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정서不良情緖는 치병致病 인소因素가 된다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 생기는 흥분상태의 심정을 희라 한다. 일소일소一笑一笑 십년소十年少 일수일수一愁一愁 백료두白了頭란 말이 있다. 웃고 또 웃으면 젊어지지만 근심하고 또 근심하면 머리카락이 희어진다는 뜻이다.

유쾌한 심정과 상쾌한 정신은 인체의 기혈의 조화를 이루어주므로 피로를 회복시켜 주고 긴장감을 풀어주며 노동효율이 증가되어 건강에 유익하며 질병의 회복이 빨라진다. 그러나 기쁨이 지나쳐서 인체의 조절능력을 초과할 경우 불량정서不良情緖가 되어 치병致病 인소因素가 되며 엄중할 경우 생명을 잃는다.

<의순잉의醫醇剩義>에 부희노우사비공경夫喜怒憂思悲恐驚 인인공유지경人人共有之境 약당희이희若當喜而喜 당노이노當怒而怒 당우이우當憂而憂 시즉희노애락발이개중절야是卽喜怒哀樂發而皆中節也 차천하지화此天下至和 상하상지유尙何傷之有라 하였다.

무릇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서다. 그러나 기쁨에 기쁨이 겹치고 성냄에 성냄이 겹치며 근심에 근심이 겹치면 인체에 해롭다.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에는 걸맞은 절제가 있어야 함이 옳다. 칠정의 발로는 지극히 조화롭지만 오래 지속되면 어찌 사람을 상하지 않겠는가?”

<정충설악精忠說岳>에 보면 남송南宋의 악비岳飛 군대인 악가군岳家軍의 좌군左軍 통제統制 우고장군은 금나라 태조太祖의 넷째 아들 올출兀朮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말을 탄 채 올출의 등을 밟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허! !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올출은 기가 끊어져서 죽었고 우고는 기쁨이 지나쳐서 죽고 말았다.

옛날에 범진范進이란 사람이 과거시험에 합격한 고사다. 나이가 많은 범진은 만년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범진은 과거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두 손에 받아들고 박장대소하였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다가 혼절하였다.

집안 사람들은 범진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각성시켰다. 범진은 벌떡 일어나 또 다시 박수를 치며 좋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범진은 산발을 한 채 온 동네를 뛰어 다녔다.

범진의 모친은 평생 빈곤하게 살아왔다. 자식이 늦게나마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부귀공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꿈을 꾸며 매우 기뻐하였다. 범진의 모친은 자식이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 남의 집 종살이를 청산했으며 이제부터 은그릇과 계집종과 시녀들은 모두 내 것이다하고 크게 외친 후 땅바닥에 쓰러져버렸으며 인사불성人事不省으로 죽고 말았다.

결국 과거시험에 합격한 범진은 기쁨이 지나쳐 미쳐버렸고 범진의 어미는 기쁨이 지나쳐서 홀연히 담궐痰厥이 생겨 인사불성이 되어 죽었다. 이를 희상심喜傷心이라 한다. 희상심에 주로 나타나는 질병은 고혈압, 심근경색, 뇌혈관의외腦血管意外(중풍), 질식窒息, 유산流産, 기흉氣胸, 불면증 등이다. 초기엔 웃음이 그치지 않고 누어있어도 편치 않다. 계속적으로 심기心氣가 손상되면 땀이 그치지 않고 줄줄 흐르며 심계心悸와 불면증이 수반되며 놀라기도 하고 불안해한다. 때로는 기뻤다 슬펐다 하며 기쁨이 극에 달하면 고성방가하며 미친 짓을 한다. 평소에 심음허心陰虛인 사람은 심음心陰이 상하여 심화心火가 편항偏亢되며 도한盜汗, 심번心煩, 불면증이 생긴다.

<황제내경-영추靈樞본신本神>에 희락자喜樂者 신탄산이부장神憚散而不藏이라 하였다. 기쁜 사람은 정신이 흩어지기 쉽다는 뜻이다.

현대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웃음은 대뇌피질의 일부분을 고도로 흥분시키고 반대로 대뇌피질의 어느 부분에서는 억제상태가 된다. 지나치게 박장대소하거나 미친 듯이 기뻐할 경우 대뇌피질의 흥분과 억제과정에 불균형이 발생하고 대뇌피질의 중추기능이 문란해진다"고 한다.

관심병이 있는 환자가 박장대소할 경우 복강 내의 압력이 증가되어 심근경색과 심장박동 정지가 발생하며 중증 고혈압 환자가 박장대소할 경우 혈액순환의 속도가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되어 뇌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 크게 웃으면 음식물이 기관氣管으로 가 질식하여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나친 기쁨은 불량정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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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간장에 대한 행법

 

1. 반듯하게 누워서 눈을 감는다. 두 손은 엄지를 안으로 주먹을 쥐고 양 옆구리에 댄 채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쉰 뒤 코로 숨을 들이쉰다. 양 손바닥을 서로 비벼서 따뜻하게 한다. 먼저 오른손바닥으로 왼쪽 갈비뼈 맨 아래 부위를 좌우로 30회 문지른다. 왼손으로 오른쪽 갈비뼈 맨 아래 부위를 좌우로 30회 문지른다.

 

2. 목욕탕에 들어가서 꿇어앉는다. 양손의 엄지를 제외하고 여덟 손가락을 나란히 세워 왼쪽 갈비뼈 위장 부위에 대고, 손가락 끝을 안쪽으로 굽혀 위장에서 옆구리에 걸친 살을 배 안쪽으로 누르듯이 한다. 누르는 동시에 코로 숨을 들이쉰다. 그 다음, 손의 힘을 늦추면서 숨을 내쉰다.

 

3. 양손가락 끝을 갈비뼈를 따라 몸 바깥쪽으로 약간 이동시켜 갈비뼈 중심쯤에 양 검지손가락이 오도록 하고 앞에서와 같이 양손가락 끝으로 배를 눌러 손가락 끝이 갈비뼈 안쪽으로 들어가게 한다. 동시에 코로 숨을 들이쉰다. 그 다음, 손의 힘을 늦추면서 숨을 내쉰다.

 

4. 다시 양손을 배의 바깥쪽을 향하여 이동시키고 왼쪽 갈비뼈 맨 아래의 옆구리 부위에서 두 손가락 끝을 가지런히 하여 마찬가지로 배를 갈비뼈 안쪽으로 눌러 넣듯이 한다. 동시에 코로 숨을 들이쉰다. 그 다음, 손끝을 갈비뼈 안쪽에서 떼면서 입으로 숨을 내쉰다.

 

몸은 전체가 하나로서 서로 관련이 있다. 어떤 기능도 전신의 활력과 동떨어져서 작용하지 않는다. 성기능이 쇠약해지는 것도 성기만 병에 걸리거나 노화된 탓이 아니다. 노화가 치료되면 성기능도 원래대로 회복된다. 중년 이후에 도인술을 하는 사람은 성기능의 회복을 경험한다.

성력을 회복시킬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간장과 신장이다. 두 장기의 기능은 성기능에 큰 영향을 준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약해지면 성기능은 현저하게 감퇴한다. 내장이 나빠지면 그 부위의 피부 색깔이 변하거나 붓거나 단단해진다.

간장에 이어지는 경락인 간경은 남녀 모두 성기에 이어져 있다. 이것은 다른 12경락에 없는 특징이다.

 

 

간장의 건강을 아는 법.

 

손톱이 핑크색을 띠고 윤이 나면 간장이 건강하다.

손톱의 혈색이 나쁘거나 손가락 끝이 터지거나 하면 간장이 좋지 않은 상태이다.

엄지와 새끼손가락 쪽의 손바닥 언덕이나 손가락 배 부위에 벌겋게 울혈 증상이 나타나면 간장이 나쁜 것이다. 이것을 손바닥의 홍반紅斑이라 한다.

간장과 눈은 깊은 관련이 있다. 간장이 나빠지면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흐려진다.

간장병이 진전되면 간장이 비대해진다. 그리고 비대가 진전되면 갈비뼈의 맨 아래뼈가 밖으로 불거져 나온다. 간장의 위치는 오른쪽이지만 오른쪽 갈비뼈뿐 아니라 왼쪽 갈비뼈 역시 그렇게 된다.

간장병이 더욱 진전되면 얼굴이나 가슴 등에 지름 5-10밀리미터의 거미모양 반점이 나타난다. 이것은 혈관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간장은 감정의 움직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장은 노여움을 맡아보는 기관이다. 따라서 성을 내면 간장의 활동은 지나치게 활발해져서 간장을 손상시킨다. 또 간장이 나빠지면 자주 발끈한다. 자주 발끈하는 사람은 간장이 나빠지지 않았는지 의심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배를 누를 때에 잘 들어가지 않으면 내장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내장은 탄력성이 있고 부드럽다. 부드러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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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 다리털에 대한 행법

 

1. 한쪽 손바닥을 이용하여 털이 많이 나 있는 팔 등을 몇 십 번, 몇 백 번이고 비벼댄다. 다리에 털이 많은 사람은 반듯하게 누워 한쪽 발바닥으로 다른 쪽 다리를 비빈다.

 

여성의 몸에 털이 유난히 많으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식생활이 문제인 경우가 가장 많다. 서영 여성의 경우 털복숭이가 많은 것은 육식이 그 원인이다.

이미 시꺼멓게 털이 났다면 이 행법이 효과적이다. 마찰 행법은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짬나는 대로 하면 된다. 하루 2시간 이상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털이 빠질 때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엄청난 양의 털이 이불 위에 떨어져 있게 된다. 털이 빠진다는 것은 구 부위의 사기가 사라지고 기혈의 흐름이 정상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류머티즘이 있는 사람이 털이 덥수룩한 경우가 많은데, 이때 마찰 행법을 하면 깨끗한 팔다리로 변모하고 병도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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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가족에게 베푼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작 중년의 융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가족에게 베푼 것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쪽은 융이었다. 당시 그는 정신적 고통과 함께 불면증과 위장병까지 겪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계속되면서 꿈속의 무의식에서는 새로운 환상 속의 인물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가상의 인물들이 그의 개인적인 삶을 투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와 같은 푸른 하늘은 … 납작한 갈색 흙덩이로 덮여 있었다 … 그 흙덩이는 갈라져 있었는데 … 갑자기 … 날개 달린 존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 그것은 황소의 뿔을 단 노인이었다. 그에게는 열쇠 꾸러미가 네 개 있었는데 … 그는 어떤 자물쇠를 열려는 듯 그 중 열쇠 하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특이한 색의 물총새 날개를 달고 있었다. 필레몬은 이교도였으며 그에게서는 영지주의적인 색채와 함께 이집트와 고대 그
리스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 꿈을 그림으로 그리던 융은 그의 정원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물총새를 발견하고는 “번개에 맞은 듯” 놀랐다. 취리히에서 물총새를 보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같은 의미심장한 우연을 그는 “동시성synchronicity”이라 불렀다.

 

환상 속에서 본 필레몬과 다른 인물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 자신들만의 인생을 사는 내 정신 속의 존재들이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어떤 힘을 의미했다 … 그는 나에게 정신의 객체성, 정신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심리학적으로 필레몬은 우월한 통찰을 상징했다 … 그는 나에게 인도인들의 구루guru(힌두교와 시크교에서 스승이나 지도자)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는 나에게 수많은 혜안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환상은 융이 “카Ka”라고 부른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카는 왕의 이승에서의 형체, 즉 그의 “육체화된 영혼embodied soul”에 붙여진 명칭이었다.

 

나는 현세에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하체는 돌로, 상체는 청동으로 표현했다 … 카의 모습에는 악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 그는“ 내가 바로 신들을 금과 보석 속에 묻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필레몬은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날개 달린 영혼이었다. 반면 카는 지상에 있는 악마의 일종이었다 … 필레몬은 영혼의 측면, 즉“ 의미”를 상징했다. 카는 … 자연의 영혼이었다 … 카는 모든 것을 실재하도록 만들었지만“ 의미”, 즉 물총새의 영혼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 이윽고 나는 연금술 연구를 통해 두 존재를 통합할 수 있었다.

 

융는 자서전을 쓰면서 당시의 일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정신과 의사인 내가 거의 모든 단계의 실험에서 정신병을 규정하며 정신병원에서 볼 수 있는 정신적 현상을 똑같이 겪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많은 무의식의 이미지들은 정신병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혼란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의 시대를 살면서 사라진 신화적 상상의 모체이기도 하다. 그런 상상이 도처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금지하고 두려워한다.

 

50만 명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성의 시대인 1916년, 융에게 점진적으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필레몬의 가르침을 창의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다.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의 첫머리에는 융의 가족 전체가 귀신을 경험한 듯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일요일 오후 5시경 앞문의 초인종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맑은 여름날이었다. 그때 하녀 둘은 부엌에 있었는데 그들은 중앙의 트인 공간 너머로 밖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즉시 밖을 내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인종 가까이에 앉아 있어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실내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 집 전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온 것처럼 영혼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웠다. 문이 있는 곳까지 영혼들이 붐볐고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숨 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나는 벌벌 떨며“ 도대체 무슨 일일까?”라는 의문에 빠졌다. 그러자 영혼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우리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왔소. 우리는 그곳에서 찾던 것을 찾지 못했소.” 이것이『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의 시작이다. 이후 나에게서 저절로 생각이 흘러나왔으며 사흘 밤이 지난 후 글의 첫머리가 완성되었다. 내가 펜을 잡자 그때서야 유령들이 모두 사라졌다 … 유령 소동이 끝난 것이다 … 죽은 자와의 이 같은 대화는 내가 무의식에 관해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순서의 형태와 내용의 해석을 알려주는 일종의 서막이 되었다.

 

이 책은 옛 문체로 쓴 일종의 시집이다.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는 원래 익명의 한정판으로 출간되었으며 그의 요청으로 『융 전집Jung’s Collected Works』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대극들의 대립과 개성화의 개념 등 그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의 틀을 보여준다.

 

 


인류가 망각한, 그대들이 모르는 신이 있다. 우리는 그 신을 아브락사스라 부른다. 아브락사스는 보통의 신과 악마보다 훨씬 더 정형화되지 않은 존재이다 … 그것은 개연성 없는 개연성이며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플레로마가 실재한다면 그 표현이 바로 아브락사스일 것이다 … 그것은 플레로마와는 구분되는 크레아투라[창의적 인간]이기도 하다 … 아브락사스의 힘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그 힘은 그대들의 눈앞에서 그 힘의 충돌하는 대극들이 사라져서 그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태양신이 말하는 것은 삶이다. 악마가 말하는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아브락사스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신성하고 저주받은 단어를 말한다. 아브락사스는 하나의 단어와 행동으로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낳는다. 아브락사스는 왜 끔찍한 것일까 …

그것은 공허함과 결합하려는 풍부함이다.
그것은 자식을 갖는 신성한 일이다.
그것은 사랑이며 사랑의 살해이다.
그것은 성인이며 그 성인의 배신자이다.
그것은 가장 밝은 낮의 빛이며 가장 어두운 광기의 밤이다.
그것은 가장 강력한 생명체이며 그 안의 생명체는 자신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플레로마와 그것의 공허함에 대한 크레아투라의 명백한 대립이다 …
그것은 크레아투라의 생명이다.
그것은 분명함의 작용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다 …
그것은 인간의 모습과 그림자이다.
그것은 환상 속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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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 왕조는 3대 왕 카니슈카의 재위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대승불교의 근원적인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모든 사람, 승려로부터 보통의 불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열성적인 불교신도들의 이 같은 행보가 대승불교를 발전시켰다. 다양한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개념이 정립된 것도 수확이었다. 특히 보살은 중생의 지위고하나 선악을 불문하고 모두를 구제하고자 하는 동정과 연민의 화신이었다. 깨달음과 열반의 세계가 눈앞에 있는 데도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기 전에는 붓다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도 있었다.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측면이 이처럼 두드러졌던 탓에 대승불교의 추종자들은 이타적인 자기 종파의 보살과 이기적인 소승불교승려들을 대별하기도 했다. 소승불교의 승려들은 사찰에 은둔한 채 자신들 일신의 깨우침만을 얻으려고 고군분투한다는 것이다.
쿠샨 왕조는 3대 왕 카니슈카의 재위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차례로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두 아들 바시슈카와 후비슈카는 왕국의 전성기를 유지하는 일에서는 시원찮은 성과를 보였다. 후비슈카는 34년이라는 긴 재위기에 별다른 업적을 내놓지 못했지만 종교에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힌두교의 부흥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이로 인해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던 굽타 왕조에서 불교는 인도 북부지역에서만 약간의 세를 유지할 정도로 위축되었다. 카니슈카 가문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니슈카의 손자 바수데바는 힌두교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그의 이름이 크리슈나를 부르는 여러 명칭들 가운데 하나를 딴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왕조 초기에 주조된 동전과 달리 그의 재위기에 제작된 쿠샨 왕조의 동전에는 다른 종교의 신이 단 한 명도 새겨져 있지 않다. 역설적인 사실은 쿠샨 왕조 말기에 불교가 쇠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시기에 인도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불교건축물들이 건립되었다는 점이다. 데칸 고원을 지배했던 한 독립국의 군주는 무려 25개나 되는 석굴사원을 건축했다. 이 석굴
사원들은 와그호라Waghora 강 물줄기가 굽으면서 생겨난 말발굽 모양의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특히 데칸 고원 북서쪽에 자리 잡은 아잔타 석굴은 유명하다. 현재 인도 서부의 아우랑가바드 북동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잔타 석굴 내부는 붓다의 생애를 표현한 조각과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른 붓다의 모습, 새・ 동물・사람 등으로 환생한 붓다의 전생 등 표현의 소재도 매우 다양하다.
아우랑가바드와 가까운 마하라슈트라 주 엘로라Ellora 마을에도 석굴이 건립되었다. 아잔타 석굴에 맞서기 위해 힌두교도들이 건립한 석굴사원이었다. 78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석굴사원은 매우 아름답다. 힌두교도들이 산등성이를 타고 나란히 놓인 두 협곡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한 덩어리의 암석을 조각하여 사원을 만들었다. 전체가 하나의 암석으로 이뤄진 이 사원은 시바 신에게 헌정되었다. 불교의 세를 물리친 힌두교의 위용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하게 하는 유적이다. 먼 남쪽의 힌두교를 신봉하는 한 왕국에서도 힌두교사원이 건립되었으며, 시바의 공적을 기리는 이야기를 돌에 새기기도 했다.
오늘날 첸나이Chennai 남쪽의 마말라푸람Mamallapuram 해안에는 팔라바의 왕 마헨드라바르만 1세가 갠지스 강의 흐름을 기리고자 세운 석상이 있다. 전능한 강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는 시바의 엉킨 머리카락을 통해 천국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성수로, 이 성수가 망자들의 업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헨드라바르만은 610년 금욕주의를 표방한 힌두 시인 아파르스바민의 영향으로 자이나교에서 시바를 모시는 힌두교로 개종했다. 오늘날 마말라푸람(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이라고도 함)에는 이때 만들어진 일곱 개의 탑과 화강암으로 만든 동물 조각, 거대한 바위를 잘라 만든 사원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팔라바 왕조와 그들의 뒤를 이은 촐라 왕조의 문화는 중세시대에 저 멀리 캄보디아・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320년 굽타 왕조가 정권을 잡은 후 대략 550년까지 인도 북부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찬드라굽타 1세의 뒤를 이은 굽타 왕조의 2대 왕 사무드라굽타는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쿠샨 왕조 시절에 난립했던 주변 소국들을 정복했고, 제국의 영토를 인더스 강 상류까지 확장시켰다. 그 후 아소카 집권기 이후 시대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의 위업을 달성했다. 굽타 왕조는 일부러 마우리아 왕조를 모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많은 면에서 마우리아 왕조와 유사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굽타 왕조가 열성적으로 힌두교를 신봉했다는 점이다. 남방원정에서 개선하는 도중 사무드라굽타는 “모든 바다 너머”까지 뻗어나간 자신의 권세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 장엄
한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저 멀리 스리랑카까지 위세를 떨친 사무드라굽타의 위대함을 알리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방식은 없었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 의식은 제를 올리는 이가 가축과 가축이 자라난 땅의 주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권을 손에 쥔 지 얼마 되지 않아 권력기반이 약한 통치자는 자신을 명실상부한 제국의 주인으로 바로 세우길 원했고, 그럴 때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종마로 제를 올리곤 했다. 이 아름다운 동물은 원하는 곳 어디라도 갈 수 있는 빠른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한 무리의 전사들이 종마를 따라다녔지만, 자신을 생포하고자 하는 놈은 언제라도 이 빠른 다리를 이용해 따돌릴 수 있었다. 사무드라굽타가 제에 올리기로 한 말은 1년간의 2-18 엘로라에서 발견된 시바의 아내 두르가(전쟁의 여신) 여신상. 데비 여신과 종종 동일시되는 두르가 여신이 물소 형상을 한 악마 마히샤를 죽이고 있다. 엘로라 석굴은 모두 34개로 2Km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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