 이르는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해 유행을 선도했다.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자신의 기록들을 출판했던 이 정열적인 남자는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시각화하는 직관력을 보여준 그는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앤디 워홀 타임캡슐』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워홀의 관심뿐만 아니라 창작에 관한 풍요로운 정보를 소개하면서 그의 삶을 추적한다. 대공황시기 피츠버그에서 보낸 워홀의 어린 시절부터 1950년대 뉴욕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기까지, 그리고 악명 높은 팝아티스트, 언더그라운드 영화제작자, 저술가, 출판인, 수집가,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 진정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워홀의 성공 과정과 진면목이 여기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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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매트 위비컨,제랄린 헉슬리 공저/김광우 역

저자 : 제랄린 헉슬리 Geralyn Huxley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의 영화와 비디오 부문 큐레이터. 세 권의 책과 많은 글을 썼으며, 정기적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워홀의 영화와 비디오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저자 : 매트 위비컨 Matt Wrbican
앤디 워홀 미술관의 문서보관 담당자로서 워홀에 관한 전시회를 스무 차례 이상 기획했다. 최근에는 방대한 워홀 의 개인적 자료를 감독하고 있으며,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여러 워홀 전시회의 책임을 맡고 있다. 다섯 권의 책과 수많은 저널과 신문 기사를 썼다.

역자 : 김광우
뉴욕시립대와 포담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술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일찍부터 뉴욕 미술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대가와 친구 시리즈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 《뒤샹과 친구들》을 출간했다. 서양미술과 예술철학에 관한 많은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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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928~1949
병약한 아이 앤드류 워홀라
앤디의 고향 피츠버그
비잔틴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라다
할리우드에 대한 사랑을 작품으로 만들다
창의적인 어미니 줄리아 워홀라
대학 시절에 개발한 워홀의 기법

1950~1959
1950년대의 뉴욕
뉴욕으로 가다
남다른 감각과 노력으로 상업 예술가로 성공하다
서쪽으로 간 세계 일주
댄스를 사랑한 워홀
트루먼 카포티와의 우정

1960~1969
짧지만 빛나는 순간 1960년대
팝아트에 도전하다
워홀의 팝아트와 초기의 아이콘들
죽음을 다루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
새로운 기술에 탐닉하다
워홀의 비디오아트
워홀이 만든 책들
1960년대 워홀과 함께 한 아름다운 소년 소녀들
우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그녀는 왜 앤디 워홀을 쏘았는가
유행의 선두주자 프레드 휴즈와 제드 존슨

1970~1979
글래머와 방종의 시대 1970년대
1970년대의 소년과 소녀들
《인터뷰》를 창간하다
밤의 유흥
워홀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워홀과 여장
로큰롤을 위하여
미술과 패션의 융합

1980~1987
레이건고 에이즈의 시대 1980
전 세계 유명 인사의 초상화
자화상
다시 시작한 여행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찾아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한 전시와 설치
젊은이들의 멘토가 된 워홀
갑작스런 죽음, 그 이후 위로

출판사서평

이 책만의 독특한 구성
이 책을 펼친 독자는 피츠버그의 워홀 미술관에 소장된 워홀의 ‘타임캡술’에서 그대로 복제한 20가지가 넘는 자료를 직접 만져보며 이 유명한 모던 아티스트의 생애와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그의 감수성과 독특함에 공감하는 특별한 기회를 만끽할 것이다.

워홀의 타임캡슐에서 복제한 포켓 자료들:
·1952년 뉴욕에서 가진 생애 첫 개인전을 알리는 엽서와 15점의 드로잉
·1966년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전시한 〈암소 벽지〉
·워홀이 〈캠벨 수프〉 회화에 사용한 스텐실
·워홀이 발레리 솔라나스로부터 총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에디 세즈윅이 보낸 문병카드
·워홀이 보관하던 잡지 『인터뷰』의 기사 “캔디 달링과 함께 집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때의 택시 영수증
·워홀이 직접 그린 책 《나의 정원 깊은 곳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매니저 시절의 공연 포스터
·대학 입학을 위해 제출한 고등학교 성적증명서
·포토부스에서 찍은 사진과 메모들
·워홀이 디자인한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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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예술에 반대하여

 

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예술에 반대하여 aganist art

수호자들의 교육에 관해 설명하면서 플라톤은 다양한 종류의 시들은 통제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신들이나 영웅들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주는, 또는 학생들에게 큰소리로 낭송됨으로써 자칫 학생들이 불의한 인물을 추종할 위험이 있는 글은 무엇이든 금지될 수 있다. 『국가』 제10권에서 그는 이상사회에서의 예술과 그 지위에 관한 주제로 되돌아온다. 그는 모방 예술, 즉 실재를 재현하고자 하는 예술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결론은 그런 예술은 자신의 국가에서는 자리 잡지 못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그런 예술은 현상의 모방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를 이데아의 세계에서 더 멀리 떼어놓기 쉽다. 둘째로, 모방 예술은 우리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에 호소하며, 따라서 정의에 필수적인 심적 조화를 해치기 쉽다.

첫 번째 종류의 비판을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은 침대를 그리는 화가의 예를 든다. 신은 침대의 이데아를 창조했다. 목수는 그 이데아의 어렴풋한 모방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화가는 목수의 모방물에 대한 모방물을 그렸다. 이런 행위는 하나의 진정한 침대에 대한 이미 불완전한 이미지인 것을 또다시 거울을 통해 비추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예술가는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침대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개별적 침대의 현상을 모방하는 일에 만족한다. 플라톤은 시인들도 화가와 어느 정도 마찬가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여 시 예술도 인정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인정하듯이 모방 작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유혹적이다. 이런 작품은 이성에 호소하지 않으며, 다만 영혼의 저급한 부분에 호소할 뿐이다. 그 효과는 선한 충동보다는 악한 충동을 묘사하는 작가들의 경향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모방 예술가들은 부주의한 사람들을 지식에 이르는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때문에 국가에 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국가』에 대한 비판 criticisms of Plato The Republic

국가와 개인의 유비가 약하다

『국가』에서 보여준 플라톤의 전체 기획은 국가의 정의와 개인의 정의 사이에 강한 유비가 있다는 전제에 의존한다. 만일 이 유비가 약하다면,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결론에서부터 도출된 개인의 정의에 관한 결론도 마찬가지로 모두 약할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개인에로의 진행이 명백하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진행이 정당화되는지의 여부는 적어도 문제 삼을만하다. 오직 통치자들만이 정의로울 수 있다

나아가서 플라톤의 이론은 오직 통치자들만이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낳는 듯이 보인다. 정의를 ‘마음의 조화’로, 국가의 각 계급을 ‘행위를 유발하는 지배적인 원천’으로 정의하고 나면, 이성이 가장 많이 지배하는 사람들만이 정의롭게 행위 할 수 있음은 분명해진다. 통치자들이야말로 이런 지위에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그러므로 오직 통치자들만이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플라톤은 이것을 자신의 이론에 대한 심각한 반대라기보다는 빛을 밝히는 가르침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런 결론은 플라톤의 사유 속에 내재한 비타협적 엘리트주의를 드러내 보여준다.

‘정의’의 애매성

플라톤이 정의란 영혼의 세 부분이 조화롭게 기능하는 일종의 정신적 건강함이라고 말할 때, 그는 ‘정의’의 일상적 의미를 저버리는 듯이 보인다. 그는 정의라는 개념을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제멋대로 재정의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개념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듯이 보인다. 왜 우리가 ‘정의’를 꼭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이런 비판에 대해 플라톤은 자신의 정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대응할 것이다. 플라톤의 정의로운 개인은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훔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취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위는 이성이 더 저급한 욕망들에 굴복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해는 다음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이 보인다. 즉 어떤 사람의 행위가 ‘정의롭다’고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운 정신적 기능보다 저급한 동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플라톤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은 단순히 정의롭게 행위하려는 욕구를 가지지만, 이성 능력은 아주 미숙할 수도 있다.

기만을 포함한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논증의 몇몇 중요한 요점에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을 옹호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금속의 신화에 관한 이른바 ‘고귀한 거짓말’이 있으며, 짝짓기 제비뽑기에도 거짓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거짓말이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상국가는 이런 기만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점에 대해 무심한 듯이 보인다. 플라톤의 관심은 최종의 결과와 그 결과를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있지, 그 최종의 결과가 어떻게 얻어지는지에 관한 도덕적 문제들에 있지 않다.

이데아론은 그럴 법하지 못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상국가를 지지하는 논증들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데아론은 오늘날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그럴 법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도 가장 내키지 않는 부분은, 이데아들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주장과 이것들이 실재이며 관찰되는 세계는 단지 이것들의 어렴풋한 복사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데아론을 내던져버린다면, 플라톤의 제안들 가운데 많은 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형이상학적 버팀목들이 제거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자들은 실재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에 특히 재능이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철학자들에게 이상국가의 통치를 맡길 명백한 정당성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국가가 모방 예술을 금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전체주의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아마도 플라톤의 『국가』를 겨냥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이 책이 전체주의를 위한 처방전을 제공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우생학, ‘고귀한 거짓말’, 가족의 폐지, 예술에 대한 검열로 무장한 국가는 삶의 모든 영역을 침범할 것이다. 플라톤 식의 세상에서 개인은 국가의 요구에 복종해야만 하며, 목적을 위해 모든 종류의 개인적 자유를 희생하도록 요구된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값지게 여기는 우리들은 플라톤의 비전에서 아무런 매력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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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미국을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6월 4일 토요일, 프로이트는 아내 마르타와 막내딸 안나, 요제피네 슈트로스Josefine Stross 박사, 가정부 파울라 피히틀Paula Fich시, 애완견 륀과 함께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올랐습니다. 열차는 독일을 지나 프랑스 국경선에 도착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안톤 사우어발트 박사는 그들이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라인 강을 건너자 프로이트가 “이제 우리는 자유다 Jetzt sind wir frei” 하고 말했습니다.

프로이트는 너무 늙어 먼 길을 함께 떠날 수 없는 다섯 자매를 친구들에게 맡기고 빈을 떠났습니다, 프로이트가 열차에 오르기 전 게슈타포가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서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 프로아트 교수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제국에 합병된 뒤 독일 당국자들, 특히 게슈타포가 나의 과학적 명성에 부합하는 존경과 배려로 나를 대했으며, 덕분에 나는 온전한 자유를 갖고 살아남아 일할 수 있었고, 그들의 지원에 힘입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으므로 그 어떤 불만을 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한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정신이 경험하는 내면의 긴장이 어느 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긴장이 본래 즐길 만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대안이 훨씬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내적 불화가 심화되면 노이로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프로이트가 억압이라고 말한 충동이 잠재적으로 너무 많이 통제되어 있을 때 그것은 간접적이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긴장을 완벽하게 풀어내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혼란, 나아가 공공의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건강한 정신은 항상 기분 좋은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의 형태로 나타나는 긴장을 한 개인이 설명하거나 치료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정확히 느끼지 못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강력한 힘을 신경 쓰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다른 것들은 무시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죄의식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아파하지만, 정작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환자가 고민하는 동안 이런 죄의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자에게 그가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환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많이 아파할 뿐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내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미국이 나치 독일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이 고아적인 독재국가인 반면, 미국은 모든 것이 철저하게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고 위협적인 주장을 하난 나라라고 했습니다. 프로이트에게 적극적인 민주주의란 아무리 온전하고 유능할지라도 모든 지도자를 불신하게 만들고, 다수 집단에게 완벽한 지배권을 허용하는 걸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지도자든 자비로운 지도자든, 지도자를 무시하는 사회는 혼돈 상태에 빠집니다. 프로이트가 봤을 때 미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나라 국민들의 물신주의, 어찌 보면 파과적인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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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GUT)

 

 

 

 

조자이와 글래소는 1974년에 강력・약력・전기력의 세기가 거리와 에너지에 따라 변화하는 까닭은 이것들이 고에너지상태에서 하나의 힘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를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GUT)이라고 명명했다. 강력 대칭성이 세 가지 색의 쿼크를 교환가능하게 하고 약력 대칭성은 다른 입자쌍을 바꾸는 반면, GUT 힘 대칭성은 쿼크와 경입자 같은 모든 유형의 표준모형 입자가 서로 교환될 수 있게 한다. 대통일이론에 따르면 에너지와 온도가 극도로 높은 우주 진화의 초기에 (이때의 온도는 켈빈 온도로 100도의 1조 배의 1조 배 이상이며 에너지는 1GeV의 1조 배의 1천 배 이상이었다) 이 세 힘의 세기는 서로 동일했으며 중력을 제외한 세 힘은 하나의 힘으로 융합되어 있었다.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단일한 힘은 서로 다른 에너지 의존성을 갖는 세 개의 서로 다른 힘, 즉 전자기력・약력・강력으로 나뉘었다. 세 힘이 하나의 힘에서 비롯되었어도 저에너지상태에서 가상입자가 각각의 힘에 미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서로 다른 상호작용 세기를 갖게 되었다. 세 힘은 자발적대칭성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을 겪으면서 분리되었다. 힉스메커니즘이 약전자기대칭성electroweak symmetry을 깨뜨리자 전자기력만 깨지지 않고 남은 것처럼 대통일이론 대칭성이 깨지자 현재의 분리된 세 힘이 남게 되었다.

고에너지에서 상호작용 세기가 같아지는 것은 대통일이론의 전제조건이다. 상호작용 세기를 에너지 함수로 표현한 세 개의 선이 모두 힘의 통일을 나타내는 한 점에서 교차해야 한다. 저에너지에서는 강력이 전자기력이나 약력보다 더욱 강하지만 고에너지에서는 강력이 약해지는 대신 전자기력과 약력이 강해진다. 중력을 제외한 세 힘의 세기는 고에너지에서 거의 유사한 값을 가지며 심지어 하나의 값으로 수렴한다. 이는 상호작용 세기를 에너지의 함수로 나타내는 세 개의 선이 고에너지에서 교차함을 의미한다. 세 개의 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것은 엄청난 우연이거나 훨씬 큰 의미를 지닌 지표이다. 힘들이 합쳐져 하나가 된다면 그런 단일한 상호작용 세기는 고에너지상태에서 오로지 하나의 힘 유형이 있다는 지표가 되고, 이때 대통일이론이 적용된다. 힘의 통일이 사실이라면 이는 자연을 더욱 단순하게 기술하기 위한 큰 도약이 될 것이다. 조자이와 글래쇼는 대통일이론이 “양성자 붕괴를 예측”한다며 그 예측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일이론에서 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업쿼크가 약력에 의해 다운쿼크로 변할 수 있는 것처럼 통일된 힘을 통해 쿼크가 경입자로 변할 수 있다. 대통일이론이 옳다면 우주에 존재하는 전체 쿼크의 수는 일정하지 않을 것이며, 쿼크가 경입자로 변할 수 있으므로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양성자가 붕괴될 수 있을 것이다.

쿼크와 경입자를 이어주는 대통일이론에서는 양성자가 붕괴할 수 있으므로 우리 주변의 모든 친숙한 물질은 궁극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본다. 그러나 양성자의 붕괴 속도가 매우 느린 까닭에 양성자의 수명은 우주의 나이를 넘어선다. 따라서 양성자 붕괴와 같은 극적인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며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양성자 붕괴를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자이와 글래쇼의 대통일이론이 옳다면 그에 관한 증거가 이미 발견되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양성자 붕괴는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는 힘의 통일이 자연의 참된 모습인지, 또 만약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여러 계산에 따르면 힘이 통일되는 모형은 몇 가지 있는데, 초대칭성모형들supersymmetry models, 호라바-위튼Horava-Witten의 여분차원모형extra dimension model, 라만 선드럼Raman Sundrum과 리사 랜들Lisa Randall의 비틀린여분차원모형 등이 있다. 여분차원모형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중력을 포함하는 네 가지 힘을 통일하는 진정한 통일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원래의 통일모형들이 대통일 규모의 질량을 가진 입자 외에는 약력규모 질량보다 무거운 입자를 찾을 수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조자이와 글래쇼는 1천 기가전자볼트와 1천조 기가전자볼트 사이의 에너지 규모에 질량을 가진 입자가 없다는 대담한 가정에 기초해서 이론을 세웠다. 대통일이론은 끈이론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입자물리학계 논쟁의 시발점이다. 두 이론 모두 물리법칙을 측정된 에너지보다 최소 10조 배나 높은 에너지에 외삽하고 있다. 조자이와 글래쇼는 현재 자신들의 방식을 뒤집고 저에너지 물리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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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도서출판 知와 사랑)

 

이 책은 27개의 장으로 이뤄졌으며, 각 장은 한 권의 철학 고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7권의 철학책이 한 권에 담긴 것입니다. 이 고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줍니다. 이런 이유 외에도 27권은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플라톤『국가』 중에서

정의로운 국가와 정의로운 개인 the just state and the just individual

플라톤이 묘사하는 이상국가는 완전하기 때문에, 그는 이 국가는 지혜와 용기, 자기절제, 정의의 성질들을 소유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에게 이런 성질들은 완전한 국가의 네 가지 주된 덕이다. 지혜는 통치자들의 지식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통해 통치자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용기는 보조자들에게서 관찰되는 덕으로서, 이들은 훈련을 통해 용감하고 두려움 없이 국가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자기절제는 세 계급들 사이의 조화에서 생겨나며, 이로써 대다수의 무절제한 욕망이 통치자들의 현명한 결정에 의해 통제된다. 마지막으로, 각자에게 천성적으로 주어진 직분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개인들 저마다가 자신의 일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정의는 국가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사회적 동요를 일으키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국가의 안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상국가가 네 가지 주덕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세 계급의 구분과, 각 계급에 부여된 역할들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에 비유해서 개인도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혜, 용기, 자기절제 그리고 정의의 성질은 개인의 부분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상호작용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세 부분 the three parts of the soul

‘영혼soul’이란 말은 보통의 의미보다 더 영적인 어떤 것을 시사한다. 플라톤이 영혼불멸을 믿기는 했지만, 그가 『국가』에서 영혼 삼분설에 관해 서술하는 내용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혼이라든가, 신체와 구별되는 어떤 것으로서의 영혼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사실 그의 관심은 행위의 동기에 관한 심리학에 있다. 그가 말하는 영혼의 세 부분이란 이성Reason, 기개Spirit 그리고 욕망Desire이다.

이성은 이상국가에서 통치자들의 역할에 해당한다. 통치자들처럼 이성은 전체의 선을 추구한다. 영혼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이성은 이기적이지 않다. 이성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마련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기개는 분노와 노여움 같은 형태로 심리적 행위 동기를 제공하는 인격의 부분이다. 기개는 적절하게 훈련될 때, 대담성과 용기의 근원이 된다. 기개는 보조자들의 역할에 상응한다.

욕망은 음식, 술, 섹스와 같은 것들에 대한 순수한 욕구이다. 욕망은 이성과 정면으로 대립할 수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이 자신들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대립을 자신의 영혼 삼분설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한다. 욕망은 노동자들의 역할에 상응한다.

지혜, 용기, 자기절제, 정의의 네 가지 덕목은 모두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플라톤은 이런 덕목들을 영혼의 부분들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성의 지도하에서 결정을 내린다. 용감한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기개로부터 행위한다. 이때 기개는 이성의 동맹군 구실을 한다. 스스로 절제하는 사람은 이성의 지도에 따르며 욕망을 통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인 정의로운 사람은 영혼의 모든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행위한다. 즉 각 부분들은 이성의 지휘 아래 저마다의 적절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개인에 있어 정의란 일종의 심적 조화이다. 이 심적 조화야말로 정의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철학자 왕들 philosopher kings

플라톤이 국가의 정의를 논한 이유는 개인에 관련된 물음들을 밝히기 위해서였지만, 그는 또한 자신이 창안한 이상국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런 정치 체제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주목하면서, 유일한 희망은 권력을 철학자들의 손에 두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플라톤은 다소 놀랄 만한 이러한 제안을 또 다른 비유를 들어 옹호한다. 배 한 척과 근시안에다 귀가 약간 멀고 항해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는 배의 주인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선원들은 누가 배의 키잡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언쟁을 벌인다. 이들 중 누구도 항해술을 익히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들은 그것을 배울 수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여러 파벌이 배의 지배권을 쥐려고 서로 경쟁하면서, 배에 비축된 물자들을 마음대로 처리한다. 결국 항해는 일종의 술 취한 뱃놀이로 전락하고 만다. 이들 중 누구도 날씨와 별자리를 연구하는 항해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들은 그런 기술을 익히는 사람을 별을 바라보는 무용한 사람쯤으로 간주한다.

현재의 국가형태는 미숙한 선원들의 손안에서 비틀거리는 배와 같다. 오직 숙련된 항해사의 손에서만 그 배는 통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록 쓸모없다고 비웃음을 살지는 모르지만 철학자만이 국가를 운영하기에 필요한 지식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왜 특히 철학자들이 통치를 위해 잘 준비된 사람들인가를 설명해준다.

이데아론 the theory of Forms

이 장의 출발점이었던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이해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한 현상들, 즉 동굴의 벽면에 비친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진리를 사랑하기에 실재에 관한 지식을 추구한다. 곧 그들은 동굴 밖으로 여행하여 이데아에 접근한다.

이데아론은 『국가』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펼친 이론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플라톤의 철학으로 인정된다. 사람들이 플라톤주의에 관해 말할 때는 보통 그의 이데아론을 두고 말한다. 플라톤이 ‘이데아’라는 용어를 통해 의미했던 바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길은 그가 든 예를 하나 살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침대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2인용, 어떤 것은 1인용, 어떤 것은 네 기둥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이들 모두를 침대라고 부르게 만드는 무엇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들이 공유하는 것은 이상적 침대, 즉 침대 ‘이데아’와의 관계이다. 이 이데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진정한’ 침대이다. 다른 모든 침대들은 침대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사물들이다. 이것들은 현상의 세계에 속하며, 실재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침대 이데아로부터만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현실의 침대들에 대한 정보는 무엇이든 견해에 불과할 뿐 지식은 못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이데아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며 불변한다. 철학자들은 지혜의 사랑을 통하여 이데아계에 접근하고 사유를 통하여 지식의 가능성을 얻는다. 반면에 지각은 우리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흐르는 현상계 안에 붙잡아 둔다.

플라톤은 정확히 어떤 것들이 이데아를 갖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열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 선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선’이야 말로 철학자들이 알고자 하는 궁극적 대상이다. 플라톤은 이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태양의 비유를 든다. 태양은 우리로 하여금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또한 성장의 근원이다. 선의 이데아는 마음의 눈으로 하여금 실재의 본성을 ‘보고’, 이해하도록 해준다. 선의 이데아가 던져주는 빛이 없다면, 우리는 현상과 견해라고 하는 어슴푸레한 세계 속에서 저주받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선의 빛 아래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주워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불의의 사례들 examples of injustice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로운 국가란 그 안의 여러 다른 계층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그런 국가이며, 정의로운 개인이란 그 안의 여러 다른 동기들이 조화를 이룬 그런 개인이다. 플라톤은 국가와 개인에서의 몇몇 불의의 사례들을 살펴본다. 그는 네 유형의 정의롭지 못한 국가와 이에 대응하는 개인유형들을 고찰한다. 금권국가timocracy, 과두국가oligarchy, 민주국가democracy, 참주국가tyranny가 그것이다. 금권국가는 스파르타처럼 군인의 명예욕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과두국가에서는 부가 가치의 상징이다. 민주국가는 국민 전체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이다. 참주국가에서는 통치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다.

또다시 플라톤은 국가와 개인의 대칭구조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그는 민주국가는 정의로운 국가에 필수적인 ‘통치 훈련의 원리’를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국민의 친구임을 공언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민주적 개인은 민주적 국가와 마찬가지로 온갖 종류의 쾌락을 즐기며, 선한 욕구에 기초한 사람들과 악에 근원을 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심리적 부조화이다. 즉 민주적 개인은 이성이 각종의 부적절한 욕구들을 통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쓸모없는 일시적 기분들이 판치고, 불의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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