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국으로 들어온 예수, 중국 밖으로 나간 공자

가톨릭이 처음 중국에 들어온 시기는 당나라 때였다. 당시 중국에 유입된 가톨릭은 네스토리우스파였다. 그러나 당나라의 15대 황제 무종은 도를 믿어 불교 탄압 정책을 폈으며, 그 여파가 네스토리우스파 즉 경교에까지 미쳐 사멸하고 말았다. 원나라 때도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가리켜 애카임4 으로 불렀다. 이는 가톨릭과 네스토리우스파를 통칭해 부른 말로 원나라 후기에 소멸되었다. 17세기 말에 가톨릭이 다시 중국에 들어왔다. 그즈음 가톨릭 선교사들이 서양에 공자를 소개했으므로 공자와 예수의 사상이 교류할 수 있었다. 중국에 가톨릭이 전파됨으로써 얻은 결과였다. 예수는 공자보다 약 5백 세 어리지만 그의 영향은 공자보다 훨씬 컸다.
공자를 서양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마테오 리치였다. 중국에서 27년 거주한 그는 『논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 선교사 필립 쿠플레는 1687년 파리에서 『대학』, 『중용』, 『논어』의 라틴어 역에다 ‘공자전’을 덧붙여 『중국의 철인 공자』란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최초의 완전한 『논어』 번역이었다. 18세기에 벨기에 신부 노엘이 라틴어로 번역한 『중국의 고전 육경六經』은 『중국의 철인 공자』 등과 함께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테오 리치는 공자의 존칭 공부자孔夫子를 라틴어 ‘Confucius’로 번역했고, 이때 번역한 용어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공자가 서방 국가로 간 지도 벌써 3백 년이 흘렀다. 공자의 영향은 20세기 말 미국에 보스턴 유학파와 하와이 유학파가 형성될 정도로 확대되었다.

 

예수의 출생을 둘러싼 소문

동양은 예부터 태양이 떠오르는 신비로운 지역으로 서양에 알려졌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보여주는 세계 4대 종교 모두 동양에서 형성되었다. 불교는 옛 인도인 지금의 네팔 남부에서,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대교는 시나이 산에서 기원했다. 기독교의 시초인 예수는 유대인이다. 그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
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
도가 바로 예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원래는 유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왕 혹은 구세주(메시아)라는 의미였다. 고대 선지자들의 말에 따르면 1세기경 유대인은 하나님이 약속한 구세주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으며, 그들은 구세주가 유대인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다. 기독교는 오늘날 교인의 수가 가장 많은 종교로 자리 잡았지만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파될 때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다 결국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받았고, 그 후 서양에서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예수는 기원전 6년경, 팔레스타인 지역인 지금의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갈릴리 지방의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당시 이곳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세금 징수를 위한 인구조사가 시작된 때라서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 신고를 해야만 했다. 예수를 잉태하고 있던 마리아도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장차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을 것이라고 알렸다. 마리아는 매우 당황하여 “저는 목수 요셉과 정혼하고 아직 잠자리를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마리아는 동정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될 요셉 역시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임신한 것은 음탕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유대교 율법에서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정당하지만 요셉은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 은밀히 파혼하려고 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28
예수라 하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마태복음」 1:20~21).

요셉은 천사의 명을 좇아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신의 아들이 태어날 날을 고대했다. 마리아는 배가 불러 몸이 무거웠지만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요셉의 선조 다윗이 살았던 곳이다. 『신약성경』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여인숙을 구하지 못해 마구간에서 밤을 지새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아 말구유에 눕혔고 이로써 말구유는 신의 아들 예수의 요람이 되었다. 요셉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서야 동침하여 몇몇의 아들과 딸을 낳았다. 당시 사람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무성한 소문 속에서 마리아는 음탕한 여인이란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요셉도 간음한 여인의 남편이라는 오명을 살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생아라고 생각한다.
요셉은 하층민인 목수였다. 예수는 어려운 경제적 환경과 유대 전통생활 속에서 성장했다. 관습에 따라 아버지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며 동생들을 돌보았다. 아버지가 타계한 후에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폈다.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좇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이 되어서였다. 그가 복음을 전파한 기간은 3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심한 반대와 박해를 받
았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신의 아들로 행세하는 예수를 로마제국의 손을 빌려 십자가 사형으로 처단했다. 예수도 처음에는 유대교 교인이었다. 태어난 지 8일째 되던 날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 율법에 따라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할례의식을 행했다.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라는 율법에 따라 예수를 하느님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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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공자의 출생을 둘러싼 소문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 창평향 추읍1 에서 출생했다. 이름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꼽히며그의 사상은 훗날 중국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그는 ‘성인’, ‘소왕’,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칭호로 추앙받았다. 공자의 출생은 관련 서적이 유실되어 역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으로 사마천2 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가 있다.
숙량흘과 안씨 여인이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숙량흘은 공자의 아버지로 숙량叔梁이 자, 흘紇이 이름이다. 야합野合은 ‘밖에서 낳았다’는 뜻으로 정식으로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 아닌 오늘날의 사생아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기』 「공자세가」의 기록을 보면 공자는 태어났을 때 보통 아이와 다르게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있어 이름을 구
(언덕)라고 지었다 한다. 공자의 일화 모음집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따르면 숙량흘은 노나라의 무장으로 전장에서 공을 세워 추읍의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노나라 시씨 성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딸만 아홉을 낳았다. 당대에는 아들이 없으면 사람들이 경시했기 때문에 첩을 두었다. 첩이 고대하던 아들을 낳자 기뻐하며 맹피孟皮로 이름을 지었으나 태어날 때부터 다리에 병이 있어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다시 안정재를 맞아들였다. 이때 그의 나이 66세였지만 안정재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다. 춘추시대에 늙은이가 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당나라의 역사학자
사마정은 “오늘날 이를 두고 야합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 많은 숙량흘이 어린 안정재를 취했기 때문으로, 이는 예의에 맞지 않는다”(『사기색은史記索隱』)라고 했다.
당나라의 또 다른 역사학자 장수절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당시 야합에는 길함과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었으나 훗날에 이르러 오늘날 이해하는 간통의 의미로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젊었을 때 천하게 지냈기 때문에 변변찮은 잔재주에 능하게 되었다”(『논어』 「자한子罕」)라고 한 공자의 말을 근거로 그의 어머니가 빈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숙량흘과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훈고학의 시조인 동한 시대 정현은 “공자의 아버지는 추읍의 숙량흘이고 안정재라는
처녀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 안씨는 수치스러워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의 말 때문에 야합이 강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공자의 후손과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옛사람들이 치른 야합은 강간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마천이 공자를 향해 ‘높은 산 바라보며 넓은 길 걸으리라. 비록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마음만은 그곳을 향하도다’라며 존경하는 마음을 표했을 리 없다”
라고 반박했다.
야합을 자유로운 성행위(私通)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당시 사통은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남녀의 자유로운 결합을 말한다. 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오경3 중 하나인 『시경』에는 남녀의 자유로운 결합을 칭송하는 시가 아주 많다. “봄의 두 번째 달에 남녀를 만나게 하는데 이때만큼은 절차를 밟지 않고 자유롭게 성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다. 당시의 풍속과 제도로 볼 때 남녀관계에 상당히 개방적이었고, 야합과 자유로운 성행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따라서 야합을 현재의 의미로 간주하여 공자를 사생아로 보는 관점은 옳지 못하다.
공자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 그의 출생과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가 무성하다. 동한 시대에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서적이 유행하면서 공자를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정현은 『예기』 「단궁정의檀弓正義」의 ‘논어찬고참論語撰考讖’을 인용하여 “숙량흘과 안정재가 니구 산에서 기도하여 흑룡의 정령을 감동시키고 중니를 낳았다”라고 했다.
전한 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이 감응하고 유학과 신학을 결합한 신학 목적론을 제창했다. 그 후 유가의 저작들은 점차 경전화되고 신비로운 색채를 띠어 공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신으로 추앙받았다.
후세인이 공자를 끝없이 신격화했어도 공자 자신은 예언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어』 「술이述而」에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 부지런히 탐구하여 알게 된 것이다”, “공자께서는 괴이함과 폭력, 패란과 귀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선지자적 지위나 신과의 관계를 부정했다. 이 때문에 그를 유교의 교주로 삼으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공자는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본래 그는 서당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평범한 선생이었지만 죽어서는 지덕이 높은 스승, 즉 지성선사至聖先師로 추앙받아 다른 선생들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기원전 2세기에 이르자 유학자들은 공자가 하늘의 명을 받들어 주나라를 이을 왕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공자가 왕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신이 되었고 앞으로 한漢나라가 세워지리라 예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자는 선지자나 신이 아니지만 중국의 성인, 동아시아의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지식인이었으며 노자의 가르침을 배웠고 문화의 교류를 주장했다. 그리고 맹목적인 추종에 반대하고 인애仁愛를 강조했으며, 제자들이 책을 읽고 이치를 깨닫도록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중국에서 출발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로 점차 전파되었다.
공자는 중국의 자산이자 세계의 자산으로 시공을 초월한 사람이다. 그의 사상은 2천여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중국에는 지금까지 순수 유학, 유교와 도교가 융합된 유학,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융합된 유학, 유불선과 기독교가 융합된 유학 등 네 가지 유학이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는 다양하게 융합된 또 다른 유학이 막 형성되어 가고 있다. 공간적으로 보면 그의 사상은 중국의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중국의 유학 외에도 일본의 유학과 일본의 공자가 있고 한국의 유학과 한국의 공자, 싱가포르의 유학과 싱가포르의 공자도 있다. 심지어 프랑스의 유학과 프랑스의 공자도 있다. 모두 문화 교류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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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 한국어판 서문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철학에 더욱더 관심이 생긴다. 세심한 한국 독자라면 본인의 공동 저작 『대륙사상의 뿌리』를 읽었을 수도 있겠다. 1992년 서울에서 출판된 그 책에서 나는 공자를 중국의 10대 사상가 중 하나로 여기고 독자들이 공자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했다.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는 비교문화의 관점에서 공자를 해석한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의 인문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썼다. 공자는 수신양성修身養性을 통해 사회를 종합적으로 다스리고 그로써 조화로운 사회와 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 예수는 종교인으로서 인류에게 궁극의 이상을 보여주었고 구속1으로 인류를 고통에서 구해냈다. 공자와 예수는 주장한 바가 다르고 각각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것을 위해 목적지에 도달했다.
나의 은사 지셴린2은 대유학자였다. 중국의 원자바오(온가보溫家寶) 총리는 그를 ‘보기 드물게 뛰어난 사람’, ‘사람의 본보기’라고 치켜세웠고 인도의 총리 만모한 싱Manmohan Singh은 그를 ‘위대한 학자’로 평했다. 한국의 동양사학자 김준엽은 그를 매우 존경하여 자주 왕래하며 깊이 교류했다. 지셴린은 공자의 사상이 중국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화로운 세계 형성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학사상 중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天人合一)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조화(修身養性)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천인합일과 수신양성은 인문정신과 기독교의 궁극적 이상이 융합한 사상으로 불안정한 오늘날의 세계를 다스리고 일깨울 묘약이라고 주장했다.
공자는 산동 출신인 중국인이지만 세계인이기도 하다. 예수는 나사렛 출신인 동양인이지만 서양인인 동시에 세계인이기도 하다. 공자와 예수의 사상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 일치한다. 인문정신과 궁극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와 예수가 함께 손을 맞잡고 환호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知와 사랑 출판사에서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를 출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 글로 한국판 서문을 대신하고자 한다.
차이더구이(채덕귀蔡德贵)
2011년 8월

 

 

서문

 

공자는 춘추시대 말의 사상가이자 교육가 그리고 유학의 시초를 연 인물이다. 그는 중국인의 성격과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자체로 중국의 문화를 상징한다. 또한 ‘성인’, ‘무관無冠의 소왕素王’으로 추서되었으며 세계 10대 사상가 중 단연 으뜸이다. 그에게서 시작된 유학은 동아시아문화의 전통과 세계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중국과 동양은 물론 세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유학문화가 해외로 전파되고 주변 국가들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인류의 4분의 1을 아우르는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공자는 중화문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주창한 이론 체계와 사상은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 문화 발전을 촉진하고 있으므로 이 시점에 그의 사상을 재확립하는 작업은 의의가 크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가 공자를 대한 태도는 시대마다 달랐는데,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공자를 “진리를 해석해주는 사람”이라고 칭송했고, 볼테르와 더불어 프랑스에서 계몽주의 운동에 앞장선 드니 디드로는 공자를 “이성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천하에 평화를 가져다준 사람”이라고 경탄했다. 18세기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는 『논어』를 가리켜 ‘그리스 7현인’3이 저술한 어떤 작품보다 훌륭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과학자 라이프니츠와 수학자 크리스티안 볼프 역시 공자를 매우 추종했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은 달랐다. 특히 1704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공자의 사상을 ‘사악한 이단’이라면서 ‘상제上帝’나 ‘천天’이란 용어의 사용을 금하고 공자와 조상에 대한 제사와 사자死者의 신위神位를 제상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훈령을 내렸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는 교황의 금지령에 분노하여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가톨릭을 중국에서 전파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18세기 후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도 『논어』는 단지 도덕적 격언집에 불과하다며 공자의 사상을 폄하했다. 헤겔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명망 높은 학자들도 공자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공자를 포함한 중국문화의 현대적 의미마저 부정했다. 오늘날 서구의 학자들이 공자와 유학문화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미국 철학자들 가운데 로버트 네빌과 존 버스롱을 중심으로 한 ‘보스턴 유학파’와 로저 에임즈와 데이비드 홀을 중심으로 한 ‘하와이 유학파’가 등장하여 미국 학계에서 공자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예수도 동양인이다. 그는 서아시아 유대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서양의 주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가톨릭의 네스토리우스파, 즉 경교景敎가 당나라 때 유입되면서 가톨릭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때 실시된 해금정책으로 스페인의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중국 선교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에 개방정책이 시행되었다. 정치가이며 학자인 서광계4 등 청나라 지식인들은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독일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벨기에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등과 자주 교류함으로써 가톨릭을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60여 년 사역한 미국의 선교사 윌리엄 알렉산더 마틴과 독일의 선교사 파베르 에른스트와 파울 크란츠는 공자와 예수에 관한 사상을 널리 알리며 동서양사상의 융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문화와 기독교가 물과 불 같아서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공자
와 예수는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독자 중에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라는 이 책을 보고 동양의 성인인 공자와 서양의 성인인 예수 중에 누가 더 높은지 가리기 위해 쓴 거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누가 더 높은지 가리려고 쓴 것이 아니다. 공자와 예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 교류하고 보완하는 관계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마라”라는 『논어』의 구절은 기독교의 교리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면 서양의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더욱더 발전하려면 세계는 중국의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문화는 다른 문화와 끊임없이 교류할 때에만 발전하고 강해진다. 이러한 때에 중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대표하는 공자와 예수를 비교하는 건 동서양문화 교류를 한층 심화시키는 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의 4대 문명 가운데 중국문화, 인도문화, 히브리에서 이집트・바빌론・이슬람・아랍문화에 이르는 셈족의 문화는 동양문화에 속한다. 반면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한 유럽의 문화는 서양문화에 속한다. 지셴린은 동서양문화는 30년은 동(동양)으로 흐르고 30년은 서(서양)로 흐르는 것으로 보았다. 동서양문화 체제를 구분하는 근본 기준은 사유방식이 다름에 있다. 동양의 사유방식은 종합적인 데 반해 서양은 분석적이다. 예를 들면 서양은 ‘하나를 둘로 나누지만’ 동양은 ‘둘을 하나로 합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의 사유방식은 전체적 개념에서 보편적 연관성을 추구하는 반면 서양의 사유방식은 그 반대로 분석적이라는 것이다.
유학에서 천인합일은 동양의 종합적 사유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지셴린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서 동서양문화가 매우 다른 것으로 보았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동양문화에서 자연은 만물과 일체가 되는 조화로운 대상이다. 한때 동양문화가 인류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자 여러 요인들이 더해져 서양문화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양문화가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한 수백 년 동안 생태환경의 균형이 파괴되어 산성비, 담수 부족,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 바다와 강 등의 오염, 일부 생물의 멸종, 새로운 질병 등이 인류의 미래와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방법은 없는 걸까? 지셴린은 인류를 구하려면 서양의 분석적 사유방식에서 드러나는 부족함을 동양문화의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서양문화를 근절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다. 서양문화가 성취한 분석적 사유방식을
토대로 인류의 문화를 한 단계 더 고양시키자는 것이다.
지셴린이 이러한 관점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카오스이론5의 전제가 있었다. 지셴린은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카오스이론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카오스이론을 종합적 사유방식의 일환으로 보았다. 2001년 인민 대학에서 ‘경제 글로벌화와 중국문화의 지향점’이란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세미나에서 지셴린은 20세기는 분석의 시대이자 미시적 시대이지만 21세기는 미시와 거시가 융합될 것이라면서 “거시와 미시의 융합을 위해 서양문화가 중국문화를 중심으로 동양문화와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문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거시문화는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지셴린은 카오스이론을 참고해 하동하서론6을 만들었다. 지셴린은 미국 버클리 대학의 수학과 교수 로트피 애스커 자데가 1965년에 제기한 불분명한 언어fuzzy language 개념이 퍼지이론7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 중 하나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형태의 변화가 없는 중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불분명한 언어로 보았다. 지셴린은 당나라 말의 시인 온정균의 『상산조행常山早行』에 나오는 시를 예로 들었다.


새벽녘이 되니 닭이 울고 주막에 고요한 새벽 달빛이 비추네. 발자국이 어지
럽게 흩어져 있는 나무다리에는 서리가 내렸네.
雞聲茅店月, 人跡板橋霜


지셴린은 이 시에 깊은 가을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적막함과 쓸쓸함이 잘 묘사되어 있다고 평했다. 이 시는 지어진 지 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시가 전하는 느낌은 그대로 살아 있다. 이 구절은 단지 열 자의 한자로 여섯 가지 사물을 나열하고 있는데, 동사 하나 없이 모두 명사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 문법에서 보면 구절조차 될 수 없다. 서로 무관한 여섯 가지 사물이 별다른 꾸밈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 그것들 간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한시를 읽는 묘미는 바로 이 불분명함에 있다. 시인은 여섯 가지 사물의 순서와 위치를 자의로 정하지 않은 대신 독자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여지를 남겼다. 독자가 저마다 자신의 체험이나 이해를 좇아 자유자재로 사물의 순서와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순서와 위치도 다를 것이다. 이처럼 독자가 자유자재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여지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쓰인 문학작품이 지닌 장점이다.
지셴린은 카오스이론을 기초로 동서양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서양문화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서양의 지식인들도 이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서구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지셴린은 민족정신을 진작시키고 자존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21세기는 동양문화의 시대이고 중국의 문화가 중심이 되는 시대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서양문화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지셴린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문화 교류는 인류 사회의 발전을 추진하는 주요 원동력 중 하나이며 문화 교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화 교류의 범위는 광범위하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교류에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은 선진先秦시대부터 안으로는 민족끼리, 밖으로는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대내외적으로 교류했다. 세계는 중국, 인도, 이슬람·아랍으로 구성된 동양문화와 그리스·로마, 유럽, 아메리카로 구성된 서양문화가 끊임없이 교류하여 찬란하고 다양하며 제각각 개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상호 연계된 문화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인류에게 커다란 행복과 번영을 안겨주었다. 문화 교류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국문화는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절정을 이뤄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우수한 문화를 주저하지 않고 동서양의 다른 나라들에 전파했다.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문화 교류를 더욱더 증진시켜야 한다.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요구된다. 이러한 배경이 『공자 왈V S 예수 가라사대』를 저술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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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건강의 미래

 

매일매일 더 많은 사람들이 일체감과 행복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앞으로는 전체론적인 의학이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리라 예상되는데, 이는 일체감을 중시하고 신성한 연결고리를 튼튼히 하며 단절과 불균형을 배제하는 양생 방식이다. 에너지 의학은 주류 의학에서 점점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이미 많은 민간 보험에서 침술을 적용 범위에 포함했으며, 이는 올바른 길을 향한 작지만 중요한 발걸음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의 균형을 위해 에너지 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일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인간이 일체감의 영감을 받아 건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면서, 에너지 치료는 점차 일반화할 것이다. 에너지 치료사는 당신의 에너지를 느낌으로써 무슨 문제가 있는지 ‘감지’하고 파악한다. 에너지 치료사는 손바닥의 기운이나 싱잉 볼singing bowl(주로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 명상이나 치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그릇)을 가지고 환자의 에너지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치료사 중 한 사람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사는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전체론적 접근 방식을 통해 에너지 치료사는 종종 환자의 감정적, 육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삶의 방향을 짚어낸다. 또한 사춘기나 갱년기 여성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있으며, 분노와 고통을 참고 사는 이들이 어떤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지도 잘 안다. 예를 들어 한 치료사는 내 남편이 폐암에 걸린 이유가 오래전 끔찍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버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버질은 어머니가 운전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이성적인 죄책감이 그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버질은 곧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텐데’라는 마음속 자책은 불균형과 더불어 육신의 약화를 불러왔다.

에너지 치료사가 당신의 에너지를 파악할 때는 보통 불균형한 부분을 찾는다. 치료사는 에너지의 구조(척추에서 이어지는 차크라의 움직임)를 보거나 느낌으로써 어느 부분의 에너지가 흐릿한지, 어느 부분의 에너지가 너무 빠르게 흐르는지, 어디가 건강하지 않은지 파악한다. 이를 통해 치료사는 문제가 생기기 몇 달 전에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심장병이나 발작, 혈압이나 다른 심각한 질병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에너지 치료사가 치료하는 차크라의 각 부분은 소화기관이나 순환기 같은 특정 부위의 기능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육체적 자아는 당신을 에워싸는 정신적 자아와 합치된다. 차크라는 또한 특정한 마음가짐이나 감정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몸속 액체의 자유로운 흐름이 중요하듯 감정도 자유롭게 오가야 하고, 차크라도 방해받지 않고 통해야 하며, 에너지의 영역에 흐르는 핵심적 에너지인 기의 흐름도 자유로워야 한다. 미래에 이용될 에너지 의학에는 복잡한 레이저 시술법도 망라되어 있는데, 이는 벌써 눈이나 치아 혹은 피부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 새 치료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이다. 몸에 칼을 대거나 화학성분의 약물로 우리 몸을 괴롭히는 대신, 빛을 이용한 덜 공격적인 방법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레이저 시술은 유해한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고 보통 크기로 줄이는 시술로서, 암 같은 질병의 치료에도 사용된다.

또한 몸이 지닌 본원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백신이 더 많이 출시될 것이다. 간암으로 진행되기 쉬운 B형간염 바이러스나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처럼 암 발생률을 증가시키는 바이러스나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이 이에 속한다. 건강의 핵심은 신과의 정신적 연결고리이며 건강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전체론적 치료법이 더 광범위하게 전파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식습관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더 나은 식습관이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아직 많은 이들이 일체감에 대한 배려 없이 음식을 구입하고 섭취한다. 다시 말해 식재료 생산 방식과 유통 방식이 우리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영양 성분과 올바른 식습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이나 자주 가는 식료품 가게가 우리의 건강, 나아가 지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배울 것이다.

또한 질병 치료에 기반을 둔 건강법에서 전체론적인 치료법과 예방법을 일체화한 웰빙 기반의 건강법으로 일대 전환을 이룩하면, 우리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인류가 이 같은 접근 방식의 가치를 모든 측면(모든 사람의 육체, 정신, 영혼의 웰빙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당신 자신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우리는 그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의 정신을 살찌우고,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그리고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 방위적인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치유 방식은 전체론적인 존재의 본성상 다른 모든 부분도 같이 향상시킨다. 그러므로 주의와 관심을 골고루 기울이며 노력하다 보면, 더 많은 평화와 힘 그리고 원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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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효의 여섯 단계

선행을 말할 때 ‘백 가지 선 중 효가 으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효라고 하면 보통 유가를 떠올리지만 도가에서도 효를 말했다. 유가에서는 효를 두 단계로 나누는데, 장자는 여기에 네 단계를 더했다. 다음은 효의 여섯 단계를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1 공경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님께 안부를 여쭌다.

2 사랑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효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늘 환한 얼굴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부모님 앞에서는 늘 밝은 표정을 해야 한다. 특히 부모님이 연로하여 자식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더욱 환한 얼굴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다. 유가에서는 여기까지만 거론했다. 그러나 장자는 이외에도 다음의 네 단계를 더했다.

3 망친忘親: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라
효는 부모가 부모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즉 자녀가 부모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 무슨 말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이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식이 중고생이 되면 부모에게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장자는 효의 세 번째 단계를 부모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4 사친망아使親忘我: 부모는 자신이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라
부모는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다가도 자식이 와서 물으면 “애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건 어른들 문제야”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부모는 자식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을 친구처럼 생각한다면 자식에게 못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정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활기가 넘치지 않겠는가? 물속에 있는 물고기는 상대가 어떤 종류의 물고기인지 서로 따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서로의 존재를 망각하고 구속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효의 네 번째 단계다.

5 겸망천하兼忘天下: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라
고대의 스물네 가지 효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래자老萊子라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살았다. 노래자가 일흔이 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아흔이 넘었다. 그는 그 나이에도 어떻게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집에 돌아오면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었고 넘어지면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영원히 아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를 행할 때는 세상 사람들을 다 잊으라.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에 상관하지 마라. 이를 더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부자父子가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성으로 팔러 갔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안 타고 가면 나귀가 무슨 소용이오?”
그래서 아들을 태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비는 걸어가고 아들놈은 나귀를 타고 가다니 안 될 말이지.”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함께 나귀를 타고 갔다. 그러자 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두 명이 나귀 한 마리에 같이 타고 가다니 이건 분명 나귀 학대요.”
도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결국 부자는 나귀를 이고서 성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이야기 속 부자는 결국 자기들 사이의 문제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해야만 했을까? 부모와 자식이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말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6 사천하겸망아使天下兼忘我: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라
효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물론 효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각이다. 그러나 망각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다 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도가에서 말하는 망각은 자신의 신분이나 역할을 잊으라는 뜻이다. 그런 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도를 최후의 근원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면 더 깊은 교류와 화합이 가능할 것이다.

장자가 말했다.

“상유이말相濡以沫, 불여상망어강호不如相忘于江湖”

어려움 속에서 미약한 힘으로 서로 돕는 것보다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잊는 것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화합을 위한 것이다. 장자는 선악, 시비, 물아를 엄격히 분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들을 평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만물이 평등하다고 보는 장자의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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