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도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칸트는 18세기 미학의 문제를 판단적 철학의 특징이 있는 형태에서 재조명했는데 미학을 철학적 시스템의 꼭 필요한 부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최초의 모던 철학자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자신의 고유한 예술론을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 헤겔도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가리켜서 “미에 관한 최초의 이성적 서언”이라고 극찬했다.
루카치는 『미학』에서 철학사의 발전과정에서 후계자들과 해석자들에 의한 관념론적 왜곡은 흔했던 일로서 원래의 서술을 훨씬 능가해왔다면서 칸트의 예술의 절대적 무관심성이라는 공리는 그래서 생겨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무관심성으로 인해 미학이 순전히 순수한 명상으로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칸트를 혹평했는데 “칸트 이래로 예술, 미, 인식, 지혜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온통 뒤섞이고 오염되어 버렸다”고 했다.
빙켈만과 괴테 그리고 고전주의자들에 비해 칸트의 새로운 인식이 미술품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거의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랄 만한 점이었다.
쿠노 프랑케Kuno Francke는 이에 대한 자신의 놀라움과 감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가 어떤 미적 경험도 없이, 그리고 어떤 예술적 영향이나 심리적 경험의 형식도 배제된 환경에서, 오직 추상적인 사유만으로 이러한 이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진실로 그의 사변적인 천재성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준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다룬 것은 복잡한 방법이었지만 예술들 가운데서 순수예술을 분리시킨 것으로 예술을 기능적인 것과 미감적인 것으로 나눈 후 미감적인 것을 순수한 것과 쾌를 주는 것으로 다시 나눴다.
그는 이것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분화하면서 플라톤의 방식대로 진리의 예술과 현상의 예술로 나누고 전자에 건축을, 후자에 회화를 분류했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예술과 예술에 의해 창조된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예술로 나눴다.
그는 인간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세 가지 방법 즉 말, 소리, 몸짓이 있다고 보고 이에 상응하는 세 종류의 순수예술을 분류했다.
시와 수사법은 말에, 음악은 소리에, 회화, 조각, 건축은 몸짓에 상응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칸트는 미를 “인상이나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보편적이며 무관심적인 방법에 의해 주관적 필연성을 갖고 쾌를 주는 것”으로 규정했으며, 취미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결정짓는 기능인 미적 공통감 sensus communis aestheticus”으로 규정하면서 “취미판단은 인식적이 아니므로 따라서 논리적이 아니라 미적으로 이는 내가 그것의 근거가 오직 주관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바이다”42)라고 했다.
칸트의 취미판단을 이해하기 전에 그가 확립시킨 역설적인 미적 경험의 특수성을 살펴보면 무관심성disinterested, 비개념성non-conceptual, 형식성form of the object, 심의 전체의 쾌pleasure of the whole mind, 필요성necessity(그러나 주관적이다) 보편성universality(그러나 어떠한 규칙도 없지만 주관적이다) 것들로 특징지워진다.43)
미의 가치가 보편적 원리로부터 추론되거나 증명될 수 없는 한 취미의 문제는 논증이나 증명을 통해 결정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척도와 선택된 모범의 평균치에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단순히 모방하는 것은 취미 본래의 개념이 아니다.
감성적 취미 영역에서는 모범과 표본이 탁월한 기능을 지니지만 칸트가 지적한 대로 이 기능은 모방의 방식이 아니라 계승의 방식을 따른다.
모범 혹은 실례는 취미가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지만 취미 고유의 과제를 빼앗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취미가 자체로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이다.