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 한국어판 서문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철학에 더욱더 관심이 생긴다. 세심한 한국 독자라면 본인의 공동 저작 『대륙사상의 뿌리』를 읽었을 수도 있겠다. 1992년 서울에서 출판된 그 책에서 나는 공자를 중국의 10대 사상가 중 하나로 여기고 독자들이 공자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했다.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는 비교문화의 관점에서 공자를 해석한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의 인문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썼다. 공자는 수신양성修身養性을 통해 사회를 종합적으로 다스리고 그로써 조화로운 사회와 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 예수는 종교인으로서 인류에게 궁극의 이상을 보여주었고 구속1으로 인류를 고통에서 구해냈다. 공자와 예수는 주장한 바가 다르고 각각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것을 위해 목적지에 도달했다.
나의 은사 지셴린2은 대유학자였다. 중국의 원자바오(온가보溫家寶) 총리는 그를 ‘보기 드물게 뛰어난 사람’, ‘사람의 본보기’라고 치켜세웠고 인도의 총리 만모한 싱Manmohan Singh은 그를 ‘위대한 학자’로 평했다. 한국의 동양사학자 김준엽은 그를 매우 존경하여 자주 왕래하며 깊이 교류했다. 지셴린은 공자의 사상이 중국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화로운 세계 형성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학사상 중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天人合一)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조화(修身養性)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천인합일과 수신양성은 인문정신과 기독교의 궁극적 이상이 융합한 사상으로 불안정한 오늘날의 세계를 다스리고 일깨울 묘약이라고 주장했다.
공자는 산동 출신인 중국인이지만 세계인이기도 하다. 예수는 나사렛 출신인 동양인이지만 서양인인 동시에 세계인이기도 하다. 공자와 예수의 사상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 일치한다. 인문정신과 궁극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와 예수가 함께 손을 맞잡고 환호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知와 사랑 출판사에서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를 출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 글로 한국판 서문을 대신하고자 한다.
차이더구이(채덕귀蔡德贵)
2011년 8월

 

 

서문

 

공자는 춘추시대 말의 사상가이자 교육가 그리고 유학의 시초를 연 인물이다. 그는 중국인의 성격과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자체로 중국의 문화를 상징한다. 또한 ‘성인’, ‘무관無冠의 소왕素王’으로 추서되었으며 세계 10대 사상가 중 단연 으뜸이다. 그에게서 시작된 유학은 동아시아문화의 전통과 세계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중국과 동양은 물론 세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유학문화가 해외로 전파되고 주변 국가들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인류의 4분의 1을 아우르는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그야말로 공자는 중화문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주창한 이론 체계와 사상은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 문화 발전을 촉진하고 있으므로 이 시점에 그의 사상을 재확립하는 작업은 의의가 크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가 공자를 대한 태도는 시대마다 달랐는데,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공자를 “진리를 해석해주는 사람”이라고 칭송했고, 볼테르와 더불어 프랑스에서 계몽주의 운동에 앞장선 드니 디드로는 공자를 “이성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천하에 평화를 가져다준 사람”이라고 경탄했다. 18세기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는 『논어』를 가리켜 ‘그리스 7현인’3이 저술한 어떤 작품보다 훌륭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과학자 라이프니츠와 수학자 크리스티안 볼프 역시 공자를 매우 추종했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은 달랐다. 특히 1704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공자의 사상을 ‘사악한 이단’이라면서 ‘상제上帝’나 ‘천天’이란 용어의 사용을 금하고 공자와 조상에 대한 제사와 사자死者의 신위神位를 제상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훈령을 내렸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는 교황의 금지령에 분노하여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가톨릭을 중국에서 전파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18세기 후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도 『논어』는 단지 도덕적 격언집에 불과하다며 공자의 사상을 폄하했다. 헤겔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명망 높은 학자들도 공자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공자를 포함한 중국문화의 현대적 의미마저 부정했다. 오늘날 서구의 학자들이 공자와 유학문화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미국 철학자들 가운데 로버트 네빌과 존 버스롱을 중심으로 한 ‘보스턴 유학파’와 로저 에임즈와 데이비드 홀을 중심으로 한 ‘하와이 유학파’가 등장하여 미국 학계에서 공자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예수도 동양인이다. 그는 서아시아 유대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서양의 주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가톨릭의 네스토리우스파, 즉 경교景敎가 당나라 때 유입되면서 가톨릭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때 실시된 해금정책으로 스페인의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중국 선교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에 개방정책이 시행되었다. 정치가이며 학자인 서광계4 등 청나라 지식인들은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독일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벨기에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등과 자주 교류함으로써 가톨릭을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60여 년 사역한 미국의 선교사 윌리엄 알렉산더 마틴과 독일의 선교사 파베르 에른스트와 파울 크란츠는 공자와 예수에 관한 사상을 널리 알리며 동서양사상의 융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문화와 기독교가 물과 불 같아서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공자
와 예수는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독자 중에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라는 이 책을 보고 동양의 성인인 공자와 서양의 성인인 예수 중에 누가 더 높은지 가리기 위해 쓴 거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누가 더 높은지 가리려고 쓴 것이 아니다. 공자와 예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호 교류하고 보완하는 관계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마라”라는 『논어』의 구절은 기독교의 교리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면 서양의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더욱더 발전하려면 세계는 중국의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문화는 다른 문화와 끊임없이 교류할 때에만 발전하고 강해진다. 이러한 때에 중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대표하는 공자와 예수를 비교하는 건 동서양문화 교류를 한층 심화시키는 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의 4대 문명 가운데 중국문화, 인도문화, 히브리에서 이집트・바빌론・이슬람・아랍문화에 이르는 셈족의 문화는 동양문화에 속한다. 반면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한 유럽의 문화는 서양문화에 속한다. 지셴린은 동서양문화는 30년은 동(동양)으로 흐르고 30년은 서(서양)로 흐르는 것으로 보았다. 동서양문화 체제를 구분하는 근본 기준은 사유방식이 다름에 있다. 동양의 사유방식은 종합적인 데 반해 서양은 분석적이다. 예를 들면 서양은 ‘하나를 둘로 나누지만’ 동양은 ‘둘을 하나로 합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의 사유방식은 전체적 개념에서 보편적 연관성을 추구하는 반면 서양의 사유방식은 그 반대로 분석적이라는 것이다.
유학에서 천인합일은 동양의 종합적 사유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지셴린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서 동서양문화가 매우 다른 것으로 보았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동양문화에서 자연은 만물과 일체가 되는 조화로운 대상이다. 한때 동양문화가 인류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자 여러 요인들이 더해져 서양문화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양문화가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한 수백 년 동안 생태환경의 균형이 파괴되어 산성비, 담수 부족,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 바다와 강 등의 오염, 일부 생물의 멸종, 새로운 질병 등이 인류의 미래와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방법은 없는 걸까? 지셴린은 인류를 구하려면 서양의 분석적 사유방식에서 드러나는 부족함을 동양문화의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서양문화를 근절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다. 서양문화가 성취한 분석적 사유방식을
토대로 인류의 문화를 한 단계 더 고양시키자는 것이다.
지셴린이 이러한 관점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카오스이론5의 전제가 있었다. 지셴린은 서구 사회에서 비롯된 카오스이론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카오스이론을 종합적 사유방식의 일환으로 보았다. 2001년 인민 대학에서 ‘경제 글로벌화와 중국문화의 지향점’이란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세미나에서 지셴린은 20세기는 분석의 시대이자 미시적 시대이지만 21세기는 미시와 거시가 융합될 것이라면서 “거시와 미시의 융합을 위해 서양문화가 중국문화를 중심으로 동양문화와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문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거시문화는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지셴린은 카오스이론을 참고해 하동하서론6을 만들었다. 지셴린은 미국 버클리 대학의 수학과 교수 로트피 애스커 자데가 1965년에 제기한 불분명한 언어fuzzy language 개념이 퍼지이론7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 중 하나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형태의 변화가 없는 중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불분명한 언어로 보았다. 지셴린은 당나라 말의 시인 온정균의 『상산조행常山早行』에 나오는 시를 예로 들었다.


새벽녘이 되니 닭이 울고 주막에 고요한 새벽 달빛이 비추네. 발자국이 어지
럽게 흩어져 있는 나무다리에는 서리가 내렸네.
雞聲茅店月, 人跡板橋霜


지셴린은 이 시에 깊은 가을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적막함과 쓸쓸함이 잘 묘사되어 있다고 평했다. 이 시는 지어진 지 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시가 전하는 느낌은 그대로 살아 있다. 이 구절은 단지 열 자의 한자로 여섯 가지 사물을 나열하고 있는데, 동사 하나 없이 모두 명사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 문법에서 보면 구절조차 될 수 없다. 서로 무관한 여섯 가지 사물이 별다른 꾸밈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 그것들 간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한시를 읽는 묘미는 바로 이 불분명함에 있다. 시인은 여섯 가지 사물의 순서와 위치를 자의로 정하지 않은 대신 독자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여지를 남겼다. 독자가 저마다 자신의 체험이나 이해를 좇아 자유자재로 사물의 순서와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순서와 위치도 다를 것이다. 이처럼 독자가 자유자재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여지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 종합적 사유방식으로 쓰인 문학작품이 지닌 장점이다.
지셴린은 카오스이론을 기초로 동서양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서양문화가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서양의 지식인들도 이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서구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지셴린은 민족정신을 진작시키고 자존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21세기는 동양문화의 시대이고 중국의 문화가 중심이 되는 시대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서양문화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지셴린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문화 교류는 인류 사회의 발전을 추진하는 주요 원동력 중 하나이며 문화 교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문화 교류의 범위는 광범위하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교류에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모두 포함된다.

 

중국은 선진先秦시대부터 안으로는 민족끼리, 밖으로는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대내외적으로 교류했다. 세계는 중국, 인도, 이슬람·아랍으로 구성된 동양문화와 그리스·로마, 유럽, 아메리카로 구성된 서양문화가 끊임없이 교류하여 찬란하고 다양하며 제각각 개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상호 연계된 문화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인류에게 커다란 행복과 번영을 안겨주었다. 문화 교류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국문화는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절정을 이뤄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우수한 문화를 주저하지 않고 동서양의 다른 나라들에 전파했다.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문화 교류를 더욱더 증진시켜야 한다.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요구된다. 이러한 배경이 『공자 왈V S 예수 가라사대』를 저술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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