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생각을 피해서 생기는 문제
상당수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특정 내면 상태를 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서 생긴다.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피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의식을 왜곡할 수 있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만 마음이 편하고, 집 밖에서는 때로 공포를 느낄 정도로 불안하다면 어떻게 할까? 먼저 비행기를 탈 때마다 굉장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공항 보안대를 지날 때나 짐을 찾아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할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않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직장에 다니고 간단한 볼일을 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점점 더 집에서만 지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직장에서도, 또 볼일을 볼 때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불안하게 될까봐 불안하게 된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집 밖에 아예 나가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는 광장공포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이미 완전히 진행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불안을 피했기 때문에 삶은 이제 뿌리까지 흔들릴 정도로 철저히 제한된 것이다.
생각을 피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는 제쳐놓고서라도 광장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그 공포를 피하려고 함으로써 덜 불안해진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불안을 피하기 전보다 더 겁먹는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거나 직장에 출근할 때 불안을 느낀다. 애초에 불안이 전혀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불안은 괜찮다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삶은 열려 있는 셈이다.
생각과 감정을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날아가는 돼지들’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날아가는 돼지들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그 돼지들에 관해 생각해도 괜찮다는 태도다. 그래도 괜찮다고 결정하면 결국에는 그 돼지들에 관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그것을 하나의 문제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협상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반드시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편한 감정을 의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척 자신을 속이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 그런 시늉만 한다면 그것은 비밀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억누르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고객들은 종종 이런 숨은 의도를 무심코 드러낸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자신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들을 마음을 챙겨 의식하는 수행을 한 뒤 “효과가 없었어요” 하고 말한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물으면 비밀협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말하는 ‘효과’란 불쾌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이들이 여전히 불쾌한 생각을 회피하고 억압하여 상황을 교묘하게 처리하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때때로 집을 나서면서 차고 문을 닫았는지 또는 커피포트를 껐는지 걱정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피하려고 하면 마음속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심하면 원치 않는 생각과 싸움을 벌이는 강박신경증에 걸릴 수도 있다. 우울증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우울한 생각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슬픈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마다 그들은 걱정한다. 다시 우울증에 빠질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독히도 괴로운 경험이었으므로 다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슬픈 생각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슬픔이 더 커진다. 우울증을 피하려고 하는 바로 그 노력이 실제로는 우울증을 키우는 주범인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려고 할 때에만 불쾌한 생각과 감정의 수준이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룬다. 비밀협상을 벌여 특정한 감정을 피하면 긴장과 번뇌를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차차 배우게 될 것이다. 이제는 불쾌한 감정에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자.
내면 상태를 다루는 일은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소매를 당기면서 “나 이거 할 수 있어! 와서 내가 하는 걸 봐봐!” 하고 말하는 어린아이를 다루는 일과도 같다. 나중에 보겠다고 미루면 어린아이는 더 세게 잡아당기고 더 크게 소리지르고 심지어 울먹이면서 더 간절하게 봐달라고 조른다. 아이를 피하면 피할수록 아이는 더 집요해진다. 손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은 재미난 책을 읽고 있다 하더라도, 잠시 멈춰서 아이를 인정해주거나 아이가 보여주려던 것을 보아야만 다시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고 알아주고 느껴주기를 원한다. 우리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다.
마음은 열려서 자유롭게 흘러가길 바라며, 늘 변화하고 무상한 경험의 세계와 조화를 이뤄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세계를 원한다. 늘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계는 불안해서 피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피하기만 하면서 늘 변화하고 무상한 경험의 본질에 저항하면 우리는 장애물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이 장애물은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혈관에 장애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일어날 수 있다. 마음속의 장애물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중요한 건 항상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에 근거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 앞에서 무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