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귀지
최병현 / 문학과비평사 / 198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냉귀지』: 한국판 랩문학의 원조 詩說 冷鬼志!

 

 

 

 

판소리의 후예,
한국판 랩문학의 원조 詩說 冷鬼志!

 

1988년 제1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시야에서 유성처럼 사라졌던『 냉귀지』가 비행접시처럼 새롭게 나타났다. 판소리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하나이듯이『 냉귀지』 또한 시와 소설이 한통속이다. 이는 판소리에서 이야기와 랩이 분리되지 않는 것과 같다. 스토리에만 치중하는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놀라운 언어의 변용에 낯설 수 있고, 감성적 표현에만 치중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놀라운 은유의 역사 해석에서 길을 잃을 수가 있다.
저자는 詩說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면 진화된 오늘날의 독자와 교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미료로 맛을 낸 현 문학의 언어와 달리 하얀 종이 접시 위에 각종 야채와 고기와 양념 같은 말들을 가득 言져놓고 한바탕 비비고 부볐으니, 시설의 맛이 아직 생소한 독자는 입맛 대신 음식을 탓하겠지만, 소위“ 뛰는 놈, 나는 놈, 그 위에 뭘 좀 아는 놈”은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갑자기 밥 먹다 말고 일어나 말 춤을 출 것이다. 그이것이 진정한 맛이요, 말이요, 이야기다. 이 맛 저 맛 중에 말맛이 최고이다. 아울러, 이 책에 등장하는 한국의 어두운 과거, 특히 군사정권을 경유한 민주화 과정에서‘ 일구’와‘ 일육’으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사는『 냉귀지』의 또 다른 일면이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담론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숙명적으로『 냉귀지』의 스타일이다.

언어의 십자가에 뭣 박히는 게 시인의 운명입니다.
아니 종이에 붙은 밥풀이 시인이던가요?
이 땅에도 재래문학의 시대가 去하고 별종문학의 시대가 來했습니다.
-본문 35쪽

 

시설이란 시적인 소설이요 소설적인 시인데 시가 형님이므로 재판을 하기로 한다면 시 쪽에 가깝다 할 것입니다. 시설은 그 원리가 짬뽕과 같으니 중국집에서 인스피레이션을 얻은 지가 이미 삼 년이 넘었습니다.
-본문 50-51쪽

 

천재적인 죽음의 수학자, 일구 공식 1+9=0 그러나 1×9=9 일구는 역시 일구.
일구의 혁명공식으로 일육을 풀면 1+6=7. 억세게 운이 좋은 놈 오 일육
-본문 64쪽

 

육체는 영혼의 덫이렷다.
어쩌다가 영혼이 이 덫에 치었겄다.
앙 — 어린애 울음소리의 알람이 울리고,
불자동차가 사이렌 소리를 뒤따라가는
거리의 전쟁이 치열한 사이, 영혼이
천사도 변호사도 없이 육체의 형무소에
찰카닥 갇히고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감방의 아랫목에 있는 변기였다.
-본문 242쪽

 

고함은 우우雨雨 돌멩이는 씽씽sing sing
본전과 이자를 몽땅 바다에 털려서 좋고 싫구나.
광주시민 여러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러셔도 안 됩니다.
마이크시험 중일 때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믿어주세요.
-본문 388쪽

 

최병현
작가이자 학자, 고전번역가인 저자는 뉴욕 컬럼비아대학 영문학 석사, 뉴욕시립대학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캘리포니아대학(어바인)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했다. 메릴랜드대학 초빙교수, 제12대 한국현대영미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호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상 경력
제11회 하와이대학교 Myrle Clark 창작문학상 (1976-77)
제1회 현진건문학상 (문학과 비평, 1988)
제6회 한국문학번역상 (한국문학번역원, 2003)
제11회 다산학술공로상 (다산학술문화재단, 2010)

 

주요 저서
『냉귀지』(문학과 비평),『 헤라클레스의 강물』(양지),『 대한민국 하여가』(知와 사랑) 등이 있으며,『 懲毖錄』, 『牧民心書』와 같은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英譯, 미국 버클리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캘리포니아대학 출판사 등에서 출
판했다. 현재『 朝鮮王朝實錄』 중『 太祖實錄』을 영역 중으로 조만간 미국에서 출간 예정이다.

 

 

『 냉귀지』의 목차

 


열章
異장
삶章
死장
誤장
肉장
治장
罷장
故장
저자 해설
지은이 소개
옮긴이 소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진정한 평화, 사마타 명상, 수행을 통한 통제

진정한 평화
평화는 배고픔이나 추위로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양심수가 겪는 고문의 고통을 없애지도 못합니다. 이웃나라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발생한 홍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평화는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평화는 인권이 존중되고, 굶주림이 없으며, 개인과 국가가 자유로울 때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변의 진정한 평화는 오직 정신적 평화를 얻음으로써 성취될 수 있습니다.

 

사마타 명상
사마타 명상(고요 명상)에는 40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네 가지 방법이 보호명상으로, 부처님을 염하는 명상, 자애의 마음을 증강시키는 명상, 자신의 육체를 부정한 것으로 보는 명상, 우리 모두가 죽게 되어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명상입니다. 고요 명상은 심신이 유연해지면서 선정에 드는 고양된 의식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몸과 마음이 유달리 유연해지고, 수용적이 되며, 유용해집니다. 특별한 통찰력이 생기는 이유는 의식이 고양되기 때문인데, 이때는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면서 의식이 크게 확장됩니다. 따라서 고요 명상은 통합성을 띠는 반면, 특별한 통찰력은 분석적 성격을 띱니다.

 

수행을 통한 통제
우리가 수행을 할 때 우선 기본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방어적 기능입니다. 다음 단계로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적극적인 목표로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때로 고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과 힘이 생긴 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건강, 교육, 정치 등 어느 분야에서든 봉사를 해야만 합니다. 봉사하기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인간과 사회의 상호 의존
인간과 사회는 상호 의존합니다. 따라서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취하는 행동이 구별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의 불안감과 역기능적인 요소들을 줄이고 더욱 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보상 제도를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숭고한 이념을 담은 헌장을 발표하며 단체와 조직들이 세워졌습니다. 좋은 의도와 목적으로 시작한 그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선의에서 시작한 그들의 사상은 사람이 지닌 고유한 이기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공유하는 인간성
민족이나 신념, 이념, 정치 연합(동구와 서구), 경제 지역(북부과 남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는 누구나 공유하는 인간성입니다. 늙었거나 젊었거나, 부자이거나 빈자이거나, 배웠거나 배우지 못했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인간성을 공유함으로써 행복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은 열망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이를 성취할 기본 권리 또한 지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이는 확고한 저의 가르침이며, 저의 메시지이자 저의 믿음입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제가 기여하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종교성
정치인은 은둔자보다 한층 더 종교가 필요합니다. 은둔자가 잘못된 동기에서 해로운 행동을 한다 해도 자신 외에는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나쁜 동기에서 행동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단어를 많은 다른 방식들로 사용한다. 좋아하는 햄버거나 텔레비전 방송처럼 사소한 것을 포함하여 성적 욕망을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짧은 순간에 체험하는 강한 애정, 의존 혹은 아집의 감정, 그리고 평생 헌신하려는 의지에도 사용한다. 이런 것들에 사용되는 단어가 모두 다르다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신약의 그리스어에서 사랑은 성적인 사랑(에로스eros), 친구 간의 사랑(필로스philos), 그리고 이타적인 정신적 사랑(아가페agape)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더 오래 전에 고대 그리스어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을 의미하는 더 많은 단어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이든 간에 진정한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깊고 자애롭게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흔히 고객은 심리치료를 받을 때,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깊이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때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받는다. 하지만 심리치료사는 보통 자신이 사랑을 베푼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랑이란 단어가 다른 의미와 혼동되기 쉬우므로 사실 많은 심리치료사들이 그것의 사용을 꺼린다. 하지만 심리치료사는 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지배하거나 조정하려는 의도 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이해하려 한다. 즉 심리치료사는 고객이 특정 조건을 갖추고, 자신이 용인하는 선택을 하거나 자신
이 원하는 대로 해야만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치료사는 고객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자신의 웰빙과 행복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할지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 때문에 치료의 관계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치료받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틀리지 않다. 그런 이해가 사랑의 진정한 본질인 까닭이다. 치료받을 때를 제외하면 우리가 접하는 사랑은 기대와 조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며 심기가 불편해지거나 긴장하기까지 한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 그 사랑의 대상,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심지어 그런 사랑은 특별하기에 숭고하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대상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가깝다. 그런 사랑은 쉽게 변해서 흔히 하룻밤 사이에 본성을 드러내며 증오로 변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해하고 또 계속해서 이해하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아집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해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진실한 의도다. 이 말은 설령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이해할 때까지 그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정원의 모든 씨앗을 지켜보려는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또 이해한다고 생각할 때도 현재 이해한 수준에 멈추지 않고 계속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즉 그 사람을 꾸준히 지켜봄으로써 그 사람을 전에 없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것은 흔히 나의 의식 속에서 싹트는 자신의 습관 에너지다. 누군가 한 번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우리는 지금도 그 사람을 그런 식으로 인지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이전에 그에 대해 인지했던 시각으로 보려고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와 닮았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방금 만난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그러나 과거를 바탕으로 한 인지는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왜곡시킨다.
소매치기가 성인을 바라볼 때 성인의 주머니만 본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완전한 붓다를 만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바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를 바라볼 것이다.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피하고 행복해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찾고 고통을 피하는 방법도 우리가 그러하듯이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기본 목표와 기본 본성은 같다. 진정한 사랑은 자부심이나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숭고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화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무아, 즉 다른 존재와 분리되지 않은 본질을 볼 때 우리는 사랑이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이며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행복을 위한 명상법

 

명상을 하면 무엇을 알게 될까요? 불교의 관점에서 명상은 정신수련이며, 생각과 감정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추구하는 영원한 행복을 얻지 못할까요? 불교에서는 우리의 정상적인 마음 상태는 거칠고 제멋대로이며
마음의 수양이 부족해 그런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마음이 우리를 통제합니다. 따라서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긍정적인 충동이 아닌 부정적인 충동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순환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미륵불의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해설한 문헌 미륵불의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에서는 이타주의에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이타적인 관점을 만드는 조건으로 이는 한 사람이 모든 지각 있는 중생에게 느끼는 연민과 중생의 행복을 위한 염원입니다. 이 조건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바람인 두 번째 요소로 연결됩니다. 이 바람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 대한 용서
우리가 과거에 행한 무지한 행동을 인식하고 용서할 수 있다면, 자신의 내면을 강화하고 현재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염원
정신 수행의 최고 형태는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타심, 즉 보리심普堤心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인 보리심은 복덕과
행복을 선의 최고 원천이며 가장 귀중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 수행을 통해 즉각적이고 궁극적인 열망과 함께 이타적인 활동의 기반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리심은 정기적이고 결연한 노력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
기 위해서는 마음을 수행하고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수행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타인의 안녕을 위한 노력
또한 이타심(보리심)은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의 안녕을 발원하는 마음입니다. 불교에서의 안녕이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도록 돕는 것이며,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이란 우주의 무한한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염원은 실로 가장
중요한 열쇠로서 다시 말하면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의 안녕을 위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의지입니다. 보리심은 모든 지각 있는 중생을 향한 평등하고 진실한 연민에 바탕을 둡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연민은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추상 개념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린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이 사실 간단하고 구체적 행동이란 점을 종종 망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챙기고, 느끼고 경험하는 바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단, 그 느낌과 경험을 우리가 느끼기를 바라거나 반드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일이다.
4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 감정, 신체의 감관을 마음을 챙겨 깊게 포옹함으로써 보살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겨울에는 충분히 따뜻한지 여름에는 충분히 시원한지 스스로 보살피는 것과 같다. 우리 자신이 지칠 때까지 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존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과 휴식을 취하는 활동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일이다. 나아가서 우리가 모든 활동을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음식을 적당하게 먹고, 비타민을 챙기고 충분한 운동과 휴식을 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하듯 우리 자신을 격려하는 일이다. 무엇인가 잘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어야 한다. “잘 했어!” 하고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미소를 보내라.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충분히 잘 해내지 못했을 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스스로에게 자애롭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의 의식의 정원 속에 심겨진 씨앗을 자비롭게 바라보고 부정적 충동의 원천을 구별해내고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 안의 불성이 발현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성숙하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일 역시 단순하며 구체적으로 실천이 가능하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타인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우리가 그들의 의식의 정원에 있는 씨앗을 관대하고 자애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타인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행복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과 타인의 의견에 대한 평등심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의 본성을 계속 깊이 들여다보며 다른 존재들이 정적이며 변화하지 않는 자아가 아니라 흘러가는 냇물임을 명심하라. 그 사람이 한때 어떤 식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같은 식일 거라고 짐작하는 대신, 그의 긍정적 변화와 성장을 보
고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그 변화와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그들의 긍정적인 행동에도 똑같이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의 부정적인 행동에도 관대하고 자애로워야 한다. 그들의 불성이 나타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함으로써 그 불성을 격려해야 한다. 나는 이에 관한 시를 다음과 같이 썼다.

어젯밤 당신이 잠든 사이 지축이 흔들렸다.
옆집 사람이 붓다가 되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이가 호스를 들고 비눗물로 그의 픽업트럭을 세차하는 모습을 볼 뿐이다.
불성은 내 안에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있음을 늘 기억하라. 우리 자신과 그 누구도 과소평가하지 마라.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어제의 모습으로 평가하지 마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