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는 공자의 제자들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들은 장자가 유가儒家를 비판했다고 오해하는데,『장자莊子』를 보면 그가 공자의 제자들을 높이 평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자의 제자 세 명을 특별히 언급했는데, 첫 번째 제자는 원헌原憲입니다.『논어論語』14편「헌문편憲問篇」에 나오며, 편명 중의 헌憲이 바로 원헌을 말합니다.
원헌은 비지나 쌀겨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는 스승 공자에게 부끄러움에 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거늘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거나, 나라에 도가 없는데 뜻을 지키지 못하고 녹봉만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생풀로 덮어 만든 원헌의 집은 볼품이 없었고, 비가 올 때면 바닥이 금세 빗물로 흥건해졌으며, 집안에 살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문도 짚을 엮어 간단히 만든 것으로 집에 훔쳐갈 물건이 없었으므로 문고리는 아예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 자공子貢이 찾아 왔습니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하나인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사업수완이 좋기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자공은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치려고 할 때, 공자의 허락을 받고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를 설득하여 노나라를 구함과 동시에 월을 패왕覇王으로 하여 네 나라의 세력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연 인물입니다. 이재가理財家로도 알려져 공문의 번영은 자공의 경제적 원조에 의한 바가 컸다고 합니다. 공자가 죽은 뒤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에 가서 벼슬했으며, 제나라에서 타계했습니다.
하루는 자공이 멋진 옷에 큰 마차까지 타고 원헌을 보러갔습니다. 그런데 원헌의 집 앞 골목이 너무 좁아 마차가 들어갈 수 없자 하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걸어갔습니다. 원헌의 집을 본 자공은 친구가 이렇듯 초라한 곳에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집에 들어서자마자 원헌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아프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찌 이런 곳에 살 수 있는가?”
원헌이 말했습니다.
“가난은 병이 아니라네. 학문하는 사람이 이상이 있어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병이지.”
원헌은 이렇게 반문함으로써 자공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는 자공에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행동이 스승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말을 들은 자공은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장자가 본 원헌의 모습입니다. 원헌은 비록 가난했으나 정신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강건했습니다.
장자가 높이 평가한 공자의 또 다른 제자는 증삼曾參, 즉 증자입니다. 증자는 효도를 역설했으며, 공자의 덕행과 학설을 정통으로 조술祖述하여 이를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맹자孟子가 이 계통입니다. 증자는『효경孝經』의 저자로도 알려졌습니다. 원헌과 마찬가지로 증자도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 쌀이 없어 사흘 동안 배를 곯고, 십 년 동안 새 옷을 해 입지 못했다고 합니다. 갓을 쓰려니 갓끈이 끊어지고, 옷을 입자니 해져 팔꿈치가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신발은 아무리 묶어도 맨발이 땅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한 마디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방안에서 경전을 읽는 소리만큼은 음악소리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자는 그를 신하로 쓰지 않을 수 없었으며 제후들은 그를 친구로 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증자의 마음에는 도가 있어 기쁨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도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장자가 인정한 또 하나의 공자의 제자는 안연顔淵(기원전 521~490)입니다. 흔히 안회顔回로 불립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몸소 실천한 안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줄 압니다. 안회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장자는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로 때를 만나지 못하고, 운이 따르지 않으며 천명이 하늘에 닿지 않아서임을 꼽으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장자가 가난을 견디다 못해 위왕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기운 옷에다 새끼줄로 묶은 다 떨어진 신발까지, 장자의 행색은 매우 남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왕은 그토록 높은 학문과 명성이 있는 인물이 이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온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어찌 이렇듯 행색이 초라하시오?”
장자가 말했습니다.
“초라한 게 아니라 전 그저 가난할 뿐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숭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원숭이는 높은 나무 위에서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는데 아무도 그런 원숭이를 잡지 못합니다. 원숭이 역시 정말 즐거워 보이지요. 하지만 원숭이를 가시나무 숲에 둔다면 여기저기 찔리고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를 흔히 혼상난상昏上亂相이라고 하죠. 신은 가시나무 숲에 있는 원숭이 같은 처지입니다. 그러니 가난이 신의 탓은 아닙니다. 모두 시대의 탓이 아니겠습니까?”
혼상昏上은 돼먹지 못한 임금을, 난상亂相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벼슬아치들을 말합니다. 장자의 말은 실상 위왕에게 한 훈계였습니다. 위왕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니 자신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렇듯 낭패를 보지 않느냐고 질타한 셈입니다.
장자가 생각한 가난은 생활에 필요한 최저 기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유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입니다.
도가에서는 자연애와 인생의 정관靜觀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자연귀의自然歸依, 하늘과 사람이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 마음을 비우고 순리에 따른다는 청정무위淸淨無爲를 숭상합니다. 도가에서는 가난과 부귀를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