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르네 데카르트의 『 성찰 』

 

 

 

 

데카르트의 『성찰』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은 6일간의 사색을 기록한 자서전처럼 쓰인 일인칭 저술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식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뒤섞인 논증들을 따라오도록 격려하기 위한 매우 영리한 장치이다. 이 책의 정신에 적합한 책읽기는 단지 수동적 몰입이 아니라, 이 책이 제시하는 사유에의 적극적 참여를 포함한다. 당신은 텍스트 안에서 ‘나’가 되도록 초청되어 회의와 계몽의 연속된 단계를 따라 진행한다. 철학 저술로서 『성찰』은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채 남아있으며, 이 책에서 표현된 사상들 가운데 많은 것이 뒤이은 철학자들을 지배했다. 데카르트는 일반적으로 근세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립하고자 한다. 결국 이 책에서 그의 주된 관심은 인식론, 즉 지식에 관한 이론이다. 지식의 한계를 확립하는 일은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다. 그는 만일 자신의 사유에서 잘못들을 제거하고, 참된 신념을 얻기 위한 타당한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원리들이 세계에 관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에 관한 과학적 이해라는 구조물을 떠받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데카르트가 『성찰』을 저술할 당시인 1940년 프랑스에서의 지배적 견해는 많은 면에서 과학에 적대적인 가톨릭교회의 견해였다. 데카르트는 또한 진리 탐구를 떠나 논쟁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치우친 스콜라 철학의 전통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 원리들로 되돌아가서, 기성의 견해를 폐기하는 일은 이런 상황에서 데카르트에게는 급진적인 작업이었다.

자기 저작의 건설적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데카르트는 자기 삶에서 한 번쯤은 자신의 기존 신념들 모두를 제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것들 가운데 많은 것이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기존 신념의 구조물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수리해 나가는 방법보다는, 기존의 신념들을 단번에 제거한 다음 이것들을 대체할 대상들을 하나하나 고찰하는 방법이 적합하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저작을 비판하는 어떤 비판가에 답하면서, 그는 이런 식의 접근을 다음과 같은 유비를 들어 설명했다. 만일 당신이 통 속에 있는 썩은 사과들을 걱정한다면, 그 사과를 모두 쏟아낸 뒤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사해서 통 속에 다시 넣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검사한 사과가 온전하다고 확신할 경우에만 그것을 통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단 하나의 썩은 사과라도 다른 사과들 모두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비는 데카르트의 급진적 회의의 방법을 잘 설명해준다. 이것은 종종 ‘데카르트적 회의 방법the Method of Cartesian Doubt(여기서 ‘카르테지안’은 ‘데카르트’의 형용사이다)으로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적 회의 Cartesian Doubt

회의의 방법은 당신의 기존 신념들 모두를 마치 거짓인 것처럼 다루는 일을 포함한다. 당신은 그것이 참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에만 어떤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의 참(진리)에 대한 추호의 의심이 있다면 의심만으로도 그것을 내버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당신이 그것을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 거짓임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나중에 참인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의심은, 그것을 지식의 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으로서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식의 구조물은 ‘의심할 수 없는 지식indubitable knowledge’ 위에 세워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자신이 인정하듯이 이런 방법이 일상생활에서의 실용적 방법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 방법의 요점은 이 방법이 데카르트로 하여금 회의에서 면제된, 따라서 온전한 원리들 위에 지식을 재구성하기 위한 기반으로 사용될 몇 가지 신념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이런 방법은 적어도 그에게 모든 것이 의심될 수 있다는, 즉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감각의 명증성 the evidence of the senses

첫 번째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이러한 회의의 방법을 소개하면서, 이것을 자신의 기존 신념들에 엄격하게 적용한다. 그는 오감을 통해 얻은 신념들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감각들은 때때로 그를 속여 왔다. 예를 들어 그가 먼 거리에서 보이는 것에 대해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면, 한 번 당신을 속인 것은 결코 신뢰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원칙에 따라 그는 그의 감각들의 증거를 믿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그러나 먼 거리에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때때로 속임을 당할지라도, 그가 결코 속임을 당할 수 없는 몇몇 감각을 통해 얻은 사실들이 있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가령 그가 지금 가운을 입고 종이 한 장을 들고 벽난로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데카르트의 반응은 정반대이다. 이처럼 명백하게 확실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는 실제로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으면서, 자신이 벽난로 가에 앉아 있는 꿈을 꾼 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서조차 머리, 손, 눈 등의 것들이 실제 세계의 것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종류의 대상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들, 즉 크기, 모양, 연장성(데카르트에게 이것은 공간을 차지하는 성질을 의미한다)과 같은 것들은 더 확실한 것 같다. 당신이 잠을 자고 있든 깨어 있든 2 더하기 3은 5이며, 사각형은 결코 네 개보다 많은 변을 갖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정말로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외견상의’ 확실성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 보인다. 그러기 위해 그는 악령을 가정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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