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참을성 있게 대하기

 

인간이라는 동물이 보여주는 온갖 종류의 단점을 관찰하기는 쉽다. 추악한 행동과 잔인함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진화하고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믿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상대를 한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하고 친절하게 상대를 대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방식과 속도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충고나 통찰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즉시 감사와 이해로 화답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바람일 뿐이다. 감정적, 정신적 변화는 즉시 일어나지는 않는다. 선업은 적당한 시기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 몇 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솔직함과 사랑을 담아 다른 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좋지만, 당신이 한 말을 듣고 즉시 반응을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좋지 않다. 변화할 운명이라면 그렇게 되겠지만, 우선 상대방이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언젠가 좋은 친구이기도 했던 이를 상담해준 적이 있다. 상담하던 도중 몇 년간 사귀었던 그녀의 남자 친구가 변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진실을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 느꼈다. 말하기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무척 화를 내며 나와 거의 3년 동안 연락을 끊었다. 내가 자신과 남자 친구의 관계를 망치기 위해 거짓말했다고 하며, 그 말을 자신에게 한 것도 완전히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결국 내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충격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친구는 평정을 되찾았다. 어
느 날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예전에 자신에게 해준 말이 선의였음을 알게 되었다며 용서를 구했다. 물론 나는 친구를 용서했고 앞으로도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경험을 겪고 나서 우리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더 깊이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솔직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멀리하는 친구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행동이 당신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실제로 해가 될지라도 인내와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다짜고짜 지적하며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업을 치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폐쇄적이 되어, 스스로를 방어하고 부정하는 자아의 반응 뒤로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고통과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자신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보라. 선업이나 악업을 택한 결과로 당신의 삶이 얼마나 진화했는지 혹은 퇴보했는지 당신은 잘 모를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아의 성급함에 영향받지 않기를 바란다. 자존심 때문에 쓰디쓴 말다툼에 휘말렸다면, 자신을 용서하고 다음번에는 더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라. 변화에 대한 관용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삶에 꽃이 피리라는 사실을 당신의 정신은 잘 알고 있다.
피곤하거나 지쳤을 때, 애정 어린 행동을 하기 어려울 때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해보라. 영적 존재와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나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해달라고, 신성한 연결고리의 힘을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기도하고 명상하는 동안 아마 좌절로 가득 찬 당신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때때로 험난한 관계의 바다를 잘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자아는 차분해질 것이고 신적 존재가 자신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 쉽게 웃고, 집착하지 않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신성한 연결고리에 묶여 있으며 그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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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을 피해서 생기는 문제

 

상당수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특정 내면 상태를 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서 생긴다.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의식을 왜곡할 수 있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만 마음이 편하고, 집 밖에서는 때로 공포를 느낄 정도로 불안하다면 어떻게 할까? 먼저 비행기를 탈 때마다 굉장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공항 보안대를 지날 때나 짐을 찾아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할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않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직장에 다니고 간단한 볼일을 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점점 더 집에서만 지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직장에서도, 또 볼일을 볼 때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불안하게 될까봐 불안하게 된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집 밖에 아예 나가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는 광장공포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이미 완전히 진행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불안을 피했기 때문에 삶은 이제 뿌리까지 흔들릴 정도로 철저히 제한된 것이다.
생각을 피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는 제쳐놓고서라도 광장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그 공포를 피하려고 함으로써 덜 불안해진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불안을 피하기 전보다 더 겁먹는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거나 직장에 출근할 때 불안을 느낀다. 애초에 불안이 전혀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불안은 괜찮다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삶은 열려 있는 셈이다.
생각과 감정을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날아가는 돼지들’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날아가는 돼지들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그 돼지들에 관해 생각해도 괜찮다는 태도다. 그래도 괜찮다고 결정하면 결국에는 그 돼지들에 관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그것을 하나의 문제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협상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반드시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편한 감정을 의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척 자신을 속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 그런 시늉만 한다면 그것은 비밀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억누르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고객들은 종종 이런 숨은 의도를 무심코 드러낸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자신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들을 마음을 챙겨 의식하는 수행을 한 뒤 “효과가 없었어요” 하고 말한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물으면 비밀협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말하는 ‘효과’란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이들이 여전히 불쾌한 생각을 회피하고 억압하여 상황을 교묘하게 처리하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때때로 집을 나서면서 차고 문을 닫았는지 또는 커피포트를 껐는지 걱정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피하려고 하면 마음속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심하면 원치 않는 생각과 싸움을 벌이는 강박신경증에 걸릴 수도 있다. 우울증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우울한 생각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슬픈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마다 그들은 걱정한다. 다시 우울증에 빠질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독히도 괴로운 경험이었으므로 다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슬픈 생각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슬픔이 더 커진다. 우울증을 피하려고 하는 바로 그 노력이 실제로는 우울증을 키우는 주범인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려고 할 때에만 불쾌한 생각과 감정의 수준이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룬다. 비밀협상을 벌여 특정한 감정을 피하면 긴장과 번뇌를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차차 배우게 될 것이다. 이제는 불쾌한 감정에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내면 상태를 다루는 일은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소매를 당기면서 “나 이거 할 수 있어! 와서 내가 하는 걸 봐봐!” 하고 말하는 어린아이를 다루는 일과도 같다. 나중에 보겠다고 미루면 어린아이는 더 세게 잡아당기고 더 크게 소리지르고 심지어 울먹이면서 더 간절하게 봐달라고 조른다. 아이를 피하면 피할수록 아이는 더 집요해진다. 손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재미난 책을 읽고 있다 하더라도, 잠시 멈춰서 아이를 인정해주거나 아이가 보여주려던 것을 보아야만 다시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고 알아주고 느껴주기를 원한다. 우리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다.
마음은 열려서 자유롭게 흘러가길 바라며, 늘 변화하고 무상한 경험의 세계와 조화를 이뤄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세계를 원한다. 늘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계는 불안해서 피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피하기만 하면서 늘 변화하고 무상한 경험의 본질에 저항하면 우리는 장애물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이 장애물은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혈관에 장애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일어날 수 있다. 마음속의 장애물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중요한 건 항상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에 근거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 앞에서 무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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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쓸모 있어야 할 때와 쓸모 없어야 할 때

 

 

『장자』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가지 더 살펴보자. 남영주南榮趎라는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스승 경상초庚桑楚를 뵈러 갔다. 스승이 말했다.
“이렇게 고령에도 배움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뜻은 가상하나, 내게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구나. 소개장을 한 장 써줄 테니 노자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배움을 청해라.”
남영주는 멜대에 필요한 물건을 메고서 7일 밤낮을 걸어가 노자에게 배움을 청했다. 그는 노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 번째 질문은 총명함에 관한 것이었다. 너무 총명하면 뭐든지 계산적으로 따지게 되므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총명하지 않다면 남들이 멍청하다 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두 번째 질문은 사랑하는 마음에 관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남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삶은 많이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세 번째 질문은 의로움에 관한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발견했을 때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몸은 고단해진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사람은 때로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한다. 총명하고 의리도
있는 쓸모 있는 인간과 총명하지 못하고 의리마저 없는 쓸모 없는 인간,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제대로 처신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장자』에서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여러 차례 다룬다. 어떤 때는 쓸모 있는 쪽이 괜찮지만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 쓸모 없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무시한 채 그저 사회에 보탬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장자』에서는 이런 이의 삶을 뭐라고 했을까? 남의 요구에만 신경 쓰고 정작 자신의 바람은 무시한다면 결국 당신의 삶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장자의 사상과 서양의 실존주의를 비교하기도 한다. 실존주의에서는 개인의 존재는 반드시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존재는 자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선택했다는 의미로, 우선 자신이 되기로 결심해야만 앞으로 그 본질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대학을 나와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이 선택 자체가 존재다. 동시에 존재는 선택의 가능성이다. 정말 엔지니어가 된다면 엔지니어의 본질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즉 본질보다 존재가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입시에 응시하는 많은 수험생들이 대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의견을 따른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좇는 목표는 사회 공통의 목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그 목표가 적합한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사람마다 기호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점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에 대해 알아보았다. 때때로 어느 한 사람이 한 일에 대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쓸모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많은 예술가들의 삶에서 젊은 시절 고생하다가 늙어서는 작품을 인정받아 서서히 상품화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최근에 우연히 자식들이 예술을 하는 친구 몇 명을 만났다. 그들
은 예술이 돈으로 그 가치를 바꿀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품은 분명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유명한 예술가 중 반 고흐가 있다. 그는 생전에 단 한 번도 이런 문제로 고민할 기회도 없이 평생 자신의 작품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 그리고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은 분명 불행했다. 그렇다면 그는 화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될까? 오늘날 그의 작품이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
반 고흐는 당시 쓸모 있음과 없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그는 그다지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생전에 동생이 남에게 부탁해서 겨우 작품 한 점을 팔았을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반 고흐는 세상을 떠나고 2,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가 반 고흐가 생전에 살던 집에 찾아 갔다. 마침 그가 살았던 당시에 어린 소녀였던 여성이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옆집에 살고 있었다. 기자가 물었다.
“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화가 한 분을 기억하세요?”
그러자 여성이 대답했다.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보통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지요. 날씨가 맑건 흐리건 아침 일찍부터 화구를 메고 밖으로 그림을 그리러 갔어요.”
반 고흐를 기억한다는 사실에 신이 난 기자가 이번에는 그 여성에게 그를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 여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정신병자 같았어요.”
이것이 반 고흐가 다른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이다. 그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지금은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 그것이 소묘일지라도 가격이 적게는 수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 그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물론 지금 그의 가치를 돈으로 따질 수는 없다. 그가 인정받는 이유는 그의 그림에 생명에 대한 갈망이 있고 많은 이들이 심미적인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예술의 가치다. 현실적인 이익이나 조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실 유용성과 무용성을 단일한 기준으로 나눈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장자가 평생을 가난하게 산 것도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의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혼란한 시기에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의 재난을 피하느니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람들은 유가의 가르침으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가를 통해 참됨을 익히고 어떤 이해관계에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가를 통해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도가 어디에도 다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도가 학설은 역사상 각 시기에 각기 다른 영향을 주며 발전해 왔다. 서한西漢 초년, 한漢 문제文帝, 한 경제景帝 때에는 도가사상이 치국사상의 근본이었다. 이때는 이른바 ‘문경지치文景之治’의 시기로 진秦나라의 혹정에 지친 백성을 달래고 안정을 도모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후 한 무제가 모든 학문을 배척하고 오직 유가만 존중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도가는 비주류 사상으로 밀려났다. 비록 정부에게는 외면당했지만 도가는 중국 고대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과거 노장사상의 이해와 관련해 큰 이견이 나타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노장사상을 접했던 것일까? 노장사상에 대한 오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신新도가 시대라고 불리는 위진魏晉 시기에는 노장사상을 상당 부분 오해하고 있었다. 당시 『노자』, 『장자』, 『역경』은 소위 말하는 삼현三玄으로 학문하는 선비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다. 또한 일상의 평범한 대화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를 논했다. 그들은 노장사상을 매우 현묘한 사상으로 여겼고 현실 세상과는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시대 전반에 걸쳐 이러한 그릇된 인식이 팽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때가 유명한 학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장사상에서 정신적인 해탈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정신적인 해탈은 장자가 주장한 궁극의 목표는 아니었다. 장자는 인간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닌 사고방식을 바꿔서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보았다.

 


노자와 장자가 주장한 유용과 무용에 관한 사상의 핵심은 우리에게 현실을 도피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환하여 한 단계 위로 올라설 수 있는 방법을 배워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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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논어』의 인문학적 가치

 

『논어』의 중심 사상은 사람됨의 도리다. 또한 보편적 의의를 지닌 가치준칙을 포함하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덕과 형정刑政은 각각 그 역할이 다르다. 형정 수단에만 의존하면 백성이 처벌을 두려워하여 나쁜 일을 감히 하지 못하지만 수치심을 알지 못한다. 덕치를 실행할 때에만 백성이 수치심을 느끼고 나쁜 일을 스스로 하지 않게 된다.
둘째, 남을 바른 길로 이끌려면 자신을 먼저 바르게 해야 하고 우선 먹고살 수 있게 해준 후에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신임을 얻을 수 있다. 남을 사랑하고 자신의 뜻을 지키는 독립된 인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개인의 인격, 사회적 책임, 사회적 의무를 통일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우선에 둔다.
셋째, 효, 우애, 충성, 신의, 공손, 관용, 민첩, 지혜, 지식, 인애, 용기, 정직 등의 도덕을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공자에게 다음을 배워야 한다.
첫째, “사람의 본질은 정직함이니” 공명정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 “어질지 못한 자가 예의를 갖춘들 무엇하며, 어질지 못한 자가 음악을 챙긴들 무엇하겠는가?”,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구하는 방법이니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덕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고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 은혜로움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나는 날마다 자신을 세 번 돌이켜 본다. 남을 도모함에 정성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귐에 신실했는가? 오늘 배운 것을 익혔는가?” 즉 자신을 부단히 수양해야 한다.
넷째,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여 인에 의지하고 예로 유유자적한다.” 즉 전인적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여 인으로 예禮(예용), 악樂(음악), 사射(궁술), 어御(마술), 서書(서도), 수數(수학) 등 여섯 가지 예를 연마할 때 사람됨을 이룰 수 있다. “흥은 시詩에서 시작되어 예로 제자리를 잡아가고 음악으로 완성된다”라는 말처럼 시로 마음을 일깨우고 예절로 지조를 지키며 음악으로 감성을 길러야 한다.
공자는 때를 알고 행한 사람이며 성인의 집대성자라 할 수 있지만 사상은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심오하다. 그의 사상과 인문학 정신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또한 중국의 인문학이 쇠퇴하지 않고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자와 후대 성현들이 낳은 사상 덕택이다.
『논어』는 공자의 사상을 여러 영역에 반영한다. 때문에 『논어』를 배울 때는 반드시 책 속에 있는 사상을 체계화, 과학화해서 책에서 말하는 정신을 잘 이해한 후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논어』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유용한가에 대해 연구하려면 현대화를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공자는 높이 그리고 멀리 본 분이었으므로 배울 점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공자를 연구할 때는 사상의 훌륭한 점을 받아들이는 데 중점을 두고, 단순하게 전부를 긍정하거나 전부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페이샤오퉁(비효통費孝通)은 1992년 북경 대학 사회학과 10주년기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자가 말하는 인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를 제시한다. 현재는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치열한 전국시대로 진입하고 있어서 공자보다 더 활짝 열린 새로운 공자가 요구된다. 새로운 공자는 민족을 이해하고 다른 민족과 그 민족의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 단계 성숙한 마음으로 민족과 민족, 종교와 종교,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문화, 역사, 생각이 다르지만 함께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므로 더불어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자기 집 앞의 눈만 치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중국 전통 문화인 시, 서, 예, 악에서 인문학의 전통이 강화되고 두드러진 데에 공자의 힘이 컸다. 공자는 인을 중심으로 하는 주체의 도덕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는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는 중국인의 인문학 정신을 고양시켜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므로 『논어』의 인문학적 가치를 하루라도 빨리 재인식해야 한다. 『논어』는 미래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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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솔직해지기

 

솔직해짐으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경계를 긋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을 모욕적으로 대한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그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 사람에게 변화할 능력이 없다면 혹은 당신을 배려하고 존중할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고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를 위해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 몇 년 동안 말도 나누지 않던 가족이나 한때 가까웠다가 멀어진 친구가 다시 관계를 잇기 위해 당신에게 연락해온다면, 자신의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하라. 그 사람이 변화했다고 믿을 만큼 열린 자세가 되었는가? 아니면 먼저 당신의 상처부터 아물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아무리 사과하는 자세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생각만큼 새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힘든 상황이 오면 옛 버릇이 다시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람이 당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을 조짐이 보이면 다시 관계를 숙고해보는 편이 좋다. 만약 당신이 자신과 그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면, 단호하게 경계를 정하고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지 않는 편이 오히려 사려 깊은 행동일 수 있다. 당신에게는 자신의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며, 또다시 상처받는 것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당신과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와 무관하게, 일단 당신이 죽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하게 되면 고통과 분노와 적대감은 당신에게서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다음 생에서 풀어야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업이 쌓였든 간에,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협하거나 다른 사람이 당신을 모욕적으로 대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얼마나 변화했는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특별한 친구나 배우자 혹은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쌓인 업은 당신이 사는 동안 풀어가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당사자와 풀 필요는 없다. 치유의 길을 계속해서 걸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적인 문제를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에게 솔직해지라.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의 업을 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놓아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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