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효의 여섯 단계

선행을 말할 때 ‘백 가지 선 중 효가 으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효라고 하면 보통 유가를 떠올리지만 도가에서도 효를 말했다. 유가에서는 효를 두 단계로 나누는데, 장자는 여기에 네 단계를 더했다. 다음은 효의 여섯 단계를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1 공경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님께 안부를 여쭌다.

2 사랑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효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늘 환한 얼굴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부모님 앞에서는 늘 밝은 표정을 해야 한다. 특히 부모님이 연로하여 자식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더욱 환한 얼굴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다. 유가에서는 여기까지만 거론했다. 그러나 장자는 이외에도 다음의 네 단계를 더했다.

3 망친忘親: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라
효는 부모가 부모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즉 자녀가 부모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 무슨 말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이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식이 중고생이 되면 부모에게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장자는 효의 세 번째 단계를 부모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4 사친망아使親忘我: 부모는 자신이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라
부모는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다가도 자식이 와서 물으면 “애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건 어른들 문제야”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부모는 자식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을 친구처럼 생각한다면 자식에게 못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정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활기가 넘치지 않겠는가? 물속에 있는 물고기는 상대가 어떤 종류의 물고기인지 서로 따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서로의 존재를 망각하고 구속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효의 네 번째 단계다.

5 겸망천하兼忘天下: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라
고대의 스물네 가지 효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래자老萊子라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살았다. 노래자가 일흔이 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아흔이 넘었다. 그는 그 나이에도 어떻게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집에 돌아오면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었고 넘어지면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영원히 아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를 행할 때는 세상 사람들을 다 잊으라. 사람들의 손가락질 따위에 상관하지 마라. 이를 더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부자父子가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성으로 팔러 갔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안 타고 가면 나귀가 무슨 소용이오?”
그래서 아들을 태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비는 걸어가고 아들놈은 나귀를 타고 가다니 안 될 말이지.”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함께 나귀를 타고 갔다. 그러자 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두 명이 나귀 한 마리에 같이 타고 가다니 이건 분명 나귀 학대요.”
도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결국 부자는 나귀를 이고서 성으로 들어갔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이야기 속 부자는 결국 자기들 사이의 문제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반응해야만 했을까? 부모와 자식이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처럼 세상 사람들의 말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6 사천하겸망아使天下兼忘我: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라
효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물론 효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각이다. 그러나 망각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다 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도가에서 말하는 망각은 자신의 신분이나 역할을 잊으라는 뜻이다. 그런 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도를 최후의 근원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면 더 깊은 교류와 화합이 가능할 것이다.

장자가 말했다.

“상유이말相濡以沫, 불여상망어강호不如相忘于江湖”

어려움 속에서 미약한 힘으로 서로 돕는 것보다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잊는 것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화합을 위한 것이다. 장자는 선악, 시비, 물아를 엄격히 분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들을 평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만물이 평등하다고 보는 장자의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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