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호벡의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도서출판 知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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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책은 한국전쟁에서 자신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을 이해하고 싶었던 한 해병대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적군은 그 해병대원과 비슷한 또래의 중공군이나 북조선 군인으로 불교신자였을 것이다. 훗날 그는 학업에 전념하면서 동양의 영적인 빛과 관련된 풍부한 자료를 찾아냈다. 그리고 50년 동안 동양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서양철학과 비교하면서 연구했다. 심리학 분야의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동방의 빛 즉 아시아의 지혜가 지닌 심오한 가치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30년 동안 정신건강치료소와 병원, 개인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아시아의 지혜를 적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전 모든 역사가 그래왔지만 오늘날에도 종교와 철학의 차이를 둘러싼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9·11테러를 포함해 종교의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많은 테러들은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유엔과 종교가 코즈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을 주창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증오와 폭력이 계속 분출되고 있다. 카슈미르에서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코소보에서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예루살렘에서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들이 맞서고 있다. 한 나라의 자유투사freedom fighter**가 다른 나라에서는 순교자이자 영웅이 되고 있다. 하나의 문화나 종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전쟁이 계속될까 봐 두려워한다. 미국은 혁명전쟁을 치른 뒤에 세워진 국가다. 인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싸웠다. 십자군전쟁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양측 모두 신성하게 여긴 성지를 두고 수백 년 동안 맞붙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은 『동양과 서양의 노래』(1889)에서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이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유명한 구절이지만, 그가 추가한 다음 부분이 누락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동양도 서양도, 국경도, 인종도, 신분도 없다/지구의 양쪽 끝에서 온/두 강자가 대면하고 설 때는!”

그 고결한 원칙이 바로 안타깝게도 세상이 잃어왔고 계속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지혜는 세상이 다시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모쪼록 아시아의 지혜를 적용하길 바란다.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동양철학의 가르침은 문자체계가 고안되기 전부터 구전되었다. 그러나 불교나 도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은 없었다. 이런 인상적인 전력으로 봤을 때, 동양철학을 더욱 면밀하게 연구하여 현재의 문제들에 적용하는 건 의미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은 인격형성 면에서 뛰어나다. 동양철학의 가르침은 대부분 어느 종교에도 반박하거나 참견하지 않는다. 요가수행, 붓다의 성스러운 진리인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에 대한 연구, 선불교의 화두에 대한 성찰 모두 특정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 실제로 무신론자도 불교신자나 요가수행자, 또는 선사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아시아의 철학은 오늘날 유효한 심리학의 개념으로 간주되는 것을 대다수의 세계적인 종교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아시아의 지혜』는 50년 동안의 사고와 연구가 정점을 이뤄 결실을 맺은 책이다. 동양의 감각으로 반세기의 세월은 인생의 위대한 교훈을 얻기 위한 서문에 불과하다. 전쟁에 투입된 한 해병대원이 지혜가 부족하여 삶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이 책은 아시아의 지혜에서 얻고 배운 것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주의 깊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학자들의 비판을 야기할 수도 있다. 비판이 바로 학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고대 문서의 원본이 없고 사본의 사본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수천 년 전에 무엇이 말해지고 쓰였는지 또 그것이 현대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되는지 정확하게 알기란 불가능하다. 학자와 비평가는 고대 문서를 병합하거나 세분화하고 단순화하거나 복잡하게 만든다. 나는 방법보다는 의미를,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길을 선택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시아의 지혜를 획득하기 바란다.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아시아의 지혜는 다면적이다. 그리고 훌륭한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각 단면이나 광원이 똑같이 순수한 빛을 발한다. 첫 번째 빛의 원천은 붓다의 가르침, 그의 사제와 팔정도이다. 그다음이 선불교, 노자의 『도덕경』, 『주역』, 요가의 지혜다. 중국에서는 공자의 『논어』와 태극, 승려 곽암의 십우도가 각각 빛을 발한다. 일본에는 신도,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1645), 일본 고유의 시 하이쿠가 있다. 마지막으로 『티베트 사자의 서』가 아시아의 지혜라는 다면적 다이아몬드를 완성시킨다. 이 책은 아시아의 지혜를 더욱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 명상의 인식을 발달시키는 방법을 제안하면서 끝맺는다.

 

이 책의 목표는 아시아의 지혜를 편견 없이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절로 빛을 발하게 하려고 했다. 나는 한 발 물러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지혜를 왜곡하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본래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것을 판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구할 수 있는 모든 판형의 고대 문서를 활용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동양철학과 종교가 얼마나 유사한지 알게 되고 동양에는 실제로 하나의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훌륭하게 편집하고 뛰어난 의견을 제안해준 엘리자베스 플로이드, 표지디자인을 해준 린다 로넌, 이 책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준 피터 굿맨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책에 쓰인 전설과 내러티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지면서 출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설과 내러티브 상당수는 스리랑카의 불교출판물협회의 출판물을 바탕으로 했다. 이 출판물들은 저자가 번역한 고대 문서와 함께 동방의 빛이자, 아시아인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고상한 의식을 향해 세계인을 인도하는 빛으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랭크 맥호벡Frank MacHo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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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Brane의 발전

 

 

 

 

끈이론은 더 이상 단순히 1차원 공간을 따라 늘어나있는 끈에 대한 이론만이 아니라 2차원, 3차원 혹은 그 이상의 공간에 펼쳐져있는 막에 대한 이론이기도 하다. 막은 끈이론이 포함할 수 있는 차원이라면 몇 차원이로든 확장될 수 있고, 현재 초끈이론에서 끈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막은 끈이론이라는 그림 맞추기 퍼즐을 완성시켜주는 잃어버린 조각이다. 막의 도움으로 물리학자들은 끈 자체에서는 생겨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끈이론 내의 신기한 입자들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막을 끈이론에 포함시키자 이원이론dual theory들이 발견되었다.

M이론M-theory은 초끈이론과 11차원 초중력 이론을 포함하는 11차원 이론이며, 그 존재는 막에 대한 통찰을 통해 유도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M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 말을 처음 고안한 위튼이 일부러 의미를 모호하게 해두었기 때문이다. M이 막membrane, 마법magic, 미스터리mystery를 의미한다는 추측이 있다. 리사 랜들은 행방불명이론missing theory으로 부른다.

1989년 텍사스 대학의 진 다이Jin Dai와 로브 레이Rob Leigh 그리고 조지프 풀친스키는 끈이론 방정식에서 D막이라고 하는 특별한 종류의 막을 수학적으로 발견했다. 한편 체코의 물리학자 페트르 호라바Petr Horava 또한 독립적으로 이것을 발견했다. 닫힌 끈이 폐곡선인 고리를 만드는 것과 달리 열린 끈은 자유로운 두 끝을 가지고 있다. 이 끝은 어딘가 있어야 하는데 끈이론에서 열린 끈의 끝은 D막 위에만 있을 수 있다. D는 19세기 독일 수학자 페터 디리클레Peter Dirichlet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벌크는 막을 하나 이상 포함할 수 있게 때문에 모든 끈의 끝이 같은 막에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풀친스키, 다이, 레이 그리고 호라바는 모든 끈의 끝점은 막 위에 있어야 하고 끈이론이 이 막들이 가져야 하는 성질과 차원을 알려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끈이론에서 막에 이름을 붙일 때 그 막이 펼쳐져있는 공간 차원의 수를 가져다 쓴다. 예를 들면 3막은 3차원 공간(시공간으로는 4차원)에 펼쳐져있는 막이다. 끈이론에서는 여러 종류의 막들이 생겨난다. 막들은 몇 차원에 펼쳐져있을 뿐만 아니라 전하, 모양 그리고 장력이라는 중요한 성질에 따라 구별된다.

1995년 풀친스키는 막이 끈이론에 반드시 필요하며 끈이론의 최종적인 형식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역학적인 물체임을 증명함으로써 끈이론의 지위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풀친스키는 초끈이론에 어떤 종류의 D막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했으며, 이 막들이 전하(전자기력・약력・강력 전하)를 띠고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끈이론에서 막은 일정한 크기의 장력을 가지고 있다. 장력은 북을 두드렸을 때 처음의 팽팽한 상태로 돌아가게 해주는 북 표면의 장력과 유사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굉장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막의 장력이 무한히 크다면 막은 움직일 수 없는 정적인 물체이므로 애당초 막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막이 일정한 크기의 장력을 갖고 전하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막이 어떤 장소가 아니라 물체임을 알 수 있다. 막이 전하를 갖고 있다는 것은 막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막이 일정한 장력을 갖는다는 것은 막이 운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막은 태양이나 지구가 공간대칭성을 깨는 것만큼 시공간대칭성을 깨뜨린다.

풀친스키가 D막을 연구하는 동안 샌타바버라 대학에 있던 그의 공동연구자 스트로민저Strominger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흥미로운 해인 p막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다. p막은 일부 공간방향으로는 무한히 펼쳐져있지만 나머지 다른 차원에서는 가까이 다가오는 물체를 잡아 가두면서 블랙홀처럼 행동한다. 반면 D막은 열린 끈의 끝이 머무를 수 있는 표면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연구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고 어느 날 풀친스키는 D막과 p막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로민저의 연구에 따르면 p막은 어떤 시공간에서 새로운 종류의 입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끈이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비직관적이고 놀라운 끈이론의 전제들이 모두 사실이고 입자들이 끈의 진동방식의 발현으로 생성된다고 하더라도 끈의 진동만으로 모든 종류의 입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스트로민저는 끈이론과 관계없는 입자들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막은 다양한 모양・형태・크기로 존재하며 독립적인 물체이다. 스트로민저는 p막이 굉장히 작게 말려있는 공간을 감싸고 있는 상황을 생각했다. 그는 공간영역을 꼭 감싼 p막이 입자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입자처럼 행동하는 p막은 꽉 조여진 올가미와 비교할 수 있다. 올가미처럼 막은 공간의 조밀한 영역을 둘러쌀 수 있다. 공간이 작아지면 그 둘레를 감싸고 있는 막도 따라서 작아진다. 스트로민저는 계산을 통해 막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질량이 없는 새로운 입자처럼 보이는 극단적인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결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모든 것이 끈으로부터 생겨난다는 끈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막도 다양한 입자 스펙트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5년 풀친스키는 아주 작은 p막에서 생겨난 새로운 입자들을 D막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D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논문에서 풀친스키는 D막과 p막이 실제로 같은 것임을 보였다. 끈이론의 예언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언이 같아지는 에너지 수준에서 D막이 p막으로 변한 것이다. 풀친스키와 스트로민저가 실제로 동일한 대상을 연구했던 것이다.

이중성duality은 최근 10년 동안 입자물리학과 초끈이론에서 등장한 개념 중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이다. 이중성은 양자장이론과 끈이론의 최근 진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특히 막과 관련하여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이론을 같지만 서로 다르게 기술할 때 이중성이론이라고 한다. 1992년 인도의 물리학자 아쇼크 센Ashoke Sen은 끈이론에 이중성이 있음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이다. 센은 1977년에 클라우스 몬토넨Claus Montonen과 데이비드 올리브가 최초로 도입한 이중성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어떤 이론의 경우 입자와 끈이 상호 교환되어도 이론이 여전히 동일함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미국의 럿거스Rutgers 대학의 이스라엘 태생의 물리학자 나티 사이버그Nati Seiberg(1956~)도 겉으로 봐서는 다른 힘을 갖는 서로 다른 초대칭장이론 사이에 놀라운 이중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1995년 3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열린 끈이론학회 ‘스트링 95’에서 위튼은 청중을 놀라게 만든 강연을 했는데, 낮은 에너지에서 강한 결합상수를 가지는 10차원 끈이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이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 11차원의 초중력이론(중력을 포함하는 11차원 초대칭성이론)과 완벽하게 동등함을 보여주었다. 10차원 끈이론과 동등한 11차원 초중력이론에서 물체들이 약하게 상호작용하므로 풀기 쉬운 섭동perturbation이론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원래의 10차원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데 섭동이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섭동이론은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끈이론 자체에는 사용할 수 없으나 겉으로 보기에 완전히 다른 이론인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11차원 초중력이론super gravity theory(초대칭성을 갖도록 보통의 중력이론을 확장시킨 이론)에는 사용할 수 있다. 이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폴 타운센드Paul Townsend도 두 이론의 겉모습은 다르더라도 낮은 에너지에서 10차원 초끈이론과 11차원 초중력이론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론임을 밝혔다. 두 이론은 이중성을 가졌다. 10차원 초끈이론과 11차원 초중력이론의 동등성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타운센드와 텍사스 A&M 대학의 더프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위튼의 발표가 있고 나서 끈이론 연구자들은 11차원 초중력이론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끈이론과 동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서로 다른 끈이론이 실제로는 같기 때문에 위튼은 11차원 초중력과, 상호작용을 약하게 하든 그렇지 않든 다르게 표현된 다섯 개의 끈이론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를 M이론이라고 명명했다. M이론은 더 체계적으로 통합된 초끈이론이 될 가능성, 즉 끈이론이 양자중력이론으로 거듭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현재 어느 누구도 M이론을 형식화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10차원 초끈이론과 11차원 초중력이론 사이의 이중성이라는 특별한 경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10차원 초끈이론은 끈을 포함하지만 11차원 초중력이론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막을 사용한다. 11차원 초중력이론에는 끈이 없지만 2막이 포함되어 있다. 공간차원이 한 개인 끈과 달리 2막은 공간차원 두 개를 갖는다. 11차원 중 하나의 차원이 매우 작은 원처럼 말려있을 경우 말린 차원을 감싸는 2막은 끈처럼 보일 것이다. 11차원이론이 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한 차원이 말려있을 경우 11차원 초중력이론이 끈을 포함한 것처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차원 하나가 말려있는 11차원 이론은 10차원 이론처럼 보이게 된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혹은 낮은 에너지에서는 말려있는 차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위튼은 스트링 95에서 차원이 하나 말려있는 11차원 초중력이론이 심지어 짧은 거리에서도 10차원 초끈이론과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10차원과 11차원 이론이 동등함을 증명했다. 위튼은 이원이론에서 모든 것이 동등함을 증명했으며, 심지어 말려있는 차원보다 더 작은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높은 입자의 경우에도 이중성이 성립함을 증명했다.

말려있는 차원이 하나 있는 11차원 초중력이론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짧은 거리, 높은 에너지를 갖는 경우에도 10차원 초끈이론에 그 짝이 있다. 더욱이 차원 원형으로 말려있는 크기에 관계없이 이중성이 성립한다. 두 이론 사이에 이중성이 성립하려면 10차원 초끈이론에서 한 점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숫자가 더 있어야만 한다. 이중성의 문제는 초끈이론에서는 아홉 개의 공간차원 운동량과 하나의 전하량으로, 11차원 초중력이론에서는 열 개의 공간차원 운동량만으로 특정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한 경우가 9차원, 다른 경우가 10차원을 다룰 때에도 모두 정해주어야 할 숫자는 열 개이다. 초끈이론의 경우 아홉 개의 운동량 성분과 하나의 전하량, 초중력이론은 열 개의 운동량 성분을 정해주어야 한다.

전하를 갖지 않는 일반적인 끈에 대응하는 11차원의 짝은 존재하지 않는다. 11차원 이론의 시공간에 어떤 대상을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숫자를 열한 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전하를 갖는 10차원 입자들만이 11차원 짝을 가질 수 있다. 한편 11차원 이론에서 입자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10차원 짝은 막으로 밝혀졌다. D0막으로 불리는 전하를 띤 점상막이 그것이다. 10차원 초끈이론과 11차원 초중력이론이 짝을 이루는 것은 초끈이론에서 전하를 갖는 D0막에 대응하는 특정한 11차원 운동량을 갖는 입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두 이론에서 10차원과 11차원의 물체들은(상호작용도) 완벽하게 서로 대응된다. 차원의 수는 독립적인 운동량 성분의 수, 즉 물체가 움직일 수 있는 서로 다른 방향들의 수이다. 차원의 수를 얼마로 하느냐 하는 선택은 끈 결합 상수의 값으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중성의 놀라운 특성과 함께 막이 초끈이론에 필수적이라는 해석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서로 다른 끈이론을 대응시키려면 막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이론의 응용에서 막의 성질은 막 위에 입자와 힘이 머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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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토마스 홉스의 『 리바이어선 』

 

 

홉스의 『리바이어선』의 표지 그림은 철학사상을 구현한 기념할 만한 회화적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 명의 거인이 있다. 그의 몸은 수천의 작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위로는 탑들이 있으며, 아래에는 잘 정돈된 도시가 있다. 교회의 뾰족탑은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권장券狀을 거머쥔 이 거인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홉스에 의해 묘사된 위대한 리바이어선 즉 ‘현세의 신’이다. 구약에서 바다 괴수로 등장하는 이 리바이어선은 시민을 대표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의 화신인 강력한 주권자에 대한 홉스적 이미지이다. 즉 인위적으로 창조된 거인 형태의 다수연합체이다.

『리바이어선』에서 홉스는 투쟁과 갈등의 일반적 원인들을 진단하고 그 치유책을 제공한다. 이 책의 중심 논의들은 왜 개인들이 어떤 강력한 주권자(한 명의 인물이든 집단이든)에 의한 통치를 승인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의 문제를 다룬다. 평화는 오직 모든 사람이 특정의 사회계약을 수용할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논지에 대한 홉스의 토의가 『리바이어선』의 심장부를 이루기는 하지만, 이 책은 심리학에서 종교에 이르는 많은 다른 주제들도 다룬다. 사실 『리바이어선』의 절반 이상은 종교와 기독교 성서에 대한 자세한 토의로 채워져 있는데, 이 부분은 오늘날 거의 읽히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의 주요 주제, 즉 자유로운 개인들로 하여금 서로 간의 그리고 외부의 공격에서 보호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자연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계약에 초점을 맞추겠다. 홉스는 이런 계약을 설명하기 위해 만일 사회 또는 국가기관이 없다면 삶은 어떤 상태일까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연 상태 the state of nature

홉스는 현존하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사회를 그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쪼갠다. 거기에는 자원이 제한된 세계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들이 있다. 홉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 상태에서의 삶의 처지들을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즉 국가의 모든 보호가 제거된다면 우리가 처하게 될 상태 말이다. 이 상상적 세계에는 옳고 그름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법도 없고, 법을 부과할 상위 권력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권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고 움켜쥘 권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도덕이나 정의는 특정 사회의 창안물이다. 특정 사회로부터 독립된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옳음・�그름・�정의・�불의는 국가 내의 주권자들에 의해 규정된 가치들이지, 세계에 이미 존재하다가 발견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는 어떤 형태의 도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 관한 홉스의 설명은 정치적 책무의 한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만일 당신이 자연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런 상태에로 귀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해야 할 훌륭한 이유를 가진 것이 된다.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끊임없는 투쟁 상태이다. 법을 부여하고 수호할 만한 힘 있는 주체가 없기에 개인들 사이의 공조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권력주체 없이는 아무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 적당한 때에 약속을 깨는 것이 언제나 이익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당신이 강한 생존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적당한 때에 계약을 깨는 것이 분별 있는 행위이다. 만일 무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잡아채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이 적은 양이나마 가진 것을 가져갈 위험이 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의 빈약함으로 인한 이러한 직접적인 경쟁 상태에서, 당신의 안전에 위협이 되리라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것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설령 실제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이 상태는 여전히 전쟁상태라고 홉스는 말한다. 폭력발생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대규모 농사나 건축같이, 사람들 사이에 협동이 필요한 작업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가장 약한 자도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기에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이 가능적 위협이 된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삶을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는 인상 깊은 말로 기술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삶의 가능성에 직면한다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평화와 안전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치고는 적은 편일 것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이 자신들의 불만족한 처지를 회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설명한다. 폭력적 죽음의 두려움과 평화가 주는 이득에 대한 욕구는 그렇게 해야 할 강한 동기를 제공해준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적 권리를 가지며, 심지어 다른 권리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포기된 뒤에도 이 권리는 계속 남는다. 홉스는 이 자연권을 자연법과 대비시킨다. 권리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할 어떤 것이며, 그렇게 하도록 의무 지워진 것은 아니다. 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지배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자연법 laws of nature

자연 상태에서도 자연법들은 존재한다.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따르게 되는 법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오늘날 음주운전을 금하는 법과는 다르다. 이런 종류의 금지에 대해 홉스는 ‘시민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시민법의 내용은 주권자 또는 이를 대변하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다). 이와 달리 자연법은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든 구속되게 되는 원칙들이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것의 피할 수 없는 결과는 안전의 부재와 영속적인 전쟁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이 부과하는 자연법은 ‘어디서든 가능한 만큼 평화를 모색하라’이다. 두 번째 자연법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자연 상태에서 당신이 가진 권리들을 포기하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도록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를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라’(이것은 ‘당신이 받는 대로 해주어라’라는 종교적 처방의 한 변형이다). 홉스는 아주 긴 목록의 자연법들을 세우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자연 상태에서 누구든 안전의 대가로 자신의 무제한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사회계약 the social contract

이성적으로 취해야 할 다음 단계는 사회계약을 맺고, 강력한 주권자에게 자유를 넘기는 일이다. 주권자는 아주 강력하여 계약이 지켜지도록 감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홉스가 지적하듯이 ‘칼의 뒷받침이 없는 계약은 한낱 말에 불과하며, 사람을 보호할 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위력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기로 약속한 것을 이행하리라는 것을 보증한다.

사실 벌이나 개미 같은 몇몇 동물들은 위로부터의 강제적 지휘를 필요로 함이 없이 평탄하게 진행되는 사회 속에서 사는 듯이 보인다. 홉스는 인간의 상황은 벌이나 개미의 그것과는 아주 다름을 지적한다. 인간은 명예와 품위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이런 경쟁은 질시와 증오에 이르고 결국에는 전쟁에 도달한다. 개미와 벌은 명예와 품위를 찾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능력을 가지며 이 능력은 자신이 통치되는 방식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알아채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이것은 점차적으로 시민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개미와 벌은 그런 이성능력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계약을 통해 사회를 형성한다. 개미나 벌은 서로에 대해 자연적 합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들의 약속을 깨지 않도록 보증해주는 무력적인 위협수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개미와 벌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보호의 대가로 당신의 자연권을 포기하는 것에 관한, 자연 상태에서 다른 개인들과 맺은 계약이다. 이 계약이 역사적 현실성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홉스는 역사의 특정 단계에서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 싸움으로 힘을 낭비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이며 협조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정치제도를 이해하고 정당화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리바이어선』을 읽는 한 방법은 홉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일 현존하는 암묵적인 계약조건들이 없어져 버린다면,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만일 홉스의 논증이 타당하다면 그리고 자연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가 정확하다면 『리바이어선』은 왜 강력한 주권자의 통치 하에서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들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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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String Theory과 막Brane

 

 

 

 

일반상대성이론은 엄청나게 작은 거리에서는 맞지 않기 때문에 극소한 범위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력이론이 나와야 하는데, 많은 물리학자들은 끈이론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끈이론이 맞는다면 그것은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입자물리학의 성공을 모두 포괄하면서도 다른 이론이 다룰 수 없었던 길이 규모와 에너지 영역까지 물리학의 범주를 확장시켜줄 것이다. 극소한 영역에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모두 더 근본적인 이론을 절실하게 요구한다. 다른 이론을 중재자로 끌어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이론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게 각 이론의 지배영역에 대해서는 각자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해두고 두 이론이 다루기 힘든 영역에서는 자신이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끈이론은 이런 새로운 이론의 유력한 후보이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양립 불가능성은 중력자(양자 중력이론에서 중력을 전달하는 입자)의 고에너지 상호작용에 대해 전통적인 중력이론이 적절한 예측을 하지 못하는 현상에서도 드러난다. 중력자가 속성상 시간과 공간에 연계되어 있는 힘인 중력을 매개하므로 이것들은 광자 같은 이미 알고 있는 힘 전달자와는 다른 스핀을 가진다. 중력자는 스핀 1을 갖는 게이지보존이나 스핀 1/2을 가진 쿼크와 경입자와는 달리 스핀 2를 갖고 질량이 없는 유일한 입자이다. 중력자의 스핀은 끈이론의 의미를 푸는 열쇠가 된다.

끈이론에서 모든 물질의 기초를 이루며 분할되지 않는 기본요소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끈은 진동하는 1차원의 에너지 고리loop나 에너지 조각segment이다. 바이올린 현과 달리 이 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끈이론의 기본 가정은 끈의 진동방식으로부터 입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입자가 끈의 진동이며 진동의 특성에 따라 입자가 달라진다. 끈이 진동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끈도 여러 유형의 입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끈이론가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진동하는 독립적인 유형의 끈이 여럿 있다고 생각한다.

끈이 실제로 어떤 입자를 만들어내는가는 끈의 에너지가 얼마인지, 또 들뜬 상태의 끈이 갖는 진동방식이 무엇인지에 달려있다. 끈의 진동방식은 바이올린 현의 공진과 비슷하다. 기본단위의 진동이 조합되어 우리가 아는 모든 입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끈이 진동하는 방식에 따라 질량, 스핀 그리고 전하량과 같은 입자의 모든 성질들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스핀과 전하량이 같지만 질량이 다른 입자들이 많다. 가능한 진동방식이 무한하기 때문에 하나의 끈도 무거운 입자들을 무한히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교적 가벼운 입자들은 가장 적은 진동을 하는 끈이다. 쿼크나 경입자는 진동이 없는 끈일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가 높은 끈은 여러 방식으로 진동하며 에너지가 더 높은 진동방식이 더 무거운 입자를 만들어낸다. 진동이 많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끈이론의 새로운 결과물을 감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끈이론은 양자역학과 중력을 조화시킬 이론으로 보인다. 원래 끈이론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끈이론은 1968년 하드론hadron(강입자라고도 하며, 물리학에서 강한 상호작용의 힘(원자핵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서로 묶어두는 근거리 핵력)으로 반응하는 원자구성 입자)이라는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입자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하드론은 쿼크들이 강력에 의해 결합된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당시의 끈이론은 하드론을 성공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끈이론은 하드론이 아니라 중력에 대한 이론으로 살아남았다. 끈이론이 하드론을 다루는 데 실패한 것이 오히려 양자중력을 다루는 데 성공요소가 되었다. 라몽과 느뵈, 슈바르츠가 초대칭성을 포함한 끈이론, 즉 초끈이론을 발견했다. 초끈이론의 중요한 장점은 스핀 1/2 입자를 포함함으로써 전자나 쿼크 같은 표준모형의 페르미온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연 것이다. 초끈이론의 또 다른 장점은 끈이론을 혼란에 빠뜨린 타키온tachyon(타키온은 빠르다는 뜻의 그리스어 tachos에서 따온 것이다. 초광속으로 운동하는 가상입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타키온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로 잘못 생각했다. 그러나 타키온은 자연에 존재하는 입자가 아니다.

셔크와 슈바르츠는 하드론 끈이론을 곤경에 빠뜨린 스핀 2 입자가 실은 중력 끈이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끈이론을 부활시켰다. 그들에 의해 스핀 2 입자가 중력자일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스핀 2 입자가 중력자와 똑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했다. 중력자로 보이는 입자를 포함한 덕분에 끈이론은 양자 중력을 다룰 유력한 후보이론이 되었다.

입자물리학으로 중력자를 다룰 경우 고에너지에서 중력자의 상호작용이 너무 과도해진다. 제대로 된 이론이라면 고에너지를 띤 중력자가 그렇게 강하게 상호작용해서는 안 된다. 끈이론으로 중력을 설명하면 문제가 풀린다. 중력 끈이론은 점처럼 생긴 입자가 아니라 길이를 가진 끈으로 중력자를 설명하기 때문에 고에너지를 띤 중력자의 상호작용은 훨씬 부드러워진다. 끈은 쿼크 같은 입자가 보여주는 것 같은 격렬한 산란을 보여주지 않는다. 끈은 넓은 영역에 걸쳐 이루어지는 두루뭉술한 상호작용을 한다. 초끈이론은 우리가 아는 모든 입자유형, 즉 페르미온, 힘을 운반하는 게이지보존, 중력자를 포함한다. 초끈이론은 고에너지 중력자에 대해서도 타당한 양자역학적 설명을 내놓을 수 있다.

1980년 셔크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슈바르츠는 포기하지 않고 끈이론을 계속 연구했다. 당시 그는 유일하게 끈이론으로 개종한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과 함께 초끈이론을 제안했다. 그런데 초끈이론은 시간차원 한 개와 공간차원 아홉 개가 있는 10차원 세계에서만 타당한 이론이었다. 차원의 수가 다른 세계에서 끈의 진동방식이 만들어지는 발생확률이 음수가 되는 등 명백히 비합리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10차원에서는 원치 않는 진동방식이 모두 사라진다.

끈 자체는 1차원 공간을 따라 뻗어있으며 시간축을 따라 움직인다. 이는 처음 초대칭성을 발견한 라몽이 연구했던 2차원 시공간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어떤 방향으로도 퍼져있지 않으므로 공간 차원이 0인 점상 물체가 3차원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공간 차원을 한 개 갖는 끈은 한 개 이상의 차원을 가진 공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끈은 3차원,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계산에 다르면 초끈은 시간을 포함하여 10차원 시공간에서 움직인다. 그렇지만 1984년까지 물리학자들은 대체로 끈이론을 무시했다. 그해 그린과 슈바르츠가 초끈의 놀라운 성질을 밝혀낸 뒤에야 초끈이론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연구할 가치 있는 이론으로 인정받았다. 그린과 슈바르츠의 연구는 이형성anomaly으로 알려진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1969년 스티븐 애들러Steven Adler와 존 벨John Bell 그리고 로만 자키브Roman Jackiw는 고전이론에서는 보존되는 대칭성이 가상입자를 포함하는 양자역학적 과정에서 종종 깨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대칭성의 파괴를 이향성이라고 하며 이형성을 갖는 이론을 이형적anomalous 이론이라고 한다.

이형성은 힘을 다루는 이론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여러 힘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부대칭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힘과 관련된 내부대칭성에는 이형성이 없어야 한다. 즉 대칭성깨짐의 효과를 전부 더한 것이 0이 되어야 한다. 이는 힘의 양자이론의 강력한 제약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이것은 표준모형에 쿼크와 경입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제약조건이다. 가상쿼크와 가상경입자는 각 이형적 양자 기여를 통해 표준모형의 대칭성을 깨뜨릴 수 있지만 두 유형의 입자가 만드는 양자 가여를 모두 더하면 0이 된다. 이 놀라운 상쇄 덕분에 표준모형이 안정된다. 다시 말해서 표준모형의 힘들이 타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쿼크와 경입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끈이론도 결국 힘을 설명해야 하므로 이형성은 끈이론에서도 문제가 된다. 1983년 루이스 알바레스고메Luis Alvares-Gaume와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은 이런 이형성이 양자장이론뿐만 아니라 끈이론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발견으로 끈이론 역시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위대했던 아이디어들이 사라졌던 역사의 늪 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끈이론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대칭성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그린과 슈바르츠가 끈이론의 이형성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내고 끈이론이 이를 만족시킬 수 있음을 보이자 커다란 파장이 일어났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이형성에 대해 양자 기여를 계산한 뒤 특정 힘에 대해서는 이 이형성의 총합이 기적적으로 0이 됨을 보여주었다. 그린과 슈바르츠의 결과가 놀라운 까닭은 끈이론이 대칭성을 깨드림으로써 이형성을 만들 우려가 있는 양자역학적 과정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10차원 끈이론에서 이형성을 만들어내는 양자역학적 기여의 총합이 0이 됨을 증명했다.

끈이론을 물리학의 구범 중 하나로 만들어준 2개의 중요한 연구가 뒤따랐는데, 하나는 프린스턴의 공동연구자들인 데이비드 그로스David J. Gross(1941~)와 캐나다 태생의 제프 하비Jeff Harvey(1957~), 에밀 마티넥Emil Martinec(1958~) 그리고 리안 롬Ryan Rohm이 1985년에 유도한 잡종끈heterotic string이론이다. 이 용어는 잡종생물이 부모세대보다 뛰어난 경우를 일컫는 잡종강세heterosis에서 유래했다. 끈이론에서는 진동방식이 끈을 따라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진행한다고 본다. 잡종이란 말은 잡종끈이론이 끈을 따라 왼쪽으로 나아가는 파동과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파동을 다르게 다룰 수 있으며, 그 결과 이전의 끈이론이 다루지 못한 더 흥미로운 힘을 포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잡종끈의 발견으로 그린과 슈바르츠가 밝힌 이형성을 야기하지 않는 10차원 공간의 힘이 특별하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린과 슈바르츠는 끈이론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진 힘 말고도 이전에 발견할 수 없었던(이론적으로) 힘들의 집합을 끈이론이 포함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잡종끈에서 나타나는 힘은 그린과 슈바르츠가 이형성을 낳지 않는다고 증명한 바로 그 새로운 힘이었다.

끈이론의 탁월함을 더욱 공고히 해준 마지막 발견은 초끈에 불가결한 여분차원에 관한 것이다. 이 발견은 초끈이론이 내부적으로 모순이 없으며 표준모형의 힘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초끈이론이 말하는 10차원이 잘못된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초끈이론은 10차원을 요구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시간을 포함하여 4차원이다. 이 여분의 6차원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압축차원, 즉 여분차원이 압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해답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로 공간이 말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차원이 말려있다고 보는 이론은 약력의 중요한 성질을 설명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약력이 왼손잡이 스핀입자와 오른손잡이 스핀입자를 다르게 취급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표준모형 전체의 구조가 왼손잡이 입자들만 약력을 경험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표준모형의 예측은 대부분 맞지 않게 된다. 10차원 끈이론도 왼손잡이 입자와 오른손잡이 입자를 다르게 취급할 수 있지만 6개의 여분차원이 말려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6개의 차원이 말려있다고 보는 4차원 유효이론에서는 왼손잡이 입자와 오른손잡이 입자가 항상 일대일로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1985년 필립 칸델라스Philip Candelas와 게리 호로비츠Gary Horowitz, 앤디 스트로민저Andy Strominger 그리고 위튼은 여분차원을 압축하는 방식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칼라비-야우 다양체Calabi-Tau manifold라는 복잡한 압축방식을 제안했다. 칼라비-야우 다양체는 왼손잡이 입자와 오른손잡이 입자를 구분하고 반전대칭성을 깨는 약력을 포함한 표준모형의 입자와 힘을 재현하는 4차원 이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여분차원을 칼라비-야우 다양체 형태로 압축하는 과정은 초대칭성을 보존한다. 칼라비-야우 다양체라는 돌팔구 덕분에 초끈이론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많은 물리학과에서 초끈이론이 입자물리학의 지위를 대체했다. 초끈혁명은 일종의 쿠데타 같았다. 초끈이론이 양자 중력을 다루는 동시에 알려진 입자와 힘을 포함하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을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이론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끈이론은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TOE)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끈이론이 옳다고 해서 기존의 입자물리학을 폐기할 수는 없다. 끈이론의 목적은 플랑크 길이보다 짧은 거리에서 양자역학과 중력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여분차원모형을 바탕으로 한 변종끈이론 말고 원래 끈이론은 플랑크 길이만한 끈을 다룬다. 이는 종래의 끈이론과 입자물리학의 차이가 플랑크 길이 정도의 아주 짧은 거리 범위나 초고에너지인 플랑크 에너지 영역에서나 드러난다는 뜻이다. 플랑크 에너지보다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라면 입자물리학도 잘 맞는다. 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끈이 작다면 끈은 입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실험으로 그 차이를 발견할 수도 없다. 10-33cm 정도의 크기를 볼 수 있는 기구가 개발되지 않는 한 끈은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다. 따라서 접근 가능한 에너지에서 끈이론과 입자물리학이 같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원리적으로 끈의 가능한 진동방식에 대응하는 새로운 입자들을 발견함으로써 끈이론이 옳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지만, 예측되는 새로운 입자 대부분이 1019기가전자볼트라는 플랑크 질량 정도의 굉장히 큰 질량을 가진 무거운 입자라는 점이다. 실험적으로 측정되는 가장 무거운 입자의 질량이 200기가전자볼트라는 것과 비교하면 끈이론 입자의 질량이 무척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끈의 장력tension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끈의 진동을 통해 추가로 생겨나는 새로운 입자의 질량은 클 수밖에 없다. 끈의 장력은 플랑크 에너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장력이 없으면 초끈이론은 중력자의 정확한 상호작용 세기를 재현할 수 없다. 끈의 장력이 클수록 진동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가 커진다. 그리고 이 높은 에너지는 끈의 진동에 의해 생긴 여분의 입자들의 질량으로 전환된다. 이런 플랑크 질량의 입자들은 너무 무거워서 현재 어떤 입자가속기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끈이론이 옳다고 해도 그 증거가 되는 무거운 새 입자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끈이론은 막이나 여분차원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소개한다. 비록 4차원에서이지만 끈이론은 초대칭성이나 양자장이론, 양자장이론이 포함하는 힘들에 대한 이해를 개선했다.

초끈이론은 1984년에 정점을 이뤘다. 입자물리학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는데, 프린스턴 대학에서 위튼과 그로스가 끈이론을 주도했고 하버드 대학에서는 조자이와 글래쇼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입자물리학에 열광하고 있었다. 끈이론이 아직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여태까지 발전시킨 방법을 훌쩍 뛰어넘는 수학적 도구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현재 끈이론에는 서로 다른 힘과 차원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자들의 집합을 가진 여러 개의 모형이 존재한다. 끈이론 연구자들은 처음에는 칼라비-야우 공간 압축이 특정한 공간 형태를 선택해 유일한 물리학이론을 줄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곧 낙담했다. 현재 칼라비-야우 공간 압축에 기초한 끈이론들은 기본입자의 세대를 수백 개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청나게 많은 칼라비-야우 공간 압축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끈이론에는 말려 있는 차원이 있어야 하지만 끈이론가들은 말려 있는 차원의 크기와 모양을 결정하는 원리를 아직도 밝히지 못했다. 더욱이 끈이론에는 끈을 따라 여러 번 진동함으로써 새롭게 생겨나는 무거운 입자들뿐만 아니라 질량이 작은 입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끈이론의 예측에 따라 이 가벼운 입자들이 존재한다면 실험을 통해 그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의 끈이론 모형은 우리가 현재 관측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가벼운 입자와 힘이 저에너지상태에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물리학자들은 아직도 끈이론이 유도해낸 중력 및 입자들과 힘들을 어떻게 해야 현실세계와 일치시킬 수 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엄청나게 큰 우주의 에너지 밀도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입자가 없다고 해도 우주는 진공에너지라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에너지가 공간의 수축・팽창이라는 물리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진공에너지가 양수이면 우주의 팽창은 가속되며, 진공에너지가 음수이면 우주를 붕괴로 이끈다. 진공에너지를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처음 제안했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의 해를 찾기 위해 물질의 중력효과를 상쇄시키는 진공에너지가 있다고 제안했다. 1929년 에드윈 파월 허블Edwin Powell Hubble(1889~1953)이 발견한 우주 팽창이나 다른 여러 이유들로 아인슈타인이 이런 제안을 철회했지만 우주에 진공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을 이론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최근에 우주의 진공에너지(암흑에너지 혹은 우주상수라고도 한다)를 측정했는데, 그 값이 작기는 하지만 양수로 밝혀졌다.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진 초신성들이 멀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관측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초신성supernova이 가속하면서 멀어지지 않을 때 가져야 하는 원래 밝기보다 어둡게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진공에너지가 작지만 양수임을 뒷받침한다. 측정된 우주 팽창 가속도는 매우 작다. 이것은 진공에너지 값이 0은 아니지만 무척 작음을 뜻한다. 끈이론 계산에 따르면 진공에너지가 훨씬 커야 한다. 그러나 진공에너지가 크면 다른 중요한 문제가 야기된다. 진공에너지가 큰 음수의 값을 가지면 우주가 오래 전에 수축해서 사라졌을 것이고 큰 양수의 값을 가지면 우주가 너무 빨리 팽창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끈이론은 우주의 진공에너지가 현재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만 한다. 입자물리학자들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끈이론과는 달리 입자물리학자들은 양자중력이론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그들의 꿈은 끈이론가들의 야망보다는 소박하다. 진공에너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입자물리학은 만족스럽지 못한 정도이지만 잘못된 에너지 값을 내놓는 끈이론은 살아남기 어렵다.

일부 초끈이론가들은 여러 끈 이론 중 하나의 맞는 이론을 찾으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려있는 차원이 가질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주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른 값을 가질 수는 없는지 살펴보고, 끈이론은 우리 우주를 포함하여 엄청난 수의 있을 법한 우주들로 기술되는 풍경의 윤곽을 그릴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끈 연구자들은 끈이 주는 진공에너지 값이 오직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에는 서로 다른 진공에너지를 가진 채 서로 떨어져있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부분이 우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진공에너지 값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끈이론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더욱 정교한 수학적 도구가 나와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내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이론은 중력, 차원, 양자장이론에 중요한 통찰을 주었으며 양자 중력에 대한 여러 이론 중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공정하게 말해 입자물리학의 문제들도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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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르네 데카르트의 『 성찰 』

 

 

 

 

데카르트의 『성찰』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은 6일간의 사색을 기록한 자서전처럼 쓰인 일인칭 저술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식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뒤섞인 논증들을 따라오도록 격려하기 위한 매우 영리한 장치이다. 이 책의 정신에 적합한 책읽기는 단지 수동적 몰입이 아니라, 이 책이 제시하는 사유에의 적극적 참여를 포함한다. 당신은 텍스트 안에서 ‘나’가 되도록 초청되어 회의와 계몽의 연속된 단계를 따라 진행한다. 철학 저술로서 『성찰』은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채 남아있으며, 이 책에서 표현된 사상들 가운데 많은 것이 뒤이은 철학자들을 지배했다. 데카르트는 일반적으로 근세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립하고자 한다. 결국 이 책에서 그의 주된 관심은 인식론, 즉 지식에 관한 이론이다. 지식의 한계를 확립하는 일은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다. 그는 만일 자신의 사유에서 잘못들을 제거하고, 참된 신념을 얻기 위한 타당한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원리들이 세계에 관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에 관한 과학적 이해라는 구조물을 떠받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데카르트가 『성찰』을 저술할 당시인 1940년 프랑스에서의 지배적 견해는 많은 면에서 과학에 적대적인 가톨릭교회의 견해였다. 데카르트는 또한 진리 탐구를 떠나 논쟁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치우친 스콜라 철학의 전통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 원리들로 되돌아가서, 기성의 견해를 폐기하는 일은 이런 상황에서 데카르트에게는 급진적인 작업이었다.

자기 저작의 건설적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데카르트는 자기 삶에서 한 번쯤은 자신의 기존 신념들 모두를 제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것들 가운데 많은 것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기존 신념의 구조물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수리해 나가는 방법보다는, 기존의 신념들을 단번에 제거한 다음 이것들을 대체할 대상들을 하나하나 고찰하는 방법이 적합하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저작을 비판하는 어떤 비판가에 답하면서, 그는 이런 식의 접근을 다음과 같은 유비를 들어 설명했다. 만일 당신이 통 속에 있는 썩은 사과들을 걱정한다면, 그 사과를 모두 쏟아낸 뒤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사해서 통 속에 다시 넣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검사한 사과가 온전하다고 확신할 경우에만 그것을 통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단 하나의 썩은 사과라도 다른 사과들 모두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비는 데카르트의 급진적 회의의 방법을 잘 설명해준다. 이것은 종종 ‘데카르트적 회의 방법the Method of Cartesian Doubt(여기서 ‘카르테지안’은 ‘데카르트’의 형용사이다)으로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적 회의 Cartesian Doubt

회의의 방법은 당신의 기존 신념들 모두를 마치 거짓인 것처럼 다루는 일을 포함한다. 당신은 그것이 참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에만 어떤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의 참(진리)에 대한 추호의 의심이 있다면 의심만으로도 그것을 내버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당신이 그것을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거짓임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나중에 참인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의심은, 그것을 지식의 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으로서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식의 구조물은 ‘의심할 수 없는 지식indubitable knowledge’ 위에 세워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자신이 인정하듯이 이런 방법이 일상생활에서의 실용적 방법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 방법의 요점은 이 방법이 데카르트로 하여금 회의에서 면제된, 따라서 온전한 원리들 위에 지식을 재구성하기 위한 기반으로 사용될 몇 가지 신념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이런 방법은 적어도 그에게 모든 것이 의심될 수 있다는, 즉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감각의 명증성 the evidence of the senses

첫 번째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이러한 회의의 방법을 소개하면서, 이것을 자신의 기존 신념들에 엄격하게 적용한다. 그는 오감을 통해 얻은 신념들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감각들은 때때로 그를 속여 왔다. 예를 들어 그가 먼 거리에서 보이는 것에 대해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면, 한 번 당신을 속인 것은 결코 신뢰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원칙에 따라 그는 그의 감각들의 증거를 믿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먼 거리에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때때로 속임을 당할지라도, 그가 결코 속임을 당할 수 없는 몇몇 감각을 통해 얻은 사실들이 있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가령 그가 지금 가운을 입고 종이 한 장을 들고 벽난로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데카르트의 반응은 정반대이다. 이처럼 명백하게 확실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는 실제로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으면서, 자신이 벽난로 가에 앉아 있는 꿈을 꾼 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서조차 머리, 손, 눈 등의 것들이 실제 세계의 것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종류의 대상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들, 즉 크기, 모양, 연장성(데카르트에게 이것은 공간을 차지하는 성질을 의미한다)과 같은 것들은 더 확실한 것 같다. 당신이 잠을 자고 있든 깨어 있든 2 더하기 3은 5이며, 사각형은 결코 네 개보다 많은 변을 갖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정말로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외견상의’ 확실성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 보인다. 그러기 위해 그는 악령을 가정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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