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토마스 홉스의 『 리바이어선 』
홉스의 『리바이어선』의 표지 그림은 철학사상을 구현한 기념할 만한 회화적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 명의 거인이 있다. 그의 몸은 수천의 작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위로는 탑들이 있으며, 아래에는 잘 정돈된 도시가 있다. 교회의 뾰족탑은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권장券狀을 거머쥔 이 거인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홉스에 의해 묘사된 위대한 리바이어선 즉 ‘현세의 신’이다. 구약에서 바다 괴수로 등장하는 이 리바이어선은 시민을 대표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의 화신인 강력한 주권자에 대한 홉스적 이미지이다. 즉 인위적으로 창조된 거인 형태의 다수연합체이다.
『리바이어선』에서 홉스는 투쟁과 갈등의 일반적 원인들을 진단하고 그 치유책을 제공한다. 이 책의 중심 논의들은 왜 개인들이 어떤 강력한 주권자(한 명의 인물이든 집단이든)에 의한 통치를 승인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의 문제를 다룬다. 평화는 오직 모든 사람이 특정의 사회계약을 수용할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논지에 대한 홉스의 토의가 『리바이어선』의 심장부를 이루기는 하지만, 이 책은 심리학에서 종교에 이르는 많은 다른 주제들도 다룬다. 사실 『리바이어선』의 절반 이상은 종교와 기독교 성서에 대한 자세한 토의로 채워져 있는데, 이 부분은 오늘날 거의 읽히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의 주요 주제, 즉 자유로운 개인들로 하여금 서로 간의 그리고 외부의 공격에서 보호받는 대가로 자신들의 자연적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계약에 초점을 맞추겠다. 홉스는 이런 계약을 설명하기 위해 만일 사회 또는 국가기관이 없다면 삶은 어떤 상태일까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연 상태 the state of nature
홉스는 현존하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사회를 그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쪼갠다. 거기에는 자원이 제한된 세계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개인들이 있다. 홉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 상태에서의 삶의 처지들을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즉 국가의 모든 보호가 제거된다면 우리가 처하게 될 상태 말이다. 이 상상적 세계에는 옳고 그름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법도 없고, 법을 부과할 상위 권력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권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고 움켜쥘 권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도덕이나 정의는 특정 사회의 창안물이다. 특정 사회로부터 독립된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옳음・�그름・�정의・�불의는 국가 내의 주권자들에 의해 규정된 가치들이지, 세계에 이미 존재하다가 발견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는 어떤 형태의 도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 상태에 관한 홉스의 설명은 정치적 책무의 한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만일 당신이 자연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런 상태에로 귀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해야 할 훌륭한 이유를 가진 것이 된다.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끊임없는 투쟁 상태이다. 법을 부여하고 수호할 만한 힘 있는 주체가 없기에 개인들 사이의 공조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권력주체 없이는 아무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 적당한 때에 약속을 깨는 것이 언제나 이익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당신이 강한 생존욕구를 가지고 있다면, 적당한 때에 계약을 깨는 것이 분별 있는 행위이다. 만일 무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잡아채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이 적은 양이나마 가진 것을 가져갈 위험이 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의 빈약함으로 인한 이러한 직접적인 경쟁 상태에서, 당신의 안전에 위협이 되리라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것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설령 실제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이 상태는 여전히 전쟁상태라고 홉스는 말한다. 폭력발생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대규모 농사나 건축같이, 사람들 사이에 협동이 필요한 작업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가장 약한 자도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기에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이 가능적 위협이 된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삶을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는 인상 깊은 말로 기술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삶의 가능성에 직면한다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평화와 안전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치고는 적은 편일 것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이 자신들의 불만족한 처지를 회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설명한다. 폭력적 죽음의 두려움과 평화가 주는 이득에 대한 욕구는 그렇게 해야 할 강한 동기를 제공해준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적 권리를 가지며, 심지어 다른 권리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포기된 뒤에도 이 권리는 계속 남는다. 홉스는 이 자연권을 자연법과 대비시킨다. 권리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할 어떤 것이며, 그렇게 하도록 의무 지워진 것은 아니다. 법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지배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자연법 laws of nature
자연 상태에서도 자연법들은 존재한다. 이성을 사용함으로써 따르게 되는 법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오늘날 음주운전을 금하는 법과는 다르다. 이런 종류의 금지에 대해 홉스는 ‘시민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시민법의 내용은 주권자 또는 이를 대변하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다). 이와 달리 자연법은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든 구속되게 되는 원칙들이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것의 피할 수 없는 결과는 안전의 부재와 영속적인 전쟁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이 부과하는 자연법은 ‘어디서든 가능한 만큼 평화를 모색하라’이다. 두 번째 자연법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자연 상태에서 당신이 가진 권리들을 포기하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도록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를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라’(이것은 ‘당신이 받는 대로 해주어라’라는 종교적 처방의 한 변형이다). 홉스는 아주 긴 목록의 자연법들을 세우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자연 상태에서 누구든 안전의 대가로 자신의 무제한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사회계약 the social contract
이성적으로 취해야 할 다음 단계는 사회계약을 맺고, 강력한 주권자에게 자유를 넘기는 일이다. 주권자는 아주 강력하여 계약이 지켜지도록 감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홉스가 지적하듯이 ‘칼의 뒷받침이 없는 계약은 한낱 말에 불과하며, 사람을 보호할 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위력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하기로 약속한 것을 이행하리라는 것을 보증한다.
사실 벌이나 개미 같은 몇몇 동물들은 위로부터의 강제적 지휘를 필요로 함이 없이 평탄하게 진행되는 사회 속에서 사는 듯이 보인다. 홉스는 인간의 상황은 벌이나 개미의 그것과는 아주 다름을 지적한다. 인간은 명예와 품위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이런 경쟁은 질시와 증오에 이르고 결국에는 전쟁에 도달한다. 개미와 벌은 명예와 품위를 찾지 않는다. 인간은 이성능력을 가지며 이 능력은 자신이 통치되는 방식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알아채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이것은 점차적으로 시민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개미와 벌은 그런 이성능력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계약을 통해 사회를 형성한다. 개미나 벌은 서로에 대해 자연적 합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들의 약속을 깨지 않도록 보증해주는 무력적인 위협수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개미와 벌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보호의 대가로 당신의 자연권을 포기하는 것에 관한, 자연 상태에서 다른 개인들과 맺은 계약이다. 이 계약이 역사적 현실성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홉스는 역사의 특정 단계에서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 싸움으로 힘을 낭비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이며 협조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정치제도를 이해하고 정당화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리바이어선』을 읽는 한 방법은 홉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일 현존하는 암묵적인 계약조건들이 없어져 버린다면,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만일 홉스의 논증이 타당하다면 그리고 자연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가 정확하다면 『리바이어선』은 왜 강력한 주권자의 통치 하에서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들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